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2024년 4월 4일 오후 6시.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도시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던 시각.
XX 대형 병원 흉부외과 병동은 보이지 않는 폭풍의 눈이었다.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소독약 냄새와 분주한 발걸음, 규칙적인 기계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지만, 그 수면 아래에서는 거대한 혼돈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권영세 전 법무부 장관의 간 이식 수술. 병원 전체의 VIP가 총출동하고, 언론의 관심까지 집중된 이 중요한 수술의 집도의인 ‘신의 손’ 오정후 박사는 행방불명이었다. 수술 시작 시간은 이미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고, 비상 연락망은 모두 먹통이었다.
수술실 앞 복도, 병원장은 창백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며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도대체 오 박사는 어디 가서 뭘 하길래 연락이 안 되는 거야! 이 수술이 어떤 수술인데! 권영세 장관님 잘못되기라도 하면 우리 병원 문 닫아야 할 판이라고!”
그의 날카로운 외침에 주변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바로 그때, 수술실의 자동문이 열리고 한 간호사가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달려 나왔다.
“병원장님! 권아란 의원님과도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보호자 동의서에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집도의의 증발에 이어, 유일한 보호자인 딸까지 연락 두절. 병원장과 임원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이 달린 이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온갖 인맥을 동원해 오정후와 권아란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조각난 정보들이 하나둘씩 병원으로 흘러들어왔다.
오후 7시가 다 되어갈 무렵, 한 기자가 병원 홍보팀에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해왔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만… 오정후 박사님이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하셨다고 합니다. 고가도로에서 차량이 추락했다고…”
그리고 거의 동시에,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국회의원 권아란 씨… 오정후 박사의 추락 차량에 깔려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두 개의 부고(訃告)는 병원 전체를 거대한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수술을 기다리던 권영세 장관의 생명은 이제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었다.
“대타라도 구해! 누구라도 좋으니까 당장 수술할 수 있는 의사 찾아!”
병원장의 절규에 가까운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간 이식 수술은 병원의 그 누구도 선뜻 나설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결국 떠밀리듯 수술복을 입게 된 것은, 이제 갓 펠로우 과정을 마친 젊은 초보 의사였다. 그의 얼굴에는 중압감과 공포가 역력했다.
오후 8시가 넘어, 마침내 수술실의 붉은 등이 켜졌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진 것은 생명을 살리는 기적이 아니었다. 경험 부족과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젊은 의사의 손에 들린 메스는 길을 잃고 헤맸다. 혈관을 잘못 건드린 작은 실수가 걷잡을 수 없는 출혈로 이어졌고, 수술실은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했다. 수술대 위 권영세의 바이탈 사인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모니터의 경고음이 수술실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심장을 찢을 듯 울려댔다.
결국, 자정을 넘긴 시각, 권영세는 과다출혈로 수술대 위에서 허망하게 숨을 거두었다. 권력과 돈으로 얻어낸 부정한 기회는, 결국 다른 이들의 카르마가 빚어낸 연쇄 충돌 속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져 버렸다.
****
1년 후, 2025년 4월 4일.
망각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시작된 추격.
강태식 형사는 끈질겼다. 지난 1년간, 그는 손상식이라는 유령을 쫓아 전국의 땅끝까지 헤집고 다녔다. 그의 차량은 대포차로 바뀌었고, 그의 이름은 수십 개의 가명으로 둔갑했다. 하지만 강태식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손상식이 남긴 아주 미세한 흔적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마침내 그의 마지막 은신처를 밝혀냈다.
그곳은 뜻밖에도 그의 부모님이 사는 집이었다.
부산의 한 낡은 시장 아파트. 1층에는 꼼장어와 생선을 파는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비릿한 바다 냄새와 연탄불에 굽는 꼼장어의 고소하고 매캐한 냄새가 뒤섞여 아파트 전체에 진동했다.
강태식과 김형사는 아파트 맞은편, 허름한 찻집 창가에 앉아 잠복 근무를 하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째였다.
