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by 남킹

여자

현수와 헤어진 후, 남겨진 것은 폐허 같은 공허함이었다. 나는 영혼의 조각들을 간신히 그러모아 낡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잿빛이라기엔 아직 미련이 남은 듯, 하늘은 납빛에 가까운 무거운 색으로 내려앉아 있었지만, 오후의 햇살은 부서진 유리 조각처럼, 사그라드는 온기를 힘겹게 세상에 뿌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빛바랜 필름처럼 단조롭고 흐릿했다. 푸르스름한 저녁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거리 위로, 보이지 않는 먼지와 시간의 잔해들이 햇살 속에서 희미한 춤을 추었다. 어제까지 떠들썩했을 축제의 광장은 하룻밤 사이에 모든 열기를 빼앗긴 채 텅 비어 있었고, 그 적막한 공간 어디에도 살아 숨 쉬는 것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거대한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저마다의 그림자 속으로 자취를 감춘 듯했다.

버스가 익숙한 동네로 접어들수록, 이미 성마를 대로 성마른 마음은 더욱 세차게 요동치며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다. 보이지 않는 납덩이를 등 뒤에 짊어지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듯한, 숨 막히는 압박감이 명치끝을 짓눌렀다. 이 도시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일요일 저녁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한 주만큼의 무게를 진 우울과 함께 찾아왔다.

펼쳐질 일주일은 암담한 미지의 영역이었고, 방금 지나쳐 온 주말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처럼 아쉽기만 했다. 그 찰나와 같은 휴식마저도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자각, 타인에게 잠시 빌려 입은 화려한 옷처럼, 행복이라 믿었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지불해야 할 월요일의 청구서처럼 다가왔다.

사실, 나의 일상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겁거나 버거운 것은 아니었다. 관광학이라는, 어딘가 낭만적이지만 실용과는 거리가 먼 학문을 전공하고, 수출입을 다루는 제법 규모 있는 회사에 입사했지만, 내게 주어진 역할은 대부분의 말단 여직원들이 그러하듯, 거대한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했다.

책상 앞의 네모난 칸막이 안에 앉아, 정해진 시간 동안 키보드를 두드리고, 무감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서류들을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옮기는 일. 품질관리라는 이름 아래 고정된 틀 안에서 움직이는 부서는, 시간이 멈춘 박제된 공간 같았다. 야근이라는 변수도 없었고,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위치도 아니었기에,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폐쇄된 사무실, 형광등의 창백하고 메마른 불빛 아래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업무는, 날이 갈수록 내 존재의 의미를 좀먹어 들어갔다. 나는 이따금 내가 단순한 부품인지, 아니면 대체 가능한 소모품인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침묵이었다.

하지만 그 무료함의 늪 속에서도, 나를 끊임없이 옥죄는 날카로운 가시 하나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든 이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실체 없는 그러나 너무나도 생생한 불안감이었다.

변변한 경력도, 내세울 만한 특별한 기술도 없는 내가, 이 위태로운 안정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아직 수습이라는 꼬리표조차 떼지 못한 나에게, 이 회사는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조그마한 목선과 같았다. 언제 변덕스러운 파도가 덮쳐 나를 차갑고 깊은 물속으로 내던져 버릴지 모르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졸업 후 처음으로 정식 명함을 받은 나의 첫 직장이었다.

대학 시절, 셀 수 없이 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지만, 그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게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어느덧 일곱 달이라는 세월이 쌓였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몸에 맞지 않는 타인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어색함과 불편함이, 피부 아래 스며들어 나를 끊임없이 주눅 들게 했다.

때때로 나는 스스로가 공황 발작의 기억을 떨치지 못하는 강박증 환자처럼 느껴졌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심장이 곤두박질쳤고, 상사의 무심한 표정 하나에도 해고의 전조를 읽어내려 애썼다. 설상가상으로, 이 낯선 정글 속에서 마음을 터놓고 기댈 만한 동료 하나 만들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무실은 약속이나 한 듯 활기를 띠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웃고 떠드는 동료들의 등 뒤로, 나는 늘 혼자였다. 그들의 밝은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를 뒤로 한 채, 나는 텅 빈 계단을 올라 아무도 찾지 않는 옥상으로 향했다. 삭막한 콘크리트 바닥에 걸터앉아, 바람 소리만이 유일한 벗이 되어주는 그곳에서 차가운 도시락을 펼쳤다. 그리고 주문처럼, 나지막이 혼잣말을 되뇌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메아리조차 없는 허공의 위로는, 텅 빈 가슴을 채우기엔 너무나 공허했다.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의 불안은 강바닥에 쌓이는 침전물처럼, 혹은 지층처럼, 조용히 그러나 착실하게 두께를 더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무게로 나를 짓눌렀고, 서서히 휘게 만들었으며, 언젠가는 감당할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 나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때때로 내 몸 안 깊숙한 곳에서, 정체 모를 누군가가 절박하게 소리치는 환청을 들었다.

