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영어학원 부속 도서관. 속삭임마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듯한 절대 정적이, 공기 분자 하나하나에까지 스며들어 공간을 지배했다.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는 유일한 것은 창밖에서 비스듬히 스며드는 늦은 오후의 햇살뿐이었다. 그 빛의 사선은 마치 고고학자의 섬세한 붓질처럼, 수십 년간 잠들어 있던 먼지의 지층 위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책등에 새겨진 금박 제목들을 하나씩 호명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스틴의 로맨스, 헤밍웨이의 간결한 문장들. 그 빛줄기 속에서 춤추는 미세한 먼지 알갱이들은, 마치 수많은 이야기들의 혼령이 부유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고요한 성역이 내게 허락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그녀와 짧은 저녁을 나누거나 과외 학생의 비뚤어진 관사 사용법을 교정해주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깨어있는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코끝을 간질이는 묵은 종이의 향과 희미하게 섞여드는 가죽 장정의 냄새, 그리고 가끔씩 책장을 넘기는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소리. 이 모든 것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독특한 향취는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나를 격리시켜주는 견고한 방음벽이자, 내면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명상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외부와의 약속이 없는 날, 나의 하루는 천편일률적인 궤도를 그렸다. 아직 새벽의 서늘함이 채 가시지 않은 오전 여덟 시, 묵직한 참나무 문을 밀고 들어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문이 닫히는 순간, 바깥세상의 모든 소음은 거짓말처럼 차단되고 오직 책의 세계만이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밤 열 시, 마지막 남은 학생마저 떠나고 난 뒤 관리인이 복도 끝에서부터 하나씩 조명을 꺼뜨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육중한 철문이 ‘철컥’하고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하루는 끝을 맺는다. 그 소리는 마치 잠수함의 해치가 닫히는 소리 같아서, 나는 비로소 온전히 나만의 심해로 침잠할 수 있었다.
이 방대한 시간의 강물 속에서 나는 자유로운 유영을 즐겼다. 때로는 묵직한 원서들 사이를 헤엄치며 시대의 지성과 인간 군상의 희로애락을 탐독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부터 사르트르의 실존까지, 지성의 거인들이 쌓아 올린 사유의 탑을 한 계단씩 오르는 경이로운 체험을 했다. 또 어떤 날은 시청각실 가장 구석, 몸이 푹 꺼질 듯 부드러운 1인용 소파에 몸을 묻고 BBC 다큐멘터리의 유려한 영국식 발음에 귀를 기울였다.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의 나직하고 신뢰감 있는 목소리는 아마존의 밀림이나 심해의 풍경을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였고, CNN 뉴스의 긴박한 현장음은 지구 반대편의 분쟁과 재난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활자화된 영어가 지성의 영역이라면, 영상 속의 영어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언어였다.
때로는 비슷한 열정을 가진 몇몇과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우리는 학원의 공식 스터디 그룹처럼 치열한 토론으로 서로를 몰아붙이는 대신, 각자가 탐구한 지식의 편린들을 조용히 공유하는 소모임을 만들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사설에서 발견한 절묘한 은유에 대해, 혹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나타난 19세기 영국 상류층의 결혼관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곳에서는 나의 저주받은 혀도 그리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더듬거리는 말 속에 숨겨진 생각의 결을 끈기 있게 기다려주었고, 나는 그들의 배려 속에서 잠시나마 세상과 소통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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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약속이 잡힌 날이면, 도서관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유영과 탐험의 시간은 끝나고, 치열한 지적 노동의 시간이 시작된다. 도서관 한구석, 창가에 자리한 내 지정석이나 다름없는 책상 위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영어 참고서들이 에베레스트처럼 쌓인다. 관계대명사의 계속적 용법과 제한적 용법의 미묘한 차이, 가정법 과거완료 문장이 품고 있는 실현되지 못한 과거에 대한 아쉬움. 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개념을 전달할 방법을 고심하며 그날 가르칠 분량을 꼼꼼히 예습했다. 각기 다른 수준과 성향을 가진 학생들의 머릿속에 어떻게 하면 이 복잡한 문법의 지도를 선명하게 그려 넣을 수 있을까. 그 고민의 시간은 마치 수천 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퍼즐을 맞춰나가는 지적 유희와도 같았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그녀, 송미자가 저녁 수업을 들으러 오는 날. 그날은 내 흑백의 일상에 찍히는 선명하고도 강렬한 마젠타색 색점과 같았다. 나는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아침부터 안절부절못했고, 도서관 시계의 분침이 유난히 더디게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시달렸다.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가 강의실 문을 열고 나올 때, 복도를 가득 채운 학생들의 소음 속에서도 유독 그녀의 모습만이 슬로우 모션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학원 근처의 허름하지만 정갈한 백반집에서 간소한 저녁 식사를 나누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두부찌개와 갓 지은 쌀밥, 몇 가지 소박한 밑반찬이 전부였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식사는 세상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따스하고 충만했다. 그녀는 그날 배운 내용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거리를 나설 때면, 우리의 발걸음은 으레 그곳으로 향했다.
