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락의 계절

by 이상역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이 돌개바람에 휘감겨 하늘로 비상한다. 허름한 유모차에 기대어 생을 의지한 노인이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겨 갈수록 밭은 숨소리는 높아만 간다.


누가 생을 아름답다고 했는가. 누가 낙화하는 낙엽을 바라보며 쓸쓸하다고 했는가. 유모차에 기댄 노인의 등이 굽어갈수록 생명은 빛을 잃어가고, 낙화를 서두르는 나무는 생명의 주기를 재촉한다.


까만 포도 위에 떨어진 낙엽을 부둥켜안은 바람은 꺼져 가는 생명을 붙들고 휘모리장단에 춤을 춘다. 쓸쓸한 거리를 부랑하는 낙엽을 바라보니 凋落한 생명의 허접함이 느껴진다.


나뭇잎의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생을 제대로 누리고 마감하는 모습을 통해서다. 무릇 생은 천수를 누리고 떠나야 아름답다.


지금 거리를 배회하는 낙엽은 단풍으로 누려야 할 소중한 시간을 빼앗겼다. 누가 나뭇잎의 생명을 서둘러 앗아간 것일까. 아마도 사람의 욕망과 지구를 더워지게 하는 것들이 아닐까.


나무도 생명을 아름답게 가꾸고 난 뒤 낙엽을 떨구어야 나무답다. 태양의 강도가 오락가락하자 대지에 둥지를 튼 생명도 어쩌지를 못한다. 대지에 기대어 사는 생명에게 태양은 모진 시어머니다.


나그네새도 제 살길을 찾아 떠나는 계절인데 길을 잃은 낙엽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거리를 방황한다. 낙엽은 단풍으로 누릴 수 있는 생명의 시간이 깃들어야 아름답다.


지금 나뭇잎은 녹색에서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갈색으로 변해 대지를 향해 활강한다. 가을에 단풍을 그리워하는 말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삶은 근원을 찾아 헤매다 마감하는 도돌이표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근원을 찾는 것에 소망을 건다. 그 소망에는 자신을 잉태시킨 바람과 태초를 갈구하는 갈망이 자리한다.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과정을 잃어버린 낙엽은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근원을 모른다. 낙엽의 운명이자 숙명이다.


속담에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고향에는 젊은 사람은 떠나고 등 굽은 사람들이 묵묵히 선산을 지키고 있다.


낙엽이 나무의 살아갈 짐을 덜어주는 것이라면, 등이 굽어 고향을 지키는 부모님은 인생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다.


부모 앞에 서면 마음이 작아지듯이 낙엽도 나무 앞에 서면 초라해진다. 나무가 계절의 길목을 잃으면 슬프다. 더해서 낙엽이 단풍이란 길목을 잃으면 추레하다.


계절을 이끌고 안내하는 신호수는 바람이다. 그 바람을 순종해야만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누릴 수 있다.


건조한 일상에서 그래도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사무실 앞에 선 나무다. 나무가 아름답게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낙엽을 토해내는 모습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내가 도와줄 수것은 없지만 사무실을 오가면서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내 삶도 나무와 같이 무럭무럭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바람과 시류와 자리와 돈에 연연하지 않고 나무와 같이 오롯이 한 곳에서 풍파를 겪어내며 꿋꿋하게 살아갔으면 한다.


오늘따라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낙엽을 떨구는 나무가 가엾고 불쌍해 보인다.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어쩌면 나무도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쉽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래저래 나는 나무보다 못한 생을 감내하며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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