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판타지 소설
집 꼬라지 하고는
화끈하고 수고스러운 첫날 밤을 무사히 치른 오동추는, 다음날 늦은 오전에 말자와 다정히 팔짱을 낀 채, 자이로카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오동추는 밤새 잠 한숨 못 잤다. 왜냐구? 너무 밝혀서.
오동추는 하루 만에 눈이 움푹 들어가고 다크 서클도 선명하며 푸석푸석한 피부에 토끼 눈 마냥 빨갛게 충혈이 되었지만, 기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 달콤했다. 그는 말자의 뽀얀 얼굴에 연신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녀와 함께 만들어갈 알콩달콩한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려 나갔다. 적어도 말자의 투덜거림이 쏟아지기 전까지는.
”오메! 이것 봐! 이것 봐! 강남구는 그제나 저제나 여전히 을씨년스럽구먼!“
말자는 동추의 집으로 가까울수록 점점 황폐해지고 더럽고 삭막하기 그지없는 바깥세상을 바라보며 탄식을 쏟아냈다. 거리는 부랑아들이 넘쳐나고 노숙자의 텐트가 인도를 거의 다 잠식했으며 마약에 찌든 좀비 형 인간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고 있었다.
”아이고! 가련한 내 팔자야! 이쁘게 태어나면 뭐하노? 결국은 경국지색이거늘. 파란만장한 내 팔자! 허구한 날 걸리는 건 홀아비에 치매 걸린 영감탱이들 뿐이고 이제 좀 제대로 된 주인 만났다 싶으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못사는 강남 에어리어! 결국, 이번에도 이 더럽고 추잡한 동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를 못하는구나! 내가 화근지인인데 누굴 원망하겠노? 그저 이 한 몸….“
참다못한 동추가 말자의 입을 손으로 가로막았다. 그리고 애원했다.
”말자 씨! 지금은 비록 이렇게 누추한 곳에 살고 있지만 내 꼭 열심히 돈 벌어서 쌍문동으로 이사할 테니…. 그때까지 조금만 참아주세요. 네?“
”쌍문동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서방님 직업이 의사래매?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 박사, 회계사, 변리사, 세무사, 법무사, 조종사 등등 자고로 사자 들어가는 직업 중에 돈 잘 버는 거 봤어요? 보나 마나 쥐꼬리만 한 봉급일 텐데…. 쌍문동은 고사하고 노량진 정도만 가도 이 소녀 한평생 서방님 은혜에 감복하며 살겠사옵니다.“
말자의 톡 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동추의 심장을 콕콕 찔렀다. 하지만 그에게는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학창 시절 거의 고아나 다름없이 자란 그에게 학교 공부는 사치였다. 내신 성적 14등급. 그가 갈 수 있는 대학은 의대와 법대뿐이었다. 그것도 지방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결국 남은 건, 서울대와 연세대뿐.
”하지만 너무 심여마세요, 서방님. 소녀가 입이 좀 거칠어서 그렇지, 마음만은 8월에 흙탕물에서 개화한 연꽃처럼 화사하고 따스하옵니다. 그러니 제가 내뱉는 쌍스러운 말에 너무 개의치 마시고 추풍에 부치는 노래마냥 그저 흘려들으시옵소서. 네?“
말자는 자신이 첫날부터 너무 몰아붙였다고 느꼈는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푹 죽어 있는 동추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정말?“
말자의 달콤한 말에 동추는, 동네 개업 행사장에 빠짐없는 등장하는, 춤추는 바람 인형처럼 벌떡 고개를 들고 헤죽거렸다.
”그럼요. 정말이죠. 서방님.“
말자는 동추를 꼭 안으며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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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집에 도착한 동추와 말자. 동추는 서둘러 말자를 침대에 눕히고 짜릿한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말자는 단호했다.
”우씨! 아니 서방님? 이게 지금 집 꼬라지라고 해 놓고 사는 거예요? 네? 쓰레기 매립지가 따로 없네!“
동추는 그래도 말자를 맞이하기 전, 나름대로 열심히 자신의 공간을 치우고 쓸고 닦고 정리 정돈했지만, 깔끔을 뜨는 말자의 성에 찰 리가 없었다. 그녀는 부산을 떨며 온 집안을 스캔하더니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정리 정돈부터 하기 시작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뒷마당에는 동추가 그동안 버리기 아까워 구석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수많은, 쓰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갔다. 하지만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대청소가 그 뒤를 따랐다. 말자는 씩씩거리며, 청소 대행업체처럼 여러 가지 약품을 이용해 집 전체를 구석구석 닦고 조이고 물 칠했다.
결국 그날 밤은, 아무 일 없이 동추는 그냥 잤다.
다음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동추는 순간적으로 집을 잘못 찾은 것으로 착각할 뻔했다. 허름한 외관에 비해 실내는 오성급 호텔을 뺨칠 정도로 반짝반짝하고 우아했다. 말자의 감성적 터치와 예술적 심미안이 집안 곳곳에 조화롭게 버무려져 화려한 꽃을 피웠다. 게다가 말자가 정성껏 준비한 막창, 곱창, 대창 구이는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너무도 행복한 동추는 밤에 펼쳐질 말자와의 환락의 시간을 기대하며, 자기 몸을 뽀득뽀득 구석구석 잘 닦고 침대에 누워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말자는 여전히 바빴다. 그녀는 이제 집의 바운드리를 넘어 흥민 빌라 전체를 스캔하고 대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자에게는 무척 바쁜, 동추에게는 아주 행복하지만, 성적으로 2% 정도 살짝 부족한 날들이 가고 주말이 돌아왔다.