가로등 불빛만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낡은 철길. 그 철길은 기차가 다니지 않은 지 이미 수십 년은 족히 되었을 터인데도, 놀랍게도 도시의 심장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흉터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 방치되어 있었다. 한때는 쉼 없이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며 도시의 동맥 역할을 했을 육중한 쇳덩이는, 이제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속살까지 벌겋게 녹이 슬어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레일 사이사이로는 민들레와 엉겅퀴 같은 이름 모를 잡초들이 끈질긴 생명력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철길을 떠받치던 침목은 비바람에 삭아 군데군데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와의 은밀한 시간을 위해 인적이 드물고 도시의 번잡한 불빛이 미치지 않는 어둑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마치 숨겨진 보물처럼 이 공간을 발견했다. 낡은 역 광장에서부터 시작된 이 버려진 선로는 몇백 미터 남짓,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독특한 정취를 풍기며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그 철길 위를 걸었다. 자갈을 밟는 서걱거리는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희미한 소음, 그리고 우리의 낮은 숨소리만이 유일한 배경음악이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오히려 충만함으로 가득 찬 편안한 침묵이 우리 사이를 흘렀다. 그녀의 작은 손이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그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온몸의 신경이 깨어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길의 끝,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서 우리는 멈춰 섰다. 그리고 짧지만 깊은 입맞춤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바로 이곳, 녹슨 철길 위에서 나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입을 맞추었다. 달빛조차 희미한 그 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떨리는 숨을 내쉬며 그녀의 얼굴로 다가갔다. 그녀의 입술에서 풍겨오는 희미한 립스틱 향과 그녀 고유의 살내음이 뒤섞여 내 이성을 마비시켰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조금은 서툰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오직 그녀의 가쁜 숨결과 통제 불능으로 날뛰는 내 심장 소리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리고 며칠 뒤, 같은 장소에서 나는 용기를 내어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을 만졌다. 얇은 블라우스 너머로 전해져 오는 그녀의 심장 박동이 마치 내 것인 양 세차게 느껴졌다. 손바닥 안에 가득 차는 부드럽고 탄력 있는 감촉. 나는 그 경이로운 감각에 숨을 멈췄다. 그 순간, 그녀는 내 품에 안겨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것은 거부의 몸짓이 아닌, 수줍음과 기대가 뒤섞인 섬세한 떨림이었다. 하지만 나의 조심스럽고도 끈질긴 갈망에도 불구하고, 그녀와의 완전한 합일은 그로부터 몇 주라는 시간이 더 흘러야만 허락되었다.
나중에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어쩌면 자신이 처녀가 아니라는, 시대착오적이지만 여전히 강력한 어떤 자책감의 그림자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세상의 탐욕스러운 자들이 아주 오래전에 빚어낸 혐오스러운 이중잣대라는 낡은 유물은, 마치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악령처럼 21세기의 도시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순수한 영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가 과거의 상처를 딛고 내게 온전히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나는 묵묵히 기다려야만 했다. 그녀의 불안을 이해하고, 그 상처까지도 보듬어 안는 것이 나의 사랑임을 증명해야 했다.
마침내 그녀가 나를 허락한 밤. 우리는 그녀가 사는 작은 원룸으로 향했다. 낡은 다세대 주택의 좁은 계단을 오르는 내내, 내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문이 열리고, 그녀의 체취와 그녀가 쓰는 비누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는 작은 공간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도착했음을 직감했다.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도시의 불빛이 방 안을 희미하게 밝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먼저 내 손을 잡고 침대로 이끌었다.
그녀의 옷을 벗기는 내 손길은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얇은 스웨터가 벗겨지고, 브래지어의 후크가 풀리는 순간, 달빛과 네온사인이 뒤섞인 도시의 빛줄기 아래 그녀의 나신이 드러났다. 나는 경외감에 휩싸여 잠시 숨을 멈췄다. 완벽한 대칭을 이룬 쇄골과 부드러운 어깨선, 그리고 수줍게 봉긋 솟아오른 두 개의 유방.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감싸 쥐었다. 손바닥에 전해져 오는 부드러움과 온기, 그리고 생명의 고동. 나는 입술을 묻고 그 부드러움을 탐했다.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가녀린 신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녀의 몸은 마치 잘 만들어진 악기처럼 내 손길과 입술에 섬세하게 반응했다. 그녀의 몸 곳곳에 내 흔적을 남기며, 나는 그녀라는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는 최초의 탐험가가 된 듯한 황홀경에 빠졌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 나는 극한의 쾌락과 함께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내부는 세상의 모든 소음과 시선으로부터 나를 완벽하게 차단해주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였다. 나는 그녀의 품속에 얼굴을 묻고, 마치 어머니의 자궁으로 회귀한 태아처럼 평온을 느꼈다. 땀과 체액으로 뒤범벅이 된 채 서로를 끌어안고 숨을 고르는 동안, 나는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 고통받아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언어라는 불완전한 도구를 통하지 않고도, 오직 몸과 몸의 대화를 통해 이토록 완벽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그곳에서는 나의 저주받은 혀도, 나를 옥죄는 세상의 편견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서로의 체온과 숨결, 그리고 심장의 고동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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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언제, 어떤 계기로 처음 인지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의 안개 속에 가려져 희미하다. 그것은 미리 짜인 각본이나 정해진 수순이 아닌, 마치 하얀 종이 위에 우연히 엎지른 잉크 방울처럼 예기치 않게,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시작된 만남이었다.
