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때로는 기억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역류한다.
1990년, 세상이 새로운 10년을 향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던 어느 봄날.
한 생명이 끝나고, 두 생명이 시작되었다.
서울의 한 허름한 산부인과, 이름 모를 17세 소녀의 가냘픈 자궁에서 두 개의 심장이 차례로 세상에 나왔다.
첫 번째 울음을 터뜨린 것은 여자아이였다. 5분 뒤, 그 아이보다 조금 더 작고 약한 남자아이가 뒤를 이었다.
단순한 불장난이 잉태한 비극의 씨앗이었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과다출혈로 자신의 피조물들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세상에 던져진 두 아이는, 숫자가 적힌 인식표를 발목에 단 채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보육원 원장은 쌍둥이의 이름을 짓는 것마저 귀찮아했다. 그는 서류에 간단히 휘갈겼다.
김민지, 그리고 김지민. 민지와 지민. 그들의 인생은 그렇게, 타인의 무관심 속에서 시작되었다.
보육원의 삶은 회색이었다. 똑같은 옷, 똑같은 밥, 똑같은 표정 없는 얼굴들. 아이들의 웃음소리마저 건조하게 부서져 내리는 곳이었다. 민지는 그 잿빛 세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일찍부터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5분 늦게 태어난 자신의 동생, 지민이었다.
지민은 유난히 약했다. 잔병치레가 잦았고, 다른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민지는 작은 몸으로 동생을 감싸 안는 방패가 되었다. 자신의 배식판에 나온 유일한 소시지를 몰래 지민의 밥 위에 올려주고, 덩치 큰 아이가 지민을 밀치면 악착같이 달려들어 할퀴고 물어뜯었다.
“지민이 건드리지 마! 내가 가만 안 둬!”
고작 대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의 외침은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어미 잃은 새끼 늑대처럼 날카로웠다.
그녀에게 지민은 동생이 아니었다. 자신의 반쪽, 자신의 심장이었다. 두 아이는 밤이 되면 낡고 삐걱이는 2층 침대에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다. 세상에 오직 둘만 남겨졌다는 불안과 슬픔을, 서로의 체온으로 견뎌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지의 세상이 무너졌다.
그녀가 일곱 살이 되던 해의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보육원 마당으로 번쩍이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다. 차에서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향수 냄새를 풍기는 낯선 부부가 내렸다. 그들은 지민을 입양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지민아, 이제 좋은 부모님 생겼으니 가서 행복하게 살아야 해.”
원장의 말은 민지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지민의 작은 손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안 돼… 지민아, 가지 마. 누나랑 같이 있어야지. 가면 안 돼!”
“누나… 나 무서워…”
지민도 울음을 터뜨리며 민지의 품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힘은 잔인했다. 그들은 우는 두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았다. 민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고, 지민은 낯선 여자의 품에 안겨 멀어져 갔다.
차창 너머로, 눈물범벅이 된 지민의 작은 얼굴이 점점 더 멀어졌다. 그것이 민지가 기억하는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두 아이의 연결고리는 그렇게 허망하게 끊어지고 말았다.
# 한 줌의 햇살, 그리고 다시 찾아온 그림자
지민이 떠난 후, 민지의 시간은 멈췄다. 그녀는 매일같이 보육원 대문만 바라보았다. 언젠가 지민이 자신을 데리러 돌아올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서. 하지만 시간은 희망 대신 무뎌진 슬픔만을 남겼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민지가 아홉 살이 되던 해, 그녀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한 여인이 그녀를 입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녀를 찾아온 여인, 이순애는 중소 도시에서 ‘나그네’라는 작은 술집을 하는 과부였다. 곱고 단정한 용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거친 말투, 짙은 화장, 손끝에 밴 독한 담배 냄새. 하지만 그녀는 민지를 보는 순간, 자신의 잃어버린 조각이라도 찾은 듯 환하게 웃었다.
“어머, 이년. 되게 야무지게 생겼네. 눈 좀 봐, 살아있어. 마음에 쏙 드네. 나랑 같이 갈래?”
순애는 민지를 끔찍이 아꼈다. 그녀는 민지에게 처음으로 ‘엄마’라는 단어의 온기를 가르쳐주었다. 밤늦게까지 술 취한 손님들을 상대하며 고단한 하루를 보냈지만, 그녀는 잠든 민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민지는 그녀의 품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안정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짧은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던 시절이었다.
순애는 배움이 짧은 자신과 달리, 민지가 공부로 성공하기를 바랐다.
“민지야, 공부 열심히 해야 혀. 여자는 무식하면 나처럼 평생 남정네들 술이나 따라주다 인생 끝나는 겨. 넌 그렇게 살면 안 돼. 알았지?”
