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판타지 소설
오달수와 유해진
오동추의 아버지 오달수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는 다섯 형제의 둘째로 태어나 이미 십 대 시절부터, 형과 함께 온갖 나쁜 짓은 다 하면서 돌아다녔다. 음주, 흡연은 당연하고 무단결석은 밥 먹듯이 하였으며 마약, 절도, 사기, 폭해 등 소위 일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였다. 그러므로 열여섯 살 때부터 소년원을 들락날락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감옥을 제집보다 더 친밀하게 여길 정도였다.
다만, 다른 제소자에 비해 남다른 점이 있었다면, 돈벌이에 탁월한 재주를 보여, 교도소에 있거나 사회에 있거나 늘 수중에 돈이 넘쳐났다. 이를 눈여겨본 감방 동료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마광수. 훗날 한국 최대 마피아의 대부이자 <진실파>의 보스 마동식의 아버지였다.
어느 날, 서른을 갓 넘긴 오달수는 출소하자마자 라도베가스 여수로 발길을 돌렸다. 그보다 두 달 먼저 출소한 마광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남해가 시원하게 펼쳐진 해안 도로 옆에 제법 규모가 큰 카페를 인수하여 술집 <남킹> 클럽을 개업했다. 그런데 말이 술집이지 거의 성매매업소에 가까웠다. 다양한 국적의 무희들이 매일 밤 쇼킹한 스트립쇼를 펼치며 성 매수자를 끌어들였다. 한마디로 굶주린 늑대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연일 남킹의 출입구에는 대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달수의 아이디어와 광수의 자금력이 만나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 두 사람의 역할도 뚜렷했다. 광수는 남킹의 실질적인 오너로, 여수의 권력 실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클럽의 안전과 보호를 맡았고, 달수는 동생들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쭉쭉 빵빵 미녀들을 지속해서 공급하였다.
이때, 달수는 데려온 여자 중, 착하고 순진한 여인들은 자신의 여친으로 삼고, 그중에 몇몇은 임신까지 시켰는데, 그 자식 중에 오늘의 주인공 오동추도 포함되어 있다.
아무튼 그렇게 호시절을 지내던 어느 날, 달수는 클럽 VIP 고객 중 유해진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알게 되었다. 유해진은 그야말로 사기 영업의 대가였다. 그는 스물다섯 살에 생애 첫 영업을 하게 되었는데, 품목은 창고에 재고로 가득히 쌓여있는 숯이었다. 주로 공기정화, 습도조절, 악취 제거 등에 사용하는 제품이었는데, 그는 <숯>이라는 용어를 <활성탄>으로 싹 바꾸고, 활성탄의 표면에 많은 미세 구멍이 체내의 독소를 빨아들인다는, 근거 없는 가짜 논문을 내세워 이 제품이 설사, 변비, 소화불량, 숙취 등을 예방하고 상처 치유를 촉진하며 심지어 다이어트 효과도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렇게 하여 그는 몇 년째 방치되어 있던 숯을 단 한 달 만에 다 팔아치웠다. 그것도 비싼 값으로.
이에 자신감을 얻은 유해진은 실로 다양하기 그지없는 사기 제품을 내놓았는데, 대표적으로 <팔각수 항암 생명수> <두뇌 건강 브레인스퀘어> <일렉트란 전기 충격 체중 감량기> <멜리나 419 가짜 송금앱> <헤라노스 엉터리 질병 진단기> <가짜 루이비똥 가방> <가짜 올렉스 시계> 등등.
하지만 그의 놀랍고 대범한 사기 행각은, 두 명의 인플루언서 <사막여우>와 <호구구조대>에 의해 낱낱이 까발리며, 결국 유해진은 구속되어 3년을 옥살이하고 풀려났다. 출소 후에 그는 기존의 사기 영업에서 발을 빼고, 좀 더 위험하지만 크게 한방 해치울 수 있는 종목으로 갈아탔는데, 그게 바로 밀수였다. 그가 클럽 <남킹>에 뻔질나게 들락날락하게 된 것도 그의 사업 전략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이곳은 이름 없는 졸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밀 아지트였다.
유해진은 클럽에서 재력가들에게 접근하여 환심을 사고 그들의 니즈에 걸맞은 고가의 제품을 밀수하여 제공하였다. 그가 비밀리에 들여오는 제품 중에는 수억 원 상당의 슈퍼카뿐만 아니라 수백억 상당의 전용기, 요트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군사용 무기들도 팔았다. 그는 이 모든 일 처리를 철저하게 혼자서 수행했다. 왜냐하면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비밀 유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약속한 제품에 대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납품일에 맞추어 제공하였으므로 그에 대한 부자들의 신뢰는 철옹성처럼 단단했다.
이즈음에, 유해진과 오달수가 마치 영혼의 단짝처럼, 멋진 사업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클럽 여자 공급의 주요 루트였던, 상하이 지점에서 출발한 수송 보트가 그만 해상경비대에게 나포되고 만 것이다. 이 일로 달수는 보트를 압수당했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액수의 입막음용 돈을 뿌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당장,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수송용 보트가 필요했다. 해상경비대의 추적을 우습게 따돌릴 수 있을 정도의 사양을 갖춘….
달수의 요구를 맞추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유해진이 유일했다. 유해진은 중형급 플라이브릿지 유람선에 두 쌍의 슈퍼 레이싱 엔진을 달아 시속 100노트의 초고속 보트를 만들었다. 최고 속도가 시속 200km를 맞먹었다. 첫 시험 운전에 달수가 운전대를 잡았다. 다들 위험하다고 그를 뜯어말렸지만, 달수는 왠지 모르게 업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첫 운전에서 줄곧 최고 속도를 유지하며 거친 바다를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하며 달렸다. 그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 그와 동승했던 이들은 거의 초주검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달수는 이 세상 그 어느 순간보다 짜릿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심지어 마약보다 좋았다.
