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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보류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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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커 Aug 14. 2023

6. 둘, 둘, 셋 (2)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가 그 시기를 5년이나 버틴 것은 기적이었다. 엄마는 정화가 스무 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찾아 떠났다. 마치 정화가 어른이 되기를 기다려준 듯이.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을 엄마. 정화는 고개를 떨구어 자신이 신고 있는 흰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엄마도, 아버지도, 없는, 바싹 말라있는 땅 위에 두 발이 턱, 턱, 나의 육신을 쳐 받들고 있다. 엄마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지금쯤이면 아버지를 만났을까. 어디에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정화는 부모님이 아무래도 하늘보다는 바다에 있을 것만 같았다. 서울토박이였던 엄마와 아버지는 결혼과 동시에 연고지도 없는 제주도로 내려왔다고 했었다. 바다가 좋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화는 달랐다. 제주도가 원망스러웠다. 부모님을 죽인 범인 같았다. 정화는 엄마의 발인이 끝난 다음 날부터 매일 집을 나서서는 이곳저곳에 놓인 돌하르방을 찾아 나섰다.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하르방에게 묻고 또 물었다.

    '왜 우리 부모님을 데려가셨나요. 부모님이 제주보다 저를 더 사랑해서, 그게 질투스러우셨나요. 그래서 빼앗아가신 건가요. 도망가지 말라고 꿀꺽 삼켜버리신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언제 삼켜주시는 건가요. 저도 부모님 옆으로 데려가주시지, 왜 저만 여기에 내버려 두시는 건가요.'

    어떠한 돌하르방에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리 물어도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니 정화는 답답할 수밖에.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의 화만 커져갈 수밖에. 잔해처럼 남아있던 제주도에 대한 정이 모조리 떨쳐질 수밖에. 부모님이 제주도를 사랑했던 마음을 봐서라도 어떻게든 이곳에 뿌리를 내려 살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끝없는 분노 속에서 제주도는 영원한 정화의 원수일뿐이었다. 그리하여 정화는 불효막심하지만서도 바다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부모님을 외면하고 육지로 올라왔다. 

    육지로 올라온 정화에게는 지겹고도 뻔한 전개가 이어졌다. 당장 갈 곳도, 잘 곳도 없이 무턱대고 육지로 올라온 정화의 삶에 작은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학생 때까지는 학교와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어찌어찌 생활했지만 어른이 된 정화에게 세상은 바닷물보다도 차갑고 바닷바람보다도 매서웠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군가는 백기를 들었겠지만, 적어도 정화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그는 한 번도 전쟁에서 져본 적이 없다. 가장 자신 있는 무기로서 '생명력'이 있었다. 정화는 밤에는 찜질방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식당 곳곳의 문을 두드려대곤 했다. 그러한 하루 속에, 정화는 늘 수많은 군중 속에 있었지만 내면에는 수없는 고독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아무런 수익 없는 한 달이 지나자 그녀가 가진 돈의 밑천이 드러나고 있었다. 진퇴양난의 순간이었다. 다시 원수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이럴 때마다 정화의 생명력은 기지를 발휘한다. 머릿속에서 한 사람이 떠오른 것이다.

    '미연언니가 여기 있어.'

    정화가 병원에 있을 때 옆 자리에서 항암치료를 받던 아지매의 딸이었다. 미연 언니는 정화와 또래인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고, 둘 다 어머니를 부양하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금세 친해진 사이였다. 병원에 있는 동안 서로에게 눈물받이 액받이가 되어주곤 했었다. 원체 야무졌던 미연언니는 아지매가 돌아가신 후 밤낮없이 공부를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었다고 했다. (자신처럼 제주도가 싫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니 이곳 육지 어딘가에 살고 있을 텐데... 정화는 얼마 남지 않은 동전을 긁어모아 공중전화로 제주도 아지매들에게 언니의 근황을 수소문했고, 마침내 언니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었다. 언니는 정화의 전화를 받은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정화가 지내는 찜질방 앞으로 달려와주었다. 엄마의 소식을 몰랐던 언니는 정화의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어대었다. 그날은 정화가 눈물받이 담당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언니는 말했다.

    "나랑 같이 살자. 집이 좁긴 하지만 너 하나 들어갈 공간은 있어."

    그렇게 당장 짐을 싸서 들어간 언니의 집은 태어나 처음 본 신기한 구조였다. 집이 마치 하나의 방 같았고, 그 방은 시시때때로 안방이, 화장실이, 부엌이, 거실이 되었다. 예를 들어 한 명이 집을 안방으로 쓰기 시작하면 다른 한 명 또한 따라서 꼿꼿이 누워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둘은 병원 생활 시절 보호자 간이침대에서만 수년을 자왔던 경력자였다. 오히려 난이도가 낮다고 할 수 있는 게, 땅바닥에 이불을 펴고 자면 병원에서처럼 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질 일도 없었다. 육지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던 둘은 서로의 온기를 자장가 삼아 더욱 깊은 잠에 들곤 했다. 정화는 아직 집세를 낼 수 없었기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전까지 집안일을 도맡아하기로했다.

