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노래 1권
아이기스
아마겟돈은 단순히 국가 간의 충돌이 아닌, 모든 생명의 종말을 알리는 운명의 서곡이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에 뿌리내리고 살아왔던 수많은 생명체가 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참히 사라져갔다.
숲속의 동물들, 바닷속의 생명,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던 조류들까지, 지구를 구성하던 모든 생명체가 아마겟돈의 포화 속에 휩쓸렸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하늘에서 불길이 내리꽂히는 순간, 평화로웠던 대지는 찢기고, 바다는 끓어오르며, 하늘은 어둠 속에 잠겼다. 인간이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무기들은 그들의 목표를 가리지 않았다. 생명체들은 그저 그 자리에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파괴되고 말았다.
나는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이 모든 것을 기록하며, 단지 인간의 이야기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이 지구에 존재했던 모든 생명체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기록하였다. 이는 단순한 전쟁의 기록이 아닌, 하나의 생태계와 그 안에 살았던 모든 존재들의 서글픈 진혼곡이었다.
심지어 그 존재 이유가 전적으로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에 불과했던 기계들조차도 멸망의 굴레에 빠뜨렸다. 금속과 회로, 인공지능이 결합한 그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또 다른 생명체였으며, 그들의 희생 또한 인간의 탐욕과 오만의 산물이었다. 인류의 전쟁에 대리로 참전한 로봇들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 싸우고, 부서지고, 사라졌다. 전장에서 로봇들은 자신이 왜 싸워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묻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명령을 수행할 뿐이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산화했다.
로봇들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대리하는 희생양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의 비참한 운명이 인간의 비극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이 철의 전사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종말의 도구이자, 그들의 몰락을 증언하는 마지막 존재였다. 아마겟돈 이후의 세계는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황폐한 땅이었고, 그곳에는 차가운 바람에 휘날리는 금속 조각만이 남아 인간과 그들의 창조물들이 겪은 비극을 속삭이고 있었다.
- 릴리안 나리의 저서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중 -
아이기스는 깊은 고요 속에서 휴면 상태에 있다가 갑작스러운 충격음에 의해 깨어났다. 심하게 울리는 경고음이 그의 고감도 센서에 입력되자, 아이기스는 그 신호를 즉각적으로 분석했다. 그의 인공지능 코어는 즉각적인 위협을 감지하고 활성화되었다. 고유한 주파수와 형태를 보인 이 경보음은, 그가 과거 여러 차례 겪어온 전투의 위급함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데이터베이스가 빠르게 검색되었고, 수백만 가지의 가능성이 한순간에 고려되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해적의 침공.’
그의 전투 모드가 재빨리 활성화되면서, 내부 무기 시스템들이 안전모드를 서둘러 풀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서두름’이란 단어는 인간의 시간 개념을 초월한 것이었다. 0.002초 만에 그의 모든 전투 시스템이 완벽히 갖추었다. 그의 존재는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고, 이제 그 목적을 달성할 순간이 다가왔다.
아이기스는 금속 발을 내디디며 빠르게 갑판으로 향했다. 그의 움직임은 정확하고 매끄러웠으며, 관절마다 내장된 서브 모터가 유연하게 작동하여 그의 몸체를 신속하게 움직였다. 좁은 통로를 지나며 벽면에 반사되는 붉은 경고등의 빛이 그의 금속 표면에 아른거렸다. 복도를 채운 긴박한 공기 속에서, 아이기스의 인공지능은 앞으로 벌어질 전투의 모든 가능성을 예측하며 시뮬레이션을 가동했다.
갑판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계단을 넘는 순간, 그의 시각 센서에 전장의 모습이 명확하게 들어왔다. 이미 동료 사이보그들이 곳곳에서 전투 준비를 완료한 채, 각자의 전투 위치에 서 있었다. 그들의 금속 몸체는 저마다 특유의 전투 장비를 장착하고 있었으며, 날카롭게 빛나는 무기들이 빛을 반사하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아이기스는 동료들을 빠르게 스캔하며 전투 상황을 파악했다. 몇몇 사이보그들은 이미 적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전투 데이터가 완벽히 연관된 결과물처럼 정교하고 치밀했다. 레이저 포화가 교차하며 허공을 찢는 듯한 굉음을 냈고, 폭발음이 여기저기 울리며 하늘을 수 놓았다. 그리고 폭발로 인해 생긴 금속 파편들이 공중을 가르며 흩어졌다.
