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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Apr 04. 2024

그렇게까지 신 나야만 속이 후련했냐!

시어머님의 절친인 부자아줌마(가명)는 호탕하고 손이 크며 부지런하나 답답 고구마를 100개쯤 삼킨 것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신다. 우리 부부는 월 1회 정도 남편의 본가에 가는데 그때마다 어머님으로부터 부자 아줌마에 대한 놀랍도록 신기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최근에는 작년부터 벌어진 부자아줌마 남편의 외도가 핫이슈인데 2024년 동시대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야생 버라이어티가 펼쳐지고 있었다. 부자아줌마의 남편은 중장비 운전을 하면서 관련된 여러 사업을 하는 재력가이다. 하지만 10년 넘게 들어온 얘기에 따르면 남편의 성격이 매우 욱하고 아무 데서나 아내를 무시하고 면박을 주며 조선시대에서 온 것 같은 시어머니까지 가세해 부자아줌마의 한탄이 가실 날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무려 두 명의 연상녀들과 바람이 나서 급기야 집을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한 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군 같은 기세의 부자아줌마도 가만있지는 않았는데,  상간녀를 찾아가 무릎을 꿇리고 물을 뿌리고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과정을 핸드폰으로 녹화해 친구들에게 전송까지 했다는 것이다. (맙소사! 어머님은 그 영상을 나에게까지 보여주셨다!) 영상 속의 상간녀는 엉망진창이 된 집에서 울고 있었고, 그 여자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부자아줌마가 있었다. 70을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치정싸움은 마치 자칼과 하이에나 같은 야생의 욕망이 살아숨셨다.  


이 이야기를 작년부터 올해, 시댁에 갈 때마다 어머님을 통해 생생하게 중계를 받고 있는 나는 정말 말문이 딱 막힐 뿐이었다. 쫄보에 새가슴인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어머님의 얘기 속에서 부부의 행동들은 민사, 형사 합 전공자가 아닌 내가 아는 범법만 5가지가 넘었다. 간혹 남편이 어머님과 전화 통화로 그 뒷이야기까지 전해주곤 하는데, 오늘 아침 산책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왔다. 부자 아줌마 부부는 경찰까지 출동하는 육탄전을 치르고도 결국 함께 살기로 하셨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면,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외도를 하는 것은 욕망을 갈구하는 크기가 너무 크거나, 채워지지 않은 욕구의 크기가 너무 커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위로 쌓고자 하든 없는 것을 채우고자 하든 부적절하지만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행위라는 것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충동이 큰 사람, 절제나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도 외도를 저지르기 쉬운데, 순간의 욕구를 참기 어려워한다는 점에서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갈망이 큰 것이라 생각된다. 안타까운 것은 충동성은 기질이기 때문에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바람을 한 번도 안 핀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피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외도로 인한 부부문제로 상담실을 찾아오는 내담자들을  보면 순간의 충동성으로 외도를 저지르고 감당하지 못해 회피하다 상담실까지 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담실까지 온다는 것은 그래도 다시 잘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큰 것이니 그래도 아주 망나니들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기도 다시 좋은 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회복하지 못한 채 이혼까지 가기도 한다. 외도를 저지르는 것은 욕구의 충족이지만, 그 이후의 대처는 그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바람을 피울까 봐 걱정한 적이 없다. 남편은 나와 비슷한 사람 같으나, 그래도 내가 아니니 그가 어떨지 예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란 사람은 정해진 대로 사는 세상 재미없는 사람이다. 연단 위 계획을 세우고, 한 달 한 주 그날의 일들을 미리 정해놓고 움직인다. 더 큰 이득보다는 위험을 줄이는 것이 편하고 더 행복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혹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남편에게도 내가 기뻐할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길 부탁한다. 나는 신뢰롭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잘난 척하는 재미로 사는데 외도, 거짓말이라는 오점을 남겨 평생을 쭈구리로 살걸 생각하면 섬뜩할 정도다.    


남편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신나려고 할까? 그냥 조금만 신나면 되는데."


안 되니 그렇게 된다는 걸 알지만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래도 나는 그와 조금만 신나면서 살고 싶다. 돈도 조금만 벌고, 아주 맛있는 것도 안 먹어도 되고, 비싼 호텔이나 명품도 필요 없다. 맥주는 일주일에 1~2번 남편과 한 캔을 반으로 나눠 먹으면 되고 커피도 테이크아웃해서 공원에 앉아 한 잔을 둘이 나눠마신다. 흥청망청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심장이 안 좋아 술을 많이 마실 수 없고, 우리 둘 다 카페인에 취약해서 에스프레소 한 잔 분량 정도는  마시고 싶지만 마시면 잠이 안 오거나 속이 아프니 미리 조심한다. 극도의 도파민 같은 건 한 번 맛보면 또 원할까 싶어 처음부터 느끼고 싶지도 않다.


심심한 평양냉면처럼 자극적이지 않지만 길~~~ 게.

조금만 신나고 덜 불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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