아마도 계기는 관리팀장의 소박한 생일 축하 자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오후의 나른함이 학원 전체를 지배하던 시간, 미화원 아주머니가 내게 건네준, 하얀 생크림이 곱게 발린 케이크 세 조각. 그것이 어쩌면 우리 인연의 첫 실마리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본래 그런 사교적인 자리를 피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그 떠들썩한 무리와 마주치고 말았다. 어색하게 목례만 하고 지나치려는데, 인심 좋은 미화원 아주머니가 내 손에 억지로 종이 접시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복도 저편에서 나타났다. 무심한 표정으로 걸어오던 그녀는, 어색하게 케이크 접시를 들고 서 있는 내 모습을 먼저 발견했다. 그리고는 마치 오래된 친구에게 무심히 건네듯, 내 손에 들린 접시를 툭 안기고는 “드세요”라는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손에 남은 그녀의 희미한 온기와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케이크 접시를 번갈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진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그 무심하고도 당돌한 행동에 어리둥절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강의실 문이 다시 열리고 낯선 아가씨 셋이 왁자지껄 이야기하며 복도로 나왔다. 나는 그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그들에게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드… 드… 드세요.”
저주받은 혀가 또다시 꼬이며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냈다. 첫 음절이 목구멍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그들의 얼굴에 스치는 찰나의 당혹감. 나는 또다시 숨 막히는 모멸감에 휩싸여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그때가 이 학원에서 내가 생면부지의 여성에게 먼저 말을 건넨 최초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비록 내뱉어진 단어들은 어눌하고 뒤틀렸지만, 그 순간의 충동적인 용기는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였다.
며칠이 흐른 뒤, 도서관 앞 복도에서 한 여인이 내게 다가와 며칠 전의 케이크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녀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케이크를 건넸던 세 명의 여성 중 누구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고,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또 며칠의 시간이 무심히 흘렀을까, 우리는 학원 근처 허름한 분식집에 마주 앉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을 함께 먹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약속이 성사되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복도에서 몇 번 더 마주치며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다가, 그녀가 먼저 용기를 내어 식사를 제안했을 것이다. 그 순간의 온기와 어색함, 라면의 매콤한 국물과 단무지의 아삭함,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녀는 선명하다 못해 공격적이기까지 한 마젠타색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짙게 그린 아이라인과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은, 마치 칼로 자른 듯 정확히 이마 중앙에서 양 갈래로 나뉘어 그녀의 동그란 머리를 단정하게 감싸고 있었다. 표정은 거의 없었다. 마치 생명력을 박제당한 듯, 그녀는 투명하리만치 맑고 커다란 눈동자를 가끔 깜빡이는 것 외에는 어떤 미세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나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밀랍 인형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묘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그 정적인 아름다움에는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그때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어떤 무리들이 노골적인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저속한 시선과 낄낄거림이 불쾌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항의할 용기가 없었다. 잠시 후, 그녀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무리 중 줄무늬 셔츠를 입은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화장실에서 나오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수작을 거는 듯했다.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저 앞으로 나서서 그녀를 보호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내 저주받은 혀로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경고 한마디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내적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사이, 상황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녀의 반응은 예상외로 차갑고 데면데면했다. 그녀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둔 것처럼, 그를 완벽한 무(無)로 취급했다. 마치 얼음장 같은 무관심에 정면으로 부딪힌 어쭙잖은 자세의 사내는 멋쩍게 헛기침을 하며 비실비실 자리로 물러났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나는 그녀의 그 어떤 폭력보다도 단호한 무관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겉보기와는 달리,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었다.
자리에 돌아온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식사를 하는 동안 영어에 관해 놀랄 만큼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효과적인 단어 암기법, 리스닝 실력을 향상시키는 팁, 원어민들이 자주 쓰는 관용 표현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좋은 교재나 효과적인 학습 방법, 혹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언어의 뉘앙스 같은 것들을 성심껏 알려주었다.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나는 냅킨에 핵심 단어들을 적어가며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내 서툰 설명을 놀라운 집중력으로 경청했다.
그녀의 말투에서는 특별히 귀에 거슬리는 어조나 낯선 지방의 억양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 깊은 곳에는 미세한 떨림과 함께 형언하기 어려운 불안과 우수가 배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그녀의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느낌에 강하게 끌렸다. 그것은 악의 없는, 선한 마음이 깃든 부드러운 불안이었고, 타인에 대한 다정함이 은연중에 묻어나는 우수였다.