달수는 타고난 스피드광이었다. 사실 그의 집안 내력이었다. 그동안 의사 집안이라는 전통에 가려져 그들만이 갖춘 스피드 유전자를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달수가 비로소 깨달은 거였다. 이후, 달수는 유해진으로부터 시속 300km를 자랑하는 레이싱 보트를 2대 주문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바다로 끌고 나가 스피드를 즐겼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레이싱이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촉매제가 되었다. 이듬해 그는 아마추어 모터보트 그랑프리 대회에 참가했다. 압도적인 실력 차로 그는 일등을 차지했다.
자신이 붙은 달수는, 아예 자신의 레이싱을 서포트 해줄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유해진이 회사의 중책을 맡았다.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무엇보다 최고의 장비가 필요한 법. 유해진은 최고의 모터보트를 찾기 위해 세계 방방곡곡을 누볐다. 서방 선진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및 동유럽 쪽에도 쑤시고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유해진은 체첸 공화국의 한 군수 공장 창고에서 새로운 방식의 슈퍼터보 엔진을 발견했다.
이로 인해 그의 레이싱 성적은 수직으로 상승하였다. 프로로 전향한 달수는, 그야말로 혜성같이 나타난 최고의 모터보트 레이서가 되었다. 어느 해에는 모든 대회를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당연히 엄청난 명성과 천문학적인 우승 상금이 따라왔다. 달수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번에는 유해진에게 최고의 스피드 레이싱 자동차를 주문했다.
최고의 스피드 유전자를 가진 달수. 그리고 그에게 필요한 장비라면 땅끝까지 추적해서라도 기어코 가져오는 해진. 이 둘의 합작은 카레이싱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아마추어 카레이싱 대회부터 시작한 달수는 채 2년도 되지 않아 프로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카레이서 상금 순위 톱 10에 진입했다.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한 루키였다.
하지만 이러한 승승장구가 그에게 빛이라면 그의 발목을 잡는 그림자가 늘 따라다녔으니, 그것은 바로 마광수와 독버섯처럼 사방에 뿌리내리고 있는 <진실파>였다. 달수가 유명해지면 해 질수록 그의 조폭 연계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일 언론을 달구었다. 달수는 광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명분이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 사이가 이젠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밝은 세상의 스타와 어둠의 세계 제왕이 영원히 공존할 수는 없는 법.
결국, 이듬해 마광수는, 본인마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오달수를 놓아주는 대가로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어찌 보면 마광수가 베푸는 선심일 수도 있고 오달수가 <헤어질 결심>을 굳히기 위한 명분이기도 했다.
그것은 승부조작이었다. 포뮬러원에서 한 시즌 7개 그랑프리를 연속으로 우승한 오달수는 8번째 그랑프리가 열리는 부산으로 향했다. 그의 우승 확률은 54.4%. 그가 준우승 이상할 확률은 89, 3%에 달했다. 마광수의 요구는 간단했다. 오달수가 우승과 준우승만 하지 않으면 된다였다. 오달수에게는 이보다 더 쉬운 레이스는 없었다. 또한, 마광수는 이보다 더 쉽게 큰돈을 벌 기회도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비극은, 늘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어느 시점에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기 마련이다.
레이싱은 지극히 순조로웠다. 10.144 km의 서킷을 77바퀴 돌아야 하는 레이싱에서 오달수는 30바퀴부터 일찌감치 선두로 나섰다. 2등과의 격차도 반 바퀴 이상 벌어진 상황.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간격 조절에만 신경을 썼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지막 2바퀴를 남겨놓은 시점이 되자 그는 선두자리를 내주려고 속도를 줄여 나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자신의 차량과 나란히 달리게 된 2등 레이서를 순간적으로 흠칫 보게 된 오달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녀석이 오달수를 보며 혀를 빼꼼 내밀며 조롱하듯이 앞서나가는 거였다.
그 순간 오달수는 마광수가 자기의 경쟁자에게도 돈으로 매수를 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즉, 저 녀석은 오달수가 막판에 속도를 줄이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빈정대는 거였다. 달수의 배알이 꼴리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솟고 심사가 뒤틀렸다. 오기가 뻗쳐 나온 그는 증오의 악셀을 밟아대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 짧은 순간의 광기가 오달수를 몰락으로 보내 버렸다. 그는 연속으로 8번째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바로 다음 날, 그의 영혼의 파트너 유해진이 차가운 바다에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채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을 때 오달수는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마광수는 자신이 평생 긁어모은 재산의 절반을 날렸다.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를 분노케 한 것은 바로 자존심이었다. 한마디로 이거였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오달수는 살기 위해 도망쳤다. 하지만 너무도 유명한 얼굴이기에 숨기가 힘들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며 졸졸 따르던 여인들에게 은밀히 연락했다. 하지만 이미 마광수의 졸개들에게 협박받는 상황. 아무도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오동추의 어머니만 그를 반겼다.
그날, 오동추가 기억하는 것은 잠결에 들은 슈퍼카 소음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누군가와 쑥덕이는 소리. 잠시 후, 동추의 방문이 삑 열리고 낯선 남자는 한동안 동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침. 동추는 요란한 소리에 눈을 떴다. 그가 방문을 열고 본 광경은 곳곳에 깨진 그릇과 흩어진 핏자국뿐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로 알고 있던 오달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지하에 부가티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