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에게 기대다 부서졌다

동업, 파트너십, 협업, 그 끝에 남은 것은 고립뿐

by 레잇 블루머



나는 20년 넘게 조직에서 살아왔다.

그 안에서 나는 지시하는 사람이었다.

직접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판을 짜고, 기획하고, 사람을 배치하고, 흐름을 관리하는 일.

그게 나의 일이었다.


내가 손에 쥔 건 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움직이면 일이 완성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사업도 그렇게 굴러갈 줄 알았던 것 같다.


첫 번째 실패는 ‘위임’에서 시작됐다.

마케팅은 대행사에, 제품 세팅은 외주에.

나는 기획과 전략만 맡았다.

회사에서 하던 대로였다.

그런데 문제는, 내 손에는 아무 기술도, 경험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저 조율자였다.


고객과 외주 대행사의 연락처 사이에서,

판만 짜고 중간에서 말을 전달하는 역할.


그 구조가 깨지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행사가 실수하면, 책임은 나에게 왔다.

클라이언트가 중요한 타이밍에 연락이 안 되면,

나는 우왕좌왕 결정도 못 내리고 시간을 날렸다.


결국 모든 책임은 나 혼자 떠안고, 전액 환불, 손실, 강제 종료.

남은 건 아무것도 못 하는 나 자신뿐이었다.


그때야 알았다.

'내 실력 없이 남에게 위임하는 구조는, 비용으로 돌아온다.'




두 번째 실패는 사람에 대한 순진한 믿음이었다.


오랜 직장 동료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그래도 쟤는 내가 잘 아니까.'

'같이 하면 혼자보다 낫겠지.'


그 믿음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시간은 기대를 실망으로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건 너가 좀 해줘.'

'아니, 네가 해야 하는 거잖아.'


처음엔 배려였던 말들이, 나중엔 분노로 바뀌었다.

감정이 쌓였고, 책임은 흐려졌고, 결국은 무너졌다.


사업도, 사람도 모두 잃었다.




세 번째 실패는 성공한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다.


회사에서 먼저 독립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선배의 협업 제안.

나는 그 사람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는, 그의 성공에 기대고 싶었다.

'큰 물에 들어가면 나도 잘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아무 계산도 하지 않았다.

마진 구조? 사업의 지속 가능성?

어떤 것도 따지지 않았다.

그저 믿음 하나로 수천만 원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난 단지 남의 사업을 도와준 돈줄에 불과했다는 걸.

수익 배분은 미뤄졌고, 마진 구조는 불공정했고,

결국 그는 나를 떨궈내고 혼자 성공을 독식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린도후서 11:14)


악당은 늘 매력적인 얼굴로 다가온다.

도움 줄 것처럼, 다 알려줄 것처럼,

함께 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안엔 계산된 셈법이 있고,

그들이 이기지 못하면 애초에 당신을 부르지도 않는다.


나는 그걸 몰랐다.

아니, 알고도 믿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은 다르겠지, 나와는 관계가 다르겠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이미 성공한 사람이, 왜 굳이 나서서 자신의 시간을 들여, 리스크를 함께 짊어지며,

‘나를 도와주겠다’고 하는 걸까?


지금 이 시대에, 가족끼리도 서로 돕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같이 하자'고, '도와주겠다'고, '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절대 손해보지 않는 구조를 이미 설계해 왔을 확률이 높다.

지분 구조든, 수익 배분이든, 당신이 빠져나갈 수 없고,

모든 리스크는 당신이 떠안게 되는 그런 방식으로 짜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선한 표정으로 말할 것이다.

'같이 잘 되자고 시작한 거잖아.'

'나는 이미 검증된 방법을 알려주는 것뿐이야.'


맞다.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사기꾼은 절대 사기꾼의 얼굴을 하고 오지 않는다.

사람을 이용하는 자는 절대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설득력 있게, 가장 매력적으로,

가장 그럴듯하게 당신을 끌어들인다.


그러니 그럴듯한 말이 들릴수록,

함께하자는 제안이 너무 쉽게 느껴질수록,

오히려 더 의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공한 사람은 대체로 손해보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당신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도구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렇게 세 번, 사람에게 기댔고, 사람에게 무너졌다.


지금에서야 확신할 수 있다.

자립 없는 관계는 모두 모래성이다.


믿음은 필요하다.

협업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나 혼자도 해낼 수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혼자 해보지 않은 사람은, 협업에서도 방황하게 된다.

내가 뭘 할 수 있고, 뭘 못하는지 모르면 서로에게 기대기만 하다가,

결국 책임 떠넘기기로 끝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혼자 일어설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남의 노력과 성공에 묻어가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사업은, 관계는 묻어가기만 해서는 절대 굴러가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혹시 지금 누군가와 함께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

그 사람의 실력을 믿고 있는가?

그 사람이 성공했으니, 나도 잘 풀릴 거라 기대하는가?


그렇다면 묻고 싶다.

그 사람 없이도, 당신은 혼자 해낼 수 있는가?


자립 없는 협업은 없다.

혼자 해보라.

실수하라.

고생하라.

그게 나중에 누군가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 된다.


이건 내가 수천만 원을 잃고, 사람을 잃고,

결국 나 자신마저 잃고 나서야 깨달은 교훈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피투성이 교훈을 등에 짊어진 채 다시 한 발을 딛고 있다.


이번에는, 진짜 내 힘으로 서보려 한다.

keyword
이전 02화나는 돈으로 시간을 사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