식사가 끝나고 계산서가 나왔을 때, 그녀가 먼저 지갑을 열었다. 내가 만류했지만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는 수줍지만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송미자예요.”
그 이름은 그녀의 이미지와 묘하게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구석이 있었다. 미자. 조금은 촌스러운, 그러나 왠지 정감이 가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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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 한 번도 그녀와 같은 수업을 들은 적이 없었고, 우리가 속한 스터디 그룹 또한 달랐다. 애초에 우리는 레벨부터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그녀가 이곳 초급 회화반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이미 2년이 넘는 세월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강해 온 나는, 원어민과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고급반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학원에 등록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이 학원의 유령 같은 존재인 나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을 주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황당하게도 나를 둘러싸고 떠도는 소문들은 하나같이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들이었다. 영어에 미친 사람, 걸어 다니는 영어 사전, 심지어는 미국 유학파 출신의 숨겨진 영어 박사 혹은 영어의 대가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꼬리표들이 붙어 다녔다. 나의 침묵과 도서관에서의 칩거가 오히려 신비감을 증폭시킨 결과였다. 하지만 그런 헛된 명성을 믿고 어떤 의도적인 목적, 예를 들면 손쉬운 스터디 파트너나 무료 과외 선생을 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내게 접근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깊은 실망감만을 안은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나의 첫마디를 듣는 순간, 그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당혹감과 실망, 그리고 때로는 경멸이 섞인 그 표정. 나는 그 표정들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말더듬이다.
나의 이 저주받은 구강 구조는, 내 머릿속에서 샘물처럼 솟아나 유려하게 펼쳐지는 수천수만 개의 영어 문장들을,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마치 난해한 고대 상형문자처럼 뒤틀리고 뭉개진 소리의 파편으로 만들어 버린다. ‘H… H… Hello, my n… n… name is…’ 첫 음절에서부터 여지없이 걸려 넘어지는 내 모습에 상대방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그 표정을 읽는 순간 나는 숨 막히는 모멸감에 휩싸여 차라리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어진다. 머릿속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원어로 읊조릴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간단한 자기소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이 기막힌 부조리. 이것이 나의 현실이다.
일방적인 지식 전달 위주의, 쌍방향 소통이나 토론이 거의 필요 없는 한국의 경직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사실 그동안 나의 이 치명적인 결점은 수면 위로 드러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나는 필기시험과 논술로 평가받는 세계에서는 언제나 강자였다. 나는 줄곧 우등생의 길을 걸었고, 누구나 선망하는 명문대학의 명문 학과에서조차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내 능력의 유효기간은 활자화된 세계, 침묵이 허용되는 세계에 국한되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을 조리 있게 발표해야 하는 직장 인터뷰나 회의 석상이 죽도록 무서웠다. 면접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목구멍은 꽉 막히고 혀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리고 식은땀만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꼬이고 막히는 혀를 놀려,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이든 지껄여야 한다는 강박감은, 마치 끝없이 추락하는 검고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악몽과도 같았다. 세상은 나에게 너무나도 버겁고 두려운 존재다. 그들은 유창한 말을 요구했고, 나는 그 요구에 부응할 수 없는 불량품이었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영어학원 도서관이라는, 나를 평가하지 않고 오직 침묵으로 나를 받아주는 이 고요한 성채 속으로. 이곳에서 나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책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녀, 송미자를 만나고부터 내 견고했던 성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의 침묵 너머에 있는 진짜 나를 보려고 애썼다. 나의 더듬거리는 말을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었고, 때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녀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안을 얻었다.
만약 단 하나의 바람이 허락된다면, 나는 그저 그녀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품속에 영원히 얼굴을 묻고 싶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시선으로부터 달아나, 오직 그녀의 살내음과 심장 소리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심해로 가라앉고 싶을 뿐이다. 그곳에서라면, 어쩌면 나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어본다. 그녀는 나의 유일한 구원이며, 내가 이 버거운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다.
여자
귀가를 알리는 발걸음 소리에도 집은 먹물 같은 정적에 잠겨 있다.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공허. 아버지는 떠난 지 이틀이 지났고, 오빠의 부재는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을 넘어섰다. ‘댁’이라 칭하기엔 너무도 초라하고 남루한 이 공간을, 그럼에도 나는 ‘집’이라 불러야만 한다.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현관문을 밀어 열자, 폐부를 찌르는 듯한 쾌쾌한 곰팡이 냄새와 수십 년은 묵었을 나무 바닥의 먼지 냄새가 뒤엉켜 콧속으로 맹렬히 파고든다. 이 집 자체가 오랜 시간 방치된 상처처럼, 그 고유의 악취를 풍기는 듯했다.
벽지는 세월의 더께를 이기지 못하고 곳곳이 누렇게 변색되어 얼룩덜룩했고, 천장 모서리에는 거미줄이 희미한 저녁 빛을 받아 은실처럼 아른거리며 일렁인다. 빛바랜 풍경 위로 내려앉는 먼지처럼, 오늘도 나 홀로 견뎌내야 할 저녁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텅 빈 집의 공기는 무겁고 차갑게 살갗에 와 닿았다.
