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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밀 Sep 24. 2023

대학교 자퇴하던 날

대학 편입을 성공하면 전적대는 자퇴해야 한다.



이 글은 2020년 2월, 전적대학교 자퇴를 하던 날 썼던 일기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임을 밝힙니다.



학사지원처에서는 자퇴를 하려면 담당교수와 학과장의 도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담당교수인 김교수님한테는 며칠째 죽어도 답장이 안 와서 학과사무실에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어제는 학과장인 박교수 님한테 문자 했는데, 다음날 오전 10시에 답장이 왔다. 


'답변이 늦었네. 오늘 올래?'


오늘?


오늘 올래?


오늘 올래????????



으악 난 준비되지 않았어!(거짓말)


문자는 10시에 왔지만 못 보고 자다가 12시에 동생이 깨워줘서 이 문자를 봤다.

후다닥 준비하고 부모님 도장과 신분증을 챙겨서 나왔다. 

원래 오늘은 친구한테 C언어 배우기로 한 날이었는데.. 교수님이 오늘 부르신다고 하니 흔쾌히 약속을 미뤄줬다.


날씨는 흐렸고, 안개비가 왔고, 미세먼지도 많았다. 비가 올 거면 미세먼지라도 없던가..

딱 두 달 만에 학교에 갔다.

학교 가는 길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김유신의 말이 천관의 집으로 가던 것처럼 나는 학교에 가고 있었다... 합격하고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 헤매며 이 길을 지나가던 기억이 생생한데.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엔 정말 낯설었지만 2년 동안 정말 익숙해진 거겠지. 이제 이 길은 올 일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자꾸 아쉬웠다. 

2년 동안 내 머리는 이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 했는데 내 마음은 이미 정들어 버린 것 같았다.  

나와 이 학교는 애증의 관계인 것 같았다. 


학교에 도착해 학사지원처에 들어가기 전, 먼저 D대 입학처에 전화해서 합격 후 제출한 추가서류가 도착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잘 도착했다고 했다. 난 공식적으로 D대생이 된 거였다. 


이제 정말 자퇴만 남은 거였다.


학지처 문 열자마자 보이는 그 직원분은 오늘도 친절했다. 작년에 귀찮게 수료예정서 사인해 달라고 여러 번 찾아갔는데 잘해줘서 고마웠어요. 전화문의도 참 여러 번 했는데 친절한 답변 고마웠어요.


자퇴서류 쓰고 싶어서 왔다고 하니까 자퇴원서를 써야 한다고 해서 자퇴원서를 썼다. 자퇴 사유란은 여러 개 중에 골라 체크하도록 해놓았는데 타학교 편입이 1번이고 타학교 신입학이 2번이었다. n 수보다 편입으로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이 많다는 뜻인 걸까?


나는 1번에 체크했다. 내가 정말 타 대학에 편입을 한 거구나, 다시 한번 실감했다.






담당교수와 학과장의 도장을 받아오라고 해서 자퇴원서를 들고 제1과학관으로 갔다.


우리 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교수님ㅠㅠ


교수님 방 노크하고 딱 문 열고 들어갔는데 어 왔구나~ 하시더니 앉으라고 하셨다. 




나는 ㅇㅇ이가 삼육대에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ㅋㅋㅋ


ㅇㅇ이한테는 편입이 좋은 선택인 것 같아? 등등 물어보시더니 앞에 앉으셨다.


요새 편입시즌이라 애들이 많이 왔다 갔다고, 우리 과에 괜찮은 친구들은 다 다른 학교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하셨다. (비전과 목표가 있는 친구들은 다 열심히 해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거죠. 그중 한 방법이 다른 학교로 편입하는 것 아닐까요.)


편입생 신분으로 그 학교에서 주류가 되는 게 사실 쉽지 않다. ㅇㅇ이 정도면 여기에서 주류로 메인으로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라면서 약간의 아쉬움? 을 표현하시고ㅋㅋㅋ(하지만 교수님... 전 2년 동안 애~매 했는데요.. 그리고 아싸였는 걸요..ㅎㅎ)


하지만 이미 떠나기로 마음 정하고 온 친구들한테는 긴 얘기 안 한다고. (결정하기 전에 상담하러 오는 애들도 있단 말씀인 듯.) 


이 학교에서 2년 동안 한 생활이 재미없고 너무 싫었냐고 하셔서 그건 진짜 아니라고ㅠㅠ 재밌었고 열심히 했다고 했다. 


이때 다시 떠올랐다. 내가 편입을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을 하든지 죽도록 노력해 본 적 없다는 나 자신을 향한 패배감과 불신 때문이었다. 사회의 시선이나 우리나라의 학벌구조, 자격지심은 그다지.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다.


또한 학교의 교수님들이나 동기들, 선후배들은 다 정말 좋은 분들이었다. 나는 이 학교에서 많이 성숙해지고 많은 것들을 배웠다.


특히 기독교 미션스쿨이었던 이 학교를 2년 동안 다니며 기독교 및 다른 종교들에 대해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난 종교에(특히 기독교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내가 살면서 종교를 이해하게 될 줄은 몰랐다ㅋㅋㅋ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다시 면담 내용으로 돌아와서..




교수님이 제일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나중에 내가 좌절하는 일이 생길 때, 그런 일이 생긴 이유는 내가 편입생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는 내가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그걸 메이크업하면 된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라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이미 정해진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합리화는 정말 무섭다. 자꾸 나 자신이 아닌 내 주위 환경을 탓하게 만든다. 내가 성장할 수 없게 한다.


누구한테나 좌절은 찾아올 거다. 


내 좌절은 내가 편입한 사람이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니다. 내 잘못이고 내 탓이다. 


미래의 나한테 정말 미리 해주고 싶은 말이네. 


역시 박교수 님은 괜히 박교수 님이 아니야.. 정말 멋지신 분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에게 떳떳했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편입을 준비하고 합격하면서 처음으로 나한테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계속 이렇게 좋은 일만 생기면 좋겠지만 어떻게 그렇겠어. 


미래에 힘들어할 나 자신이 저 말을 떠올려서, 합리화하지 않고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면담은 10분 만에 끝났다. 


조금 울컥하고 조금 허무하고 조금 후련했다.


학과장님이 담당교수님 서명도 대신해 주셨으니 그대로 학지처로 향했다. 신분증과 자퇴원서를 제출했다. 


처리는 일주일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이렇게 자퇴절차는 간단하게 완료됐다.


싱숭생숭했다..


우산을 쓰고 혼자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감사했던 교수님들을 떠올렸다. 떠올릴 분이 많아 아쉬우면서도 감사했다.


그동안 신세 졌던 학교 건물들도 쓱 둘러보았다. 고3 때 입시 시험을 쳤던 건물 앞을 지나가면서는 약간 울컥했다. 시험을 보러 처음에 이 학교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가 촤라락 머릿속을 지나갔다. 


날씨가 흐리고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 더욱 멜랑꼴리 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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