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머릿속에서만 거대하다

두려움은 행동을 가장 싫어한다

by 레잇 블루머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매일 밤

단두대에 누운 사형수처럼 잠들었다.


이불을 덮으면,

목에 스치는 이불의 감촉이

마치 차가운 칼날처럼 느껴졌다.


‘이거 뭐지? 단두대인가? 내가 곧 목이 잘릴 건가?’


머릿속에서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처형장, 사형수, 떨어지는 칼날.

그 무렵, 그런 꿈을 자주 꾸었다.


숨이 막혔다. 가슴이 답답했다.

‘곧 망할 거야.’

‘이번 달 못 넘긴다.’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정말로 그때, 내 인생이 끝날 줄 알았다.

그땐 늘 '앞으로 3개월을 못 버틸 거야'라고 생각했다.


'3개월 후 나는 파산할 거야.'

'3개월 후 나는 길바닥에 나앉을 거야.'

늘 그 '3개월'이 데드라인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 3개월이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지나갔는데...


칼날은 안 떨어졌다.


파산할 것 같았던 그 3개월 뒤에도

나는 여전히 숨 쉬고 있었고,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3개월'이라는 공포는 허상이었다는 것.

그 단두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그때 나는 두려움 때문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가슴은 이유 없이 두근거리고,

손끝은 차가워졌다.


수면제 한 봉지로는 안 됐다.

도저히 잠들 것 같지 않은 날은 두 봉지를 먹어도

밤새도록 이불속에서 벌벌 떨어야 했다.

그렇게 아침까지 뒤척이다 보면 몸 곳곳에서 이상 신호가 왔다.


입안은 헐고,

속은 뒤틀리고,

각종 염증이 올라왔다.

몸도 마음도, 계속 날카로워졌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 같은 상태.

그렇게 두려움에 압도된 날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그 어둠 속에서 조금씩 꺼내준 건,

아주 작은 ‘행동’이었다.


기록.

나는 그때 이렇게라도 살아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을 썼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

절망,

죄책감,

망가진 일상,

그 모든 걸 있는 그대로 꺼내놓았다.


처음엔 손이 떨렸다.

'이런 걸 써도 되나?'

'누가 보면 흉보지 않을까?'

'더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글을 쓰고 포스팅을 하자 한두 명이라도,

'저도 그래요.'

'힘내세요.'

'저도 무섭습니다.'

그렇게 반응이 왔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는 아직 완전히 끊어진 게 아니구나.

세상과 단절되지 않았구나.

그 아주 작은 ‘연결감’이 그날 밤 나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들었다.

그날은 수면제 한 봉지로도 잠이 들었다.


그 후 나는 더 자주 글을 썼다.

두려움 속에서도 할 수 있는 행동 하나.

그게 글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행동 하나가

내 하루의 리듬을 다시 조금씩 되살려주었다.


두려움은 거대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두려움 앞에서 작은 한 걸음이라도 떼면,

그 순간부터 두려움은 무력해지기 시작한다.


이걸 꼭 말하고 싶다.

두려움은 실제 상황보다 머릿속에서 훨씬 크게 부풀려진다.

현실보다 상상이 더 무서운 법이다.

나는 솔직히 지금도 큰 압박감을 느낀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벼랑 끝이다.


지금도 가끔 밤마다 목이 칼날에 닿는 듯한 감각이 온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그 감각은 ‘실제 칼날’이 아니라,

내 뇌가 만들어낸 경고 장치일 뿐이라는 걸.

두려움은 원래 그런 기능을 한다.


'야, 너 지금 위험하다.'

'야, 지금 상황 심각해.'


문제는, 우리가 그 신호에 압도당하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는 것.


두려움을 없앨 수는 없다.

그건 본능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사업을 하며 망한 과정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두려움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못했던 시기였다.


너무 불안해서 강의만 듣고,

너무 무서워서 공부만 하고,

실행은 못 하고, 생각에만 갇혀버린 시간.

그게 가장 치명적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퇴사를 고민하면서,

부업을 시작하려고 하면서,

사업 아이템을 고르면서,

머릿속에서만,

'망할 것 같아'

'실패하면 어떡하지'

이런 시뮬레이션만 100번, 1000번 돌린다.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못 한다.


나는 말하고 싶다.


'두려움이 클수록, 반드시 작은 움직임이라도 시작하라.'


크게 하라는 게 아니다.

대단한 걸 하라는 것도 아니다.

정말 작은 행동이어도 상관없다.


그날 한 줄이라도 글을 쓰는 것.

상품 하나라도 등록해 보는 것.

고객 한 명에게라도 메일을 보내보는 것.


그렇게 작은 리듬이 쌓인다.

그러면 두려움은 조금씩 작아진다.

두려움은 원래 정지된 사람을 더 무너뜨리는 법이다.

움직이는 사람은 두려움에 먹히지 않는다.


이걸 기억하자.

두려움은 원래 '미지의 공간'에서 커진다.

내가 해보지 않은 영역에서 커진다.


그렇다면 작게라도 해보면 된다.

해본 순간부터 그건 이미 ‘알려진 공간'이 된다.

그러면 두려움은 반으로 줄어든다.


나는 지금도 솔직히 두렵다.

'다음 달 대출이자 어떻게 내지?'

'이 글, 과연 몇 명이나 읽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감당이 안되면 어쩌지?'

수많은 두려움이 매일같이 밀려온다.


그렇지만 예전과 다른 건 하나다.

이제는 두려움을 그냥 ‘알아차리고’ 간다는 것.

압도되지 않는다는 것.


두려움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옆자리에 두고,

'그래, 넌 거기 있어. 나는 내 할 거 할게.'

그런 태도로 하루를 살려고 노력한다.


두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두려움과 '어떻게 함께 걷느냐'가 중요하다.


당신은 지금 뭘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 두려움이 진짜 '칼날'인지,

아니면 그저 '상상'일뿐인지 먼저 구분해 보라.

그리고 그 두려움을 끌어안고,

작게 아주 작게라도 움직여라.


그렇게 버티면 오늘 하루는 이어지고,

그 하루가 모이면 삶은 계속된다.

나는 지금 그걸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아마 나는 곧 파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이 두려움을 끌어안고서라도,

나는 내 하루를 계속 살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머릿속에서만 거대한 괴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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