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옛길을 거닐며

by 이상역

주중에는 세종에 근무하고 주말에는 종종 고향을 찾아간다. 세종에서 고향까지는 차로 약 오십 분 거리다.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지 못하면 고향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출근한다.


월요일 아침에 사무실을 출근하려면 바짝 서둘러야 한다. 차로 오십 분 거리지만 거리는 꽤 멀어서다. 아침 7시 반에 출발해야 사무실에 늦지 않게 도착한다.


아침에 차 운전대를 잡고 고향 집을 나서면 옛 시절에 걸어 다녔던 길이 나온다. 고향 마을 입구의 비석거리를 내려서면 주변의 산과 계곡에서 새소리와 개구리와 뻐꾸기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교향곡처럼 들려온다.


아침에 산새들의 울음소리도 듣고 시원한 공기를 쏘이면 마음은 저절로 상쾌해진다. 차를 운전하며 창 밖을 휘휘 둘러보면 계곡에서 여물어 가는 연초록의 신록이 바라보이고 길옆에는 모를 심은 논과 고추와 옥수수를 심은 밭들이 층층 계단을 이룬 농촌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랜만에 만나는 옛길의 정겨운 모습이다.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던 시절에는 풍경으로 다가오지 않더니 나이가 들어 다시 마주하게 되자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옛길에서 느끼는 흥겨운 정취는 마음에 각인된 익숙한 풍경이다. 그 풍경에는 옛 추억과 정겨움이 묻어 있다. 한적한 옛길에서 그리움을 차에 태우고 둥실둥실 내려오면 초등학교가 나온다.


고향에서 초등학교까지는 4㎞이고 걸어서 사십 분, 자가용으로 십여 분이면 도착한다. 고향의 옛길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걸어 다녔던 인생의 발자국이 수북이 쌓여 있다.


지금은 도로를 포장해서 옛길의 흔적은 잃었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옛길의 흔적 안에 머물러 있다. 옛길에는 미루나무와 플라타너스가 길가에서 그리움과 향수를 안고 자랐데 지금은 가로수와 향수마저 사라졌다.


고향의 옛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차가 많이 다니자 시골길이란 이름도 잃어버렸다. 옛길은 흙먼지와 가로수와 곡선이 서로 어울려 멋스럽게 다가왔다. 지금은 옛길의 흔적과 멋이 남아있는 곳이 별로 없다.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도 옛길의 흔적과 그리움이 사라졌다. 옛길은 마음속에서 만나야 한다. 그리고 옛길을 따라 걷던 추억과 희미한 옛사랑도 떠나버린 지 오래다.


옛길을 내달리며 지난 추억과 부모님과 농사를 짓던 옛 시절의 땀방울을 떠올려본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아름답다는 노랫말처럼 옛길에 가로수는 없지만, 지금의 것에서도 아름다운 아우라를 만난다.


직장이 과천에서 세종으로 내려오면서 많은 것을 만나고 접하게 된 것에 감사를 드린다. 지난 시절에 무심하게 스쳐 지나쳐 간 것이 이제는 풍경으로 바라보게 되고, 옛길을 오고 가며 만나는 사람과 사물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그리움을 주어서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서 고향의 아랫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그들을 바라볼 때면 내 머릿속은 초등학교 시간 속으로 되돌아간다.


초등학교에 등교하는 기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학교까지 동행했다. 그리고는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는 말을 전하지만 그 말속에는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는 그리움이 오롯이 담겨 있다.


요즈음 옛길에서 인생의 시간표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온 나의 옛 그림자를 만난다. 비록 황톳길에서 아스팔트로 색깔은 바뀌었지만 그 길을 나그네처럼 걸어가는 나의 자화상이 떠오르곤 한다.


나도 어느덧 삶의 풍경을 그리움과 여유로움으로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책보를 어깨에 둘러메고 다니던 시절에는 바라볼 수 없던 것을 나이가 들어 이것저것 겪다 보니 지나간 시절의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나이로 성장했다.


이제는 나이테가 두터워지는 서글픔보다 뒤늦게 옛길에서 만났던 그리움을 다시 바라보고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에 감사드린다. 인생이란 길에는 이런저런 사연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다.


뒤늦은 나이에 어머니와 고향의 안방에서 잠도 자고 고향의 이것저것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정년이 다가오는 나이에 소중하고 진실한 경험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축복의 삶에서 옛길을 걸어갈 때마다 잊을 수 없는 이야기와 추억을 만난다. 고향의 옛길은 그 자리에 오래도록 존재하면서 더 많은 추억과 그리움으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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