민지 또한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뒤늦게 학교에 입학했지만, 그녀는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였고 금세 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우등생이 되었다. 상장을 받아와 순애에게 내밀 때면, 순애는 동네가 떠나가라 자랑하며 그날은 가게 문을 일찍 닫고 민지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사주곤 했다.
하지만 신은 그녀에게 허락된 행복의 총량을 정해놓은 듯했다. 그 찬란했던 햇살은, 민지가 대학생이 되던 해에 거짓말처럼 스러져갔다.
순애가 쓰러졌다. 술병으로 알려진 간경화. 병은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상태였다.
“엄마… 정신 좀 차려봐, 엄마!”
병원에 입원한 순애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다. 민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학교를 휴학하고, 순애를 대신해 ‘나그네’ 술집의 카운터를 지키기 시작했다. 낮에는 병원에서 엄마의 간병을 하고, 밤에는 술집을 지키는 위태로운 나날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스무 살 남짓의 어린 아가씨가 혼자 술집을 운영하는 것은, 굶주린 하이에나 떼 앞에 놓인 상처 입은 가젤과도 같았다. 그 동네 일대를 주름잡던 조폭들에게 ‘나그네’는 너무도 쉬운 먹잇감이었다.
처음에는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기 시작했다.
“야, 우리가 이 동네 지켜주니까 장사하는 거 아니여. 한 달에 백만 원씩만 내. 그럼 아무도 안 건드려.”
민지는 두려움에 떨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그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을 요구했고, 나중에는 아예 가게 운영에까지 간섭하기 시작했다. 외상값을 미끼로 가게를 제집처럼 드나들던 그들은, 결국 민지를 협박하여 가게 포기 각서에 도장을 찍게 만들었다.
“이 가게, 오늘부터 우리가 접수한다. 넌 이제 여기 얼씬도 하지 마. 알았어?”
민지는 하루아침에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유일한 보금자리에서 쫓겨났다. 갈 곳을 잃은 그녀. 병원에 입원한 엄마의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술집에서 같이 일하던 몇몇 언니들이 그녀를 가엾게 여겨 잠자리를 내주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결국 그녀는 가장 원하지 않았던 선택을 해야만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엄마를 살리기 위해. 그녀는 언니들을 따라 낯선 남자들 앞에서 옷을 벗고 몸을 파는 직업 여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차가운 모텔 방, 처음으로 낯선 남자를 받은 날, 그녀는 밤새도록 소리 없이 울었다. 자신의 몸이 더럽고 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섰다. 그녀는 남자들에게 인기를 끌 만한 청순한 얼굴과 가녀린 몸매를 가지고 있었고, 수입은 괜찮았다. 그녀는 그렇게 번 돈으로 엄마의 병원비를 대고, 남은 돈은 악착같이 모았다.
그녀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엄마의 마지막 소원이기도 했다. 그녀는 술을 먹지 않으면서도 돈을 벌 수 있고,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출장 마사지사’였다. 그녀는 낮에는 복학생으로 대학 캠퍼스를 누볐고, 밤이 되면 짙은 화장을 하고 낯선 남자들의 집을 방문하는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마침내 번듯한 중소기업에 경리 겸 비서로 취업을 하였다. 이제 지긋지긋한 밤의 세계와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었고, 의사는 간 이식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식 수술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과 그 이후의 관리비를 감당하기 위해, 그녀는 밤의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이중생활에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 터졌다. 그날도 그녀는 호출을 받고 어느 오피스텔로 출장 마사지를 갔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자신의 직장 상사, 배동식 부장이었다.
“어… 김민지 씨?”
배동식 역시 당황했지만, 그의 눈에는 이내 음흉하고 비열한 빛이 떠올랐다.
민지는 겁에 질려 도망치려 했지만, 그는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김민지 씨, 이거 아주 재미있게 됐네. 내가 이 사실을 회사에 소문내지 않는 조건이 있어. 앞으로 내가 시키는 대로 회계 장부 좀 만져줘야겠어. 그리고… 물론, 나만의 섹스 파트너가 되어주는 건 기본이고. 어때, 어려운 제안 아니지?”
그의 입가에 걸린 역겨운 미소를 보는 순간, 민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엄마가 눈에 밟혔다. 직장을 잃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 그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그의 성 노리개가 되었고, 그가 지시하는 대로 회사의 장부를 조작해 주었다. 배동식은 그렇게 수억 원의 회삿돈을 횡령했지만, 그녀에게는 단 한 푼도 나눠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의 완벽한 알리바이이자 욕망의 배출구일 뿐이었다.