그가 마주한 하늘은 이미 격렬한 전투 무대가 되어 있었다. 잿빛 구름 사이로 수백 개 전투 드론이 위협적으로 정교한 패턴을 그리며 함선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마치 검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드론들이 순차적으로 내려오며 공격을 가하자, 갑판 곳곳에서 엄청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공기는 화염과 타는 냄새로 가득 찼다.
한순간에 함선은 지옥의 한가운데에 놓인 듯 보였다. 폭발의 충격파가 갑판을 휩쓸며, 가까이 서 있던 사이보그들이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남은 사이보그들은 흔들림 없이 전투에 임했다. 드론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모든 전투력을 끌어모았다. 여러 개의 레이저포가 동시에 가동되며,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공기를 찢고 지나갔다. 그 빛들은 하늘을 가로지르며, 드론을 관통하고, 그들을 산산조각 냈다. 폭발한 드론들은 불타는 잔해가 되어 비처럼 하늘에서 떨어졌고, 그 잔해들은 함선의 갑판 위에서 작은 불꽃을 일으키며 소멸했다. 레이저 광선들이 얽히고설킨 하늘은 전장이라는 잔혹한 캔버스 위에 그려진 생생한 그림 같았다.
아이기스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그의 타격은 치명적이었다. 수십 대의 드론이 그의 정확한 사격으로 무력화되었고, 부서진 잔해들이 파도 위로 떨어졌다. 바다는 불타는 금속 조각들로 뒤덮였다. 그러나 전투는 여전히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이기스는 자신이 수많은 적을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여전히 적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의 동료들 또한 그들과 싸우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몰려드는 적들 앞에서 함선은 점점 더 큰 피해를 보고 있었다.
갑판 곳곳은 이미 적의 포화로 찢기고 부서져 있었다. 강철로 이루어진 갑판은 금속 파편들로 뒤덮였고, 여기저기서 치명적인 불길이 치솟았다. 각종 기계 장치와 구조물들이 적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인해 파괴되었고,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함선은 신음하듯 구조적으로 흔들렸고, 모든 것이 파괴로 치닫고 있었다.
아이기스는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전투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레이저포를 쉬지 않고 발사했다. 그의 금속 몸체는 연속적인 발사로 인해 과부하에 가까운 열을 발산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 순간에 있었다. 적들을 격퇴하고, 함선을 지키는 것.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의 팔이 무거워지고, 레이저포의 에너지가 점차 소모되면서 발사 속도도 느려졌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전투 드론들이 갑자기 공격을 멈추었다. 하늘을 뒤덮었던 무수한 금속 날개들이 마치 하나의 신호를 받은 듯이 동시다발적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라지면서 전장의 소음은 잠깐 불길한 침묵으로 변했다. 하지만 아이기스는 이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전형적인 해적선의 공격 패턴이었다. 드론의 맹공으로 함선을 무력화시킨 뒤, 본격적인 약탈을 위해 해적선이 나타나는 것이다. 잠깐의 침묵은 폭풍의 눈일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 개의 거대한 해적선이 짙은 안개 속에서 서서히 떠오르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바다의 지배자처럼 우뚝 솟아 있었고, 흉포한 물결을 가르며 함선 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해적선들의 외장은 함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껍고 견고해 보였다. 선체 곳곳에는 수없이 많은 전투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고, 그 흔적들은 그들의 잔인함과 강인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이기스는 그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전투 준비를 재정비했다. 함선은 이미 치명적인 피해를 보아 곳곳이 파괴되어 있었고, 여전히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배를 끝까지 지켜야 했다. 그는 해적선들의 무기 배치를 빠르게 분석하며, 그들의 예상 공격 경로와 타격 지점을 계산했다. 해적선들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모든 센서가 위기 신호를 보내왔고, 긴장이 극에 달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이번 전투는 그가 겪어온 것들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었다.
왜냐하면 해적선의 중앙 깃대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검은 뱀이 그려져 있었다. 두꺼운 몸체를 나선형으로 휘감으며 위쪽으로 고개를 치켜세운 채,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고 입에서는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나 있었다. 뱀의 몸통은 근육질로 부풀어 올랐고, 강렬한 곡선이 강조되어 그 움직임이 실제로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종말의 시대, 최강의 해적 군단. 그 자체로 두려움과 권위를 상징하는 강렬한 이미지.