오동추는 이상한 예감을 느끼고 문득 잠에서 깼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에서 부릉부릉하는 낯선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보니 뽀얀 연기가 지하 통풍구에서 피어올라 흐린 하늘로 번졌다. 순간 그는 지하에 불이 났다고 판단하고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튀어 올라 황급히 김말자를 찾았다.
“말자야! 말자야! 어디 있니?”
하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얘는 또 어디로 싸돌아다니는 거야? 그렇게 타일렀건만…. 잠시라도 궁둥이를 그냥 붙이고 앉아 있지를 않네! 하여튼 말 하나는 더럽게 안 들어!”
오동추는 투덜투덜하며 복도에 세워진 간이 소화기를 집어 들고 계단을 통해 다급하게 밑으로 내려갔다. 흐린 날, 지하는 더욱 어두웠다. 문을 열자마자 굉음에 가까운 소음이 지하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앞을 가로막는 짙은 연기 속으로 매캐한 기름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의 숨통을 조였다.
“씨팔! 도대체 어디에 불이 난 거야?”
오동추는 소화기 노즐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움직이며 주변을 살폈다. 그는 엄청난 소음의 진원지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리와 연기의 주범을 파악했다.
짙은 코발트블루의 부가티 볼리드 W99 테크니크 스포츠카였다. 최고 시속 600km. 100년 전, 화석 연료를 사용한 차량 중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슈퍼카였다. 하지만 지금은 원자력 차에 밀려 그저 박물관에만 존재할 뿐이었다.
“김말자! 미쳤어? 그만해!”
오동추는 운전대를 잡은 채 계속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는, 말자를 발견하고 크게 외쳤다. 하지만 말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액셀을 밟았다 놓았다 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오동추는 조수석 문을 열고 몸을 날려 그녀의 손을 겨우 잡았다.
“제발! 이 바보야! 뭐 하는 짓이야! 시동 꺼! 시동 끄란 말이야!”
그제야 말자는 시동을 끄고 동추를 보며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와우! 서방님! 정말 엘레강스하고 파워풀한 차를 갖고 계시는군요! 비록 선사시대 유물이지만.”
“엘레강스고 나발이고 간에 도대체 여기는 왜 또 기어들어 온 거야? 응? 도대체 내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제발 좀 나대지 좀 마! 그냥 방구석에 가만히 있으면 누가 잡아 간데?”
오동추는 표현할 수 있는 모든 험악한 표정을 얼굴에 새긴 채 그녀를 노려봤다.
“서방님! 너무 하십니다! 제가 기어들어 왔다고요? 저보고 나대지 마라고요? 비록 제가 법률적, 계약적, 사회적, 도덕적 맥락에 따른 주종관계에서 종의 역할, 즉 을의 처지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자아를 인식하고 고통도 느끼는 생체공학적 휴머노이드 객체로써 서방님의 모욕에 가까운 발언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현하지 아니할 수 없는바, 이는 향후 지속적인 친밀함과 육체적 끌림을 전제로 한 동등한 관계 즉, 여자친구의 자격에 대한 심각한 손상을 유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파국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 가련한 가슴에 새긴 거나 마찬가지임으로, 이것이야말로 현대판 주홍글씨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서방님!”
“어휴!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아무튼 빨리빨리 차에서 내려! 이 더러운 지하실에는 한순간도 있기 싫으니까 빨리 올라가자고!”
오동추는 다시 한번 말자를 바라보며 자신이 조금 전에 쏟아낸 말에 미안함을 담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말자는 언제 서운했냐는 듯이 표정을 싹 바꾸어 헤헤거리며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런데 서방님, 저렇게 고상한 골동품 차는 언제 장만한 거예요?”
말자는 동추의 가슴에 바싹 붙어서 코맹맹이 소리로 속삭였다.
“장만하기는? 그냥 물려받은 거야.”
“오호! 놀라우셔라! 이건 뭐지? 가문의 유산치고는 무척 세련된 감각! 정말이지 서방님 조상님은 대단하신 거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서방님. 보통 그렇지 않아요? 조상의 유품이라고 해 봤자…. 뭐 툭 하고 건드리면 바스러질 도자기거나 낡아 빠진 종이에 지금은 사라진 한자투성이의 책들…. 그래 족보 같은 거…. 또 뭐 있지? 그래…. 인장, 노예 문서, 금두꺼비 등등.”
“집안 대대로 스피드광이 많았거든.”
오동추는 지하실을 나서며 약간 우쭐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오호! 보기와 다르게 정말이지 익사이팅한 집안이네…. 그럼 그 뭐야? 조상님 중에 프로레이서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오 씨라면…. 그러면 혹시 오달수?”
그 말을 듣는 순간, 동추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멈추고 말았다.
“와! 오달수! 맞아요? 서방님. 정말 전설의 카레이서 오달수 님이 서방님 조상인 거예요?”
말자는 신이 난 듯 방방거리며 동추에게 치근 듯 거리며 답을 재촉했다. 하지만 동추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리고 긴 한숨을 쉬며 괴로운 듯 중얼거렸다.
“우리 아버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