오빠는 투견꾼이다. 스무 살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숙명처럼, 그는 집을 떠나 투견판을 따라 전국을 부유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의 세계는 개들의 흥건한 피 냄새와 아드레날린에 취한 사람들의 날카롭고 광기 어린 함성으로 가득 찬, 그 작고 야만적인 원형 투견장을 중심으로 축조되어 있다. 그의 우주는 그 좁은 원 안에서 팽창하고 수축했다.
아주 가끔, 잊을 만하면 걸려오는 전화 너머의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어느 이름 모를 시골 구석의 투견장에서 들려왔다. 목소리에는 병적인 흥분과 위태로운 광기가 뒤섞여, 듣는 이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그가 스스로 찾아낸 유일하고도 비틀린 열정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는 아마 투견판만 벌어진다면, 설령 그것이 지옥의 불구덩이라 할지라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곳을 향해 달려갈 인간이다. 그의 손에서는, 기억 속 언제나,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비릿한 개의 피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 냄새는 그의 정체성이자 낙인이었다.
아버지의 업은, 이것을 직업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개장수다. 평생을 개와 더불어, 개를 통해 살아온 사람. 아버지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낡은 트럭을 몰고 개를 사고팔기 위해 이 동네 저 동네, 이 골목 저 골목을 하염없이 누볐다.
그의 손은 거칠고 투박하다 못해 나무껍질 같았다. 오랜 세월 개 목줄을 움켜쥐고, 개들을 옮기며 생긴 굳은살과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 등은 삶의 무게와 고된 노동으로 인해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굽어 있었고, 얼굴은 한여름 뙤약볕과 겨울 칼바람에 그을리고 주름져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다. 아버지의 옷에서는 늘 개 특유의 노린내가 풍겼다. 그것은 그의 존재를 규정하는 냄새이자, 내 어린 시절의 그림자였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내게서 풍기는 그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코를 막고 수군거리거나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에게서 옮아온, 내게 깊숙이 스며든 냄새라는 것을 뼛속 깊이 인지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도리질했다. 아버지의 냄새는 곧 나의 굴레였다.
한때 오빠는 아버지가 수집해 온 개들을 보신탕집에 넘기는 일을 부업처럼 하기도 했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인지, 아니면 동류의식 때문인지, 지역의 보신탕집 주인들과 금세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새벽녘이면 그는 낡은 픽업트럭 짐칸에 개들을 짐짝처럼 싣고 읍내를 돌았다. 낑낑거리는 개들의 불안한 울음소리와 철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 그 일 때문에 학교에서 누군가가 우리 가족을 향해 '개판 가족'이라고 낄낄거리며 부르기 시작했다. 그 잔인하고 노골적인 단어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 어린 귀에 깊숙이 박혔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희미해지지 않는 아물지 않는 상처, 일종의 내면의 흉터로 남아있다. 그 호칭은 우리 가족의 존재를 규정하는 낙인처럼 느껴졌다.
나는 태생부터 개장수의 딸이었고, 오빠는 개장수의 아들이었다. 그러니 전국적으로도 이름난 보신탕 마을의 초입, 가장 허름한 외곽에 우리 집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어쩌면 지독히도 당연한 운명의 귀결일 터였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인 오래된 집. 마당에는 철창 안에 갇힌 개들이 밤낮없이 외부의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짖어댔고, 허술한 담장 너머에는 백 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묵묵히 서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저 나무가 이 마을의 모든 추하고 더러운 비밀들, 우리 가족의 고단한 역사까지도 모두 꿰뚫어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믿곤 했다. 그 나무는 거대한 증인이자 침묵하는 관찰자였다.
나는 익숙하지만 불안한 손길로 뻑뻑한 문고리를 돌려 잠금쇠를 풀고 조심스레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문이 열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의 잔영, 어둠살이 움찔하며 내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가 희미한 바깥 빛에 의지해 벽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듯 음산하게 움직였다. 혼자 있는 밤이면 나는 언제나 본능적으로 경계 태세를 취해야 한다.
좀도둑이든, 술 취한 부랑자든, 아니면 더 끔찍한 무언가든, 이 동네에선 문단속을 허술히 하는 것이 곧 생명을 내놓는 것과 같았다. 나는 핸드백 속에서 차갑고 단단한 스턴건의 감촉을 확인하며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벽의 스위치를 눌렀다. 낡은 형광등이 신경질적으로 몇 번 껌벅거리며 망설이더니, 이내 탁한 백색광을 토해내며 주위를 힘겹게 밝혔다. 스턴건은 오빠가 투견판으로 완전히 떠나기 전, 내게 무심하게 던져주듯 건넨 유일한 선물이었다.