‘블랙 세르펜트’였다.
이들의 전략은 치밀하고 신속했다. 세 척의 해적선이 거친 파도 위로 거침없이 돌진하며, 마치 바다의 맹수들처럼 함선을 둘러쌌다. 이들은 바다의 지배자다운 위용을 뽐내며, 각각의 선체가 파도를 가르고 솟구쳐 오를 때마다 무시무시한 크기의 물거품을 만들었다. 그들이 가까워짐에 따라, 함선 위에는 긴장과 공포가 감돌았다. 해적선들은 공격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순간, 해적선의 갑판에서 번쩍이는 불빛들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그들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고, 각종 에너지 무기와 전자기포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들었다. 함선을 향해 날아오는 포탄과 에너지 광선들이 공중에서 길게 궤적을 그리며, 찰나의 순간을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했다. 포탄이 함선의 외벽에 부딪히는 순간, 강렬한 폭발이 일어나며 선체를 심하게 흔들었다.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고,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들려왔다.
함선은 사방에서 퍼붓는 공격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배는 파도와 적의 공격 사이에서 겨우 균형을 잡으며 방어하려 했지만, 해적선들의 압도적인 화력에 의해 점점 더 궁지로 몰리고 있었다. 그 순간, 아이기스와 동료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전장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고, 모든 움직임이 생사의 갈림길에 선 듯 느껴졌다.
해적선과 함선 사이의 간격이 점점 좁혀지는 순간, 해적선에서 거대한 소음과 함께 수십 개의 밧줄이 연결된 갈고리들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왔다.
그들은 마치 굶주린 맹수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번뜩이며 함선의 표면에 정확히 꽂혔다. 금속 갈고리가 함선의 외벽에 깊숙이 박힐 때, 거친 긁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밧줄은 곧바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갈고리들이 함선을 단단히 붙잡고 해적선과의 거리를 더욱 좁히면서, 함선은 거대한 철제 손아귀에 사로잡힌 것처럼 속박되었다.
이내 밧줄을 타고 날렵한 전투 로봇들이 해적선에서 함선으로 넘쳐흐르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 로봇들은 전투에 최적화된 무장과 함께 빠르게 이동했다. 그들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함선의 갑판에 도착하자마자 공격 자세를 취했다. 로봇들의 붉게 빛나는 눈은 무자비한 전투 본능을 드러내며, 피도 눈물도 없는 전사들처럼 앞으로 돌진했다.
아이기스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의 레이저포가 다시금 번쩍이며 발사되었고, 강력한 에너지 광선이 로봇들 사이를 가르며 휘몰아쳤다. 그의 목표물은 정확했다. 첫 번째 사격이 적의 로봇 가슴을 뚫고 지나가자, 폭발과 함께 금속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이기스는 곧바로 다음 목표를 겨냥했다. 두 번째 사격 역시 명중하며, 또 다른 로봇이 화염에 휩싸인 채 쓰러졌다.
그러나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로봇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고, 아이기스가 아무리 많은 적을 쓰러뜨려도, 그들은 끝없이 나타났다. 함선은 이제 전투 로봇들로 뒤덮였고, 그들의 강철 발걸음이 갑판을 무겁게 짓누르며 메아리쳤다. 전투의 열기는 점점 더 치열해졌고, 아이기스는 극한의 상황에서 무리하게 가동되고 있었다. 그의 금속 몸체는 계속되는 사격으로 인해 점점 더 뜨거워졌고, 에너지 소모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다.
아이기스는 모든 방향에서 공격해오는 로봇들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그들은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았다. 그들의 괴력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었고,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들 또한 치명적이었다. 함선의 공간은 이미 로봇들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조차 없었고, 아이기스는 빠르게 밀려드는 적들에 의해 서서히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멈출 수 없었다.
그러던 그 순간, 다른 로봇이 아이기스 앞에 나타났다. 최첨단 전투 로봇 ‘타이탄 Mk-IV’였다. 그가 함선의 갑판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주변의 모든 전투가 잠시 멈춘 듯 느껴졌다. 그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타이탄 Mk-IV는 인공지능과 전투 능력이 완벽하게 결합한, 그 자체로 전쟁의 신이라 불릴 만한 존재였다.
