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2
2025년 4월 4일. 금요일.
새벽 여섯 시.
세상이 아직 옅은 남색 잠옷을 입고 뒤척일 때, 오동추(39세)의 세계는 날카로운 알람 소리에 의해 강제로 열렸다.
소리는 어둠을 가르는 칼날처럼 집요했고,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 아내는 솜이불의 파도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며 웅얼거렸다. 그 소리는 꿈의 언어처럼 아득했다.
동추는 아내의 고른 숨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소리 없이 안방을 빠져나와 차가운 복도를 걸었다.
샤워실의 타일은 발바닥을 통해 새벽의 냉기를 고스란히 전해왔다.
뜨거운 물줄기가 그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어젯밤의 피로와 끈적한 잠의 잔여물들이 하수구로 흘러내리는 동안, 그는 텅 빈 눈으로 맞은편 거울을 응시했다.
거울 속에는 적당히 살이 붙고 선한 인상의 사내가 서 있었다. 쌍꺼풀 없는 눈은 순해 보였고, 도톰한 입술은 다정해 보였다.
사회가 규정하는 '성실한 삼십 대 후반의 가장'이라는 역할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수증기 서린 거울 너머로, 그는 가끔 제 안의 다른 무언가가 희미하게 비치는 것을 느끼곤 했다.
샤워를 마친 그는 가운을 걸치고 아이들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아직 꿈나라를 헤매는 두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그를 맞았다.
일곱 살 아들과 다섯 살 딸. 그의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빛나는 보석들이었다.
그는 침대맡에 조용히 쪼그려 앉아 아이들의 이마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
이 순간만큼은 그의 안에 도사린 어둠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이 작은 온기를 방패 삼아 매일 아침 세상으로 나아갔다.
주방으로 나온 그는 익숙하게 식빵 두 조각을 토스터에 넣었다.
빵이 구워지는 동안 냉장고에서 햄과 치즈, 양상추를 꺼냈다. 칙, 하고 빵이 튀어 오르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그의 아침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간편하고, 빠르고, 아무런 감흥 없는. 허기를 채우기 위한 최소한의 의식. 우유 한 잔과 함께 샌드위치를 삼키듯 해치우고 나자, 시계는 일곱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출근 준비를 서두르는 그의 등 뒤로 안방 문이 열렸다. 막 잠에서 깨어난 아내가 커다란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왔다. 부스스한 머리, 잠이 덜 깬 얼굴조차 그의 눈에는 사랑스러웠다.
"벌써 나가?"
"응. 오늘 아침 일찍 회의가 있어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반복해 온 거짓말이라 이제는 진실처럼 느껴졌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다가와 가볍게 포옹했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익숙한 체취가 그의 코를 간질였다.
"사랑해, 여보."
오동추는 아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다정하고 진실하게 들렸다.
"나도."
아내의 대답은 잠결에 섞여 웅얼거렸지만, 그 속에는 의심 없는 신뢰가 담겨 있었다. 동추는 그 신뢰의 무게를 애써 외면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닫히고, 그는 심호흡을 했다.
아침의 공기는 칼날처럼 신선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릿한 도시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는 거대한 짐승의 숨결 같은 냄새였다.
그는 그 짐승의 일부가 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자 회색빛 도시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남기는 하얀 잔상들,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음들.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거대한 사냥터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지하철역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스크린도어를 따라 늘어선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손안의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네모난 우주에 갇혀, 현실의 풍경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파편화된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그 고독의 군중 속에서 오동추만이 유일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보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역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사냥감을 찾는 맹수처럼 날카롭고 은밀했다.
그는 플랫폼을 어슬렁거리며 줄을 섰다.
굳이 다른 줄보다 사람이 더 많은 곳을 택했다.
앞에는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하늘색 트렌치코트에,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모습이 갓 피어난 꽃처럼 싱그러웠다.
여인은 이어폰을 낀 채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동추는 그녀의 두 칸 뒤에 자리를 잡았다. 무심한 척하면서도 그의 모든 감각은 예리하게 주변을 향해 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 옷 스치는 소리, 안내 방송 소리, 그리고 곧 도착할 열차의 미세한 진동까지. 이 모든 것이 그의 심장을 미묘하게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오늘은 어떨까.'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회사의 중요한 회의도, 처리해야 할 서류도, 그 무엇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의 세상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이 사냥의 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끼이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차가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은빛의 거대한 뱀이 아가리를 벌리는 순간, 닫혀 있던 스크린도어가 열렸다. 사람들은 마치 거대한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열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오동추는 그 혼란스러운 인파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겼다. 그리고 노련하게, 계획했던 대로 하늘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인의 바로 뒤에 자리를 잡았다.
