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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Jul 12. 2023

어머님이 직접 재배한 '멜론수박'

빨간 수박 아니고 노란 수박 드셔보셨나요?

 

 (시) 어머님, 아버님은 텃밭을 가꾸신다. 재작년부터인가 조그만 땅에 이것저것 심으셨다. 처음에는 상추, 대파, 쑥갓 등 을 키우셨다. 그러다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참외에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땅콩 등 점점 그 종류가 다양해졌다. 텃밭을 가꾸고 돌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주자주 들여다보고 물도 주고 퇴비도 주어야 한다. 때로는 땡볕에 쓰러지실까 봐 걱정도 되는데, 농작물을 가꾸며 힐링하시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어머님, 아버님이 직접 재배하신 것들은 싱싱하고 맛도 좋다. 대파도 심지도 없고 부드럽고 대파 특유의 향이 가득 머금어서 기름에 굽기만 해도 맛있다. 상추도 부드럽고 고소한 맛도 난다. 다른 야채들도 모양은 삐뚤빼뚤 이어도 맛이 참 좋았다.


아버님의 첫 수확 참외와 아이들

 그런데 맛없는 게 딱 하나 있었다. 아버님의 최애 과일 '참외'였다. 아버님의 첫 수확 참외는 아주 노랗게 예쁘고 탐스럽게 잘 익었다. 노란 껍질 속에 아삭하고 달콤한 참외 맛을 기대했다. 그런데 아삭아삭하기만 했다. 참외를 먹는 건지, 무를 먹는 건지 모르겠는 무늬만 참외였다. 아버님, 어머님도 달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그래도 나와 아이들에게 맛을 물어보셨다. 거짓말 못하는 아이들은 바로 "맛없어요."가 나왔고 나는 "정말 싱싱하고 아삭한데 달지는 않네요."라고 대답했다.




시댁에 갈 때마다 대파, 상추, 애호박, 가지 등을 주셨다. 이번에는 멜론수박과 방울토마토 그리고 텃밭에서 가꾼 농작물들로 밑반찬을 만들어서 주셨다.

어머님이 만드신 마늘쫑볶음, 늙은 오이무침, 고구마줄기무침, 갈비찜, 깻잎순볶음, 장조림, 겉절이, 오이지무침



그런데 '멜론 수박?'

처음 들어봤다. 멜론만 먹어보고 수박만 먹어본 나는 멜론수박이 생소했다.


우리 집 첫째는 멜론을 좋아하고 둘째는 수박을 좋아한다. 그래서 멜론수박을 심으신 건가?

특히 둘째는 수박귀신이다. 수박만 보면 수박을 사달라고 하고 한겨울에도 수박이 먹고 싶다는 아이다. 그런데 수박을 잘 사지 않는다. 둘째 말고는 수박을 먹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먹긴 하는데 많이는 안 먹고 신랑과 첫째는 수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둘째도 아직 나이가 어려 한번에 많이 먹지는 못한다. 그래서 수박을 사지 않게 된다.


수박손질도 사실 귀찮다. 귤처럼 손으로 껍질을 까는 과일은 언제 어디서나 먹기 좋은데, 수박은 손이 많이 간다. 커다란 수박을 자르기도 어렵고 예쁘게 자르지도 못한다. 껍질처리도 쉽지 않다. 그래서 수박손질을 자꾸만 미루게 된다.


그날도 미루고 있었다. 주신 날 바로 잘라보지 않고 밑반찬에 밥만 배부르다며 먹었다. 한편 어머님은 멜론수박이 잘 익었는지 맛은 있는지 궁금해하셨다. '조금 이따 해야지.' 하다가 '내일 아침에 해야지.' 하다가 '먼저 사온 과일들 먹고 잘라야지.' 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는 사이, 어머님은 신랑에게 멜론수박에 대해 계속 물어보셨다. 그럴 때마다 신랑은 아직이라며 둘러 댔다. 갑자기 멜론수박 자르기가 숙제가 되었다. 그런 숙제 미루지 말고 얼른 잘라 맛보면 될 것을 자꾸 미루었다. 빨래하다, 애들 밥 먹이다, 외출하다, 설거지하다, 부엌이 너무 어질러져서 등등 자꾸 미루게 되었다.  미루는 핑계가 늘어났는데 결국 수박 자르기 귀찮았던 거다. 그렇게 미루고 미뤄 토요일에 주셨는데 월요일이 되었다. 어머님은 주신날 밤부터 먹어봤는지 전화하셨고 일요일에 아침에도 낮에도 물어보셨다.