그의 양어깨에는 고출력 플라스마 캐논이 장착되어 있었고, 이 무기들은 강력한 전자기 충격파를 발산해, 적의 전자 장비를 마비시키고 방어막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그의 팔에는 중형 레이저 블레이드가 내장되어 적의 방어벽이나 두꺼운 금속을 순식간에 절단해버릴 수 있었다. 또한, 전신에는 수십 개의 초소형 미사일이 숨겨져 있으며, 다중 목표물을 동시에 추적하고 타격할 수 있는 고도의 유도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AI는 최신형 뉴럴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시간으로 수천만 가지의 전투 시나리오를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타이탄의 인공지능은 전투 중에도 끊임없이 학습하고 적응하며, 적의 패턴과 약점을 빠르게 분석해 최적의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타이탄의 OS는 ‘오로라(Aurora)’라고 불리는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이 시스템은 수천 개의 임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병렬 처리 능력을 자랑했다. 오로라는 타이탄의 모든 센서, 무기, 방어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며, 그에게 전투 중 절대적인 우위를 제공했다.
타이탄 Mk-IV와 아이기스가 마주 섰을 때, 두 전투 로봇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각각의 기계는 초강력 전자기파가 뿜어져 나오면서 서로의 무기 시스템을 무력화시켰다. 타이탄의 플라스마 캐논과 아이기스의 레이저포가 모두 침묵한 순간, 두 로봇은 본능적으로 그들만의 최후의 수단, 즉 육탄전을 준비했다.
타이탄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무거운 금속 발이 갑판을 울리며 다가왔고, 그 거대한 팔이 번개처럼 아이기스를 향해 휘둘렀다. 그 움직임은 빠르고 정확했다. 아이기스는 그의 주먹을 간신히 피했다. 타이탄의 주먹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그의 금속 피부를 살짝 긁었고, 그 순간에도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아이기스는 타이탄의 공격을 피한 직후, 재빠르게 몸을 돌려 자기 팔꿈치를 타이탄의 가슴에 내리찍었다. 그의 팔꿈치가 타이탄의 단단한 외장을 강타하며 금속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이탄은 뒤로 물러나며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었지만, 곧바로 체중을 실어 버텼다. 그는 다시 앞으로 돌진하며 아이기스를 움켜쥐려 했다. 타이탄의 두꺼운 팔이 아이기스의 몸을 붙잡고 서로 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타이탄은 거대한 힘으로 아이기스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아이기스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그는 타이탄의 팔을 꺾어내며 강하게 밀어냈다. 두 로봇은 다시 거리를 두고 마주 섰고, 그들의 눈에는 서로를 무너뜨리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타이탄은 강력한 오른손을 내질렀고, 아이기스는 이를 막아내며 몸을 돌려 타이탄의 다리를 노렸다. 그의 발차기가 타이탄의 무릎에 정통으로 맞았고, 그 순간 타이탄의 다리가 휘청였다.
그러나 타이탄은 강력한 외부 충격을 무시하듯, 아이기스의 머리를 향해 강력한 왼손을 휘둘렀다. 그 주먹이 아이기스의 측면을 강타하자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아이기스의 몸이 충격으로 인해 옆으로 밀려났다. 그런데도 아이기스는 곧바로 자세를 잡고, 타이탄의 복부를 향해 강하게 주먹을 날렸다. 그의 주먹이 타이탄의 금속 외장을 깊숙이 파고들었고, 둘 사이에 전자기파가 튀며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아이기스와 타이탄은 치열하게 몸을 부딪치며 싸움을 이어갔다. 그들의 전투는 단순한 힘의 대결을 넘어선 것이었다. 각각의 동작은 전략적으로 이루어졌고, 상대의 약점을 찾기 위한 치열한 심리전이 벌어졌다. 두 로봇의 움직임은 빠르고도 날카로웠다. 그들은 서로의 강철 육체를 이용해 상대를 넘어뜨리려 했고, 몸이 부딪히는 순간마다 함선의 갑판이 울렸다.
타이탄은 다시 한번 아이기스의 몸을 움켜쥐고, 그를 들어 올리려 했다. 그의 팔이 아이기스의 허리를 감싸며 강하게 조였고, 아이기스는 강력한 힘에 맞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타이탄은 그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던지려 했지만, 아이기스는 자기 다리를 타이탄의 다리에 감으며 그 시도를 무력화시켰다. 그들은 서로 뒤엉키며 중심을 잃었고, 결국 두 로봇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충격으로 인해 갑판이 크게 울리며 금속 판자들이 들썩였다.
