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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보류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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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름 Aug 04. 2023

6. 둘, 둘, 셋 (1)

    190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도는 그 본래의 이름보다 삼다(三多)도라는 별칭으로서 더욱 익숙하게 불리우는 곳이었다. 이는 세 가지가 많은 섬이라는 뜻으로 각각 돌, 바람, 그리고 여자를 의미한다.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으로 만들어진 섬 동네에 돌과 바람이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렇다면 여자는 왜?

    여기서부터 정화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 정화가 어릴 적까지만 해도 삼다도 대부분의 아재들은 어장사로 돈을 벌어들였다. 정화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뭐가 그리 불안했던지 아버지가 뱃일을 하러 나간 날이면 한 시간만 늦어도 아기 정화를 업고 저 멀리 선착장까지 마중을 가곤 하셨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뱃일이라는 게 뱃고기가 잘 안 잡혀도 늦고, 너무 잘 잡혀도 늦는 것이라며 엄마를 안심시켜 주었단다. 하지만 엄마의 불안은 일종의 예지였을까. 정화가 태어난 지 다섯 해가 지난 어느 날, 바다는 광대한 몸짓을 휘둘러 아버지를 품어내고야 말았다.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었다.
    정화는 외동딸로 태어났다. 주위에서는 남편 없는 과부가 겨우 하나 낳은 자식이 딸내미라며 아쉬운 소리를 해대었지만 정화의 엄마는 그러한 모든 관심을 긁어모아 사랑으로 치환하여 정화에게 내어주는 진정한 어머니였다. 처음 국민학교에 간 날, 정화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버지가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그 사실에 크게 괘념치 않았다. 그만큼 정화의 엄마는 부모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으로 정화를 감싸주고 있었다. 다른 아무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날 바에는 아버지가 없어도 지금처럼 엄마와 단 둘이 사는 것이 더 좋았던 정화였다.

    엄마가 정화 다음으로 사랑한 것은 커피였다. 그녀는 매일의 기분에 따라 특별한 커피를 만들어 마시곤 했다. 아침 먹고 한 잔, 해 질 녘에 한 잔. 커피를 궁금해하는 정화에게 엄마는 매번 같은 대답을 해주셨다.

    “커피를 마신다는 건 향을 품는다는 거란다. 그 향은 너무 강렬하고 매혹적이라서 어엿한 어른만이 간직할 수 있지. 대신 냄새를 맡아보렴. 몸 안 구석구석에 발도장을 찍고 떠나는 찰나의 커피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이후로 엄마는 커피를 마시기 전 정화에게 컵을 건네어 고유한 냄새를 맡게 해 주었다. 정화는 엄마의 커피를 킁킁거리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또,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커피와 흰 가루들(이후에 알게 된 사실, 이 가루는 각각 프림과 설탕이었다.)을 섞고, 뜨거운 물을 부어 쇠숟가락으로 젓는 엄마의 손길을 따라 하고 싶었다. 그러한 정화의 마음을 진작에 눈치챈 엄마는 정화가 중학생이 되자 뜨거운 주전자를 만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때부터 엄마의 커피 제조자는 정화가 된 것이다. 엄마의 주문은 보통 이러했다.

    "비가 오니까 발바닥이 눅눅한 것이... 오늘은 둘, 둘, 하나!"

    "많이 걸었더니 달달한 게 당겨. 둘, 둘, 셋!"

    "떡을 먹으니까 속이 부대끼네. 안 되겠다, 둘, 빵, 빵!"

    순서대로 커피, 프림, 설탕. 엄마는 정말이지 제멋대로 손님이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경향은 있었는데, 주문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높은 날에는 설탕을 한 스푼 더 넣곤 했고 목소리가 낮은 날에는 커피를 조금 더 쓰게 해서 마셨다는 정도? 엄마는 당신의 기분이 좋은만큼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분이 안 좋을수록 커피를 더 달콤하게 마셔야 하는 게 아니냐는 정화의 물음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쓴 커피 한 모금이면 마음속 씁쓸함이 꽤나 달콤하게 느껴지는 법이란다. 마법 같지 않니? 그러니 오늘은 누가 뭐래도 둘둘빵의 날이지."

    언젠가 엄마의 목소리가 울적하게 들리는 날 엄마가 주문했다.

    "오늘은 정화 네 말을 따르겠어. 둘둘셋으로 부탁할게."

    표정이 굳은 엄마에게 왜 쓴 커피를 마시지 않냐고 물어봤어야 했을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화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니, 당신이 병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낮은 목소리로 달콤한 커피를 주문한 그날, 엄마는 가슴속에 오랫동안 묵어있던 종양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후로 정화의 하굣길은 집이 아닌 병원을 향하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정화를 따로 불러내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둥, 삐뚤어질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는 둥의 조언을 해대었지만, 사실 정화는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 시절이 괴롭지 않았다. 엄마는 그저 여전한 정화의 단짝이었으니까. 아픈 사람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밝은 엄마의 모습에 때로는 병원이 놀이터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 더 할 말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정화는 늘 학교가 끝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아침저녁으로 몸이 으슬거리던 날. 병원을 찾은 정화는 낯선 모습의 엄마와 마주했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대머리가 되어있던 것이었다. 정화는 엄마가 아프다는 걸 은연중에 망각하고 있었기에, 엄마가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다는 무서움이 몰려왔다. 링거가 꽂힌 엄마의 팔목을 붙잡고 울던 정화에게 엄마가 말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대머리인 거 알지? 정화도 태어났을 때 머리가 이렇게 하나도 없었단다. 엄마는 다시 태어난 거야. 이제 병균 없이 깨끗한 몸이 되어서 정화랑 오래오래 살 거야."

