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얼마나 사랑하길래 결혼을 하나요?

by 초름

얼마나 큰 확신이 있으면 결혼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지인들의 답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J 씨: 어제도 보고 싶고, 오늘도 보고 싶고, 내일도 보고 싶을 것 같아서 결혼했습니다.

어제도 보고 싶고, 오늘도 보고 싶은데 내일 보고 싶은지 어떻게 아나요?

내일도 보고 싶을 수는 있겠습니다. 그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모르겠다면요? 30년 후에도 그대로일까요?

수학적 귀납법에 따르면 어제와 오늘 보고 싶은 사람은 무한한 시간 동안 보고 싶은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비선형적이라서 수학적으로 정의하기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첫째로 오늘의 그대는 오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그대가 어제 기다리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소단위의 작은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뿐이지요. 30년 후 라면요? 그렇다면 제가 기다리는 그대는 이미 죽어버린 시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둘째로 제가 바뀌어버릴 수도 있지요. 그래요. 사실 제가 문제입니다. 제가. 저는 소나무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10년 전 제가 쓴 일기만 봐도 그렇습니다. 제가 쓴 일기지만 참 낯설어요. (누구세요 정말?) 10년 전 즈음에 쓴 일기를 보니 현빈이 왜 잘생겼는지 모르겠다는 글을 쓴 적이 있더랍니다. 충격실화예요. 그때 시크릿가든이라는 드라마에 한창 빠져있었거든요. 아니~ 막 옷도 이상한 거 입고 너무 정색한다면서 비난하는 일기를 썼더라고요. 혹시 제가 미쳤던 것일까요? 중학생의 눈에는 아이돌이 최고였겠지만서도 말이지요. 아무튼, 10년 전 일기를 보니 저도 참 많이 변해왔더라고요.

이렇게 우리는 늙고 변화합니다. 어느 순간 연필과 마늘처럼 어색한 조합이 되어버린 너와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할 수 있을까요?


k 씨: 첫눈에 왠지 이 사람이랑 결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도 안 돼요! 낭만적인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생각 아닌가요? 저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라 첫눈에 결혼 생각이 들 수 없습니다. 나랑 잘 맞는 사람인지, 나의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의 슬픔을 나눠가져보고 싶은 사람인지, 함께 살면서 굶어 죽을 일은 없는지! 화병 나서 죽을 일은 없는지! 술주정은 없는지! 도박경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전과가 있는 건 아닌지(?) 까지요!

이런 생각도 안 하고 얼굴을 보자마자 결혼 생각이 든다고요? 이건 제 세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적어도... 3년은 봐야 하지 않을까요? 흠, 3년이라는 기간도 사실 말이 안 되긴 합니다. 밀도가 중요하지요.


s 씨: 결혼 적령기 때 만나고 있는 사람이랑 자연스레 결혼하게 되덥디다.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제 주위만 봐도 3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결혼을 많이 하더라고요. 제가 33살이라고 가정하면, 거기다가 제 주위 친구들의 90%가 결혼했다면, 심지어 그중 대부분이 아이를 낳아서 인스타그램과 카톡사진이 아기들 모습으로 가득하다면, 그런 상황에서 아무 생각 없이 결혼을 안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혼? 몰라!' 이 마음이 아닐 것 같아요. 아마 결혼을 하고 싶거나, 하기 싫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요. 하고 싶다면 결혼이 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대와'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일까요? 하기 싫다면 결혼이 하기 싫은 것일까요, '그대와' 결혼이 하기 싫은 것일까요? 이 사이에서 혼동을 하게 될까 봐 무섭습니다.

미래의 저는 '그대와' 결혼이 하고 싶었으면 좋겠습니다. 뭐랄까, 제일 행복한 결말일 것 같아서요. 하지만 행복한 결말은 없습니다. 행복한 시작이겠지요. 시작은 행복했지만 끝은... 창대할까요? 평생을 기약한다는 것, 상당히 크고 무서운 결정 같습니다.


결혼할 것도 아니면서 왜 이리 진지한 것이죠? 이게 다 내년에 결혼하는 친구 때문이에요! 제가 3년 전에 별생각 없이 소개팅 시켜준 친구가 있는데 그 둘이 내년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는데...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는데... 제가 어쩌다 보니 인생의 짝꿍을 만들어줬더라고요. 그런데 글쎄 말이에요. 그 둘이 매달 300만 원씩을 모으고 있대요. 인당 300만 원이요! 제가 그 친구들 월급을 아는데... 기특하기도 하지만 결혼식 전에 굶어 죽을까 걱정입니다. 그 친구에게 결혼식 이야기, 신혼집 이야기, 자녀계획 이야기를 홀랑 빠져서 듣다가 제 마음속에 결혼이 훅 들어온 것 같습니다.


에라이, 저는 그냥 독거노인으로 살다가 죽어버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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