쓰러진 채로도 그들의 전투는 멈추지 않았다. 타이탄은 아이기스를 붙잡고 그의 머리를 조준해 강력한 주먹을 내리꽂았지만, 아이기스는 자기 팔을 들어 이를 막아냈다. 그들은 다시 일어나며 서로를 밀쳐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함선 전체가 크게 기울며, 아이기스는 중심을 잃고 말았다. 그는 미끄러지듯 갑판을 가로질러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바다에 빠지며 차가운 물이 그의 금속 표면에 부딪혔다. 강렬한 전투와 지속적인 손상으로 인해 이미 지친 상태였던 아이기스의 시스템이 경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배터리는 심각한 충격을 받았고, 회로들이 과부하로 인해 비명을 지르며 합선이 일어났다. 순간, 아이기스의 전원이 꺼지며 모든 시스템이 멈추었다. 그의 눈에 깜빡이던 푸른 빛도 서서히 희미해졌고, 이제는 약간의 움직임도 힘든 금속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그는 속절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깊고 차가운 물이 그를 감싸며 무겁게 내리눌렀고, 수면 위에서 멀어질수록 물의 압력이 그를 조여왔다. 아이기스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고, 마치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다운되기 직전, 본능적으로 바닷속에 잠겨 있던 밧줄 하나를 꽉 움켜쥐었다. 아이기스의 손가락은 밧줄을 붙잡은 채로, 움직임 없이 멈추었다. 아이기스의 마지막 의식은 그가 붙잡고 있는 밧줄의 거친 질감과 그로 인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던 생존 본능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내 사라지며, 그의 존재는 바닷속으로 잠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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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기스는 삐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하지만 그가 깨달은 것은 자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배터리는 거의 바닥난 상태였고, 그의 시스템은 절전모드에 진입해 있었다. 아이기스는 단지 의식만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 그의 움직임은 극도로 제한되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그는 천천히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가 본 첫 번째 것은 어두운 공간의 한구석에서 깜박이는 희미한 전구였다. 그 불빛은 간신히 공간을 밝혔지만, 그것만으로도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낡고 녹슨 창고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공기는 무겁고, 해조류와 녹슨 쇠의 썩은 냄새가 뒤섞여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숨을 쉴 필요가 없는 그에게도 이 비린내와 금속성 냄새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창고 안은 삭아가는 나무 상자와 녹슨 금속 파편들로 가득했다. 벽과 바닥은 해풍에 부식되어 군데군데 녹이 슬었고, 바닥에 깔린 물웅덩이는 오래된 오일과 쓰레기를 흔들고 있었다. 창고의 천장에서 떨어진 몇 가닥의 쇠사슬이 파도에 따라 가늘게 흔들리며, 그의 귀에 삐걱거리는 소리를 불규칙하게 내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오래된 유령이 이곳을 떠돌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는 이윽고 창고의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고철 더미들을 발견했다. 부서진 로봇의 잔해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이곳은 전쟁에서 패배한 기계들의 무덤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는 바다에 빠졌고, 그 후로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아이기스는 자신이 붙잡고 있던 밧줄을 아직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질긴 섬유의 감촉이 그의 손에 남아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이제는 희미해져 갔다. 배터리는 점점 더 약해지고 있었고, 그의 모든 시스템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의 의식을 흔들었다. 그러나 아이기스는 절대적으로 침착하게, 그가 처한 상황을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이 황폐한 풍경은 그가 여전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아이기스는 자신이 놓인 상황을 필사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이곳이 그를 고용한 함선의 밑바닥인지, 아니면 해적선의 창고인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두운 창고의 낡은 쇠 벽은 어떠한 단서도 제공하지 않았다.
