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촛불이 사그라들고, 책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
시간은, 적어도 뉴턴 물리학이 굳건히 세운 선형적이고 단일한 방향성의 강제 아래 흐르는 시계의 시간은, 얼스 코트(Earls Court)의 29번지, 그 낡은 아파트의 방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바깥세상에서는 1968년의 봄이 런던의 회색빛 대기 속으로 무수한 생명의 포자(胞子)를 흩뿌리고 있었고, 카나비 스트리트의 공기는 혁명과 사랑과 향정신성 화학물질의 달콤하고도 위태로운 향기로 만연했으며, 역사의 톱니바퀴는 체제와 반체제 사이의 격렬한 마찰열을 내며 삐걱거렸지만, 이 방 안에서 시간은 점성을 잃은 채 고여 있거나, 혹은 베르그송의 ‘지속(durée)’ 개념처럼 오직 의식의 주관적 깊이 속에서만 무한히 팽창하고 수축하는 고무줄과도 같았다. 공간은 먼지의 성좌(星座)들이 희미한 오후의 빛기둥 속에서 자신들만의 우주적 발레를 추는, 소리의 화석들로 가득 찬 지층이었다. 모든 사물은 제 기능을 상실한 채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증언하는 기호(記號)로 박제되어 있었다.
방의 주인, 한때는 로저 키스 배럿이라 불렸고 이제는 세상이 시드(Syd)라는 짧고 신화적인 음절로 기억하는 사내는, 낡은 벨벳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앉아있다는 표현은 부정확했다. 그는 의자의 형태 속으로 함몰되어, 중력의 법칙을 간신히 거부하는 물질의 집합체처럼 존재했다. 그의 눈동자는 창밖의 봄을 향해 열려 있었으나, 그 시선은 망막에 맺힌 상(像)을 뇌의 의미 작용으로 전달하는 생리학적 절차를 잊어버린 듯했다. 동공의 소실점은 바깥 풍경이 아닌, 기억과 환상이 뒤섞여 끓어오르는 내면의 카오스모스(Chaosmos), 그 아득한 심연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흩어진 사물들은 그의 분열된 자아의 파편들이었다. 벽에 기대선 펜더 텔레캐스터는 은빛 몸체에 거울 조각들을 붙여 빛을 난반사시키던 영광의 시절을 잊은 채, 여섯 개의 현 중 세 개가 끊어진 채로 침묵의 고고학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 기타는 더 이상 소리의 가능태(可能態)가 아니라, 연주되지 못한 무수한 음표들의 묘비명이었다. 이젤 위의 캔버스는 물감이 거북의 등껍질처럼 갈라진 채 굳어 있었고, 바닥에 뒹구는 튜브들은 존재의 내장을 모두 짜내고 찌그러진 허물에 불과했다. 한때 그의 손끝에서 무지갯빛 환각의 우주를 창조하던 도구들은 이제 그의 창조력이 고갈되었음을 증언하는 잔혹한 증인들이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유일한 감각은, 창틀의 먼지가 아주 미세하게 내려앉는 속도와 자신의 심장이 혈액을 밀어내는 둔탁하고 느린 박동뿐이었다. 세상은 그를 ‘천재’라 불렀다. 그러나 그 단어는 이제 그의 존재를 담아내기엔 너무나 거대하고 공허한 기표(signifiant)에 지나지 않았다. 천재성이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설파했듯,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초인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의 발현이어야 했으나, 그의 천재성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태워버리는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이었고, 스스로를 가두는 보르헤스적인 미궁이었다. 그는 언어와 음표로 새벽의 문(The Gates of Dawn)을 열었지만, 그 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현란한 빛의 과잉은 그의 정신을 잠식하고 현실의 좌표를 지워버렸다.
밤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것은 시계가 알리는 저녁의 도래가 아니었다. 빛과 어둠의 물리적 교체가 아닌, 의식의 수위가 하강하며 내면의 그림자들이 길어지는 현상학적 황혼이었다. 바깥의 소음들이 점차 잦아들자, 방 안의 침묵은 더욱 밀도 높은 실체로 변모했다. 그 침묵은 소리의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발화되지 못한 단어들, 연주되지 못한 화음들, 터져 나오지 못한 비명들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귀가 아닌 온몸의 피부로 느껴지는 압력이었다. 그는 이 압력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했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이 견고한 감옥으로부터.