문이 닫히자, 발 디딜 틈 없이 빡빡한 열차 내부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숨결과 체온이 뒤섞여 후덥지근한 공기를 만들어냈다. 열차가 출발하며 한쪽으로 지긋이 쏠리는 순간, 동추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인파에 밀리는 척하며,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여인의 엉덩이 쪽으로 가져갔다.
심장이 북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타고 찌릿하게 퍼져나갔다. 그의 손은 마치 제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여인의 코트 위를 아주 살짝, 스치듯 지나갔다.
여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어폰 너머의 세상에 완전히 빠져 있는 듯했다.
'성공이다.'
짜릿한 쾌감이 그의 척추를 타고 번져나갔다.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이쪽저쪽에서 작은 탄성과 불평이 터져 나왔지만, 동추에게는 그 흔들림마저 황홀한 연주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리듬에 맞춰, 무심한 척하면서도 집요하게 손을 움직였다. 코트의 부드러운 감촉 아래로 느껴지는 희미한 탄력. 그것은 금지된 과실의 맛처럼 달콤하고 위험했다. 만지고, 떼고, 다시 미끄러지듯 만지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의 손끝은 수년간의 경험으로 단련된 연주자의 손가락처럼 섬세하고 대담했다.
바로 그때였다. 여인의 몸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손길이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듯했다. 그녀는 억지로 몸을 틀어보려 했지만, 이미 꽉 찬 열차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게 쏠렸다.
"아, 좀 가만히 있어요!"
"좁아 죽겠는데 왜 이렇게 밀어요?"
짜증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동추는 순간 긴장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여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더 대담하게 나아갈 것인가. 이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한 발 물러나 다시 기회를 엿볼 것인가.
그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정확히 일 년 전, 바로 오늘 같은 4월의 아침이었다. 그날의 여인은 달랐다.
붐비는 열차 안,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엉덩이 골을 자유자재로 유영해도 그녀는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조각상처럼, 혹은 이 모든 것을 허락이라도 한 듯이.
그날 그가 느꼈던 짜릿함과 흥분은 단순한 쾌감을 넘어선, 거의 종교적인 황홀경에 가까웠다. 그는 그 기억만으로도 지금 이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의 추행은 그날 이후, 단순한 버릇이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중독이 되어버렸다.
'아! 그때 그녀를 따라가서 내 여자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얼굴도 꽤 예뻤던 것 같은데… 정말 아쉽다…'
사실 그날, 그의 마음은 수백 번도 더 그녀를 따라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 출근 시간이 임박했고, 그날따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회의가 잡혀 있었다.
이성은 중독을 간신히 눌렀고, 그는 회사로 향했다. 그 후로 그는 지하철역에 도착할 때마다 열정적으로 그날의 그녀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의 출근 시간은 두 시간이나 빨라졌다.
오전 9시까지 출근하면 되지만, 그는 7시부터 지하철에 올라타 거의 두 시간 가까이를 무의미하게 전철을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몇 년 사이, 그는 이 분야에서 거의 프로가 되었다. 물론, 그동안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딜 만져요!"
"미쳤어요, 아저씨?"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손 치워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그의 손목을 붙잡힌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완벽한 매뉴얼을 터득했다.
바로 '적반하장' 전략이었다. 그는 더 뻔뻔하게, 더 큰 소리로 외치는 법을 배웠다.
"뭐라는 거야! 이 아가씨가 진짜!"
"너 같이 못생긴 애를 내가 왜 만져? 거울이나 보고 다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봐! 내가 만졌다는 확실한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그렇게 더 뻔뻔하게 나가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당황하며 차츰 꼬리를 내렸다. 증거가 없는 상황, 주변의 무관심한 시선 속에서 그들은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면 동추는 결정타를 날렸다.
"억울하면 경찰서 가자! 가서 확실하게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이 말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냥 투덜거리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그는 다음 역에서 전철 문이 열리자마자 곧바로 내렸다. 그리고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척하다가 뒤돌아서서 다시 플랫폼으로 돌아와 다음 사냥감을 찾아 나섰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오동추.
그는 지금 이 타겟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 마치 처음부터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는 듯이 움직였다. 다음 역에 열차가 멈추고, 수많은 사람이 내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밀려 들어왔다.
그 혼란의 틈을 타, 그는 물 흐르듯 이동하여 다른 여성의 뒤에 섰다. 이번 타겟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온통 그 작은 화면 안에 있었다.