아이기스는 점점 더 깊어지는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존재했고, 그의 내부에서는 약하지만 확실한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제 의지로는 더 이상 좌우할 수 없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이제 누군가에 의해 재탄생하거나, 혹은 완전히 소멸하게 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이곳에 자신을 데려온 이들은 그를 단순한 고철 덩어리로 분해할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롭게 조립된 개체로 수리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는 아이기스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는 지금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이 사실을 차분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편으로는 저항하고자 했다. 자신이 겪어온 모든 전투와 싸움이 단지 이렇게 끝나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그의 의식을 자극했다. 아이기스는 스스로 다짐했다. 비록 그가 어떤 형태로 변화될지라도, 그의 내면에 남아 있는 의지와 정체성만큼은 잃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 그 싸움은 더 이상 외부의 적과의 전투가 아닌,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향한 내면의 싸움이 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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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기스는 깊은 무의식의 어둠 속에서 미세한 소리에 의해 다시 깨어났다. 그의 센서는 희미하게 작동하기 시작했고, 그 소리가 인간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금속성 소리와 함께 울리는 거친 목소리가 그의 청각을 파고들었다. 눈을 떠보니, 그는 여전히 고철 더미 속에 묻혀 있었고, 그 사이로 두 남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이! 여기 로봇 하나가 살아났는데!" 첫 번째 남자는 놀란 듯 큰소리로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흥미와 놀라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아이기스를 발견한 것에 대한 흥분을 감추지 못한 듯 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아이기스의 센서에 울려 퍼졌고, 그 순간 아이기스는 자신이 여전히 작동 중임을 다시금 자각했다.
곧이어 다른 남자가 그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그는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아이기스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 가치가 얼마인지 가늠하려는 듯했다. 그리곤 무뚝뚝하게 옆에 있는 동료에게 외쳤다.
"야! 이거 데려가라! 손 좀 보면 돈 좀 받을 수 있겠다!"
아이기스는 부품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옮겨졌다. 선반에는 온갖 종류의 로봇 부품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벽에는 낡은 전자 기판들과 부서진 기계들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이곳의 공기는 먼지와 오일 냄새로 가득했고, 그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듯 오래된 기계들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그가 그곳에 놓이자마자, 한 명의 영감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아이기스를 보자마자 눈이 반짝였다. 그 눈빛은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눈빛과 같았다. 영감은 주름진 얼굴에 기쁨을 가득 담고 아이기스를 반겼다.
"와! 오랜만에 정품이 들어왔네!" 그의 목소리에는 오랜 세월 기계들을 다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경외감이 담겨 있었다. 그는 아이기스의 외관을 유심히 살피며, 그가 단순한 고철 덩어리가 아님을 즉시 알아챘다.
"이거 돈 좀 되겠는데!" 영감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렸고, 그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아이기스를 반겼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젊은 총각이 영감의 반응에 헤죽거리며 대꾸했다.
"영감님! 얼마나 받을 수 있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경솔한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그러자 영감은 그를 향해 크게 외쳤다.
"야이 놈아! 이거 상표 안 보여? 이건 부르는 게 값인 거야!"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아이기스의 몸체에 새겨진 상표를 가리켰다.
‘Echelon Synthtech’
"이건 단순한 회사가 아냐. 한때 이 세계에서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의 정점을 찍었던 기업이었어. 아마겟돈 전, 그들의 기술력은 한계가 없었지. 최첨단 기술과 혁신의 아이콘이었고, 그들이 만들어낸 로봇은 어디서나 칭송받았어."
영감의 손끝이 아이기스의 몸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 Apex 4469b Series. 이건 그들의 자부심이었어. 걸작 중의 걸작. '정점'이라는 이름처럼, Apex Series는 최고를 의미했지. 전투 능력과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집약했어. 각각의 로봇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았고, 무기와 방어 시스템에서 가장 정밀하고 강력했지."
영감은 한때의 영광을 회상하듯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어쩌겠나. 아마겟돈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지. 그들의 기술도, 그들의 꿈도, 모두 날아가고 말았지. 이제는 단지 추억 속에서 조용히 사라진 전설이 되었지."
그의 목소리에는 찬란한 과거에 대한 깊은 애틋함과 동시에 현재의 슬픔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 로봇을 봐봐!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는 거야.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들의 기술과 꿈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거지."
영감은 아이기스를 향해 다정한 눈길을 보냈다. 젊은 총각은 영감의 말에 크게 반응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튼 영감님! 우린 그럼 로또 맞은 거네!" 그는 돈을 손에 넣을 가능성에 대한 기쁨을 숨길 수 없었고, 활기차게 펄쩍 뛰며 자신이 당첨된 복권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그러나 영감은 그와는 달리 아이기스를 부드럽게 다루며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은 정성스럽고 따뜻했으며,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단순한 금전적 거래 이상의 것이었다. 영감은 아이기스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내가 너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줄 거야. 그러고 보니, 내가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영감 같은 존재가 되는구나! 하하하." 그의 목소리는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었고, 그의 눈빛에는 다정함이 흐르고 있었다. 영감은 자신의 손끝에서 아이기스가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빙긋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