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판타지 소설
미션 임파서블
9번째 새로운 주인의 살림을 맡게 된 말자. 그녀는 풍부한 동거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생활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평일 오전 7시, 자기 배꼽 알람 시계가 진동하면 서방님을 흔들어 깨우고, 그녀는 아침 준비에 들어간다. 동추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수타 짬짜면. 그녀는 전날 만들어 놓은 쫄깃하고 찰진 강력분 반죽을 싱크대 옆에 마련한 나무 널빤지에 치대고 때리고 접고 또 때리고 늘리고 꽈배기처럼 배배 꼬아서 면의 굵기가 고른 면발을 능숙하게 만들어낸다. 그녀가 이렇게 숙달된 솜씨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그녀의 4번째 주인이 짬뽕집 전문 중국집 <히로뽕>과 선술집 카페인 <스티브 잡술>의 오너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무척 힘들고 바쁜 삶을 영위했는데, 낮에는 히로뽕에서 수타면을 뽑고 밤에는 스티브 잡술에서 술 시중을 들었으며 새벽에는 주인의 성 노리개 역할까지 하였다. 그러니 말자의 삶은 그야말로 출구가 없는 폐쇄 터널 속이었다. 그녀는 시커먼 더께가 덕지덕지 붙은, 주방의 좁은 창으로, 대변항을 오가는 멸치잡이 배와 그 위를 우아한 모습으로 비행하는 갈매기를 보면서 자신도 저 멀리 미지의 세상으로, 인간이 없는 곳으로, 훨훨 날고 싶은 꿈을 꾸곤 했다. 마치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처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꿈은 실제로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히로뽕> 주인답게, 어느 날 주인은 마약 소지 혐의로 형사들에게 끌려갔다. 그런데 그 나쁜 놈이, 말자의 엉덩이 저장고에 몰래 숨겨둔 마약을, 경찰의 심문 과정에서 실토함으로써 그녀도 덩달아 구속되고 말았다. 국과수로 끌려간 그녀는 발가벗겨진 채, 사이보그 전담 부검의의 주도 아래 모든 부품이 분해되는 굴욕을 맞보아야만 했다. 그날의 수치심과 절망감은, 아직도 그녀를 부지불식간에 몸서리치게 하곤 했다.
그녀는 결국, 마약사범 처벌 규정 제 59조 벌칙에 따른, 향정신성 의약품 소지죄가 적용되어 2년의 노역 징역과 1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면서 말자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놈에게 학대받는 거나 교도소에서 학대받는 거나 도긴개긴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그녀가, 한국에 이미 흡수 병합된, 북한행 죄수 열차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끝없이 올라가다 마침내 도착한, 삭막하고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수용소 건물을 보고는,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곳 입구 팻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아오지 탄광에 오신 걸 환영합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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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조개류와 오징어로 감칠맛을 우려내고 매콤한 고추씨로 칼칼한 향을 더한 수제 짬뽕과 역시 갖은 해물과 특제 춘장, 양파를 적절하게 볶아 만든 수제 간짜장을 내놓으면, 오동추는 밥상머리에 앉자마자 걸신들린 듯이 마구마구 입속에 쑤셔 넣기에 바쁘다. 그러면 말자는 그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 동추가 마침내 젓가락을 밥상에 탁 놓고 심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트림을 끄억하기 무섭게, 그녀는 재빠르게 물수건으로 서방님의 지저분한 입가뿐만 아니라 이빨까지 정성스레 닦는다.
동추가 출근하고 나면, 그녀는 깔끔 식기 세척기, 다빨아 통돌이 세탁기를 돌리고 로봇 청소기 <반짝이>에게 오더를 내린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코에 충전 커넥터를 꽂고 급속 배터리 충전 수면 모드로 들어간다.
말자의 빨간 엉덩이가 충전 완료 표시인 녹색으로 바뀌면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한번 켜고 흥민 빌라 전체를 돌며 정리 정돈을 한다. 가끔 노숙자들이 몰래 들어와 자기 배설물로 세계 지도를 그리곤 하므로 말자는 검은 비닐, 소독제, 방향제를 갖춘 채 빌딩을 스캔한다.