"여기서 벗어나! 도망쳐! 어디든 숨어버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 숨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큰 절망이었다.

마침내 버스가 익숙한 동네 어귀에 멈춰 섰다. 낮은 구릉이 시작되는, 도시의 변두리. 버스에서 내리자, 서늘한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들었다. 오후 내내 힘겹게 온기를 유지하던 햇살도 이제는 그 빛을 잃고 서쪽 하늘 너머로 희미하게 스러져가고 있었다. 서서히 식어가는 내 안의 마지막 열정처럼, 태양은 무력하게 구름 뒤로 자신의 존재를 감추었다. 내가 사는 집은 여기서 내려 맞은편의 낡은 육교를 건너, 좁고 뱀처럼 구불거리는 골목길을 따라 숨 가쁘게 20여 분을 더 올라가야 했다.

남자는 아직 내 집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딱 한 번, 새벽의 푸른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까지 싸구려 여관의 침대에서 서로의 체온을 탐닉하다 헤어지던 날, 그는 나의 안전을 핑계 삼아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며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결국 나의 완강한 거절에 못 이겨, 그는 저 앞 육교까지만 나를 배웅했다. 내가 그토록 강하게 거부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녹슨 철대문 앞까지 따라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나의 집을, 나의 동네를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독한 가난의 상흔과 시간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이 누추한 동네와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은, 내가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나의 가족만큼이나, 그에게 감추어야 할 나의 가장 깊은 치부였다. 그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은 언제나 말끔하고 단정하며, 티끌 하나 없는 완벽한 존재여야 했다. 하지만 허물어져가는 낡은 벽돌담과 녹슨 철문으로 둘러싸인, 음습한 기운마저 감도는 나의 현실은, 내가 연기하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그 간극을 확인하는 순간, 그가 느낄 실망감, 혹은 동정심을 나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육교 계단을 한 칸 한 칸 밟아 올라섰다. 발밑으로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길게 늘어뜨린 차들이 조급한 속도로 질주하며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시야 밖으로 흩어졌다. 빛들은 찰나의 선으로 이어졌다가, 잠시 혼란스럽게 뒤엉키는 듯하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이 만들어내는 굉음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넓지만 가파른 경사를 이루는 도로 위에, 육교는 힘겹게 팔을 뻗은 것처럼 위태롭게 걸쳐져 있었고,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자아낼 만큼 왜소해 보였다. 문득, 저 육교의 모습이 불안정한 내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지만, 언제든 균열이 가고 부서져 내릴지 모르는.

바람이 육교의 앙상한 철제 난간을 타고 휘감아 올라왔다. 낡은 구조물은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신경질적인 미세한 떨림을 일으켰다. 그 떨림은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쉬지 않고 요동치는 불안과 기묘하게 공명하는 듯했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찰나의 순간, 어두컴컴한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이 몸을 던져버리면 어떨까, 하는 섬뜩하고도 매혹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지긋지긋한 불안과 절망의 무게로부터 단번에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삶에 대한 진정한 포기라기보다는, 감당하기 힘든 불안에 대한 극단적인 도피의 충동에 가까웠다. 나는 차갑고 거친 철제 난간을 힘껏 움켜쥐었다.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냉기와 단단함이, 나를 아찔한 심연의 유혹으로부터 간신히 현실로 끌어당겼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폐부 깊숙이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육교를 건너자, 익숙하고도 불쾌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침대 널빤지를 아무렇게나 잇대어 만든 듯한 조잡하고 요란한 간판들이 어지럽게 내걸린 보신탕집과 정체 모를 보양식 가게들.