    이제야 그 말을 곱씹어보면, 엄마는 자신에게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면서 그 마음속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그러한 모성애의 힘으로 정화는 다시 건강해진 엄마랑 집으로 돌아갈 미래를 고대하곤 했다.

    평소처럼 커피를 제조하기 위해 보온병에 담아 온 뜨거운 물을 꺼내던 정화와 그 앞의 엄마를 보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더 이상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우리 엄마의 삶의 낙을 빼앗아가다니. 의사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우리 엄마는 내가 병원에 도착하는 저녁 때까지 하루종일 무슨 커피를 마실지 고민하는 낙으로 사는데. 하지만 그 전에 삶이 필요하다. 일단 살고 봐야한다. 엄마가 하루라도 빨리 나아야 삶도, 낙도 되찾아올 수 있는 일이었다.

 커피를 마시지만 않으면 되잖아? 엄마가 무슨 커피를 주문할 지 고민하는 행복까지는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날부터 정화는 엄마의 주문에 따라 매일 커피를 만들고 함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물론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지만 엄마는 냄새라도 맡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정화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매번 신중하게 커피를 주문했고, 정화는 엄마가 커피 냄새를 맡는 걸 보며 역시 행복해했다.

    하루는 커피 냄새를 맡던 엄마가 말했다.

    "정화야 오늘 하루만 이 커피 마시면 안 될까? 냄새가 참 좋아서 그래."

    "커피 마시면 안 되는 거 알잖아."

    "맞아. 그렇지만 요즘 엄마 몸도 좋아졌잖니.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동안 약이 잘 들지 않던 엄마는 최근 들어 병세가 좋아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므로 정화는 더욱 불안했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커피 한 잔으로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았다.

    "지금은 안 돼. 조금만 더 좋아지면 둘둘셋으로 타줄게. 조금만 참자. 응?"

    엄마는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정화의 말을 따라주었다. 하지만 그런 엄마의 노력을 외면하듯, 커피 한 잔 안 마신 엄마의 몸은 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급격히 악화되고 말았다. 참으로 무심한 하늘이었다.

    병원 밖이 보이는 창가에는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소록히 얹힌 눈이 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나 가벼워진 엄마를 보는 것만 같았다. 침대에 기대 누워있던 엄마가 말했다.

    "정화야, 엄마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

    정화는 갑작스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몸이 이렇게까지 안 좋아졌는데 커피라니.

    "의사 선생님이 안된다고 했잖아. 왜 말을 안 들어!"

    "그렇지만..."

    "내 생각은 안 해? 매일 학교 갔다가 여기서 엄마 수발드는 내 생각은 안 해?"

    "미안해 정화야. 엄마 안 마실게. 응? 화내지 마."

    "미안하다고 좀 하지 마! 맨날 미안하대. 미안하다고 하면 내가 불효녀 된 것 같단 말이야!"

    "미안해. 미안하다고 해서 미안해."

    "됐어. 엄마 죽을 때 되면, 진짜 뭘 해도 죽을 것 같으면, 엄마 죽기 일주일 전에 내가 커피 원 없이 태워줄게. 그때까지는 커피에 '커'자도 입 밖으로 꺼내지 마. 꺼내기만 해!"


    정화는 몰랐다. 엄마가 죽기 일주일 전에는 커피를 마실 수도, 심지어 볼 수조차 없다는 것을. 겨울 동안 나뭇가지 위에 얹혀있던 눈송이는 봄이 옴을 알리며 물로써 나무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이를 보지 못한 채 늦은 겨울잠에 들어버렸다. 혼수상태라고 했다.

    보온병에 담아둔 뜨거운 물을 꺼내는 정화에게 이제는 친언니처럼 편해진 간호사 언니가 말을 걸었다.

    "오늘의 커피는 뭐야?"

    "오늘은... 둘둘하나예요. 달콤함 사이에 살짝 느껴지는 쓴 맛! 오늘은 그런 날이에요."

    엄마가 혼수상태에 빠져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정화는 매일 하교 후에 엄마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고, 엄마가 주문하는 커피를 만들었다. 한 가지 바뀐 것이 있다면 엄마의 목소리가 아닌 엄마의 표정에서 주문을 받는다는 것뿐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정화가 (명칭과는 다르게 필수적인) 야간자율학습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하던 날,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너네 어머니는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생명 연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그러니 병원에 가지 말고 공부에나 집중하라고. 다만 혹시라도 신이 도와서 엄마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주기를 매일 밤 기도하라고.

    하지만 정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표정은 매일 바뀌었고, 정화는 그런 엄마를 보며 늘 떠오르는 커피가 있었단 말이다. 엄마는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온몸으로 당신이 원하는 커피를 외치고 있었다. 정화는 그리하여 매일 엄마를 위한 커피를 내리고는 침대 옆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 옆에서 공부도 하고, 학교 이야기도 하고, 잠도 자며.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한 건 변하지 않았다. 엄마는 분명 머리맡에서 폴폴 풍기는 커피 냄새를 맡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으리라.

    '누가 뭐래도 우리 딸이 만들어준 커피가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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