"내가 없을 땐 이걸로 네 몸 지켜. 함부로 덤비는 새끼들은 이걸로 지져버려." 그의 투박하고 거친 말투, 그 안에 숨겨진 일말의 염려인지 혹은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이 담긴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 메아리쳤다.
다행스럽게도 방 안에는 짙은 정적만이 고여 있을 뿐, 침입자의 흔적은 없었다. 순간적으로 온몸을 옥죄던 긴장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휑뎅그렁하게 비어버리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텅 빈 자리는 이내 설명하기 어려운 상실감과 고독감이 스멀스멀 채워 넣었다.
평소에는 그 폭력성과 야만성을 혐오해 마지않는 오빠지만, 이런 절대적인 고요와 불안 속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간절히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게 된다. 때로는 그가 투견장에서 짐승처럼 뒤엉켜 싸우는 개들을 향해 광포하게 부추기며 게거품을 물고 뱉어내던 그 끔찍한 고함소리조차 그리워질 때가 있다. 적어도 그 소리는, 이 집을 질식시킬 듯 짓누르는 죽음 같은 고요함보다는 훨씬 생동감 있었으니까. 그 소음조차도 살아있음의 증거였으니까.
벽에 걸린 낡은 괘종시계가 칙- 탁, 칙- 탁, 건조하고 쇳소리 섞인 소리로 무심하게 시간을 알린다. 창밖으로는 드문드문 외롭게 서 있는 가로등 불빛만이 어둠을 힘겹게 밀어내고 있다. 그 희미한 빛의 경계 아래로, 정처 없이 어슬렁거리는 몇몇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그들은 이 동네의 밤을 지배하는 불청객들, 언제나처럼 오늘도 목적 없이 이 음습한 골목을 배회하며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찾고 있을 것이다.
이 동네 좀 논다 하는 양아치치고, 오빠가 투견에 미쳐 집을 밥 먹듯 비우고, 적지 않은 밤을 나 홀로 이 낡은 집에서 지새운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들은 우리 가족을, 특히 아버지를 향해 '백정'이라 손가락질하며 경멸했고, 나는 속으로 그들을 '개새끼'라 부르며 증오했다. 이런 경멸과 혐오가 담긴 호칭들은 서로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돌멩이와 같았다. 상처만 남길 뿐, 누구도 이 지긋지긋한 싸움에서 진정한 승자가 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할퀴며 같은 진창 속을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대낮에는 고작 길 가는 초등학생들의 푼돈이나 뜯던 한심한 녀석들이, 밤이 되면 귀신같이 용기가 솟아나는지, 슬그머니 이 골목 저 골목 어귀에 죽치고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있다가, 내가 집으로 향하는 기척이 느껴지면 약속이라도 한 듯 낄낄거리면서 전봇대에 오줌 누는 개들의 흉내를 내며 조롱하곤 했다.
"컹컹! 야, 백정 딸내미 지나간다! 컹컹! 오늘 밤도 혼자냐? 컹컹!"
그들의 저열한 목소리는 차가운 밤공기를 타고 더욱 날카롭고 모욕적으로 귓전을 파고들었다. 그 소리는 보이지 않는 채찍처럼 등 뒤를 후려쳤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의 윤곽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피곤에 절어 움푹 팬 마른 볼, 길고 무심하게 뻗은 눈썹, 굳게 다물려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는 입술. 나는 문득 내 얼굴의 선과 표정 속에서 아주 오래전 떠나버린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보려 애쓴다.
엄마가 이 지긋지긋한 집과 우리를 버리고 떠난 지 벌써 수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혹은 이렇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응시할 때마다, 그녀의 희미한 그림자가 망령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속삭이는 듯하다. 엄마는 개장수의 아내로, 개 냄새와 가난, 폭력 속에서 스러져가는 삶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다.
십 년 전,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새벽, 그녀는 낡은 가방 하나만을 달랑 들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가뜩이나 없던 말수가 더욱 줄어들어 살아있는 석상처럼 변해갔고, 오빠는 안 그래도 위태롭던 분노를 더욱 제어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엄마의 부재는 우리 가족에게 남은 마지막 균형추마저 빼앗아 버렸다.
잊고 싶은 끔찍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어느 늦은 밤, 동네 양아치들 중 가장 질이 나쁘고 대담했던 한 녀석이, 내가 혼자 잠들어 있던 방 창문을 뜯고 들어와 밤새도록 나를 괴롭힌 적이 있다.
