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음악과 함께 카메라 줌인)
앵커: (카메라 클로즈업, 진지한 톤)
최근 계속되는 폭염과 폭우 속에서 배달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 무거운 짐을 수십 차례 옮기며 계단을 오르는 일상,
게다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용역 계약 구조로 인한 불안정한 처우까지...
이들의 현실은 단순히 ‘힘든 일’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열악한 상황입니다.
오늘 저희는 마트 배달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를 연결해,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겠습니다.
기자: (화면 전환, 현장 소음, 땀 닦으며 진지한 톤)
네, 저는 지금 지역기반의 중형마트 배송 차량들이 오가는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기사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수십 박스의 식료품과 생필품을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무게는 한 번에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기도 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노후 건물에서는 하루 수천 개씩 계단을 오르내려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강도 높은 노동이 대부분 비정규직, 혹은 용역 계약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휴식 시간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사고가 나도 안전망이 거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카메라, 지나가던 인물을 잡아줌)
저희는 지금 현장에 계신 배송 기사 한 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던 느림보를 붙잡고 인터뷰 시작)
기자: (마이크 들이대며)
저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루 몇 시간이나 일하십니까?
느림보: (팔로 땀을 훔치고 멋쩍게 웃으며)
뭐, 꼬박 12시간쯤 하죠.
땡볕이건 폭우건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덕분에 다이어트에 성공했어요.
일 시작하고 한 달 만에 10kg이나 빠졌거든요.
요즘은 사람들이 다이어트 약, PT 이런 거에 돈 쓰잖아요?
저는 그냥 운전하고 물건만 나릅니다.
무료 PT쌤 같은 일이에요.
근데 적응하니까 다시 2kg 늘긴 하더라고요.
아, 인간의 적응력은 참 대단해요.
아무튼 뱃살이 빠지고 턱선이 살아나니 기분은 좋습니다.
(기자, 당황해 눈 깜빡이며 고개 끄덕임)
기자: (다시 진지하게)
배송을 하다 보면 계단을 수천 번 오르내려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많이 힘들지 않으십니까?
느림보: (손가락으로 다리를 툭툭 치며)
처음엔 진짜 죽는 줄 알았죠.
종아리, 허벅지, 무릎... 돌아가면서 다 아프더라고요.
근데 신기하게도, 아프니까 오히려 운동법을 찾아보게 되고, 스트레칭이 일상이 됐습니다.
출근 전에 종아리 풀고, 집에 와서 허리 늘려주고...
마치 무료 재활센터 다니는 기분이랄까요?
덕분에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고, 다치지 않게 소중히 다루는 법을 배웠어요.
체력만 보면 군대 시절 이후 지금이 최고입니다.
그땐 억지로 뛰었는데, 지금은 밥벌이하면서 몸을 단련하니 효과가 두 배죠.
피트니스 센터요?
저에겐 계단이 센터입니다.
(현장 스태프들 킥킥거림, 기자 점점 더 굳은 표정)
기자: (목소리 깔며)
음... 그럼 휴게 시간은 어떤가요? 제대로 보장되고 있습니까?
느림보: (잠시 고개 긁적이며)
사실 딱 정해진 건 없어요.
배송은 시간이 곧 돈이고, 날씨랑 교통 같은 변수가 많거든요.
그래서 ‘지금부터 몇 분 쉰다’ 이런 건 꿈도 못 꿔요.
차 세우고 도로변에서 쉬기도 뭣하고, 마땅한 장소도 없는 건 사실이죠.
저는 그냥 다음 목적지가 좀 멀다 싶으면, 그게 휴식 시간입니다.
신호 걸렸을 때 아이들 사진 보고, 가끔 짬 날 때 아내랑 통화하는 게 제일 큰 힐링이에요.
그리고 가끔 고객님들이 건네주시는 비타 음료 있잖아요.
와, 그 한 병이면 에너지 드링크 광고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그게 제 최고의 휴게 시간입니다.
(카메라 당기며 느림보 웃는 얼굴 클로즈업, 기자 표정 당황)
기자: (목소리 떨리며)
자 그럼, 다른 배송 직종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느림보: (잠시 뜸 들이며)
저도 라이더 일을 딱 하루 경험해 본 적 있어요.
근데 무섭더라고요.
안전벨트조차 없이 그야말로 몸으로 타야 하는 기계 위에서, 햇빛과 아스팔트 열기, 자동차 매연까지 전부 맞으면서 도로 위에 맨몸이 노출돼 있잖아요.
특히 헬멧 속에 머리가 꽉 막히니, 마치 감옥 같은 곳에 갇힌 느낌이었어요.
그 이후로 도로 위의 라이더 분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겉으론 쉽게 쉽게 하는 일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고통과 위험을 다 안고 있는 거죠.
택배는 또 달라요.
제가 아는 기사님은 새벽 5시에 나와서 밤 9시, 늦으면 자정까지 일하세요.
계단 칸수로 따지면 저보다 몇 배는 더 많을 겁니다.
하루 수백 건 물량에 일요일 하루밖에 못 쉬니 병원 갈 시간도 없다더군요.
저도 제 고충이 분명히 있지만, 제가 더 힘들다고는 차마 말 못 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든 야외 노동자들께 존경과 응원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자: (살짝 목소리 높이며, 정색)
노동자요? 보통 이런 분들은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로 계약하는 걸로 압니다만...?
느림보: (해맑게 웃으며 어깨 으쓱)
아, 그렇네요? 사실 저도 헷갈립니다.
부려먹을 땐 사용자처럼 잘도 부려먹으면서, 책임은 싹 다 떠넘기니까요.
계약서는 ‘개인사업자’인데, 하루 12시간 정해진 현장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일하거든요.
그리고 저를 사장님이라 불러주는 사람도 없어요. (웃음)
기자: (점점 당황하며, 시선 흔들림)
예... 네... 그렇군요... 그렇다면...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됩니까?
느림보: (천연덕스럽게)
아, 물론 본인 책임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덕분에 평소에 안전수칙을 더 철저히 지키게 됐습니다.
무릎 보호대도 하고, 장갑도 꼭 끼죠.
몸이 제 자산이니까요.
사실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안전불감증이 없는 시기일걸요? (웃음)
(기자, 순간 정지된 듯 멍하니 느림보를 바라봄. 마이크는 여전히 들고 있으나 눈빛이 흔들리고,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라 잠시 공백이 흐름)
(현장 소음만 들리며 어색한 정적)
앵커: (급작스러운 화면 전환, 헛기침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예상과는 조금 달랐지만... 아무튼...
(카메라 꺼짐, 다른 뉴스로 전환, 오디오 살아 있음)
느림보:
맞아요, 힘듭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질 것 같고, 계단 하나 오를 때마다 제 한계가 드러나는 기분이죠.
하지만 이 일 덕분에 알게 됐어요.
고통이 제 인생의 주인공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만 않는다면,
이 장면 또한, 내가 버틴 시간, 내가 만들어낸 한 편의 서사가 된다는 걸.
저는 이 일 덕분에 몸이 강해졌고, 마음은 더 단단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명이 꺼지지 않는 한,
저는 계속 제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다음 장면을 연기할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씬에서,
제가 맡은 배역은 바로 느림보 배송원이니까요.
(잠시 정적, 화면 암전)
(자막 천천히 올라옴: “당신은 오늘,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배달했나요?”)
(배경에 계단 오르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
(잔잔한 배경음만 흐르며, 느림보 15화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