“와, 선배님. 저놈은 진짜 콩밥이 체질에 안 맞나 봅니다. 어떻게 부모님 집에 숨을 생각을 했을까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건가요?” 김형사가 뜨거운 커피를 불며 말했다.
“저런 놈들일수록 가장 원초적인 곳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이 있어. 엄마 품. 세상에서 자기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곳이지.”
강태식은 커피 대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손상식의 부모에 대한 신상 자료를 다시 훑어보았다. 아버지 손석팔, 어머니 박정란. 평범해 보이는 노부부였지만, 서류 아래에 숨겨진 그들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손상식은 그 냄새나는 아파트 안에서 짐승처럼 갇혀 지냈다. 창밖으로 피어오르는 향긋한 꼼장어 굽는 냄새는 그의 식욕을 미치도록 자극했다. 그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침을 연신 꿀꺽꿀꺽 삼키곤 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 없었다. 그리고 함부로 바깥에 나갈 수도 없었다.
그의 몽타주는 이미 전국에 뿌려진 상황이었다. 그는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늙은 부모에게 기생하며 그들의 얼마 안 되는 돈을 빼앗아 쓰는 파렴치한 아들이 되어 있었다.
“돈 좀 줘 봐. 꼼장어 먹고 싶어.”
“이 미친놈아! 네가 지난주에 가져간 돈이 얼만데 또 돈 타령이야! 이 집구석에 돈이 어디 있어!”
손상식의 아버지, 손석팔은 아들을 볼 때마다 살의를 느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들은 그의 인생에 달라붙은 거머리 같은 존재였다. 원수보다 더한 악연. 하지만 손석팔은 그의 아들을 경찰에 신고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아들의 죄보다 더 오래되고 무거운 비밀이 있었다. 그는 탈영병이었다.
젊은 시절, 군에서 상관을 폭행하고 권총과 실탄을 훔쳐 달아난 후, 수십 년째 숨어 살아오고 있었다. 그의 인생 자체가 거대한 거짓말이었다. 아들이 잡혀 들어가 조사를 받게 되면, 자신의 신분 역시 탄로 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아들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갇혀버린 것이다.
손상식의 엄마, 박정란 또한 하나뿐인 아들이었지만 끔찍하게 싫었다. 아들은 남편을 닮아 폭력적이었고, 그녀를 하녀처럼 부렸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이 무서웠다. 그리고 그녀가 신고를 할 경우, 남편까지 함께 끌려가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했다.
박정란의 삶은 밑바닥 그 자체였다. 열여덟 살,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했던 그날 밤, 어둠이 짙게 깔린 서울역에서 그녀는 어둠의 자식들에게 붙잡혔다. 속아서 끌려간 곳은 청량리 588번지. 그곳에서 그녀는 이름 없는 창녀가 되어 몸을 팔았다. 온갖 질병에 시달리던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포주와 조폭들도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녀를 포기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까막눈에, 배운 것은 몸 파는 일뿐. 그때, 헌병들에게 쫓겨 전국을 떠돌던 손석팔을 만났다. 두 사람은 그렇게, 사회에서 버림받은 낙오자가 되어 서로에게 의지했다. 손석팔은 좀도둑질을 하고, 염전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박정란에게 그는 생명의 은인이었지만, 동시에 그녀의 삶을 영원한 불안과 위태로움 속에 가둔 족쇄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떠돌이 생활 중에 손상식을 낳았지만, 도저히 돌볼 여력이 없어 보육원에 맡겼다. 그리고 명절 때나 일 년에 서너 번 찾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는 그렇게, 부모의 사랑 대신 버려졌다는 상처를 먹고 자랐다.
세월이 흘러, 부부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손석팔은 탈영한 과거를 두고두고 후회했고, 박정란은 그런 그를 만난 것을 후회했다. 부부 싸움이 잦아졌고, 폭언과 폭력이 난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에게서 떠날 수 없었다. 다시 혼자가 될 수 없다는 지독한 공포가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한 지붕 아래 살 수밖에 없는, 기묘하고 잔인한 가족이었다.
# 장전된 권총, 그리고 기다림
손상식은 그 지옥 같은 집 안에서, 아버지의 특이한 습성을 발견했다.