그의 시선이 아주 느리게, 마치 수세기의 풍화를 거친 석상의 목이 돌아가듯 움직여, 침대 위에 놓인 하나의 사물에 고정되었다. 그것은 낡고, 군데군데 얼룩이 졌으며, 여러 사람의 머리 모양대로 미세하게 함몰된 흔적이 남은 베개였다. 그러나 평범한 베개가 아니었다. 그것은 북해의 차가운 바다, 아이슬란드의 화산섬 해안가에 서식하는 아이더오리(Eider duck)의 가슴에서 채취한,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따뜻하다는 솜털, 아이더다운(eiderdown)으로 채워진 베개였다. 한때 그가 사랑했던,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의 안개 속에서 희미해진 여인이 선물한 것이었다. 그녀는 속삭였었다. 이 베개는 꿈의 무게마저 덜어줄 만큼 가벼워, 라고.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피난처, 현실의 중력장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포털이었다.
그는 기계적인 인형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절 마디마디에서 녹슨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방의 낡은 목제 문으로 다가가, 육중한 놋쇠 자물쇠를 돌렸다. ‘철컥’하는 소리가 침묵의 표면에 파문을 일으켰다. "밤이 오면, 너는 문을 잠그지(When night comes down, you lock the door)". 로저가 쓴, 이제는 동료들이 그의 부재 속에서 녹음하고 있을 노래의 한 구절이 그의 뇌리에서 희미한 메아리로 울렸다. 그는 세상을 향한 문을 잠근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이 방이라는 고독의 자궁 속에 영원히 봉인하고 있었다.
다시 안락의자로 돌아오는 길, 그의 발에 무언가 채였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와 경험의 노래』였다. 그의 손에서 언제 미끄러져 떨어졌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책이 바닥으로 떨어지지(The book falls to the floor)". 또 다른 노래의 구절이었다. 그의 의식은 이미 현실의 인과율을 벗어나, 노래의 가사들이 예언처럼 혹은 각본처럼 펼쳐지는 새로운 질서 속에 편입되고 있었다. 책은 펼쳐진 채 엎어져, 마치 용서를 구하는 순교자처럼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는 책을 줍지 않았다. 블레이크가 노래한 순수의 세계도, 그가 목도한 경험의 세계도 이제는 그에게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했다.
마침내 그는 침대 앞에 섰다. 그리고 아이더다운 베개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것은 추락이 아니었다. 귀환이었다. 그의 머리가 베개에 닿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급격히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소리를 죽이면서(Softening the sound)". 베개 속 수십만 개의 솜털 하나하나가 음파를 흡수하는 작은 블랙홀이 된 듯했다. 길 건너편 펍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웃음소리, 간헐적으로 밤의 정적을 가르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윗집에서 들려오는 부부의 다툼 소리, 그 모든 소음들이 형체를 잃고 멀고 아득한 파동으로 변했다. 그의 귀는 더 이상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감각기관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를 증폭시키는 공명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의식은 베개 속으로, 깃털 이불의 미세한 섬유질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구름 속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았다. "구름 같은 깃털 이불이(A cloud of eiderdown)". 그의 육체는 점차 무게를 잃어갔다. 뼈와 근육과 피의 질량이 소거되고, 오직 감각과 기억의 파편들만이 남았다. 그는 더 이상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부유하고 있었다. 시간도 공간도 없는, 순수한 의식의 유영.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가벼움’이었다. 깃털 이불보다 가볍게.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아니라, 존재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절대적인 가벼움.
그 부유의 상태에서, 기억의 파편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그것들은 감정의 인력에 따라 서로를 끌어당기고 충돌하며 새로운 성운(星雲)을 만들어냈다.
케임브리지의 강, 캠(Cam)의 물비린내. 펀트(punt) 배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오후. 물에 잠긴 수초들이 배 밑바닥을 간질이던 감촉. 옆에 누워있던, 아직 ‘율리아’라는 이름을 갖기 전의, 그저 웃음소리와 햇빛에 반사된 머리카락의 이미지로만 남은 소녀. 그 순간의 평온함은 완벽했고,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평온함의 표면 아래에는 이미 균열의 전조가, 다가올 광기의 미세한 진동이 잠재해 있었다. 마치 잔잔한 수면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수중생물처럼.
