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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느림보 배송차입니다

by 레잇 블루머


나는 달린다.

그러나 내 의지는 아니다.

그의 손이 핸들을 잡고, 그의 발끝이 페달을 누른다.

나는 단지 쇳덩이에 불과하지만,

그가 내 곁에 앉는 순간, 나는 그의 또 다른 피부가 된다.

그는 나를 타고 오늘도 길거리를 헤맨다.


아침마다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그는 출근길에 내 시동을 걸며, 짧은 한숨을 내쉰다.

그 한숨은 내 엔진 속에 스며들어, 오래된 바람처럼 떨린다.

나는 그 숨결을 고스란히 삼킨다.

그의 피로, 그의 분노, 그의 절망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은 언제나 나다.


나는 안다.

그가 눈물을 삼키는 순간의 침묵을.

도로 위로 쏟아지는 햇볕 속에, 그의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그러나 그 땀방울 속에서도 희미한 미소가 번질 때가 있다.

땀방울이 햇빛에 반짝이며 작은 빛을 흘릴 때,

나는 그것이 그의 내일 같다고 믿는다.

아주 멀지만, 분명히 닿을 수 있는 내일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느림보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수천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던 그의 다리를,

무거운 짐을 끌어안고 골목 안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비가 내려도 멈추지 않고,

땀이 흘러내려도 고개를 들며,

묵묵히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을.

그 느림 속에는 무너지지 않는 의지가 있다.



나는 차다.

감정이란 것이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내 엔진 소리도 무겁게 낮아지는 듯하다.


어떤 날 그는, 갑자기 속도를 늦추고 창밖을 오래 바라본다.

그는 늘 스스로를 탓하지만, 나는 그의 발걸음이 여전히 앞으로 향한다는 것을 안다.


오늘도 그는 계단을 수천 번 오르내리며 물건을 날랐다.

나는 그 자리에 주차된 채, 그의 빈자리를 지켜봤다.

그리고 돌아온 그는 땀으로 젖은 셔츠와 함께 다시 내 안에 몸을 던졌다.

나는 그 순간마다 깨닫는다.

내가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그의 고단한 삶을 증언하는 유일한 목격자라는 사실을.


그는 오늘도 내 핸들을 잡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는 듯하다.

길 위에 있지만, 목적지는 흐릿하다.

달려야 할 이유와 멈춰야 할 순간 사이에서,

그는 늘 머뭇거린다.

나는 그의 망설임을, 불규칙하게 밟히는 페달과

어지럽게 흔들리는 시선에서 읽어낸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그가 진짜로 가야 할 곳에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멈추어 서는 곳이, 단순한 종착지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오래 머물 수 있는 자리이기를.


그리고 그곳에는 내가 없기를 바란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안락한,

새로운 수단이 그와 함께하길 바란다.


나는 다만 그의 여정을 지켜본 목격자로서,

그의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달리고 싶다.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는 오래된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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