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말은 서울 집으로 가지 않고 고향에서 보냈다. 토요일에 세종에서 볼 일이 있어 일을 마치고 고향으로 가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올해는 봄에 비가 유독 많이 내린다는 생각이 든다.
오월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가에서 모내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비가 자주 내린다.
봄비가 많이 오지 않아 다행이지만 비가 오는 날은 농사일도 지체될 수밖에 없다. 농사에서 물은 하늘이 해결해주지 않으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고향에 가서 이튿날 아침이 되자 비가 그쳤다. 아침을 먹고 나자 어머니는 장터 고사리밭에 올라가서 고사리나 채취하러 가잔다.
장터 고사리밭은 사촌 형이 고사리 씨를 뿌려 관리하던 것을 어머니가 맡기로 했단다. 사촌 형은 교통사고와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 몇 년간 치료를 받고 있는데 고향에 내려올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단다.
장터 고사리밭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가에 접해 있어 나물을 채취하러 가는 사람들이 채취해 간다. 그렇다고 종일 고사리밭에 앉아 지켜볼 수도 없어 걱정이다.
외지 사람들은 어머니가 관리하는 고사리밭인 줄 모르고 고사리가 자란 것이 눈에 띄면 채취해 간다. 어제부터 비가 내린 탓에 고사리가 쑥쑥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와 고사리밭으로 올라갔다.
장터 고사리밭에 도착해 길옆의 작은 도랑을 바라보자 고사리가 자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와 나는 곧바로 고사리 채취 작업을 시작했다.
고사리밭은 잡초와 덤불을 제거해서 고사리 채취가 수월하다. 그런데 고사리가 자란 풀 속에 있으면 눈에 잘 띄지를 않아 그냥 지나쳐 버린다.
어머니와 방향을 엇갈려 고사리를 채취하는데 고사리와 숨바꼭질하듯 채취하는 것이 재미가 있다. 고사리를 채취하기 위해 앞쪽을 향해 가면서 꺾다가 고개를 뒤로 돌리면 지나온 곳에 고사리가 "나 여기 있다." 하고 방긋이 웃고 있다.
고사리를 채취하기 위해 앞을 향해 가며 꺾다가 다시 뒤돌아서 지나온 방향이나 좌측에서 우측으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동서남북으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며 고사리를 채취했다.
내가 고사리를 채취했던 곳은 어머니가 다시 돌아다니며 고사리를 채취하고 나 또한 어머니가 지나온 곳에 다시 가서 고사리를 채취했다.
풀보다 크게 자란 고사리는 채취하기가 쉽지만, 풀 속에서 묻혀 있는 고사리는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보이지 않는다. 고사리와 숨바꼭질 놀이를 해가면서 근 3시간 만에 고사리 채취 작업을 끝냈다.
내가 채취한 고사리는 비닐 한 포대가 넘었고 어머니가 채취한 고사리는 한 포대가 되지 않아 내 것을 어머니 포대에 덜어드리자 고사리 두 포대가 되었다.
고사리 두 포대를 양손에 끌어안고 어머니 유모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포대 하나는 유모차에 싣고 나머지 하나는 가슴에 안아 들고 고향 집으로 내려왔다.
고사리 채취는 허리가 아파 힘은 들지 않지만, 고사리를 찾는 숨바꼭질 놀이가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고사리밭 군데군데에는 멧돼지가 내려와 땅을 헤집어 놓았다.
멧돼지가 고사리를 먹지 않아 다행이지만, 산에 먹을 것이 없어지자 마을 인근까지 내려와서 문제다. 고사리밭 근처 묘지의 밑 부분도 멧돼지가 헤집어 놓았다.
이전에는 멧돼지가 마을 근처까지 내려오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멧돼지 때문에 산에 홀로 올라가는 것도 무서워졌다. 멧돼지가 사람을 공격하지 않지만, 새끼들과 있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특히 오월에는 멧돼지 번식기라서 더욱 주의해야 한다.
어머니와 고사리 채취 작업을 마치고 고향 집에 내려오면서 마을을 휘휘 둘러보았다. 마을 이곳저곳에 굴삭기 몇 대가 서 있다. 어머니에게 사연을 물어보니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살기 위해 집터를 닦고 있는 것이란다.
굴삭기 세대가 서 있으니 세 가구가 들어올 모양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이 나이가 들어 노년을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 고향으로 내려올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마을의 이곳저곳에 집터를 조성한 것을 바라보며 나도 직장을 퇴직한 후에 어디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어머니는 고향 집에 도착하자마자 고사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종아리 근육을 다쳐 일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어머니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고사리 다듬기를 마치고 빈대떡을 부쳐 주셨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형제들이 모이자고 한 날도 아닌데 너도나도 고향 집을 찾아왔다.
내가 빈대떡을 먹고 나자 작은형과 바로 아래 남동생이 순서대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빈대떡을 부쳐 주고 마지막으로 큰 형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형에게도 빈대떡을 부쳐 주셨다.
오늘은 고향에서 고사리도 채취하고 어머니가 부친 빈대떡도 먹고 형제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눈 소중하고 의미 깊은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