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와 고향에 가서 봄나물을 채취했다. 나는 서울로 가지 않고 먼저 고향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하루를 보냈다.
이튿날 아침 큰 형네가 볍씨를 파종한다기에 한 시간 정도 일을 도왔다. 볍씨를 파종하는 도중에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오전 10시경에 천안 버스터미널에 도착할 것 같다는 연락이다.
큰 형네 일을 돕다가 아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차를 몰아 천안으로 마중을 나갔다. 진천에서 천안까지는 승용차로 사십 분이 소요된다.
고향에서 차를 운전하며 천안으로 가는데 주변 산자락에는 벚꽃과 복숭아꽃이 하얗고 분홍색으로 산에 수채화를 그리는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천안으로 가는 도중에 아내는 벌써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부지런히 차를 몰아 천안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아내를 태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고향에 도착해서 두릅 순 채취에 필요한 장갑과 낫 등을 챙겼다. 도구를 챙겨 들고 장터의 두릅나무가 자라는 곳으로 향했다.
고향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어 나물 채취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에 차들이 들어오더니 산자락의 이곳저곳에서 아주머니들이 나물을 채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와 두릅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새순이 약 10센티 정도로 올라온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와 두릅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며 한 시간 정도 두릅순을 채취했다.
두릅나무순 채취를 끝내고 나자 아내가 봄철 쑥국이 먹고 싶다기에 두릅나무밭에 난 쑥과 밭두둑에 자란 쑥을 채취했다. 아내와 들녘에 앉아 봄날의 햇빛을 쏘이며 쑥을 채취하자 나들이를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두릅나무 순이나 쑥이 몸에는 좋다지만 봄날에 들녘에 앉아 나물을 캐는 것이 더 건강해 보인다. 두릅나무밭에는 쑥 외에 달래도 있었지만 아직 어려서 캘 때가 되지 않았다.
두릅나무순과 쑥을 채취한 후 고향 집에 내려와 아내가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큰 형네 볍씨 파종 마무리를 도왔다. 오늘은 오랜만에 어머니와 큰 형네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상에는 우리가 채취한 두릅순도 올라왔다. 젓가락으로 두릅을 집어 초장을 찍어 맛을 보자 고기처럼 쫄깃하고 두릅순 고유의 향이 나면서 맛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자 어머니가 기왕 온 김에 파절임을 무쳐 가라며 남산골로 파를 뽑으러 가자고 하신다. 차에 어머니와 아내를 태우고 남산골로 향했다.
파를 심은 곳까지 차가 갈 수 없어 도중에 차를 주차하고 아내와 어머니와 함께 걸어갔다. 파밭에 올라가며 산자락을 빙 둘러보니 아침에 마을로 들어온 아주머니들이 나물을 채취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계곡을 둘러싼 산자락에는 푸릇푸릇한 연초록의 싹과 벚꽃과 복숭아꽃이 하얗게 계곡을 물들여 가고 있다. 어머니와 시냇가 옆 파밭에 도착해서 실파를 뽑는 작업은 이십여 분만에 끝났다.
파를 뽑고 나서 주변 산자락을 올려다보는데 이전에 고구마를 심어 먹던 밭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와 고구마를 심고 밭을 매고 지게로 고구마를 날랐던 추억을 회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향 들녘에는 예나 지금이나 선선한 산들바람이 산 위에서 불어온다. 그 바람은 농사일로 땀을 흘린 땅방울을 씻어주고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 고마운 바람이다.
가족의 생계를 해결해 주던 고구마밭은 덤불숲으로 변한 채 황량한 모습이다. 고향의 산자락에는 옛 시절을 생각하면 끝없는 추억의 공간으로 다가오고 가슴에는 추억의 파도가 순서 없이 밀려오는 향수가 배어있다.
어머니와 뽑은 파를 들고 내려와 차를 타고 마을로 내려왔다. 아내가 손질한 파를 씻고 파를 무치는 동안 나는 고향 집 앞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가 오갈피나무 순을 채취했다.
오갈피나무는 가지마다 연초록의 순을 매듭으로 달고 있어 채취하기가 쉽다. 한 삼십 분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오갈피 순을 채취하고 고향 집에 들어서자 파절임도 끝나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진천 읍내에 사는 작은 형수가 몸이 아프니 입맛이라도 돌게 파절임을 전해주고 가라며 보따리를 나누어 싸주셨다.
그러잖아도 형수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어 병문안을 가보려고 했다. 두릅 순과 오갈피 순과 쑥과 파절임을 챙겨 짐을 싼 후 차에 싣고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고향 집을 나섰다.
아내와 진천 읍내 작은 형네 집을 찾아가 파절임과 나물무침을 전해주고 형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조카들도 집에 있어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형수에게 항암 치료 잘 받으시고 빨리 쾌차하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형수와 헤어지고 아내를 버스에 태워주기 위해 천안으로 향했다. 천안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아내가 타고 갈 버스표를 끊자 한 삼십 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아내는 혼자 터미널에서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간다길래 나는 지금 세종에 내려가도 할 일이 없다고 하면서 아내와 터미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내가 버스에 오르는 것을 배웅하고 세종으로 내려왔다.
세종에 내려오면서 하루를 곰곰이 돌아보았다. 오늘은 봄나들이 삼아 아내와 두릅 순과 쑥도 채취하고, 어머니와 파를 뽑아 파절임도 하고, 큰 형네 볍씨 파종도 도와주고, 형수 병문안도 갔다.
하루 동안 한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뜻깊은 하루고 삶에 새로운 추억을 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어머니와 지나간 시절의 배고픈 추억도 되돌아보았다.
앞으로 아내와 시간이 나는 대로 고향에 봄나들이를 자주 와야겠다. 천안에서 세종으로 차를 운전하며 내려오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차가 어느새 세종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