손석팔은 아내와 부부 싸움이 극에 달하면, 장롱 깊숙한 곳에서 낡은 권총을 꺼내 박정란에게 겨누는 시늉을 하곤 했다.
“이 더러운 년! 너만 없었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지 않았어! 다 쏴 죽여 버릴 거야!”
물론 총알은 장전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무력함과 분노를 표출하는, 비겁하고 유치한 연극일 뿐이었다. 박정란도 처음에는 기겁했지만, 나중에는 그 모습이 지겨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던 아들의 눈에는, 차가운 계획이 싹트고 있었다.
‘저 총에… 총알을 넣어두면 어떻게 될까?’
아버지가 다시 엄마에게 총을 쏘면, 엄마는 죽을 것이다. 아버지는 살인자가 되어 도망치거나 감옥에 갈 것이다. 그러면 이 집과, 부모가 평생 숨겨온 모든 재산은 온전히 자신의 차지가 된다. 그리고 그는 그 돈으로, 멀리 도망쳐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터였다.
어느 날 밤, 부모가 잠든 것을 확인한 손상식은 몰래 장롱을 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낡은 권총에, 그가 군에서 훔쳐 나온 실탄 한 발을 조용히 장전해 두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그는, 부모가 다시 싸우기만을 기다렸다. 마치 거미줄을 쳐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는 독거미처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총알을 장전한 후 몇 달이 지나도록 부부는 크게 싸우지를 않았다. 그의 조바심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 마지막 추격전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
강태식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일주일간의 지루한 잠복 끝에, 마침내 손상식이 아파트 입구 근처 어물전에서 잠시 얼굴을 비추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는 모자를 깊이 눌러썼지만, 강태식의 매서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김형사! 떴다! 작전 개시!”
두 형사는 찻집을 박차고 나와, 소리 없이 그에게 접근했다. 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던 손상식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두 남자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는 두 형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들고 있던 생선 봉지를 내던지고는 미친 듯이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손상식, 거기 서!”
강태식은 계단으로 그의 뒤를 쫓았고, 김형사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낡은 엘리베이터는 느려터졌다. 김형사는 욕을 내뱉으며 모든 층의 버튼을 누르고 한 층 한 층 확인하며 올라갔다.
손상식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는 짐승 같은 체력으로 낡은 아파트 계단을 두 칸씩 성큼성큼 뛰어 올라갔다. 강태식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필사적으로 그 뒤를 따랐다.
마침내 손상식은 6층 꼭대기, 옥상으로 향하는 철문을 열고 달아났다. 강태식도 그 뒤를 바싹 따랐다. 녹슨 철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옥상에서 마주 섰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옥상 가장자리 난간에 몰린 손상식은, 궁지에 몰린 쥐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뒤, 김형사도 헐떡이며 옥상에 도착했다. 두 형사는 권총을 꺼내 들고 그를 향해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 들어갔다.
“손상식! 이제 포기해라! 네놈이 갈 곳은 감옥뿐이야. 도망칠 때도 없잖아!”
강태식의 목소리가 옥상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손상식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기묘한 자신감이 어리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아파트 1층은 모두 식당이고, 식당 위에는 비와 햇빛을 막기 위한 두꺼운 천막이 여러 겹으로 쳐져 있다는 사실을. 그는 사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몇 번이고 옥상에 올라와 자신과 비슷한 무게의 쌀 포대를 던져보며 안전성을 테스트했었다. 결론은,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포기? 하! 내가 여기서 그냥 잡힐 것 같아?”
손상식은 비웃음을 흘렸다.
강태사와 김형사는 그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헛튼 수작 부리지 마! 당장 손 머리 위로 올리고 무릎 꿇어!”
그때였다.
손상식은 주저 없이 몸을 돌려 난간을 뛰어넘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 두 형사를 향해 조롱 섞인 미소를 날리는 것마저 잊지 않았다.
“이런 미친…!”