그날 밤 나는 너무 깊이 잠들어 있었거나, 혹은 너무 지쳐 있어서, 침입을 막을 어떤 방비도 하지 못한 무방비 상태였다.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그는 거친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숨 막히는 공포 속에서 그의 손에서는 역한 담배 찌든 내와 싸구려 술 냄새가 진동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던 그의 눈빛은 음침하고 탐욕스러웠으며, 내 얼굴 가까이 다가온 그의 숨결은 뜨겁고 불쾌했다. 나는 그 순간 느꼈던 극도의 공포와 무력감, 수치심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듯한 그 감각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 녀석은 그날 밤, 나를 침대 밑으로 끌어내려 개처럼 네 발로 엎드리게 하고는, 혀를 내밀고 짖어보라고 낄낄거리며 협박했다. 그 굴욕적인 순간은 내 영혼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오빠와 그 패거리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소문처럼 정말로 성불구자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끝내 나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그의 비열하고 음습했던 얼굴, 그 눈빛과 숨결은 내 기억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박혀있다. 지금도 때때로 악몽 속에서 그와 마주치면,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온몸이 얼어붙어 꼼짝할 수 없게 된다. 그 끔찍한 밤 이후로 나는 잠들 때조차 스턴건을 베개 밑에 두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이것은 이제 단순한 호신용품이 아니라, 나의 연약한 자아를 지키는 방패이자, 외로운 밤의 유일한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오빠와 그 패거리들에게 잡혀서 말 그대로 불알이 터지도록,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난생처음으로, 혐오스러운 오빠에게 아주 복잡 미묘한 형태의 감사함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동시에 폭력으로 되갚아진 폭력 앞에서 안도하는 나 자신이 낯설고도 씁쓸했다.
그리고 또렷이 기억나는 얼굴이 하나 더 있다. 학창 시절, 나를 볼 때마다 유독 집요하게 '백정 새끼, 백정 새끼'라고 놀려대며 괴롭히던 녀석. 그런데 참으로 운명의 장난인지, 우습게도 그 녀석은, 한때 오빠가 잠시 몸담았던 불법 개 도살장에서, 여전히 진짜 백정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이제 마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보신탕집의 어둡고 비좁은 뒷골목 도살장에서 매일같이 개를 잡는다고 했다. 얼마 전, 장날 북적이는 시장 길목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쳤을 때, 그는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듯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의 눈빛 속에서 나는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는 부끄러움과 자기혐오의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상처와 비루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나는 폐허가 된 유적지를 답사하는 낯선 방문객처럼, 낡고 병들어 스러져가는 이 집 내부를 한동안 천천히, 그러나 무심하게 둘러보았다. 거실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된 구식 브라운관 텔레비전, 아무렇게나 쌓여 벽처럼 높아진 오래된 신문 더미, 부엌 싱크대의 녹슨 수도꼭지에서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뒤뜰로 이어지는 낡은 목재 문의 깨진 유리창 틈으로 스며드는 싸늘한 밤공기.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시간에 처참히 패배하고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듯, 깊은 무력감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내 기억의 심연, 가장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부터 끊임없이 부추기고 꿈틀거리며 기어이 끓어오르려 하는 고통과 수치의 자국들은, 저주받은 유물들처럼 이 집 구석구석에 아무렇게나 나열되어 거대한 박물관을 이루고 있었다.
가난이라는 만성 질병, 예고 없이 터져 나오던 폭력의 기억, 순간적이고 허무했던 쾌락의 편린들, 아무도 닦아주지 않던 눈물 자국, 믿었던 이에게서 받은 배반의 상처, 현실 도피적인 몽상의 파편들,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던 깊은 나태, 그리고 언제나 집 안 공기처럼 떠돌던 죽음의 그림자.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의 퇴적물들이, 어떤 외부의 침범도 불가능할 것처럼 단단하게 응축되어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진공 상태처럼, 이곳에서는 아무런 통증 없이 담담하게 되씹을 수 있는 '어제'란 단 하루도 용납되지 않았다. 모든 기억들은 예리하게 날이 선 유리 조각이나 가시처럼 의식의 표면 아래 깊숙이 박혀, 건드릴 때마다 생생한 통증을 유발했다.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던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 사소한 일에도 주먹부터 날리던 오빠의 제어되지 않는 분노, 비 오는 새벽 떠나가던 엄마의 싸늘한 뒷모습, 이웃들의 동정 어린 혹은 경멸적인 수군거림, 학교 복도에서 마주쳐야 했던 노골적인 따돌림과 비웃음. 이 모든 것들이 퍼즐 조각처럼 모여 지금의 나를 형상했다.
방 한구석,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낡은 자개장 위에는 빛바랜 사진첩 하나가 놓여있다. 아주 가끔, 견딜 수 없이 외롭거나 현실이 버거울 때, 나는 홀린 듯 그 사진첩을 열어보곤 한다. 그러면 봉인된 주문이 풀리듯, 이미 사라져버린 아득한 시간들이 흑백 혹은 빛바랜 컬러 사진 속에서 아스라이 되살아난다. 지금은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까만 머리에 아직 청년의 풋풋함이 남아있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 투견이라는 광기에 사로잡히기 전,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하고 장난기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던 오빠의 모습. 그 시절로, 그 순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명백히 알면서도, 나는 때때로 그 덧없는 시간의 잔영이라도 필사적으로 붙잡고 싶어 사진첩을 넘긴다. 그것은 달콤하면서도 잔인한 자기기만이다.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낡은 목재 창문을 온 힘을 다해 밀어젖혔다. 끼이익- 하는 신경질적인 마찰음과 함께 창문이 힘겹게 열렸다. 창틀에 덕지덕지 엉겨 붙은 녹슨 쇠붙이와 삭아 부스러지는 나무의 거친 질감이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창문 틈새에는 수년간의 먼지와 매연, 습기가 엉겨 붙어 새까만 더께가 켜켜이 앉아 있었다. 도대체 몇 년이나 닦이지 않고 쌓였을까, 이 끈적하고 시커먼 먼지와 때는.
