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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의 쿼카 Dec 26. 2022

출근한 지 3주만에 이석증 걸린 애가 쟤야?

책임감 있는 MZ이고 싶어서

같은 시기에 입사한 동기들에 비하면, 입사하자마자 나는 '똥을 밟은 수준'이었다.


처음에 지원서를 냈던 부서가 아닌 인원이 부족한 다른 부서로 들어가게 됐고 ,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서울 본사가 아닌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한 공장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최종면접을 본 당일 밤 회사 번호로 전화가 왔고,

떨리는 목소리로 받았을 때는

최종 합격은 했지만... 다른 부서에서 근무할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부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없었지만,

회사를 다닐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었다.



‘암만 사무직 이어도 그렇지 내가 그래도 인 서울 4년제를 나왔는데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게 말이 되나?’



현타 온 나의 표정을 바로 읽으셨는지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 26살이면 딱 취업할 나이니까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아버지가 말씀을 안 하셔도 사실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부서가 어떻든, 근무지가 어떻든 나는 무조건 다녀야 한다는 것을.



서울 중위권 대졸.

학사경고 1회



그래서 다니기로 했다.

취업한 게 어디야. 이제 내 밥벌이는 할 수 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7호선 건대입구역에서 출발해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에서 환승.

그리고 평택역까지.


헤드뱅잉을 하면서 졸아서 그런지 목이 뻐근해서 3번정도 깨었는데,

가도가도 평택역에 도착하지 않아 놀랍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했다.


역에 도착하면 또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횡단보도가 아닌 육교가 있었고 도로는 모두 비포장도로였다.


왜 기모가 없는 정장바지를 입었을까. 허벅지가 사포에 쓸린듯이 쓰라렸다.

출근날만 신을 용으로 산 싼마이 검정색 4cm 구두는 눈 쌓인 비포장도로에 굽이 다 나가있었다.


가는 길에 목줄이 없는 진돗개 두 마리를 봤다.

빤히 건너편에서 쳐다보는 데 혹시나 물진 않을까 무서웠다.


"저 강아지 미용비가 내 커트비보다 비쌀듯"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며 말하던,

관리가 잘 되어 한강공원 근처에서 견주와 산책하던 비숑, 포메라니안 같은 강아지만 보다가 들개를 마주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공장이 거의 다 왔음은 냄새로 알 수 있었다.

찌린 내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쓰레기 냄새도 아닌 이상한 큼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공장 폐수처리 냄새였다.


"거, 손 소독하고 가쇼. 첫 출근인가보네?"

형광조끼를 입은 공장 경비실 아저씨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락부락하게 생기셨다.


"아,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안들려 큰 목소리로 말해요!"

 

"아, 네 신입사원입니다..!"


"공장에서는 크게 말해야돼! 다들 귀가 안 좋거든. 공장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잖어.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면 누가 들어 블라블라..."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정신없이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여섯 모두 다 남자였다.

20대는 없나? 이 팀에서 막내가 누구지?

40살 과장이었다.



6개월 인턴을 거친 후 최종 심사를 받아야 신입사원이 될 수 있었다. 필사적으로 잘 해내야 했다. 그게 뭐든.




저녁 6시에 칼퇴를 해도 집에오면 오후 8시 40분이었다.

1호선이 조금만 연착되면 20분씩 늘어나 오후 9시에 도착하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면 저녁 챙겨먹기도 귀찮아서 삼각김밥으로 대충 때우고

씻고 자고 그 다음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인턴 3주 차에 이석증에 걸렸다.


자꾸 메스껍고 토할 것 같은 것이 체한 줄 알았다. 손을 따고, 콜라를 마시고, 까스활명수를 몇 병째 마셔도 나아지지가 않았다.


어김없이 평택으로 출근하려고 새벽 5시 반에 눈을 뜬 날, 세상이 룰렛처럼 돌았다. 이러다 큰일이 나겠다 싶어 혼자 비틀비틀 병원으로 향했다.



“이석증은 4-50대가 많이 걸리는 질환인데, 환자분은 20대네요? 젊은 사람들이 걸리는 건 대부분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요새 뭐 스트레스받는 일 있어요? “



”최근에 취업해서요. “



“취업 축하해요. 잘됐네. 사회초년생 다 힘들지. 나도 진짜 말도 못 하게 힘들었어요. 근데 그게 다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될걸요.

그리고 오늘 이석 치환술 받고 나서도 후유증은 있을 테니 병원은 당분간 계속 오세요. “



그렇게 치료를 받고 이틀 만에 다시 출근했다.

아프다고 장기 병가를 쓰면 책임감 없는 MZ세대라는 말을 들을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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