일주일에 한두 번, 아직 동트기 전 어두컴컴한 새벽이 되면, 세상의 눈을 피해 낡은 트럭 한 대가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철창 안에 겹겹이 갇힌 개들이, 건장한 남자들의 거친 손길에 의해 힘없이 끌려 나온다. 어린 시절부터 이 끔찍한 광경을 무수히 목격하며 자라온 나는, 그 연약한 생명들의 마지막 운명이 어떠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죽음의 불길한 향기를 본능적으로 감지한 개들은 온몸으로 공포를 표현하며 처절한 신음을 흘렸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 부릅뜨고, 네 다리를 있는 힘껏 벌려 땅에 버티며 필사적으로 저항해보지만, 그들의 미약한 몸부림은 건장한 인간들의 무자비한 발길질과 몽둥이 세례 앞에 속수무책으로 꺾여 나갔다. 고통과 공포에 뒤섞인 그들의 날카로운 비명은 내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절규처럼 들렸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처절한 무력감이 납덩이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그 찢어지는 듯한 신음소리는, 유년 시절부터 내 몸 구석구석, 세포 하나하나에 지울 수 없는 고통의 낙인처럼 새겨졌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예고 없이, 특히 내가 모처럼 만에 찾아온 작은 기쁨이나 희미한 행복감에 젖어 세상을 잠시나마 평온한 눈으로 바라보려 할 때면, 어김없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니, 정확히는 내 안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 감히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감정들을 모조리 뽑아내고 나를 인정사정없이 쥐어짜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행복할 자격조차 없는 존재인 것처럼, 아주 작은 기쁨의 조짐조차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사라질 것이고, 더 큰 고통으로 되돌아올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럴 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입안에 번질 때까지. 어떻게든 육체적인 고통으로 정신의 고통을 덮어보려는, 잊어보려는 나의 처절한 시도는 그러나 매번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고통은 또 다른 형태의 고통으로 변이될 뿐,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초라하고 불안하며 절망적인 상태로 남아야만 하는 운명인 것 같았다. 그것이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짊어지고 온 원죄의 십자가처럼 느껴졌다. 일찍이 나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의 깊은 슬픔을 내가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그 슬픔은 나의 일부가 되어 지금의 나를 형성해왔다. 때로는 이 거대한 슬픔이야말로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유일한 본질처럼 여겨졌다.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이 얽매이는 덫처럼.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골목길을 힘겹게 걸었다. 낡은 가로등들이 하나둘, 힘없는 주황색 불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저녁 식사 준비하는 소리와 함께, 된장찌개인지 김치찌개인지 모를 구수하고 달콤한 음식 냄새가 희미하게 코를 간지럽혔다.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따뜻한 불빛 아래,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풍경을 상상하자, 문득 사무치는 외로움과 함께 시샘 어린 부러움이 밀려왔다. 나의 집에는 그런 온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부재했고,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술과 함께 보냈다. 나는 그 집에 살면서도 늘 뿌리내리지 못한 나그네였고, 위태로운 임시 거주자였다.

마침내 익숙한, 그러나 정겹지 않은 집 앞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내 안에서 무언가가 격렬하게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분노였을까, 아니면 억눌려왔던 슬픔의 폭발이었을까. 혹은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생존을 향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을까. 명확히 규정할 수 없었지만, 그 감정의 파도는 거대하고 압도적이었다.

나는 그 순간, 스스로를 휘저어놓은 감정들의 혼돈스러운 소용돌이 속으로 기꺼이 내던진다. 미친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도피처를 찾아 헤맨다. 때로는 낯선 남자의 거칠지만 뜨거운 품속에서, 때로는 쓰디쓴 알코올의 힘을 빌려, 때로는 밤새도록 이어지는 광란의 춤 속에서 나를 잊으려 발버둥 친다.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깊숙이 박혀있는 이 모든 고통스러운 소리들을 남김없이 토해낼 때까지, 목구멍이 찢어져라 소리치고, 온몸의 힘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도록 몸부림치며, 나를 둘러싼 이 부조리한 세상에 온 힘을 다해 저항한다.

그러나 어김없이 아침은 밝아오고, 밤사이의 광기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모든 것은 냉혹하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고, 나는 다시 그 지긋지긋하게 익숙한 불안과 초라함의 옷을 껴입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근을 준비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 속에 갇혀버린 나의 일상. 나는 과연 언제쯤 이 질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불안과 절망을 나의 그림자처럼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삐걱거리는 낡은 철문을 열기 전,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오늘과 다르지 않은 무채색의 나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제발 아무 일 없이, 그저 고요하게 지나가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마침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하고 묵직한 어둠이 오래된 슬픔처럼 나를 감싸 안았다. 나는 불을 켜지 않은 채, 그 짙은 어둠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미동조차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너무나 절실하게 중얼거렸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의 희망은 너무나 희미하고 초라했다.

