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자라는 곳

by 이상역

TV에서 강이나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영상 에세이를 종종 접한다. 고기 잡는 사람의 삶은 고달프겠지만, 그것을 영상으로 바라보는 자는 느긋하고 한가롭다.


직장인의 일상은 단조롭다. 아침에 출근해서 업무를 보다 점심 먹고 오후에 무언가 끄적거리다 보면 퇴근이다. 일상도 몸으로 부딪치면 현실이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풍경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한발짝 뒤로 물러나 지긋이 바라보면 풍경이 된다. 이 세상은 자신만 모를 뿐 사람들과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것 자체가 풍경이다.


우리가 사는 어느 곳에나 풍경이 바탕으로 깔려있다. 오늘도 사무실에 출근해서 광교산 여우 길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왔다. 가벼운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사무실 주변이 고즈넉하게 시야로 들어온다.


매일 출근하며 바라보던 모습과 오늘 아침에 바라보는 모습이 사뭇 색다르다. 사무실 동편 숲에는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운동장 잔디밭에는 햇빛을 받은 이슬이 영롱하게 반짝인다.


사무실 주변의 벚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이파리가 노랗고 붉게 물들어간다.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운동장의 파란 잔디밭도 오늘따라 생경하고 낯설게만 바라보인다.


광교산 여우 길에는 나뭇잎과 풀들이 가지각색으로 물들어가고 청설모가 소나무를 오르내리며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도 풍경으로 들어온다.


가을에는 모든 것이 변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침이 새롭고 싱그럽게 다가온다. 오늘은 아침부터 유치원생이 지도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왔다.


노란 유치원 원복을 입고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지도박물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그림과도 같다. 지도박물관을 보고 나와 사무실과 박물관 사이에 놓인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정경이 아기자기하다.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인가 보다. 유치원생 절반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나머지는 노란 원복을 입고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유치원 졸업사진에 담을 사진을 찍는 것인지 사진기사까지 대동해서 사진을 찍고 있다. 유치원 졸업사진을 찍는 것 같은데 아이들마다 다양한 자세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멋진 풍경으로 다가온다.


지도박물관은 관람료를 받지 않고 운영한다. 무료로 운영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생들이 자주 찾아온다.


아이들이 지도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사무실 밖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면 내 마음도 괜스레 콩닥거린다. 박물관을 관람하러 오는 아이들이 내 딸의 성장하던 모습과 교차할 때면 심장의 맥박이 이유 없이 빨라진다.


그럴 때는 사무실을 뛰쳐나가 아이들을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고 싶다. 아이들이 지도박물관을 찾아올 때마다 사무실 밖 풍경은 성큼성큼 자란다.


지도박물관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구경했는지는 잘 모른다. 설사 구경거리가 많지 않아도 아이들이 지도와 관련한 것에 대한 의미나 내용은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인생의 한 시절에 선생님과 함께 지도박물관에 친구들 손을 맞잡고 왔던 추억만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박물관 앞에서 짝꿍과 함께 자세를 취하며 찍었던 사진을 통해서나 이곳이 어떠한 곳인지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삶이 성장하고 자라는 곳 어디나 풍경으로 바라볼 수 있게 여유롭고 넉넉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삶의 일상을 풍경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도 삶의 아름다운 비상이다. 지도박물관을 찾아오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처럼 삶에도 늘 맑고 환한 풍경으로 남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소원만은 아닐 것이다.


유치원생이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롱한 옛 시절을 그려본다. 그런 생각에 젖어 창밖을 응시하는데 마치 누군가에게 들킨 것처럼 마음을 콩닥콩닥 뛰게 하는 설렘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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