강태식은 손상식이 몸을 날리자 무척 당황했다. 수년간 끈질기게 그를 추적했건만, 이렇게 허망하게 그를 놓치거나, 그의 자살을 방조한 형사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급히 난간으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손상식의 몸이 마치 부러진 인형처럼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하늘의 심판, 그리고 경악
바로 그 순간, 손상식이 옥상에서 몸을 던진 바로 그 찰나.
아파트 3층, 손상식의 집 안에서는 그의 부모가 여느 때처럼 격렬한 부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 영감탱이야! 돈 없으면 나가서 뭐라도 해! 맨날 방구석에 처박혀서 술만 처먹지 말고!”
“뭐? 이 더러운 갈보 같은 년이! 네년이 벌어오는 돈으로 내가 술 사 먹는 거 아니야!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나불대지 마!”
“갈보? 당신은 뭐 잘났어! 평생 나라에 쫓겨 다니는 도망자 주제에! 탈영병!”
‘탈영병’이라는 단어는 손석팔의 역린이었다. 그는 이성을 잃고 벌떡 일어나 장롱으로 향했다. 그리고 낡은 권총을 꺼내 들고 아내에게 겨누었다.
“이… 이년이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오늘 내가 네년이랑 같이 저승길 가고 만다!”
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아들 손상식이 옥상으로 도망치며 걷어찬 철문 소리였다. 그 소리에 놀란 박정란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분노가 극에 달한 손석팔은 마침내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가 수십 년간 빈 총이라고 믿었던 총구에서, 불꽃과 함께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다.
총알은 아내 박정란의 어깨를 스치고, 열린 창문을 지나,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총알은, 아래로 떨어지고 있던 손상식의 이마 정중앙을, 거짓말처럼 정확히 꿰뚫고 말았다.
강태식과 김형사는 옥상 난간에서 그 모든 것을 목격했다. 추락하던 손상식의 머리에서 갑자기 핏물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두 형사는 급히 아래로 내려갔다. 구경꾼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손상식은 1층 식당 천막 위에 대(大) 자로 뻗은 채 죽어 있었다. 그의 직접적인 사인은 명백했다. 이마에 선명하게 박힌 총알 자국.
김형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어떻게 총에 맞은 거지? 우리 둘 다 쏜 적이 없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강태식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머리로, 방금 전 한 아파트 창문에서 희미한 섬광과 함께 총성이 울렸던 것을 기억해냈다.
# 모든 것이 제자리로, 카르마의 고리
강태식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건의 전말을 밝혀냈다.
손상식의 죽음.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쏜 단 한 발의 총알 때문이었다.
아내를 위협하기 위해 쏜 총알이, 하필이면 그 순간 옥상에서 뛰어내리던 아들의 이마에 박힌 것이다. 수억 분의 일도 안 되는, 기적 혹은 저주와도 같은 확률.
손석팔은 탈영 및 살인 혐의로, 박정란은 범인 은닉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렇게 서로를 증오하며 얽혀 있던 잔인한 가족의 역사는, 가장 끔찍하고 기괴한 방식으로 막을 내렸다.
강태식은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앉아, ‘4월 4일 연쇄 사망 사건’이라고 이름 붙인 낡은 사건 파일을 펼쳤다.
김민지의 투신.
그리고 그녀에게 깔려 죽은 송애경.
송애경의 죽음을 목격하고 환각 상태로 추락사한 오정후.
오정후의 차에 덮쳐져 즉사한 권아란.
권아란의 아버지 권영세의 수술 중 사망.
그리고 그 모든 비극의 숨겨진 연결고리였던 김지민의 자살과 배동식의 죽음.
마지막으로, 그 모든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던 연쇄살인마 손상식의 믿을 수 없는 최후까지.
모든 죽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었다. 하나의 죽음이 다른 죽음을 낳고, 그 죽음이 또 다른 비극의 원인이 되는 잔인한 순환의 고리. 그들은 모두 가해자였고, 동시에 피해자였다.
강태식은 파일을 덮고, 창밖으로 보이는 회색 도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는 수십년간,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수 많은 사건들을 추적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비극의 전말을 마주하고 나니, 인간의 법이나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고 무력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거대한 운명의 장난이었다.
그는 나지막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카르마야.”
<시즌 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