남자

일요일의 늦은 오후, 그녀와 점심이라기엔 애매하고 저녁이라기엔 너무 이른 식사를 마치고 헤어진 뒤였다. 나는 습관처럼 버스에 몸을 실었고, 이내 영어학원으로 향하는 익숙한 노선 위로 흔들리고 있었다. 희뿌옇게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내 모습은 초점 잃은 유령처럼 아른거렸다. 시선은 정처 없었고, 낡은 버스의 진동에 따라 형체마저 위태롭게 일렁였다. 흔들리는 차창 밖으로는 잿빛 도시의 풍경이 맥락 없이 조각난 필름처럼, 의미를 상실한 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대학이라는 그럴듯한 관문을 통과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나는 자발적 유배를 선언한 섬처럼 표류하기 시작했다. 사회라는 거대한 바다 앞에서 방향을 잃고, 나아가야 할 항로를 찾지 못한 채 부유하던 나에게, 지난 2년 동안 이 낡은 영어학원은 유일한 정박지가 되어주었다. 아니, 터전이라는 말은 과분하다. 차라리 그것은 망망대해를 떠도는 영혼이 잠시 닻을 내리는, 위태로운 간이 정박지에 가까웠다.

나는 이곳의 몇 안 되는 ‘고정 멤버’, 장기 수강생 중 하나였다. 학원 관리부장의 무심한 눈짓부터, 복도를 닦는 미화 아주머니의 희미한 미소까지, 그들은 내 이름 석 자는 몰라도 내가 ‘그 청년’이라는 사실쯤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 속에는 ‘아, 저 친구 또 왔네. 여전하구나’ 하는 무언의 연민과 익숙함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익숙함이 주는 기묘한 안도감, 어쩌면 체념에 가까운 감정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학원으로 향하는 후미진 골목길은 일요일 오후 특유의 나른함과 정적에 깊이 잠겨 있었다. 담벼락에 기대선 이름 모를 나무들은 마지막 여름의 기운을 떨쳐내듯 연둣빛 잎사귀를 파르르 떨었고,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은 여름이 이미 끝나감을, 계절의 변화는 나를 비껴가지 않음을 속삭였다. 시간은 이토록 성실하게 흘러가는데, 나 홀로 멈춰선 섬처럼 제자리에 고여 있다는 자각이 섬광처럼 스치며 가슴 한구석을 서늘하게 파고들었다.

지하 1층 연습실부터 지상 5층의 옥상 도서관까지, 엘리베이터 하나 없는 이 아담하고 낡은 학원 건물. 나는 지금 그 닳고 닳은 계단을 한 칸 한 칸, 숨을 고르며 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발길에 반질반질하게 마모된 계단의 모서리는 이곳을 거쳐 간 무수한 시간과 사람들의 흔적을 말없이 증언했다.

벽에는 빛바랜 포스터들이 시간의 때를 겹겹이 뒤집어쓴 채 붙어 있었다. ‘토익 만점으로 인생 역전!’, ‘아이비리그 합격 신화, 당신도 주인공!’,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실전 영어’—현란하지만 공허한 문구들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간절한 꿈과 실낱같은 희망, 혹은 현실로부터의 절박한 도피처를 상징하는 듯했다.

