고교 졸업 후 첫 직장인 읍사무소를 그만두고 대학을 진학한 것은 소망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군대에서 갖은 고초를 겪고 대학에 복학하려 했으나 학기가 맞지 않아 한 학기를 쉬게 되었다.
그로 인해 시간적 여유가 생겨 감정평가사를 공부해서 시험을 보기로 했다. 마침 청주에는 동생들이 대학에 다니면서 자취를 하고 있어 자취 집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청주 자취 집에서 대학도서관을 오고 가며 공부를 하다 감정평가사 응시원서를 접수하고 이듬해 봄에 서울에 올라가 명지대학교에서 시험을 보았다.
감정평가사 시험을 보려면 전날 서울에 올라가 하루를 유숙해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마침 작은 형이 경기도 양평 양수리에서 공직생활 하고 있어 형 네 집에 가서 하루 유숙하고 명지대학을 찾아가기로 했다.
청주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 상봉터미널을 거쳐 양평 양수리로 갔다. 모처럼 버스를 타자 도서관을 오고 가며 생활하던 답답했던 마음이 확 트였다. 양수리에 도착해서 작은형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무소를 찾아가 형을 만나고 양수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양수리는 두 물줄기인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두물머리는 양수리의 우리말이다.
드넓은 한강물이 양수리에서 만나 휘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자 삶의 풍성한 물살이 느껴졌다. 양수리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형이 자취하는 방을 찾아갔다.
형의 자취방에 앉아 있으려니 형과 중학교 시절 자취하던 기억이 슬며시 떠올랐다. 그때 형이 청주로 진학했다면, 나도 형을 따라 청주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취방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데 형이 퇴근해서 왔다. 오랜만에 형과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감정평가사 시험 장소로 향했다. 작은 형은 서울을 자주 가본 것인지 서울 지리에 밝고 명지대도 어렵지 않게 찾아갔다.
명지대 입구에서 형을 해어지고 시험 장소를 찾아 교실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시험을 보는데 회계학이 너무 까다롭게 출제되었다. 그간 회계학을 공부하기 위해 상업부기 1급과 공업부기 1급을 독학으로 공부했지만, 수준이 너무 높았다.
대학에 복학하기 전 감정평가사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인생의 좌표를 수정하기로 했다. 감정평가사 자격을 취득하는 것은 내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영어나 제대로 공부하자는 생각에 대학에서 토플 강의를 신청해서 강의를 들으면서 복학을 준비했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아카데미 토플을 수강하면서 영어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아카데미 토플을 접하면서 영어도 수학의 공식처럼 틀에 짜여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카데미 토플 강의를 들으면서 영어 문법과 독해 풀이와 문장을 분석하는 방법을 제계적으로 배웠다. 그리고 대학에 복학하고 나자 복학 전과 주변 환경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예비역이란 감투로 행동이나 처신에 주의해야 하고, 군대 생활로 인해 머리가 멍해지고 아둔해졌다. 대학에 복학하고 나자 나와 여동생과 셋이서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가 부모님도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팔 남매 가족 중 대학생 3명, 고등학생 2명이었다. 학기마다 대학과 고등학교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힘이 들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어떻게 등록금을 마련했는지는 뻔했다. 농사짓는 가정에서 등록금은 뼈 빠지게 등골이 휘도록 일해서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있어 틈이 나는 대로 등록금과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마침 매형이 아파트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 그곳에 일하는 자리를 하나 구했다. 대학에 복학해서 공사장 일과 경비를 하면서 등록금에 보태고 용돈도 벌었다.
첫 아르바이트는 대성동 아파트 공사 현장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 공사장에서 시키는 작업은 무조건 해야 했다. 대학에 복학하던 해 가을부터 겨울까지 일을 하다 사돈이 아파트 공사장 경비작업을 맡겼다.
아파트 공사장 경비는 현장에 쌓아놓은 건축자재를 훔쳐 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일이다. 경비는 힘은 들지 않았지만 잠이 늘 부족했다. 공사장 경비를 하면서 트럭에 건축자재를 싣거나 내리는 작업도 도왔다.
나는 몸이 약해 힘든 일을 하면 쉽게 지친다. 경비를 마치고 이튿날 대학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면 졸음이 쏟아졌다. 대학 등록금과 용돈을 벌기 위해 일은 해야 했지만, 반대로 몸은 점점 지치고 무기력해져 갔다.
아파트 경비실은 임시로 지은 건물로 1층은 작업에 사용하는 연장이나 자재를 보관하고, 2층은 낮에는 현장사무실로 밤에는 경비실로 사용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경비를 보고 있으면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친구를 데리고 찾아와 밤늦도록 공부를 하다 가곤 했다.
동생이 찾아온 날은 동생들 공부도 봐주고 잠들지 않도록 보살펴 주었다. 그리고 가끔은 인근에 사는 사돈댁이 찾아와 집안의 어려운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갔다.
그 사돈은 나와 별다른 인연이 없는데도 종종 찾아와 밤이 늦도록 집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돌아갔다. 그런 날은 잠자는 시간을 놓쳐 선잠을 자는 날이 많았다.
