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라면이 좋다고 하셨어

by 초름

기가 막힌 라면 레시피를 알아버렸습니다.

출처_엄마남편


레시피를 공유하기 이전에 사족을 조금 붙이겠습니다. 저는 회사가 본가와 멀어서 평일에는 회사 기숙사에 살고, 금요일 저녁마다 집으로 올라가요. 그날은 저녁 약속이 있어서 9시쯤 귀가했는데 엄마만 소파에 누워계셨습니다. 아빠는? 하고 물으니 회식 갔다 와서 자고 있다며 술냄새나니까 안방에는 가지 말라더라고요. 어우, 얼마나 마신 거야.


저희 집에는 강아지가 있습니다. 귀여운 7살이에요. 인간 나이로 환산하면 7*7=49세. 지천명(?)

익명... 익견을 보장하기 위해 임의로 '뽀삐'라고 하겠습니다. 뽀삐는 어두울 때 집에 누가 들어오면 왕왕 짖어요. 제가 늦게 들어왔다고 제 앞에서 왕왕. 왜 이제 왔어! 왕왕. 덕분에 아빠가 슬금슬금 깨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우리 딸 왔냐며 헤롱헤롱 일어나더니 부엌을 어슬렁 어슬렁. 아빠 뭐 해? 라면 먹겠대요. 더 자지 왜 갑자기 라면일꼬. 벌써 해장을 하려는 건가. 엄마랑 회사 이야기를 좀 하다 보니 아빠는 금세 라면을 완성해 왔어요. 근데 세상에 냄새가 정말 코를 콕콕 쑤시더라고요. 이렇게 자극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라면을 좋아하지 않아요. 바쁠 때 컵라면을 먹은 적은 꽤 있지만 맛있어서 먹은 적은 별로 없고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을 때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어서 가끔 먹었습니다. 라면 먹을 바에 달콤하고 피가 사악 도는 빵을 먹겠다 주의였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아빠가 이거 진짜 맛있다고 먹어보라는데 뭔가 먹고 싶은 거예요. 냉큼 숟가락을 챙겨서 국물만 한 입 먹어봤어요.


아니 이 맛은...!?!!!


지금까지 먹었던 라면과 아예 다른 감칠맛이었어요. 깊고 얼큰하고, MSG가 식도부터 위장을 퍽퍽 치고 내려가는 느낌...!!!


저는 사실 아빠가 엄마 없을 때마다 라면을 먹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도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냥 엄청 맛있는 걸 혼자 드시고 계셨던 거라고요.


"아빠... 이걸 왜 혼자 먹어왔어."

"... 아빠가 다른 건 몰라도 김치볶음밥이랑 라면은 백종원 못지않단다."


아빠의 레시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물을 살짝 부족하게 넣는다. 400ml 정도

2. 물이 끓기 전에 스프랑 면 다 때리 박는다.

3. 물이 끓으면 젓가락 한쪽 씩을 들고 면을 쫙쫙 찢는다.

4. 젓가락으로 달걀을 톡 쳐서 터트린다.

주의 * 달걀을 터트리자마자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라면을 무지막지하게 휘젓는다. 계란이 국물에 녹여 들도록. 계란 분자 하나의 크기가 1mm에 미치지 않도록! 알았나 교육생

5. 청양고추 하나를 가위로 찹찹 썰어 넣는다.

6. 한입 먹고 "으아~" 다시 먹고 "느으아하~" 반복


먹방 유튜버를 보면 계란을 풀지 않아야 라면의 국물 맛이 그대로라고 하면서 반숙란에 면을 톡톡 찍어 먹잖아요. 그래서 그게 제일 맛있는 방법인 줄 알고 몇 년 전에 따라먹었는데 맛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게 제일 맛있는 라면이라면 나는 라면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인 것이야'하고 말았거든요.


이런 미련 곰탱이를 봤나!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레시피가 나한테 꼭 맞으리라는 법은 없지요. 그게 맞다면 제가 짜장면을 좋아하고 만두를 좋아하고, 미나리를 싫어했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혓바닥은 은근 개성이 넘쳐서 참 다양한 취향이 있답니다. 대충 70억 개 정도?


그래서 저번주 금요일 이후로 토요일 점심도 라면, 이번주 화요일 저녁도 라면이에요. 청소년기에도 잘 안 먹던 라면을 20대 후반이 되어서 거의 매일 먹고 있다니. 솔직히 양심고백 하자면 오늘도 먹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맛을 알아버린 이상,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음식도 빨리 질려하는 편이라 조만간 그만 먹고 싶어 질 것 같긴 해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라면중독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하나 있겠습니다.

그건 바로 아빠의 김치볶음밥 레시피 훔쳐오기!

이번 주말 제 목표는 김치볶음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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