일요일 저녁, 학원은 대부분의 강의실이 불 꺼진 채 텅 비어 있었지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드문드문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벼운 목례를 건네거나, 혹은 아무런 표정 없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이들과는 눈빛만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고, 어떤 이들과는 입꼬리만 살짝 올린 형식적인 미소와 함께 "공부하러 왔어?" 혹은 "오늘도 나왔네?" 와 같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무의미한 질문을 기계적으로 주고받았다. 그것은 일종의 의례였고, 서로의 고독을 확인하는 공허한 메아리였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면면은 다양했지만,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은 다가올 유학이나 필사적인 취업 준비를 위해 절박하게 매달리는 학생들이거나, 졸업 후에도 여전히 사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졸업생들이었다. 하지만 종종, 나처럼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달리 할 일이 없어서, 혹은 ‘영어를 잘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나 ‘미국’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에 이끌려 이곳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불안한 눈빛 속에서, 나는 너무나 선명하게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똑같은 종류의 방향 상실, 똑같은 갈증, 똑같은 불안과 초조함. 우리는 각자의 삶이라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방랑자들이었지만, 그 처참한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영어 공부’라는 그럴듯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명분을 방패 삼아 현실로부터 교묘하게 도피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서로의 삶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서로의 내면에 자리한 상처와 결핍의 지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섣불리 그곳을 건드리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혹은 그것이 불러올 파장을 감당하기 두렵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4층으로 향하는 계단참, 낡은 창문 앞에 멈춰 서서 잠시 가쁜 숨을 골랐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하늘은 어느새 짙은 군청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거리에는 가로등이 하나둘씩 노란 불빛을 밝히며 밤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나의 내면 풍경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무심하고 정확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목적이 뚜렷한 이들, 이를테면 토익 점수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거나, 선망하는 대학의 입학허가서, 혹은 원하는 직장의 채용 공고를 손에 쥔 이들은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였다. 그들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2년 정도 이곳에 머물며 필요한 자격을 갖춘 뒤, 환승역에서 잠시 숨을 돌린 여행자처럼, 부푼 희망과 기대를 안고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나갔다.

어떤 이는 아이비리그 대학원 합격 통지서를 자랑스럽게 흔들며 환한 웃음으로 작별을 고했고, 또 어떤 이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 호주나 캐나다의 드넓은 대지를 향해 설레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떠나는 날이면, 으레 남아있는 이들이 주최하는 작은 송별회가 열렸다. 나는 그런 자리에 마지못해 참석하여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의례적인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가면 뒤의 내 속내는 복잡했다. 그들을 향한 진심 어린 축복보다는, 쓰디쓴 부러움과 지독한 질투,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가 뒤엉켜 속을 태웠다.

그들은 뚜렷한 목표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인내와 절제를 감수했고, 치열하게 자신을 단련했으며, 마침내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성공’이라 인정하는 달콤한 열매를 눈앞에 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망설임 없이 대양을 건너는 것이다. 그들의 배낭 속에는 새로운 삶에 대한 청사진과 도전 의식이 묵직하게 담겨 있었고, 눈빛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총명하게 반짝였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이곳은 단지 과거의 한 페이지, 더 나은 미래로 도약하기 위한 일시적인 디딤돌에 불과했으니까.

반면, 나처럼 목적이 희미하거나 아예 없는 이들은 대부분 이곳에 남았다. 혹은 떠났다가도 이내 되돌아왔다. 우리는 묘한 동족 의식으로 서로를 금세 알아본다. 비밀스러운 암호를 해독하듯, 서로의 눈빛 속에서 같은 종류의 공허와 불안, 같은 종류의 도피와 방황을 읽어낸다. 나는 본래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고, 관계를 위해 굳이 노력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주위에는 나를 ‘친구’라고 여기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찾는 이유는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내가 그들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나의 존재 자체가 그들의 불안정한 현재를 반영하고 위로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비추는 거울이었고, 말없는 위안이었으며, 때로는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하는 섬뜩한 경고이기도 했다.

마침내 5층에 도착한 나는 텅 빈 복도를 따라 걸으며 우리가 주로 모이는 장소를 찾았다. 불 꺼진 강의실들이 도미노처럼 늘어선 가운데, 복도 끝 시청각실에서만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거나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어, 왔네? 오늘도 지각."

"뻔하지 뭐, 데이트하시느라 바쁘셨겠지."

"아, 그분 또 만나셨어? 진도 좀 나갔냐?"

쏟아지는 짓궂은 질문들에 나는 그저 모호한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온전히 나만의 영역에 남겨두고 싶었다. 그녀와의 관계는 아직 그 어떤 단어로도 규정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고, 어쩌면 영원히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불확실성이 오히려 나에게는 소중했다.

우리는 주로 비어 있는 강의실이나 시청각실, 혹은 옥상에 간이로 마련된 도서관 한구석에 모여 시간을 죽였다. 무료하게 낮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의 활동 반경은 넓어졌다. 근처 술집이나 당구장, 볼링장으로 몰려가거나, 때로는 즉흥적으로 차를 몰아 바닷가로 향하기도 했다. 그런 자리에서 우리는 어설프고 문법에도 맞지 않는 엉터리 영어를 경쟁하듯 내뱉으며, 서로의 발음과 실수를 놀려대며 실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의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속이 텅 빈 채 부유했다.

