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시작된 날

어린 나

by 이화

따뜻한 햇살이 스며듭니다. 나른한 공기까지 함께 눕혀 두고, 어딘가를 천천히 걷고 있는 아이의 작은 다리가 보입니다. 기억이 처음으로 또렷해지던 날, 아마도 그날인 것 같습니다. 세상과 처음 인사를 나누던 날은 생각해보니 참 포근한 하루였네요.


마른 듯 거칠어 보이는 땅 위에서 아이는 작은 개미들을 잡아보려고 한참이나 애를 씁니다. 이내잡히지 않는 개미 탓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살짝 찡그려지기도 합니다. 개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금세 흥미를 잃은 듯하지만, 아이는 그 자리에서 여전히 자기만의 놀이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뜨거운 줄도 모르고, 한낮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땅 위에서 오래도록 혼자만의 시간을 이어갑니다.


세상에 막 나온 아이에게는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일이 그저 신나고 즐거운 놀이였던 거예요. 시골의 풀 냄새, 흙 냄새, 그리고 바람과 햇살의 냄새까지,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던 시간들. 기억이 시작되던 그날의 장면은 다행히도 아주 따뜻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첫 기억이야말로 아이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작은 불씨가 되어 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포근한 느낌 속에서 호기심이 조용히 피어나기 시작하던 그날부터, 아이는 이미 세상으로 걸어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을 거예요.


이제 그 아이의 기억 조각들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궁금합니다. 그 아이의 삶의 조각들은 그 뒤로 어떤 계절들을 지나, 어떤 사람들과 만나며,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왔을까요? 때로는 흩어지고, 때로는 다시 모여서, 지금의 그 아이를 이루는 긴 삶의 노트가 되어가고 있겠지요.그 이제 그 글 서랍을 조심히 한 번 열어보도록 해요.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