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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름 Feb 03. 2023

세탁기에 손 넣지 마세요

요즘 세탁기는 세탁 중에 세탁기를 열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하지 않은가요?


그건 바로!


세탁 중에 손을 넣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자취를 시작했어요. 사실 1학년 때는 기숙사에 살았는데 실컷 노느라 더 이상 기숙사에 들어갈 학점이 안 됐거든요.

한 학기 동안 왕복 다섯 시간을 통학하다가 자퇴할 뻔한 저는 마침내 자취를 허락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세탁기를 돌려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곱게 자랐나 봅니다.)

1학년 때 기숙사에서 빨래를 배웠지만, 그 세탁기는 세탁 중에 열 수 없는 드럼통 구조였어요. 하지만 이번에 자취하게 된 집은 집 앞마당에서 공용으로 쓰는 오래된 통돌이 세탁기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세탁기 사용법은 생각보다 쉬웠어요.

1단계. 전원을 켠다

2단계. 세탁물을 넣는다

3단계. 세제를 붓는다

4단계. 동작 버튼을 누른다. 끝!

세탁기를 돌려놓고 샤워를 한 후에 발생하는 세탁물을 추가로 살짝 넣어주기까지 하면 뭔가 야무지게 집안일을 하는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뿌듯했어요.


하루는 세 시 반에 수업이 있었습니다.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어요.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었던 저는 기가 막힌 생각을 해냈습니다.


‘40분 동안 빨래 돌리고, 널고 나가면 딱이다. 완벽해’


그런데 이번에는 양을 많이 넣어서 그런가... 오래 걸리는 거예요. 장마철이라 빨래를 오랫동안 못했었거든요. 5분 안에 출발해야 하는데 아직도 세탁은 2분이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날씨도 좋은데 탈수 멈추고 널어버리면 되겠네! 역시 난 야무져.’


세탁기 전원을 끄고 통돌이가 멈추길 기다리는 시간.

1초, 2초, 3초, … 곧 멈출 듯하면서도 사부작사부작 돌아가는 모양새가 저를 너무나도 애타게 하는 거예요.

‘세탁기가 멈추는 속도가 너무 느리니까 내 힘을 보태야겠다.’

그리고 오른손을 넣었습니다.


도로록,


아, ...


손을 최대한 빨리 뺐지만 이미 제 손에 큰일이 난 것 같았어요. 소리를 지를 수도 없이 순식간이었어요.

진정하자.

조금 지나면 나을 거야.

당황하지 않고 왼손으로 멈춘 빨랫감을 꺼냈습니다. 빨래 걸이에 대충 걸고 있는데 갑자기 아파오는 팔에 눈물이 뚝뚝 흐르는 거예요. 빨래를 대충 걸고 손을 보니까 몇 분 만에 손목이 두 배만 해져있었습니다.

수업은 무슨, 버스 타고 정형외과에 갔어요. 인대가 늘어나고 뼈에 금이 갔다더라고요. 붕대를 칭칭 감고 나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세탁기에 손 넣었는데 이 정도 다친 건 행운이니까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혼을 잔뜩 내셨습니다.

기운이 폭 죽은 저는 저벅저벅 자취방에 가서 대충 널은 빨래를 한 손으로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어요.

‘독립 쉽지 않네...’


이 이야기는 무려 2년 동안 ‘세탁기에 손 넣은 애’라고 놀림받은 이야기입니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는 병아리들!

그대는 생각보다 그렇게 야무지지 않으니 늘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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