시간이라는 투명한 컵에 물 대신 의미 없는 공기만 가득 채워 넣고는, 그것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그 공허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척’을 하며 스스로를 기만했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척, 문법책을 들여다보는 척, 다가올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는 척. 그러나 그 모든 행위의 이면에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지 못해 방황하는 ‘어른 아이들’의 불안한 몸짓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옥상 도서관 구석 테이블에 앉아 두꺼운 영어 교재를 펼쳐 놓았지만, 내 시선은 이미 활자에서 벗어나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밤의 장막이 드리워진 도시는 무수한 인공의 빛들로 현란하게 반짝였고, 그 불빛들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보내는 비밀스러운 신호처럼 나를 아득하게 유혹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야, 오늘 존(John) 온다는데? 저녁 같이 먹자고 연락 왔어."

가끔 우리는 주머니를 털어 원어민 강사 중 한 명인 존을 초청했다. 그에게 근사한 저녁과 술, 때로는 약간의 유흥거리를 제공하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유창한 영어 한 마디 한 마디에 모두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알아듣는 척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려 보지만, 실상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지고 입안에서는 몇 개의 어색한 단어들만 맴돌다 사라지기 일쑤였다. 결국 어색한 침묵은 과장된 몸짓, 즉 보디랭귀지로 대체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는 원어민과 유창하게 대화하는 것이 인생의 지상 과제라도 되는 양 그의 말에 매달렸지만, 사실 우리가 배우는 이 영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이곳, 이 정체된 공간에 머무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그럴듯한 명분이었을 뿐, 진정한 갈망이나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식당에서 존과 마주 앉아 있을 때면, 나는 종종 그의 표정을 몰래 관찰하곤 했다. 그는 우리의 서툴고 우스꽝스러운 영어에도 늘 친절하게 웃어주었지만, 그 푸른 눈동자 깊은 곳에는 숨길 수 없는 어떤 연민, 혹은 가벼운 동정심 같은 것이 희미하게 어려 있었다. 그는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피상적인 이유 너머의 진짜 속내를, 우리의 서성거림과 깊은 불안을. 그럴 때마다 느끼는 복잡하고 착잡한 감정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좀처럼 무뎌지거나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것은 예기치 않게 마주친 거울 속에서 자신의 가장 초라하고 민낯을 발견하는 것처럼, 불편하고도 적나라한 자기 인식의 순간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으레 그렇듯 근처의 시끌벅적한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우리의 영어는 더욱 문법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대화는 한층 더 활기를 띠었다. 알코올은 국적과 언어의 장벽을 일시적으로 허물어뜨리는 신비로운 촉매제처럼 작용했다. 웃음소리는 커졌고, 목소리는 높아졌으며, 평소라면 꺼내지 못했을 속마음들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술기운이 만들어낸 짧은 환상에 불과했고, 다음 날 아침의 냉정한 햇살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원래의 침묵과 거리감으로 되돌아갈 운명이었다.

물론, 우리 중 어떤 이들은 결국 이곳을 떠나기도 한다. 오랫동안 망설이던 낭떠러지 앞에서 마침내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리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용기를 내어, 혹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몇몇은 부모님이 마련해준 두둑한 유학 자금을 밑천 삼아,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마지막 도박처럼, 그동안 모아둔 얼마 안 되는 저축을 탕진하며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선망의 땅으로 떠나갔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길어야 몇 달, 혹은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면, 개선장군처럼 겨드랑이에 뉴욕타임스나 현지 신문을 끼고는 슬그머니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귀환은 떠날 때의 요란함과는 대조적으로 언제나 조용하고 쓸쓸했다. 화려했던 출국의 설렘과 기대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현실의 냉혹한 벽에 부딪혀 쓴맛을 본 자의 냉소와 피로감만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동소이했다. 풍족한 부모의 재력을 배경 삼아 할리우드나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거리를 잠시 거닐고, 타임스퀘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도, 결국 끼니는 코리아타운의 익숙한 식당에서 해결하고, 수업 시간에는 한국 학생들로 넘쳐나는 그곳의 어학원에서 이곳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반복하다가, 가져간 돈이 바닥나거나 비자가 만료되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이곳, 우리의 익숙한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들의 귀환은 남아있는 우리에게 복잡하고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좌절과 실패가 우리의 머뭇거림과 현상 유지를 암묵적으로 정당화해주는 것 같아 은밀한 안도감을 느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면 우리 역시 저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심어주었다.

