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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May 31. 2023

친정엄마의 지저분한 식탁

엄마집 부엌정리해 드리기

 어버이날에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까진 없었는데, 차일피일 미루었다. 가정의 달 5월이 가기 전에 얼른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5월 내내 날씨 맑더니 가는 날이 장날 인가보다. 간다는 얘기도 미리 하지 않았다. 엄마는 간다고 하면 반찬 만든다고 진을 빼신다. 출발 바로 직전에 말씀드렸다.



딸: "엄마, 지금 애들 데리고 갈게."

엄마: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뭘 와. 다음에 와. 다음에."

딸: “이미 출발했어. 길이 막혀서 1시간 반이면 간데.”



 다음으로 미룰 수가 없었다. 5월의 마지막 주말. 다음 주는 6월이었다. 5월 첫째 주 주말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기념으로 시부모님을 만났다. 둘째 주 주말에는 아들 친구네랑 경복궁, 청와대 나들이를 갔다. 셋째 주 주말에는 친구를 만나 대학로에서 연극을 봤다. 친정까지 한 시간이면 가는데 안 가고 미룬 핑계들이 너무 사소했다. 죄송한 마음에 5월은 넘기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주셨던 반찬통을 가득 실었다. 손이 큰 엄마는 갈 때마다 반찬통에 바리바리 싸주신다. 다리가 아파서 오래 서 있지도 못하는데 하지 말라고 해도 못 말린다. 바쁜 딸 요리할 시간도 없겠다며 반찬은 뭐 하고 먹는지 늘 걱정이다. 그렇게 만든 반찬 끝까지 야무지게 먹지도 못한다. 집안 살림 못 하는 딸은 음식물쓰레기로 버리기 일쑤이다. 철딱서니 없는 딸이다.


 연휴가 3일인데 하룻밤만 있다 올 예정이다. ‘내 할 일도 많고 애들 숙제도 챙기고 혼자 일하고 있을 남편도 걱정되었다. ’라고 핑계 대고 싶지만 이젠 친정에 오래 있어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결혼 전부터 엄마의 집안일을 도와드린 적 없는 딸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집안일은 엄마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3교대 병원근무가 힘들다는 핑계로 집안일을 멀리했다. 엄마가 걱정되어 요리, 청소하는 거 보기만이라도 하라고 하셨다. 그것조차 보지도 않았던 매정한 딸이었다. 결혼하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텐데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결혼하고 친정은 항상 휴식의 공간이었다. 결혼 후 입덧이 심해서 친정에 몇 주간 요양을 할 때도 아이 낳고 아기랑 올 때도 친정집은 휴식의 공간이었다. 오랜만에 집안일에서 벗어나 요리걱정, 청소걱정 없이 쉴 수 있는 곳.


 오래간만에 온 친정은 온전히 쉴 수가 없다. 다리가 불편해 오래 서 계시는 것도 힘드시니 청소도 아빠가 하신다고 했다. 아빠가 청소기로 밀고 걸레질하는 거 정도는 하실 수 있지만 정리정돈이 문제였다. 엄마는 원래도 깔끔하게 정리하진 못하셨다. 몸이 불편하신 뒤로는 대충 얹어놓고 쑤셔놓고 하신 것 같다.


 

엄마의 비좁게 쓰고 있는 식탁과 정신없는 수납 공간


 식탁 위에 가득 들어선 물건들. 대부분이 약통들인데 종류를 셀 수가 없다. 그 외 콘프로스트, 국수, 김 등 식탁에 굳이 있진 않아도 되는 것들도 있었다. 수납할 공간도 부족한데 이것저것 물건들만 쌓이니 점점 식탁을 좁게 쓰고 계셨다. 눈에 안 보이면 잊어버릴까 죄다 밖에 빼놓으니 식탁의 반이상 약봉지와 먹을 거로 쌓여있다. 물건들이 반이상 가득 차 1/4 정도만 식탁으로 쓰고 있는 상황.  답답함이 몰려왔다. 식탁 옆에 수납공간도 정리가 안된 건 마찬가지였다. 어떤 쓰임이 있는 것들 인지 알 수 없는 물건들로 제각각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물건들이 방치되다시피 쌓여 있으니 정신이 없었다.



딸: “엄마, 식탁이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좁아. ”

엄마: “우리 둘(엄마, 아빠)뿐이라 괜찮아. 충분해. ”



 말문이 막혔다. 정리 정돈 못하는 딸내미가 보더라도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꼈다.  그 옛날 엄마는 가구 배치도 혼자 하셨을 정도로 힘이 넘치는 엄마였는데. 지금은 정리 정돈은 뒷전이고 조금씩 요리하는 것도 버거워 헉헉 되는 나이 든 할머니가 되었다. 정리하려면 여기저기 바삐 움직이며 비우고 치워야 하는데 다리 아파 정리는 포기하고 살고 계셨다.




 갑자기 정리 정돈을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정리 선반이 필요했다. 저 많은 물건들이 보기 좋게 진열하려면 최소 2층 선반이 필요했다. 그래서 빠르게 쿠팡에 검색해 보았다. 마땅한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시각 밤 8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근처에 다이소를 검색했다. 깜깜한 밤에 비도 많이 내렸다. 친정을 떠난 지 10년이 넘어 헷갈리고 길도 많이 달라졌다. 집 근처지만 네비를 찍었다. 비도 오는데 살 물건도 많으니 차로 갔다. 낡은 엄마 슬리퍼를 신었다. (슬리퍼도 하나 사드려야겠다.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은 굽 낮은 슬리퍼)


 친정집 근처의 다이소에 도착했다. 지하 1층의 한 바퀴 삥 둘러볼 정도의 작은 다이소였다. 대형 다이소가 물건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을 텐데 작은 규모였다. 물건들이 많이 없었다. 선택의 폭도 좁았다. 물건을 2층 선반으로 수납할만한 게 1개밖에 없었다. 화장실에 놓는 선반 4개를 택했다. 그리고 정리할 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바구니 8개를 골랐다. 포개져 있던 프라이팬이 생각나 정리대도 골랐다.


