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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ug 23. 2023

더운 여름, 엄마는 남의 집에 가는 건 아니라고 했다.

반갑지 않은 손님


연락 없이 불쑥 찾아오는 건 그녀의 특걸까.




아침부터 여자 정신없이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아이가 남기고 간 에그스크램블을 입으로 쓸어 담으며 세탁실로 향했다. 볕이 좋아 오늘은 꼭 햇볕에 빨래를 야지 하면서.


세탁기가 다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동, 모닝 요가로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그것도 모자라 30분을 러닝머신 에서 뛰었다. 이 주르륵 이마와 뒷목에서 흘러내렸다.


벌게진 얼굴로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세탁기에서는  마침 빨래가 다 되었다는 알림이 울렸다. 오늘 내내 초록불만 켜질 것  좋은 예감. 여자는 아아 한 잔으로 더위를 식힐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직한 빨래통을 들고 후다닥 베란다로 발을 들...


그 찰나!

갑지 않은 손님이 등장했다.

기온 고치경신한다는 바로 그날에 말이다.








말을 못 해!

제발. 플리즈. 미리 연락하고 와 주세요.

어서 말하라고! 당당하게!



저 깊은 단전에서부터 울리는 마음의 소리였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뱉어내려니 심장써부터 쿵쾅쿵쾅 뛰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렇게 외치고 싶었던 마음의 소리는 쏙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입고 던 옷 때문이었다. 그녀 옷은 말도 못 하게 땀에 푹 젖어있었다. 원래 연둣빛으로 작되는 옷은 땀에 절어 찐 초록에 가까웠다. 그 모습을 대면하고 있자니, 마음의 소리는 벌써 로켓을 타고 우주 저 멀리 날아갔던 것이다.


여자는 얼른 냉수 한잔을 내왔다.

녀는 단숨에 들이켰다. 탈이 나면 어쩔까 싶을 정도로 꿀꺽꿀꺽 마셔댔다. 그러고는 꼼짝도 안 했다. 시원한 수박을 접해도통 입에 대지 않았다.


평소 았으면,

그녀 옆에 앉아 이것저것 물었을 여자였다. 아님, 그녀 이야기에 맞장구라도 쳤을 이었다. 하지만 여자도 지금은 그녀와 이야기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


대신 여자는 옷장을 뒤적거렸다.  

그녀가 갈아입을 만한 옷이 뭐 없을해서였다. 작아져서 못 입고, 아까워 걸어 두기만 한 셔츠가 눈에 띄었다. 옅은 베이지색 리넨 셔츠. 적당히 고급스러운 것이 그녀에게 딱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좀 갈아입으시라는 소리에도,  좀처럼 움직이지 았다. 


무래 더위에 진이 빠진 게 틀림없었다. 

샤워 한 판 하고 낮잠이라도 푹 주무시면 좋으련만. 그녀는 멍하니 앉아 창 밖만 응시했다.





별일 아니라 생각했는데, 슬슬 걱정이 밀려왔다.

여자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도 깜짝 놀랐다. 이 더위에 어쩐 일로 오신 거냐고. '내가 알 턱이 있나요. 왜 오신 건지. 말도 않고 저렇게 수도승 마냥 앉아계시기만 한 것을.' 여자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도 꾹 참았다. 혹여 그녀가 듣을까 봐서였다.


여자의 남편은 점심때라도 잠 들리겠다 했다. 구세주가 등장한다는 소식에  여자는 벌써 마음이 놓였다.


여자의 남편은 점심 밥때를 딱 맞춰 등장했다. 센스에 눈치까지 챙긴 남자의 두 손에는 명태 비빔냉면과 물냉면 그리고 찐만두가 들려 있었다. 두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여자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물냉면을 호로록호로록 맛있게도 드셨다. 바닥이 드러나도록 한 그릇  다 비우셨다. 이제야 꿉꿉함을 느끼셨는지 옷도 갈아입으셨다. 진짜 주인을 찾아간 듯, 옷은 나보다 그녀에게 훨씬 잘 어울렸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도 심심해서 너희들 사는 거 보려 와 봤다는 그녀.

그녀는 냉면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자 몸을 들썩였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시겠단다. 이 폭염에 힘들게 오셔서 고작 냉면 한 그릇 드시고 가시겠다고? 손주도 보고 가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여자는 참았다. 그렇게 그녀는 여자의 남편이 열어 주는 문을 총총걸음으로 나섰다.





생각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가신 그녀 덕분에 

여자는 아싸! 를 외쳤다. 그제야 잊고 있었던, 아침에 못 마신 아아가 생각났다. 여자는 경쾌하게 오도독오도독 얼음까지 씹어가며 아아를 즐겼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폭염에 우리 집을 방문하신 그녀.



빨래를 널으러 간 베란다에 여치 한 마리가 들어와 있었어요. 온갖 곤충을 무서워하는 저는. 소리를 꽥 지르고 말았지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여치가 무척 지쳐 보였습니다. 그녀에게 물을 떠다 주었어요. 냉장고 안을 뒤져 케일 한 장도 대접했고요.


나중에 편이 방충망을 활짝 열어, 그녀를 밖으로 유도했습니다. 그녀는 금세 포르르 날아올랐어요.


처음 보았을 때는 예쁜 초록 옷을 입고 있었는데,  돌아갈 때는 보호색을 띤 베란다 바닥 색깔 옷을 입고 있었어요.


아직도 그 여치가 어떻게 베란다 안으로 들어왔는지

의문입니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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