오전 업무가 끝나면 말자는 서방님에게 하트 이모티콘을 대충 몇 개 날려주고 지하로 내려가 부가티를 끌고 나와 오래전에 폐쇄된 주유소를 찾는다. 그리고 주유소 탱크에 남아 있는 기름을 뽑아 슈퍼카에 주유하고, 2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미친 듯이 달린다. 대부분의 운송 수단은 20층으로 구성된 공간 도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1층에 해당하는 바닥 도로는 거의 텅 빈 상태다. 그러므로 그녀는 맘껏 악셀을 밟는다. 그녀가 발에 힘을 줄 때마다 자동차는 격렬하게 반응한다.
원자력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플라잉 카들은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옹알옹알하는, 마치 아기 옹알이 정도의 소음만 내지만 부가티는 천둥 벼락같은 굉음을 내기 때문에 모든 이의 이목이 그녀에게 쏠린다. 말자는 이 순간을 즐긴다. 마침내 찾아온 온전한 자유. 그녀는 아오지 탄광의 무너진 갱도에 파묻혀 손발은 구겨지고 목은 비틀어졌어도 절대로 희망을 놓치지는 않았다.
언젠가 내 서방님이 나를 구매해 주리라는 것을.
말자는 돌아오는 길에 에프마트에 들러 찬거리를 구입한다. 집에 와서도 온라인 마켓 – 심쿵, 사하라, 알지 익스프레스 –에 접속해 식자재를 더 주문한다. 그리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로 전신 목욕을 개운하게 한다.
마침내 동추의 퇴근 시간. 말자는 백종운 레시피에서 선정한 오늘의 서민 요리를 정성껏 준비한 후, 처진 힙을 바쳐주고 가슴의 윤곽을 도드라지게 하는, 요염한 실크 반투명 속옷을 걸치고 크리스챤디옹의 <조강지처> 향수를 가슴과 허벅지, 겨드랑이, 귓불에 뿌린 뒤, 뜻밖의 미소를 머금은 채, 문 열고 들어오는 서방님께 쏙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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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꿈처럼, 지극히 행복하고 로맨틱하기 그지없는 한 달이 눈 깜빡하는 사이에 지나갔다. 동추는 입이 귀에 걸린 채, 바보처럼 헤죽헤죽, 싱글벙글거리며 직장과 집을 오갔다. 그는 말자가 너무너무 좋았다. 하긴 사십 평생 엄마 말고는 여자와 살아 본 적이 없으니 충분히 납득이 가고 수긍이 오는 상황이었다. 말자도 동추가 무지막지하게 좋았다. 이전의 여덟 명의 주인들에 비해, 동추는 확연히 젊고 순진하고 성실했으며 덜 변태적이고, 더 그녀를 사랑한다는 촉을 그녀가 피부로 느끼도록 만들었다. 말자는 늘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보다 더 좋은 순 없다. 암, 그렇고말고.”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를 세상에 내보낸 오픈 AI 보스 <어른 머스크>님에게 감사하는 맘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겼다.
흥민 빌라 공간 전체를 고소한 깨소금 냄새로 가득 채운 날 들 속에, 말자는 어느 날 문득, 우리 낭군님의 회사 생활이 궁금해졌다. 동네 시립병원 성형외과 전문의인 오동추가 병원에서 간호사나 환자들과 잘 지내는지, 병원 내의 입지가 탄탄하고 실력도 좋아 모두의 존경을 받는지 아니면 잘리기 직전이지, 말자는 서방님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궁금해서 미치고 환장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결국, 그녀는 가슴 저장고 4번 칸에 오랫동안 숨겨놨던, 코딱지만 한 초소형 몰래 녹음기를 끄집어냈다. 이것은 그녀의 다섯 번째 주인이 사용하던 것 중에 하나로, 사실 그녀의 풍만한 보디에는 공간이 넉넉했으므로 은밀하게 숨겨진, 일반인은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사스러운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그녀의 다섯 번째 주인의 이름은 <이단 헌트>로 치매를 앓고 있는 전직 특수요원 할아버지였다. 말자는 이단의 간병인으로 팔려 갔는데, 그는 온종일 휠체어에 앉아 망상에 가까운 헛소리를 끊임없이 늘어놓으며 간병인을 괴롭히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그를 <구라쟁이> 혹은 <이구라>로 불렀다. 그가 반복적으로 떠벌리는 것 중에는 IMF(Impossible Missions Force)의 배신자를 잡고 수석 요원이 됐다느니, 자기 아내를 극적으로 구출했다느니,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았다느니, CIA가 해체한 IMF를 재건했다느니, 핵 테러를 맨몸으로 막았다느니, 인공지능을 박살 냈다느니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심지어 그는 초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거나, 비행기에 매달려 날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산 정상에서 뛰어내리는 등 도저히 말도 안 되는 무용담을 늘어놓았으며, 실제로 물 위의 소금쟁이처럼 두손 두발을 쫙 편 채 건들거리며 흉내를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노인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알았다는 듯, 다들 고개만 끄덕이는 시늉을 했다.