대학 학년이 올라갈수록 취업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읍사무소를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한 것은 고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대학 3학년이 돼서 공부하는 양을 따져보니 고시는 어려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직급을 한 단계 낮추어 7급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했다. 그간 아카데미 토플을 공부해서 나머지 과목만 공부하면 되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머리가 멍해지고 무언가 몸에서 빠져나간 것 같은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몸은 아픈 곳이 없는데 머리가 멍하고 잠이 쏟아져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파트 경비를 마치고 이른 아침에 대학 도서관에 가서 자리에 앉으면 머리가 멍해지고 잠이 쏟아졌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하려 해도 도저히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몸에서 힘이 점점 빠지고 무기력해지면서 공부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어 언젠가는 시골에 가서 부모님께 몸이 좋지 않아 공부할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이튿날 아버지가 읍내에 잘 아는 한약방에 데려가서 진찰을 받게 했다. 한의사는 맥을 짚어보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고 기가 약하다며 한약을 지어주었다.
시골에서 며칠간 한약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자 몸과 머리가 괜찮아졌다. 시골에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다시 청주로 내려와 대학 도서관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부하려면 또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대학 3년은 몸의 혼란스러움과 불안한 가슴을 안고 보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자 홀로 조용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도 했다. 외딴 절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었지만, 비용이 문제였다.
부모님은 걱정하지 말라며 해결해 주겠다고 하셨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저수지 주변의 절을 돌아다니며 비용을 알아보니 부모님이 감당하기엔 벅찬 돈이었다.
대학 3년은 머리가 멍한 상태로 학과 공부와 취업 공부를 병행했지만 한계점에 다다랐다. 삶에서 그때가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이다. 몸이 건강해야 힘이 나는데 몸이 받쳐주지 못하자 무기력에 빠져들었다.
그런 상태에서 課 대표 업무를 맡고 있어 과 졸업여행도 준비해야 했다. 나는 졸업여행은 가고 싶지 않았다. 여행경비 마련도 어렵지만, 과 대표를 맡고 있어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課 친구들 여행경비를 걷어 여행사에 보내고 여행 일정을 여행사와 협의하며 여행경비를 어떻게 마련할까 궁리를 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은 어려워 큰형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졸업여행 경비는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고 큰형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졸업여행 경비를 해결하고 교수님과 課 친구들과 함께 제주로 졸업여행을 떠났다. 청주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광주로 가서 박물관을 구경하고 다시 목포까지 내려가 카페리호를 타고 제주로 갔다.
목포에서 제주까지 배로 4시간이 걸린다. 카페리호는 태어나서 처음 타보지만 힘들지 않았다. 배 안 객실을 돌아다니며 과 친구들과 아주머니 몇 명이 모여 고스톱 치는 것을 지켜보는데 4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제주에 도착해서 과 친구들과 배에서 내려 제주 땅을 밟자 마치 외국에 간 듯했다. 제주 땅에 발을 내딛자 육지와는 다른 이국적인 맛에 낯선 세계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자나무와 아열대 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여미지식물원에서 열대식물과 꽃도 구경하고, 5.16 도로를 타고 한라산 성판악에서 한라산도 구경하고, 화산 분화구로 유명한 성산 일출봉에서 친구들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귤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귤밭에 가서 귤도 맛보고, 바다로 물이 떨어지는 정방폭포와 수목원에 가서 이색적인 나무도 실컷 구경했다. 제주 시내와 서귀포에서 하루씩 자고 나자 그간 몽롱했던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도 전환되었다.
제주 여행을 마치고 나는 청주로 가지 않고 홀로 부산의 이모를 찾아갔다. 부산에 가서 이모를 만나 해운대 모래사장도 밟고, 자갈치시장에서 생선회도 맛보고 이모 집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이튿날 청주로 올라왔다.
대학 졸업여행을 통해 머리가 맑아지면서 마음의 안정도 되찾았다. 졸업여행 경비를 마련해 준 큰형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당신의 살림도 어렵고 힘든데 눈치 없이 찾아간 이종 조카에게 맛있는 회와 음식을 사 주고 집에서 하룻밤 유숙시켜 준 부산 이모님께 감사드린다.
제주 여행과 부산 방문을 마치고 나자 그간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의 긴 터널에서 몸이 서서히 빠져나왔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대학 도서관에서 잠이 쏟아지고 머리가 멍했던 원인은 커피가 아니었을까.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대학 선후배가 도서관에 들어오면서 커피를 갖다 주곤 했다. 그때는 내 몸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던 것 같다. 커피가 그런 작용을 하는지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오전에 커피 한잔 마시는 것은 괜찮지만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그날은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내 몸에 커피가 이런 작용을 하는지 미처 몰랐다.
커피가 몸에 예민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참으로 머리가 아둔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때 몸의 생리를 좀 빨리 알았더라면 지금 가고 있는 삶의 방향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금에 와서 지나간 시절을 후회해 본들 소용은 없겠지만, 대학 시절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커피가 몽롱한 정신상태로 만들었고 그로 인해 맑은 정신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게 보냈다.
그런 몽롱한 상태로 공부하다 대학 졸업반에 올라가 봄과 가을에 시험을 보았지만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비록 큰 꿈을 안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미래의 어떤 것도 담보받지 못한 상태로 졸업장만 손에 움켜쥐고 빈손으로 대학 교정을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