    '이걸로는 부족해.'

    정화는 염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고작 7평 남짓한 방에서의 집안일은 한 시간이면 끝낼 수 있었고, 언니는 아침부터 공부하러 나가서 저녁만 집에서 먹었기 때문에 밥도 한 끼만 만들면 되었다. 정화는 언니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도 동글, 코도 동글, 입까지 동글동글한 얼굴에 까무잡잡한 정화의 겉모습은 아직도 너무나 앳돼보였다. 동네 식당 주인들은 자그마한 정화가 힘도 제대로 못 쓸 것이라면서 내쫓기 일쑤였다. 더 이상 문전박대 당할 식당조차 없는 것을 알아챈 정화는 집에 돌아와 맨밥에 김을 싸 먹으며 생각했다.

    '거절을 사람으로 만들면 내가 아닐까?'

    새하얀 밥알 사이에서 유독 까만 밥 알 하나가 보인다. 뽀얗고도 하얗게 윤기도는 밥알 사이에서 더욱 눈에 띠는 썩은 밥알. 정화는 아무렇지 않게 숟가락으로 썩은 밥알까지 듬뿍 떠서 입에 넣는다. 쳇, 섞어먹으니까 별 다른 맛도 안 나는구먼. 정화는 한편으로 억울했다. 나는 썩지 않았다. 수년간 엄마 병간호를 하면서 어지간한 요리도 해낼 수 있게 되었고 설거지나 빨래 같은 집안일은 웬만한 주부 9단 아지매들보다 자신 있었다. 나는 백미가 아니라 흑미일 뿐인데, 나는 썩은 밥알이 아닌데.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고 썩은 놈이라고 지레 짐작해서 버려버리다니.

    정화의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흑미라는 걸 어떻게 보여줄까.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나의 생존 무기란 무엇이냔 말이다.

    미연언니의 집은 불을 꺼두면 눅눅하고 어둑어둑한 것이 마치 동굴 같기도 하여 골똘한 사색에 빠지기 좋은 환경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두둑 거리는 빗소리가 동굴을 채워주었고, 맑은 날에는 창문 사이로 열감을 가진 햇살이 동굴을 밝혀주었다. 정말이지 내면세계에 집중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그런데 혹시, 나 무기가 없는 건 아닐까? 그보다 먼저, 무기가 필요한가? 생존 무기가 없는 자는 살아갈 수 없는가? 그렇다면 나는 왜 아직 살아있나? 죽어도 되는 사람인가? 나는 죽음을 갈망하나? 정화는 한동안 고민한 후 자답했다. 아니다. 죽고 싶지 않다. 그래. 나는 살고 싶은 존재이다. 그렇다면 왜 살고 싶은가? 당장 죽어도 될텐데. 정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의 고리가 정체 구간에 들어섰다. 아무리 자문해도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그에 대한 목적 또한 있을 것인데. 해답은 동굴 어딘가에 깊숙이 숨어있는 게 분명했다.

    정화는 고요 속에서 뒤엉킨 머릿속을 정리해 보았다. 내 안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는 마음 어딘가는 생존 욕구에 대한 해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의식은 여전히 의문과 불확실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아마도 무의식에 답이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이라. 무의식이라는 심연 속에서 언제 가장 진정한 의미로 삶을 느꼈는지를 되돌아보면, 그 순간의 모음들을 엮어 이야기로 만들면, 그것이 곧 살아가는 이유, 삶의 본체일 것이다. 언제 가장 살아있음을 느꼈나. 살아있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심장이 뛰고, 혈관 속에 흐르는 생명력을 느끼는 것. 그러니까, 두근거리는 것. 나의 심장은 언제 두근거렸지?

    아,

    정화는 떠올랐다.

    정화는 떠올렸다.

    처음으로 뜨거운 온기가 은은하게 스며들어있는 주전자 손잡이를 만지던 날. 처음으로 커피 가루를 소로록 흘리며 컵으로 옮기던 날. 처음으로 엄마의 주문을 듣고 커피를 만들던 날. 처음으로 엄마의 주문을 바라보고 커피를 만들던 날. 정화는 커피만 생각하면 '처음'의 순간들이 생생했다. 두근거리는 순간들이었다.

    '커피를 배워야겠어.'

    정화는 동굴 속 암석 사이에서 꽁꽁 숨어있던 보물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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