 처음에는 왜 자꾸 물어보시지 하며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내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수박이 자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떤 분이 화분에 볼풀공보다 작은 귀여운 수박을 보여 준 적이 있다. 색깔도 모양도 작은데 앙증맞게 달려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수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렇게 작은 수박이 자라나서 커다란 수박이 되는구나 생각했다. 그 작은 수박을 생각하며 이 멜론 수박도 아버님, 어머님의 정성스러운 돌봄으로 자라났겠구나 생각했다.


수박씨를 심고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작은 열매가 맺고 크기가 점점 커질 때마다 손주 먹일 생각에 애지중지하셨을 마음이 떠올랐다. 아주 작은 수박 열매가 열리고 자주 들여다보며 물도 주셨을 거다. 잡초도 뽑고 가지도 치고 흙도 고르며 돌보셨을 거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멜론 수박을 보며 이 수박은 귀여운 손주들 줘야지 생각하셨을 거다. 그렇게 키우다 볼링공보다 크게 자라고 나서 갓 따서 주신 거다. 딱 1개뿐이어서 수박을 따면서도 맛이 있을까. 잘 익었을 까 걱정되는 마음이셨을 거다.





그런 마음 이해하며 월요일 아침 아이들이 등원하자마자 잘라보았다. 속이 빨갛지 않고 노란 게 신기했다.

메론수박 드디어 잘라보다


맛은 기대하지 않았다. 참외를 맛봤기에 맛있어 보여도 속이 달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 맛은?


역시 예상대로 달콤하지 않았다. 밍밍했다. 용과 같은 맛이랄까? 그런데 나쁘지는 않았다. 참외는 먹으며 무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이건 그래도 과일 같았다. 엄청 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먹다 보니 시원하고 상큼해서 계속 손이 갔다.


과일가게에서 이걸 샀으면 "아 괜히 샀어. 돈 아깝다."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버님 어머님이 직접 농사지은 거라 그 노력과 수고로움을 알고 맛보니 더 귀했다. (실제로도 참외보다는 더 상콤하고 시원했다. 맛이 더 좋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지도)


계속 우리가 멜론수박을 먹었는지 궁금해하는 어머님께 바로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저희 멜론수박 먹어봤어요. 잘 익었고 맛있던데요? 처음에는 밍밍한 것 같았는데, 먹다 보니 상콤하고 시원하고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어머님이 직접 재배하신 거로 만들어주신 밑반찬도 최고예요. 맛보다가 너무 맛있어서 바로 밥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님은 무지 기뻐하셨다.


"환이(우리 둘째)가 수박 좋아하니까, 생각나서 주고 싶었어. 환이도 맛있대?"


(순간 당황했다;;)

둘째는 당연히 맛보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 맛보지 않았다는 말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아. 예 어머니. 당연하죠. 환이도 무지무지 맛나데요. 할머니가 직접 재배하신 거라 더 달콤하다고 했어요!"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렇지만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며 불편한 내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그때부터 내 마음은 요동을 쳤다) 속으로 생각했다. 둘째가 집에 오면 바로 먹여봐야지. 그럼 분명 맛나다고 하겠지? 생각했다. 평소 우리 둘째는 수박이라면 맛이 밍밍해도 맛나다며 잘 먹는 아이니까 걱정이 없었다. 그저 빨리 먹여보고 싶었다.


그렇게 둘째를 기다리게 되었다. 둘째가 유치원 갔다가 학원을 바로 가는 날이라 학원 갔다 오면 바로 먹여야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고 몸도 살짝 뜨거운 것 같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더니 열이 나고 있었다. 바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은 장염기가 있다고 하셨다.


장염기가 있어 열도 나고 아픈 아이를 보며 나는 어리석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큰일이네. 어머님한테 둘째가 맛보고 좋아했다고 했는데 먹여볼 수가 없네.'


아픈 아들을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철부지 같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할걸. 나만 맛보았고 둘째는 이따 하원하면 바로 줘보려고요.라고 얘기할걸.'


그렇게 얘기하면 둘째 맛본 이야기를 또 전화드려야 할 것 같았다. 순간 전화를 한 번에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걸까? 이런 마음이 들었다는 게 죄송스러웠다.




다행히 둘째는 장염기가 심하지 않았다. 구토도 안 하고 밥도 잘 먹었다. 다만 아무거나 잘 먹고 양껏 많이 먹는 아이인데 먹는 양이 좀 줄었다. 둘째에게 할머니가 직접 재배하신 멜론수박이라며 한번 맛보라고 했다. 아주 소량이라도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먼저 했던 선의의 거짓말을 거짓말이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결국 아이는 맛을 보았다. 그리고 맛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이게 뭐라고 속으로 '오-예!'를 외쳤다. 이제 드디어 사실이 되었다. 거짓말 아니고 미리 얘기한 걸로 되었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혼자 찔려서)


앞으로는 어머님 아버님이 농사지은 과일을 주셨을 때 바로 먹어봐야지. 미루지 말아야지. 다짐 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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