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계절이 시월의 끝자락에 접어들었다. 사무실 뒤편 산자락에는 나뭇잎이 단풍으로 물들며 산수화를 그려간다.
계절의 끝자락에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출발의 의미와 그간의 수고를 마무리하고 위로하는 따뜻함도 들어 있다.
사무실 벽에 매달린 달력을 바라보니 벌써 시월 말이다. 벽에 달린 달력의 가슴팍도 얇아졌다.
시월이 끝나가는 길목에 들어서면 왠지 모를 아쉬움과 미련이 생긴다. 시월의 마지막 밤이란 말이 세상에 부유할 때면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를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어요.…’로 시작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가 귓전에 들려온다.
누군가에게 시월의 마지막 밤은 잊을 수 없는 밤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기억하기도 싫은 불면의 밤이 될 수도 있다.
올해 맞이한 시월의 마지막 밤은 내게 위대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인생의 중대사인 딸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쳤고, 내년이면 정들었던 직장도 마무리를 해야 한다. 딸의 결혼과 직장의 마무리 모두 삶에서 겪는 과정이자 절차다.
딸을 출가시키고 보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하다. 더불어 머릿속에는 무슨 행사를 치른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오늘은 삶의 시름을 잠시 접어두고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나 들으면서 가버린 시간의 애잔함에 대하여 누군가와 이야기나 나누고 싶다.
오늘이 가기 전에 번잡한 일상을 접고 옛 추억의 노래나 들으면서 카페의 구석진 창가에 앉아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시월의 밀어나 속삭이고 싶다.
시월의 마지막 밤이 지나면 새로운 계절이 다가온다.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서서히 넘어가고 시간은 어제에서 내일이란 마차를 타고 흘러간다.
한 해의 농사가 시월에 마무리되듯이 한 해의 계획도 시월에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내년을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 우리 곁에 머무는 시간은 좌고우면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정조준해서 흘러간다.
그렇게 직진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다. 미운 사람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시간은 똑같이 멈추지 않고 똑같이 흘러간다. 그런 시간을 붙잡을 수도 없고 그저 우두커니 바라만 바라보는 신세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무소유의 삶을 살아갈 수는 없을까. 어떤 태도와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가을은 그간 정성 들여 가꾸고 돌본 것을 거두는 수확의 계절이다. 그런 수확의 계절에 무소유의 삶을 꿈꾸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일까. 농부에게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무소유란 되도록 적게 소유하고 사는 삶인데 농부는 소유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봄철에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무소유의 삶은 속세에 사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고 속세를 떠난 수행자에게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창밖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는 그리운 시간과 계절이 들어있다. 가을이 시간을 따라 변해가자 바람결이 한결 무겁고 쌀쌀해졌다.
오늘도 사무실 뒤편의 지도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인근 유치원에서 원생들이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아장아장 걸어온다.
친구의 손을 잡고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연신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지도박물관을 찾아오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란 것을 알고나 있을까. 아마도 알지는 못할 것이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란 의미보다 친구와 손을 잡고 지도박물관을 관람하러 온 날을 더 의미 있게 기억할 것이다. 원생들은 지도박물관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관람을 마치고 친구의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박물관을 나온다.
그들에게 오늘 하루는 어떤 날로 기억되었을까? 시월의 마지막 날이 아닌 지도박물관에서 신기하고 색다른 것을 구경하고 벤치에서 맛있는 도시락을 까먹은 날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박물관은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 추억의 장소로 남을 것이다.
사무실과 박물관 사이에는 느티나무와 향나무가 정갈하게 서 있고 그 사이에 벤치가 놓여 있다. 원생들이 벤치와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사무실 뒤편에 원생들이 입은 알록달록한 옷과 산자락의 단풍이 서로 어울려 창가가 풍성해졌다. 오늘은 사람이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원생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자연의 풍경이 더하자 보기가 좋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계관시인 워어즈워드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른보다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순수함 때문일까. 오늘따라 사무실 창가의 유리창이 유난히 풍성하고 고즈넉하게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