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커피숍을 운영해 왔다.
처음엔 대학교와 고등학교 근처에서 시작했기에 주 고객은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삼삼오오 모여 와 공부도 하고 수다도 떨고 때로는 혼자 와서 조용히 책을 읽고 가던 학생들, 어느새 그 시절의 풍경은 내 기억속에 깊숙이 남아있다.
지금은 제민천가, 커피숍들이 모여 있는 거리에서 또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연령층은 다양하다.
덕분에 손님들의 이야기도, 표정도 한층 더 풍성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고민한다. 손님들과의 거리, 그 적당함에 대하여...
젊은이들은 과하게 다가오는 친근감을 부담스러워하고, 나이 든 이들은 세세한 관심을 때론 간섭처럼 느낀다.
그리고 나 역시 불필요한 간섭이나 지나친 감정의 개입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던 중 얼마 전 가슴을 적시는 일이 있었다.
커피숍 한 켠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던 학생이 있었다.
빵 한 조각과 음료를 주문한 뒤 말없이 책 속으로 빠져드는 그녀.
한참을 지나 조용히 일어나 나가던 모습.
나도 모르게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글 하나를 우연히 소개한 적이 있다.
그날 이후 그녀와의 눈인사로 만나는 짧은 마주침이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편지를 건네받았다. 커피숍을 오래 운영해 오며 손편지를 받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이희숙 작가님께!
작가님의 글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는 따뜻함이 저에게 전해옴을 느낍니다.
공간이 주는 온화함과 따뜻함에 이끌려 카페를 찾게 되었지만, 작가님의 글을 읽는 동안 그 안에서도 느낄 수 있어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짧은 만남 속에서 자라난 인연이 오늘 내리는 비처럼 조용히 그리고 온전히 내 마음을 적신다.
작가로서의 나의 시간과 공간 그 속에서 피어난 이야기를 온전히 읽어 내려간 독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글에서 온기를 느꼈다는 말이 나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열쇠와 자물쇠는 만나야만 존재의 이유가 생긴다.
단 몇 초의 만남으로 문이 열리고 곧 서로를 떠나게 된다.
어떤 인연들은 처음부터 짧은 만남을 전제로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충분히 빛나고 의미를 남긴다.
그래서 이별은 아쉽지만 미련이 남지 않는다.
그 시간이 기다림의 이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 편지를 읽으며 오늘 하루가 의미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커피 한 잔이 놓인 테이블 너머로 흐르던 작고 조용한 인연이 나에게는 아주 큰 선물로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과거 내가 운영하던 커피숍은 건물 위층엔 원룸이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후 커피숍에 와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가곤 했다.
그중 한 여학생이 있었다. 대학 1학년때부터 혼자 와서 조용히 공부하고 책을 읽던 학생, 내가 특별히 무엇을 잘해 주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늘 정성껏 커피를 내주고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던 것 같다.
몇 년이 흘러 그녀가 졸업을 앞두고 작은 화분과 함께 손편지를 내밀었다.
"친구처럼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 커피쏘울이 있어 제 대학시절은 정말 따뜻했어요!"
짧은 문장 안에 담긴 감정이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내가 선택한 커피숍이라는 공간, 그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 그것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해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잔의 커피, 그리고 사람들과의 따뜻한 만남
오늘도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또 다른 인연을 기다린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그 따뜻한 눈인사를
내 마음에 꼭 쥐고 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