 바구니들을 겹쳐도 크기가 있으니 쇼핑백에 담을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높이 쌓아 올려 양손 가득 들었다. 무겁진 않았지만 바구니들의 높이는 내 얼굴까지 쌓여 있었다. 계단을 따라 조심조심 올라갔다. 커다란 바구니들 때문에 우산을 쓸 수가 없었다. 우산과 가방은 손목에 걸고 바구니를 들고 차에 까지 비를 맞으며 갔다. 트렁크에 물건을 실어 나르고 차를 탔다. 주차를 하고 또 비를 맞으며 물건을 들고 친정집을 향했다. 비 맞는 거 무지 싫어하던 나인데 비를 맞고도 내 마음은 설레었다. 이 수납 바구니로 정리해서 깨끗해진 공간을 생각하며 발걸음이 가뿐했다.


그렇게 친정 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비도 오는데 그렇게 많이 사 들고 왔냐며 고생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엄마는 바구니들을 보자마자 한소리 한다.



엄마: " 뭐 하는데 바구니를 이렇게 많이 샀어. 짐 안 늘릴 거야. 우리 죽고 없으면 이거 다 버릴 건데, 뭐 하러 늘려. "

(고마우면서 미안하니까 괜히 그러신다)


딸: "엄마는 무슨 그런 말을 해. 정리가 안 돼서 식탁을 이렇게 좁게 쓰는 집이 어딨어. 기다려봐. 내가 알아서 할게."



 정리하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우리 집도 정리 못해서 너저분하다. 정리기술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뭐가 뭔지 너무 많아서 정리하기 어렵다. 대충 비슷한 거 끼리 나열해 본다. 1층에 약통들은 비슷한 종류 크기끼리, 크고 무거운 것은 아래 칸에. 먹을 것은 같은 것끼리, 큰 상자에 조금 들어있는 것은 비우고 작은 상자에, 진열해 본다. 정리하면서 식탁 위에 있을 필요 없는 뜨개질한 수세미나 철 수세미 등은 원래 있던 자리로 옮긴다. 다 정리하고 나니 식탁의 1/3 공간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속이 다 시원하다. 정리하고 나면 ‘엄마가 이젠 좋아하시겠지?’ 했는데 아니다.


엄마: “안 보이면 안 돼. 눈에 보여야 어딨는지 알지. ”


식탁 위 물건들이 정리된 모습

 그래서 못 쓰는 상자를 엎어놔 약통들을 눈에 보이게 높여놓는다. 약봉지에도 무슨 약인지 크게 적어 놓는다. 다 정리하고 나니, 그제야 엄마가 좋아하신다. 식탁 위 선반 정리가 끝났는데도 바구니가 많이 남으니, 엄마는 또 잔소리다.      


엄마: “이 바구니들 왜 이렇게 많이 샀어. 너희 집 다 가져가. 다 가져가.”

딸: “알겠어. 내가 정리하고 남은 건 다 가져갈게. 기다려봐.”     






이제 수납장을 정리한다. 수납 바구니를 이용해서 물건들을 정리해 본다. 치우는 과정에 수납에 필요 없는 것이 나온다. 밥솥을 빼고 넣을 수 있는 레일이 필요 없이 달려있었다. 드라이버를 가져와 레일을 빼는데 아빠가 말씀하신다.      


수납장에 레일을 빼고 있는데 아빠가 수납레일이 망가진 이유를 말해주신다


아빠:  “그 레일선반 왜 없는지 알아? 너희 엄마가 의자 위에 올라가 뭐 뺀다고 했다가 그대로 뒤로 자빠져서 부러진 거야. 나 없을 때 넘어져서 큰일 날 뻔했어. 운동 갔다가 화장실 들른다고 평소보다 늦게 왔는데 집에 와보니 넘어져 있더라. 일어나지도 못하고 전화도 못 하고 큰일 날 뻔했다니까. 다행히 그 레일이 부러지면서 엄마가 덜 심하게 다쳤지. 잘못했으면 크게 다칠 뻔했어. "


 갑자기 내 엉덩방아 찧은 일도 생각이 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때 엄마가 머리를 잘못 부딪히셨으면? 고관절이 부러지셨으면? 실신하셨으면? 레일이 부러지면서 그 위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졌으면? 하는 꼬리의 꼬리를 무는 걱정들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납바구니로 열심히 정리해본 수납장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잘 안 드렸다. 엄마가 안부 전화와도 잘 지낸다는 짧은 대화로 끊기 바빴다. 잘 지내고 계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딸 걱정할까 봐 아프고 다친 일들은 얘기 안 하고 계셨다.      

     

 앞으로 자주 연락하고 좀 더 자주 찾아뵈야겠다.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철이 든 건지 엄마가 나이 드신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둘 다겠지. 사랑한다는 표현도 후회 없이 많이 해야겠다. 그리고 엄마 아빠랑 사진도 많이 찍어야겠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ps. 오늘은 엄마가 주신 오이소박이와 오징어채무침이랑 밥을 꼭 먹어야지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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