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발버터 Oct 27. 2024

좋은 이별일까요 #1

너드커넥션 - 그대만 있다면


그녀와 텅 빈 해변의 갯벌 위를 걷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지금 기분은 어때?” 

“편안해” 

“다행이다” 이제 정말 좋게 이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함께 웃던 시간들을 

함께했던 약속들을 

지금 또 영원히 기억하겠어요 

다시 한번 생각해요

무엇이 날 위한 건지 

그대는 알고 있어요


♪ 영원히 내 곁을 지켜주세요

나를 떠나지 말아요

세상의 모든 걸 잃어도 난 좋아요

그대만 있다면, 그대만 있다면


우리가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후 그녀는 노래방만 가면 이 노래를 같이 부르자고 졸랐다. 그녀는 우리의 노래라고 주장하면서 내게 마이크를 건넨다. 삐그덕거리는 서로의 화음 속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노래 가사처럼 그녀가 나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첫사랑, 끝사랑이라는 단어처럼 그녀와의 연애를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렇게 적을 것이다. 사랑받은 연애라고. 


지금껏 얼마 안 되는 연애 경험이지만 내가 이만큼 사랑받은 적이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좋은 이별이 하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이별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준다면, 결국 이 사람도 나의 맘을 헤아려주지 않을까. 서로가 분노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 이별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 번의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공식적으로는 헤어진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너랑 여행 가고 싶어” 

“갑자기? 우리 헤어졌잖아.”

“가고 싶어.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알았어. 가자” 


이별여행이라니. 유튜브에서나 보던 것을 실제로 할 줄이야. 그래도 이 기억이 우리의 마지막 기억이라면 좋은 끝맺음이라고 생각했다. 이왕 가는 마지막 여행이라면 차라리 첫 여행지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첫 시작과 끝이 동일하다는 건 무언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한여름에도 항상 따듯한 커피를 시키는 그녀는 출항할 배를 기다리며 입을 떼었다. 


“여기 다시 오고 싶었는데 이렇게 오게 되네. 내가 여기서 너한테 반했잖아. 기억나?”

“응. 내가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 부는 모습 보고 설렜다고 했잖아”

“맞아. 근데 지금은 아무 감정이 안 느껴져. 신기해.”

“그게 무슨 말이야?”

“더 이상 너를 봐도 설레지 않아. 나도 이젠 정말 널 정리한 거 같아.”

“그래? 그럼 오늘이 정말 우리의 마지막이겠네.”  


조금은 섭섭하기도 했지만 더 할 말은 없었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작은 창문 하나를 두고 서로의 표정은 극과 극이었다. 나는 그저 밝게 부서지는 하얀 바닷가를 보며 푼수처럼 웃고 있었고 그녀는 속이 불편하다며 실내에 남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지는 않았지만 괘념치 않기로 했다. 분명 그녀도 여러 생각이 교차하고 있을 것이다. 섬에 도착 후 해변가로 이동했지만 썰물 때라 그런지 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회색빛의 개펄만 보였다. 마치 우리의 감정이 메말라 가는 듯한 풍경이었다.  


“개펄이라도 걸을까”

“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