손가락으로 살짝 문질러보니 짙은 회색의 얼룩이 지문 사이에 깊게 배어들었다. 이 집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이 창문 또한 아주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철저히 방치되어 있었다.
열린 창문 너머로, 어른거리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낮은 시멘트 담벼락에 위태롭게 붙어 자라는 까막까치밥나무 한 그루가 힘겨운 듯 밤바람에 가냘프게 한들거리고 있다. 작고 붉은 열매가 드문드문 매달린 그 나무는, 떠나간 어머니가 오래전 손수 심은 것이었다. 한때는 그녀가 정성껏 가꾸었던 작은 정원의 중심이자 유일한 자부심이었다. 그녀가 떠난 후 아무도 돌보지 않지만, 나무는 여전히 질긴 생명력으로 계절마다 연초록 잎을 틔우고 하얀 꽃을 피우며 붉은 열매를 맺는다. 생명력이란 이토록 끈질기고도 서글픈 것인가.
그 옆으로는 한때 채소밭이었을 한 뙈기의 땅이 희미하고 흐린 불빛 아래 지친 듯 누워 있다. 이제는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이, 한때 이곳에 심겨 있었을 배추와 무의 흔적을 거의 완벽하게 뒤덮고 있었다. 엄마는 늘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흙을 만지작거리며 작은 생명들을 돌보곤 했다.
"이 흙이 우리를 살게 하는 기다." 그녀가 흙냄새 밴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이 흙만 있으면 우린 절대 굶어 죽진 않을 기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이 흙도, 흙이 길러낸 채소도, 그리고 우리 가족도 모두 미련 없이 두고 떠나버렸다. 그녀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흩어졌다.
마당 구석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은 이름 모를 과실수, 아무렇게나 쌓여 썩어가는 잡초 더미와 퇴비 더미, 비어 있거나 깨진 채 나뒹구는 부엽토 통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엄마가 떠난 후 완벽하게 방치되어 황무지로 변해버린 공간. 그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온갖 씁쓸하고 고약한 상념들과 서툴고 뒤죽박죽인 회고가 한데 뒤엉켜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덜컹, 소리를 내며 창문을 다시 닫았다.
창을 닫는 순간, 과거와의 위태로운 연결고리를 내 손으로 직접 끊어내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 낡고 더러운 창은 어쩌면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강력한 메타포와도 같았다. 바깥세상, 내가 갈망하는 미지의 세계와 지금의 나를 희미하게 연결해주면서도 동시에 견고하게 분리시키는 경계. 투명하기에 바깥을 볼 수 있지만, 너무도 쉽게 깨지고 부서질 수 있는 연약한 유리처럼, 나의 마음도 그러했다. 나는 언제나 이 낡은 창의 안과 밖, 그 위태로운 경계 위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방황한다. 안주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고 싶고, 두려우면서도 갈망한다.
차가운 방바닥의 냉기가 등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침대에 가만히 누워 얼룩진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내일은 또 다른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루하고 고독한 날이 시작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지긋지긋한 집을, 이 숨 막히는 마을을 떠날 계획을 막연하게나마 세우고 있다. 아버지나 오빠처럼 평생 개들을 사고팔거나 싸움 붙이는 삶이 아닌, 오롯이 나만의 길, 나만의 삶을 찾아서 떠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실현 가능한 꿈일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이 뿌리 깊은 마을, 핏줄처럼 얽힌 이 집, 그리고 나를 옭아매는 이 무거운 과거로부터 내가 과연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언제나 작아진다.
창밖에서 또다시 밤의 정적을 깨는 개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자, 약속이나 한 듯 동네의 다른 개들도 따라 짖어댄다. 그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소리는 나의 깊은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억눌린 외침이나 절규처럼 아프게 들려온다. 나는 스르르 눈을 감고 어서 빨리 잠이 들기를 기다린다. 어쩌면 꿈속에서는, 이 낡고 더러운 창문을 넘어,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전혀 다른 세상으로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덧없는 희망을 실낱같이 붙잡으며, 나는 서서히 무겁게 내려앉는 의식의 끈을 놓아버린다.
내일은 또 다른 날이 올 것이다. 변함없이 아버지는 개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돌 것이고, 오빠는 어느 투견장의 피와 광기 속을 전전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낡은 창 안쪽에서, 창밖의 세상을 막연히 응시하며, 언젠가는 기어이 열릴지도 모를 새로운 세상의 문을 희미하게나마 꿈꾸게 될 것이다. 이 창은 나의 감옥이자, 유일한 희망의 통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