그들이 돌아오면, 우리의 무료한 유흥 문화는 잠시나마 더욱 활기를 띠고 소란스러워진다. 언제나 새로운 즐길 거리와 이야깃거리에 목말라하는 우리에게, 그들의 귀환은 성대한 환영회를 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계가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빌미 삼아 다시 모여 술을 마시고, 밤늦도록 그들의 무용담인지 실패담인지 모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나마 현실의 무게를 잊으려 애썼다. 술기운에 취해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실현 가능성 없는 미래에 대한 허황된 꿈들을 나누며 잠시나마 들뜨기도 했다.

더욱이, 돌아온 이들이 주마간산 격으로 훑고 온 현지에서의 ‘생생한’ 체험기는, 비록 피상적일지라도, 우리에게 언어의 장벽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를 엿보게 하는 창문 역할을 했다. 그것은 문명의 달콤함과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짧은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와, 마음 한구석에 야릇한 불안과 동시에 실체 없는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서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처럼 위태로운 자유 속에 속박되어 있는 나의 미래가, 아주 잠시나마 희미하게 열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생생한 현실감을 주었고, 때로는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교묘하게 과장되었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서도 용케 살아남았다는 좌충우돌 생존기, 현지인들과의 문화 차이로 빚어진 황당한 에피소드, 잠깐 스쳐 지나간 로맨스에 대한 암시 등은 우리에게 값싼 대리만족과 함께 ‘나도 혹시?’라는 헛된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그들의 경험담은 우리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희망과 좌절, 설렘과 불안 같은 상반된 감정들을 빠른 속도로 뒤흔들어 놓는 진동과 같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종종 상상했다. 만약 내가 그곳에 갔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그들보다 더 능숙하게 적응했을까, 아니면 더 빨리 좌절하고 돌아왔을까? 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공허한 가정일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었고, 그곳에는 없었으니까. 현실은 변함없이 나를 짓눌렀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취기가 정점에 달하면, 우리는 종종 팝송을 함께 흥얼거렸다. 가사의 의미는 절반쯤은 어렴풋이 알고, 나머지 절반은 전혀 모르는 채, 그저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 입술을 달싹이는 수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이 국경을 초월한 세계인이 된 듯한 우스꽝스러운 착각에 잠시 빠져들었다. 우리의 영어 실력은 여전히 형편없었지만, 알코올의 힘을 빌리면 그런 사소한(?) 문제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색한 영어 별명을 지어주고, ‘헤이, 브로(Bro)!’, ‘왓썹 맨(Man)?’, ‘요, 듀드(Dude)!’ 따위의 말을 어색하게 남발하며, 싸구려 할리우드 영화의 조연이라도 된 것처럼 껄렁하게 행동했다.

이렇듯, 개인적인 삶의 허점과 불안정함은 이처럼 교묘하고 때로는 노골적인 완곡어법을 통해, 실상은 무가치하고 방향 잃은 생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데 이용되곤 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상처와 결핍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를 두르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의 취업 실패나 부적응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한 글로벌 마인드 함양’으로, 대인 관계의 어려움이나 사회성 부족은 ‘획일성을 거부하는 개성적인 자아 추구’로, 그저 막막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심오한 여정’으로 둔갑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위태로운 포장지를 함부로 벗기지 않겠다는 무언의 계약을 맺고, 서로의 거짓말을 묵인해주며 위태로운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술기운이 더해갈수록, 우리의 대화는 표면적인 농담과 허세를 넘어 조금씩 더 깊은 곳으로 흘러갔다. 취기가 오르면 평소에는 단단히 걸어 잠갔던 마음의 빗장이 느슨해지면서, 그 틈새로 감추고 있던 상처와 불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과거에 대한 후회가 조금씩 밖으로 흘러나왔다. 어떤 이는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한 깊은 자책감을 토로했고, 어떤 이는 이 경쟁적인 사회 시스템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으며, 또 어떤 이는 그저 사무치는 외로움과 존재의 가벼움을 술잔에 담아 홀짝였다. 나는 그들의 꾸밈없는 고백을 들으며, 내 안에도 그들과 똑같은 종류의 감정들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며 휘몰아치고 있음을, 다만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모든 진솔한 고백과 서로를 향한 서툰 위로, 그리고 술기운 속에서 피어난 일시적인 연대감은 오직 밤의 마법 아래에서만 유효했다. 어김없이 아침이 오면, 밤새 피어났던 모든 감정의 소란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깊은 적막만이 찾아왔다. 격렬했던 파도가 휩쓸고 간 텅 빈 해변처럼.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던 지난밤의 모든 감정의 연결고리들은 아침 햇살 아래에서 맥없이 끊어져 나갔다.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잔인한 심판관처럼, 우리가 밤새 애써 외면했던 현실과 우리의 나약한 환상들을 무자비하게 폭로했다. 밤사이 뜨거웠던, 소리 없이 바깥세상을 향해 외쳤던 갈망과 분노는 차갑게 식어 잦아들었다. 나는 간밤의 흐트러진 흔적들과 나 자신의 모습에 진저리를 쳤다. 술로 인한 지독한 두통과 메스꺼움은 육체적인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어김없이 현실로 복귀해야 한다는 냉정한 사실이었다.