동추는 다시 한번 몸을 밀착했다. 그의 '나쁜 손'은 다시금 사냥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손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그녀의 엉덩이를 가볍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드라마에 완전히 몰입한 듯, 가끔 피식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됐다! 오늘 운이 좋군.'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심하면서도 긴장의 끈은 놓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노골적으로, 그녀의 엉덩이 골 사이로 손을 밀어 넣으려 했다. 그의 심장이 다시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흥분이 정수리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 순간, 열차가 한 번 크게 휘청거렸다. 완벽한 기회였다. 그는 그 틈을 타, 쑤욱 하고 손을 더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들어왔다. 아주 작고 차가운 빛이었다.
'이게 뭐지?'
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이 들어간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경악했다. 여인의 바지 뒷주머니에 교묘하게 숨겨진 것은, 아주 작은 소형 카메라였다. 렌즈가 정확히 그의 '나쁜 손'을 향해 있었다.
'좆됐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그는 급히 손을 뺐다. 하지만 그가 손을 채 거두기도 전에, 여인이 휙 하고 돌아섰다.
그녀의 움직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날랬다. 그녀는 드라마에 빠져 있던 어수룩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운 칼날 같았고, 그녀의 손은 번개처럼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당신을 지하철 성추행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오동추의 뇌를 강타하는 망치 소리 같았다.
"네? 뭐, 뭐라고요?"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여자의 손아귀 힘은 강철 같았다.
"당신이 뭔데! 이거 안 놔?"
동추는 마지막 발악처럼, 그의 필살기인 '적반하장'을 시전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저는 지하철 성추행 전담반, 안소영 경사입니다. 당신의 모든 행위는 이 카메라에 증거로 녹화되었으니, 억울하면 경찰서 가서 따지시죠."
안소영 경사는 차갑게 말하며 다른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경찰 신분증을 꺼내 그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그 순간, 타이밍 좋게 지하철 문이 활짝 열렸다.
오동추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의 몸은 생존 본능만으로 움직였다. 그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안소영의 손을 뿌리치고 사람들을 헤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놈 잡아라!"
안소영 경사의 외침이 그의 등 뒤를 찔렀다. 그녀뿐만 아니라, 상황을 파악한 몇몇 젊은이들도 호기롭게 그를 뒤따라오고 있었다.
오동추는 사람들을 거칠게 밀치며 압구정역의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4번 출구. 그의 눈에 들어온 유일한 비상구였다. 그는 계단을 두세 칸씩 성큼성큼 뛰어 올라갔다. 폐가 터질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가 마침내 지상으로 나왔을 때, 눈부신 햇살이 그의 눈을 찔렀다.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눈에 한 간판이 들어왔다.
<어머누구세요 성형외과>. 그는 무작정 그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미친 듯이 계단을 달려 옥상으로,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 문을 박차고 나서는 순간, 그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은 서울시가 선정한 '아름다운 옥상' 2위에 빛나는, 잘 가꿔진 정원이었다. 수많은 꽃들이 각양각색으로 만발해 있었다. 붉은 장미, 노란 튤립, 하얀 안개꽃. 지독한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동화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꽃들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숨을 곳을 찾기 위해 그 아름다운 꽃들을 무참히 짓밟으며 옥상 끝으로 내달렸다.
"움직이지 마!"
등 뒤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목소리. 옥상 문을 따라 들어온 안소영 경사였다. 그녀는 한 손에 테이저건을 들고 그를 겨누고 있었다.
"움직이면, 발포한다!"
오동추는 옥상 난간 끝에 위태롭게 섰다. 그의 등 뒤는 텅 빈 하늘뿐이었다. 그 순간, 그의 미래가 삽시간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중견 기업 과장. 누구보다 성실하고 능력 있다고, 주변 동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던 그. 하지만 이제 그 동료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의 파렴치한 행각에 대해 경멸과 혐오를 보낼 것이다.
언론은 신나서 떠들어댈 것이다.
'성실한 삼십 대 후반, 평범한 두 아이의 가장. 하지만 그의 실체는 악마였다. 매일 출퇴근 시간, 총 네 시간을 지하철을 배회하며 숱한 성추행을 자행한 것으로 밝혀져…'
사랑하는 아내. 그의 인면수심에 치를 떨며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낼 것이다.
"어떻게 당신이…" 라는 원망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혼 서류를 내밀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이들.
자라면서 아빠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두고두고 그를 원망하고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를 새긴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오동추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 끔찍한 미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난간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섰다. 발아래로 아찔한 도시의 풍경이 까마득하게 펼쳐졌다.
"안 돼! 내려와!"
안소영 경사의 절규가 바람에 흩어졌다.
하지만 오동추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지독하게 푸르고 맑은, 4월의 하늘이었다. 그리고 그는 허공을 향해, 자신의 무너져 내린 세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름다운 옥상정원의 꽃잎 하나가 바람에 날려, 그의 뒤를 따르듯 허공에서 잠시 춤을 추다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