# 지구 반대편, 또 다른 불행
민지가 한국 땅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지구 반대편에서는 그녀의 반쪽, 지민의 삶 역시 비극의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미국으로 입양된 지민은 ‘알렉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것은 이름뿐, 가족의 따뜻함은 없었다. 그를 입양한 늙은 백인 부부는 아이를 사랑해서 입양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입양을 통해 정부로부터 양육 보조금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소위 ‘직업적 입양 부모’였다. 그들의 낡고 지저분한 집에는 지민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처지의, 세상에서 버려진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가축처럼 뒤섞여 살고 있었다.
양부모는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음식과 잠자리만 제공할 뿐, 어떤 애정이나 관심도 주지 않았다. 방치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만의 생존 법칙을 터득하며 거칠게 성장했다. 그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거리를 배회했고, 좀도둑질을 하거나 어린 나이에 마약을 접했다.
그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 지민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음악이었다. 그는 우연히 손에 넣은 낡은 어쿠스틱 기타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손가락 끝이 짓무르고 피가 날 때까지 코드를 연습했고, 삐뚤빼뚤한 악보를 그려가며 자신만의 멜로디를 만들었다. 음악을 하는 순간만큼은, 비참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마음 맞는 몇몇 아이들과 함께 허름한 차고에서 밴드를 결성했다. 하지만 음악은 돈이 되지 않았다. 그는 살기 위해, 집에 있는 다른 ‘형들’을 따라 마약을 팔거나 갱단의 자잘한 심부름을 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삶은 음악이라는 순수한 열망과, 범죄라는 어두운 그림자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그는 마약 거래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런데 조사를 받던 중, 그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었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양부모가 복잡한 절차를 거쳐 그를 정식으로 입양하고 시민권자로 만들어주어야 했음에도,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었다. 범죄 기록이 있는 미성년 비시민권자. 그에게 내려진 판결은 가혹했다. 강제 추방.
그는 하루아침에, 10년 넘게 살아온 미국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 운명의 재회, 그리고 새로운 짐
인천 국제공항.
한국말도 서툴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 내던져진 지민은 망연자실했다. 그의 손에는 낡은 기타 케이스 하나만 들려 있었다. 유아기의 희미한 기억을 제외하고는, 이곳은 그에게 완전한 이국이었다.
그는 공항 노숙자가 되어 며칠을 버텼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그는 순찰 중이던 경찰에게 발견되었다. 서툰 한국말로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털어놓는 그의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그의 이야기를 딱하게 여긴 한 경찰이, 그의 마지막 희망을 들어주기로 했다. 바로, 그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단 하나의 이름, 쌍둥이 누이 ‘김민지’를 찾는 것이었다.
며칠간의 수소문 끝에, 경찰은 기적적으로 민지의 연락처를 찾아냈다.
전화를 받은 민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지민이요? 제 동생 김지민이요?”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약속 장소인 경찰서 앞에서, 민지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동생과 마주했다. 훌쩍 커버린 키, 자신과는 다르게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 하지만 그 깊고 슬픈 눈매는, 어릴 적 울보였던 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지민아… 맞니? 정말… 내 동생 지민이 맞아?”
“누나…?”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아이처럼 울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끊어졌던 운명의 끈이 기적처럼 다시 이어진 순간이었다. 민지에게는, 엄마를 만났던 그날 이후 태어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지민을 자신의 작은 원룸으로 데려왔다. 이제 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 그녀는 더욱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밤낮으로 일하며 동생의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지민이 음악가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빠듯한 살림에도 큰맘 먹고 좋은 기타와 앰프를 사주었다. 그가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어 학원에도 보내주었다.
지민은 그런 누나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는 하루빨리 독립하기 위해 미친 듯이 음악 공부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는 곧 누나의 비밀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어느 날 밤, 민지가 잠든 사이 그녀의 휴대폰에 울린 메시지 때문이었다. ‘오늘 저녁 8시 OOO호텔로 와주세요.’
지민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누나를 추궁했고, 민지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밤의 세계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상사에게 약점을 잡혀 협박당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누나…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이런 일을…”
지민은 자신의 무력함에 주먹으로 벽을 치며 오열했다. 그날 이후, 그의 음악은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나를 지옥에서 구해내기 위한, 절박한 생존의 외침이 되었다. 그는 음악 학원 원장의 눈에 띄었고, 마침내 홍대의 라이브 클럽 ‘고스트 블루스’ 무대에 기타리스트로 설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던 날 밤.
그는 긴장된 마음으로 낡은 기타를 고쳐 안았다. 조명이 켜지고, 그는 객석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무표정한 얼굴들 속에서, 그는 자신을 향한 누나의 애틋한 시선을 발견했다. 그는 누나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연주를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터져 나온 멜로디는 그가 겪어온 모든 고통과 슬픔,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단 하나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날, 그 관객들 속에, 그의 운명을 또 다른 비극으로 이끌 한 여자, 송애경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의 음악을,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넋을 잃고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