창문 틈으로 날카롭게 파고드는 햇살이 너무 밝아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젯밤의 기억들이 조각난 유리 파편처럼 떠올랐다가 이내 흐릿하게 흩어졌다. 존의 어색한 미소, 친구들의 과장된 웃음소리, 누군가의 흐느낌, 그리고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맴돌던 그녀에 대한 상념들. 그녀—나의 지루하고 무의미한 일주일 중 유일하게 토요일을 의미 있게 채워주는 존재.

어느새 나는 어젯밤 입었던 구겨진 옷 그대로, 바짓단에 묻은 정체 모를 흙먼지를 무심하게 문지르며, 밤새 허공에 남발했던 희망의 잔해들을 힘없이 거둬들이고 있었다. 욕실 거울 앞에 선 나는 비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나 초라하고 생기 없는 모습인가. 눈 밑에는 피로와 불면이 남긴 검은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고, 까치집처럼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며칠째 면도하지 않아 거뭇거뭇한 수염은 나를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고 지쳐 보이게 만들었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딱딱한 등껍질 속에 자신을 가둔 채, 느리고 무거운 몸짓으로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는 늙은 거북이의 모습. 밤사이 잠시 다른 존재가 되었던 나는, 아침이 오자 어김없이 원래의 거북이로 되돌아가 있었다. 나는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을 또 다른 무의미한 하루, 또 다른 공허한 기다림의 하루가.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그 정체조차 확실하지 않은 그녀에 대한 애틋하고 아련한 그리움이 샘물처럼 조금씩 차올라, 마침내 나의 모든 의식과 관심은 다가올 토요일 오후, 그녀가 퇴근하는 바로 그 시간만을 향해 맹목적으로 흘러갈 뿐이었다.

그녀는 내 메마른 일주일이라는 사막 위에 피어난 유일한 오아시스였고, 나의 삶에 희미하게나마 의미를 부여하는 단 하나의 좌표였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이 풀리지 않는 질문들 속에서 끝없이 방황하는 나에게, 그녀는 칠흑 같은 밤바다 위 등대처럼, 비록 그 빛이 희미하고 때로는 신기루에 불과할지라도, 한 줄기 가느다란 빛을 비춰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나는 그 빛을 향해 본능적으로 걸어갔다. 그것만이 내 정체된 삶에 아주 작은 방향성이나마 부여해주는 유일한 동력이었으니까.

다시 학원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는 또다시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의 미소, 나지막한 목소리 톤, 커피잔을 쥐는 우아한 손가락, 책을 읽을 때 집중하며 살짝 찡그리는 미간의 주름. 그녀와 관련된 모든 사소한 것들이 나에게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보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오후에 만나 관계를 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남자? 영어 학원에 유독 오래 다니는 좀 특이한 사람? 아니면 그녀 역시, 나처럼, 시간을 때우기 위한 적당한 식사 상대? 그 답을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나를 더욱 그녀에게 집착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오직 토요일만을 기다리며 나머지 엿새를 견디는 나의 삶. 그것이 얼마나 위태롭고 비참한 균형 위에 서 있는지 스스로 잘 알면서도, 나는 그 반복되는 패턴에서 벗어날 의지도, 어쩌면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깊은 곳에서는 벗어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향한 이 절실한 그리움과 기다림이야말로 내 텅 빈 일상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감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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