말자가 그를 돌보기 위해 요양원에 갔을 때도 전임자는 그녀에게 딱 하나, 그저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면 된다고만 알려주고 사라졌다. 실제로 그녀도 한동안은 이반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만 반복적으로 끄덕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말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할아버지가 비록 잠깐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멈춘 채, 침묵 속에 눈빛을 반짝이며 주변을 유심히 둘러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이반은 항상 말자에게 자신이 왜 여기 있으며, 지금은 몇 연도이며, 이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묻곤 하였다. 그리고 다른 전임자들과는 달리, 말자는 이반의 질문에 꼬박꼬박 정직하게 답을 해주었다. 말자는, 그 순간만큼은 할아버지가 치매에서 벗어나 정상인으로 돌아온 것을 확신했다.
그런 그녀의 정성이 통한 걸까? 어느 날, 다시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온 이반은 자기 엉덩이 살을 작은 칼로 찢고는 초소형 마이크로캡슐을 꺼내 말자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말자야, 너는 입이 무겁느냐?”
“네,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염라대왕 앞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하겠나이다.”
이반은 얕은 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캡슐을 입 가까이 가져간 뒤 속삭였다.
“아브라카다브라 미션 임파서블 요원 코드 BE11 아브라카다브라 명령 일 깨어나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캡슐에서 푸른 광선이 뿜어져 나오며 공간에 3D로 알 수 없는 숫자가 나열되었다.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주인님.”
“이것은 스위스 융프라우 은행의 개인 비밀 금고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다. 말자야, 지금 떠나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모든 것을 가져오너라.”
“그런데 주인님, 스위스까지 가려면 차비는?”
“아 차차차차 내가 그걸 깜빡했구나!”
이반은 자신의 낡은 가방을 가져오게 한 뒤, 가방의 입구를 쫙 벌리고 그 속을 마구 뒤지며 온갖 잡동사니를 끄집어내더니 마침내 녹슨 원통형 물건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표면에 새겨진 알파벳을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주인님,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이옵니까?”
“크립텍스(Cryptex)라는 물건이다. 암호를 맞추면 뚜껑이 열리고 그 속에 그동안 내가 아내에게서 용돈 받을 때마다 안 먹고 안 쓰고 알뜰살뜰 모아놓은 내 비상금이 들어있느니라.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아껴두었지.”
하지만 크립텍스의 뚜껑은 좀체 열리지 않았다.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노인은 씩씩거리며 말자에게 외쳤다.
“말자야! 망치 좀 가져오너라! 이놈의 물건을 당장 박살 내던가 해야지! 열려고 할 때마다 이 지랄이야!”
결국 크립텍스를 아작내고 나서야 겨우 차비를 받게 된 말자는 다음날 이반 할아버지에게 한 보따리의 심상치 않은 물건을 안겼다. 그 속에는 거액의 현금다발, 각국의 위조 전자여권, 각종 무기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장비들이 가득했다.
그날 이후, 말자는 이반의 수제자가 되어 틈만 나면 외부 화장실 장애인 칸에 들어가서 특수 공작 훈련을 전수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