UFO 클럽의 현란한 조명. 스트로보스코프 빛이 1초에 수십 번씩 터지며 사람들의 움직임을 불연속적인 프레임으로 분절하던 광경. 공기 중에 가득 찬 해시시와 땀 냄새. 그가 텔레캐스터의 현을 Zippo 라이터로 긁어내며 만들어내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소음의 폭포. 청중들의 확장된 동공 속에서 그는 신(神)이었다. 그는 소리로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데미우르고스(Demiurge)였다. 그러나 그 신적인 권능의 순간들 사이, 그는 문득 무대 아래의 모든 얼굴들이 기이한 가면처럼 보이고, 자신이 연주하는 소리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증식하는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는 창조주였으나, 동시에 자신의 창조물에게 잠식당하고 있었다.
어느 녹음실의 굳게 닫힌 문.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동료들의 목소리. 그들은 그의 부재에 대해, 그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에 대해, 그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문손잡이를 잡았지만, 문을 열 수 없었다. 그 문은 단순히 스튜디오와 복도를 가르는 물리적 장벽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유된 현실과 그만의 고립된 우주를 가르는 인식론적 단층이었다. 그는 문 저편의 세계가 요구하는 합리성과 질서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미궁 속으로 더 깊이 후퇴하는 길을 택했다.
이러한 기억의 편린들 사이로, 노래 가사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올빼미는 깨어나고, 백조는 잠에 들어(Now wakes the owl, now sleeps the swan)". 그의 안에서 이성과 광기, 낮의 명료함과 밤의 혼돈이 끝없이 자리를 바꾸고 있었다. 지혜의 상징인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깨어나 그의 상태를 분석하고 진단하려 애썼지만, 레다의 백조가 상징하는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감성의 힘에 눌려 곧 잠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정신이 두 마리의 신화적 동물들이 영원한 투쟁을 벌이는 전쟁터임을 알았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은 따스해지지(The seasons change, the wind is warm)". 그러나 그의 세계에서는 계절의 변화가 멈추었다. 영원한 가을, 혹은 겨울의 문턱에서 모든 것이 정지해 있었다. 따스한 바람은 그의 뺨을 스치지 않았다. 오직 그의 내면에서 부는, 기억의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차갑고 건조한 바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바람이 바로 '바람의 베개'였다. 그가 머리를 뉘고 있는 이 베개는, 실은 그의 내면을 휘젓는 공허한 바람의 소용돌이 그 자체였던 것이다.
촛불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 놓인 촛불이었다. 그는 언제 그 촛불을 켰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촛농이 흘러내려 마치 작은 빙하처럼 굳어 있었다. 흔들리는 불꽃은 위태로운 그의 의식의 마지막 등불이었다. 불꽃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들이 벽 위에서 기이한 형상으로 춤을 추었다. 그것들은 플라톤의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들처럼,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사(模寫)가 아니라, 그의 분열된 자아들이 벌이는 무언의 연극이었다.
"그리고 촛불은 꺼져가(And the candle dies)".
마침내, 한 줄기 미세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와 촛불의 심지를 스쳤다. 불꽃은 마지막으로 한 번 파르르 떨며 발악하듯 타올랐다가, 이내 한 줌의 검은 연기를 남기고 어둠 속으로 스러졌다. 절대적인 암흑. 그 암흑과 함께, 현실과의 마지막 연결고리마저 끊어졌다.
그는 더 이상 시드 배럿이 아니었다. 그는 이름 없는 의식, 무게 없는 존재가 되어 깃털 이불의 우주 속을 유영했다. 바깥세상의 물리법칙은 더 이상 그를 구속하지 못했다. 그는 이제 곧 만나게 될 것이다. 그의 꿈을 지배하는 여왕, 그의 모든 꿈들의 여왕을. 눈물을 흘리는 버드나무가 길을 안내하고, 비늘에 덮인 천산갑이 숨바꼭질을 하는, 현실의 논리가 가닿지 못하는 저편의 세계로 그는 막 진입하고 있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이른 아침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환청이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다가올 아침을 예고하는 희망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더 깊은 무의식의 지층으로, 기억의 근원으로 하강하는 그를 부르는, 아득하고도 근원적인 울림이었다. "그리고 나는 잠겨가(And I go down)". 그의 마지막 남은 이성적 사유가 나직이 읊조렸다.
어둠 속에서, 깃털 이불의 구름 속에서, 바람의 베개를 벤 채, 그는 그렇게 잠겨가고 있었다. 빛도 소리도 형체도 없는 완전한 공(空)의 상태로. 영원으로 이어질 것 같은 그 기나긴 추락의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구원일까, 아니면 완전한 소멸일까. 그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지금 이 순간 그는, 깃털 이불보다 가볍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슬픔과 기억의 무게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제1화의 막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