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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Apr 25. 2024

넌 몇까지 행복해?

분기별로 한 번씩 남편에게 물어본다.


- 오빠는 몇까지 행복해?


이미 10년 넘게 묻고 있기 때문에 그는 감정을 수치화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 원숭이신사가 소리만 안 지른다면... 9~10.

- 와. 미쳤다.

- 그럼 스트레스는 몇? '10은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다.

- 1~2?


월급과 맞바꾼 그의 주 4일제가 그나마 있던 스트레스 1~2를 더 없앴다. 작년에 물었을 때 3~4였는데 그나마 더 낮아진 것이다.


- 그지? 네가 이렇게 행복하고 스트레스도 없는데 사람들이 내가 우리 얘기하면 다들 오빠가 불행할 거라고 생각한다니까.


사실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 부부의 얘기를 하면 다들 혀를 끌끌 차고, 심지어 엄마마저 딸의 '지랄 맞음'에 혀를 내두른다.


우리에게는 부부 만의 여러 가지 루틴들이 있는데 다 내가 만들었다. <부부대화시간>은 시도 때도 없이 있는데 주로 퇴근 후 잠들기 전에 매일 있고 '나만 바라봐'가 규칙이다. 텔레비전도 스마트폰도 전원 오프다. <부부회의시간>은 매주 있고, 아침 산책이 끝나면 30분 간의 <부부티타임> 이 있다. 반복되는 회의 안건은 한 주의 새로운 일정 확인(일정은 거의 없다), 다가올 휴가 논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오늘의 식단이 있다. 연초에는 <가족시무식>이 있는데 이때만큼은 아들까지 모여 지난해 목표 달성 유무를 점검하고 올해의 목표를 새로 정하고 공유한다. 남편은 "저게 삼성전자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도대체 왜 집에서 저러는지 모르겠다." 라며 10년 넘게 안타까워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라면은 주 1회 맥주는 주 2회 반 캔씩, 근육 운동은 주 2회, 식탁에는 가족마다 정해진 자리가 있고, 침대와 서랍, 옷장에도 각자의 자리가 있다.  결혼할 때 남편이 나에게 평생 리모컨 사용권을 줬는데 그 덕에 나는 언제든 내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고 안 보고 싶을 때 텔레비전을 끌 수도 있다. 남편은 한 번씩 이게 집이냐 군대냐 한탄을 하지만 쿠데타를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다. 남편은 연 3~4 회 정도 친구들을 만나는데 나는 그가 친구들을 만나면 꼭 그날 들은 새로운 이야기 3가지 이상을 들려달라고 조른다. 졸려하는 남편의 눈을 엄지와 집게로 크게 벌려 고문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피할 방도가 없다. 나는 그가 여전히 궁금하고 재밌다.


결혼식 때도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도 존경하는 위인이  명도 없던 내가 나의 신나는 결혼식에서 인정할  없는 누군가의 '훌륭한 말씀' 듣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주례를 빼고 부부가 작성한 사랑의 서약을 읽고 부모님과 절친  명씩의 축사를 듣는 것으로 주례를 대신했다. 주례를  거라고 하니 시부모님께서 무슨 농담을 하냐고 웃으셨지만, 진짜 없다는 것을 알고  당황하셨다. 웨딩촬영을 따로 하지 않았고, 결혼행진곡 대신 캐논 변주곡과 over the rainbow 들어갈  나갈  틀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계획대로 결혼식은 진행되었다. 나는 너무 재밌고 신나서 결혼식 내내 환하게 웃었다. 처음 결혼식 준비 회의를  때도 남편은  너무 해맑게 "원하는 대로  ."라고 했다가 진땀을 뺐다.  


그 지랄 맞음이 나의 '과한' 통제라는 것을 안다. 내 꿈은 우리 집 독재자지만 그러다 철퇴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분기별로 남편의 행복 지수와 스트레스 지수를 점검하고 건의사항을 수용한다. 나의 컨트롤 안에 있고, 그를 행복하게 하고 힘듦을 줄이는 일이라면 적극 수용한다. 육아를 할 때도 대부분이 다 내 뜻대로 되었지만 남편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철통같이 지켜줬다. 그는 반드시 야간에 8~10시간 집중수면시간을 유지해야 하고 제 때 밥을 먹어야 한다. 밤 10시 넘어서는 위기 상항이 아닌 이상 그를 깨우지 않았고 퇴근하고 그의 저녁이나 출근 전 점심을 거르게 하는 일도 없었다. 아이를 기르면서 10년 넘게 남편이 아이 때문에 밤잠을 설친 것은 내가 감기몸살로 몸져누웠던 하루와 아들이 고열로 응급차를 탔던 때 딱 두 번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의 저주? 때문인지 나는 꼭 나 같은 아들을 나은 덕에 그에게만큼은 무엇 하나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집에서 처럼 내 맘대로 하진 않는다. 사회화된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 하지만 날 자기들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12개의 레이더로 반드시 포착한다. 그럴 때는 호저처럼 가시를 세웠다가 로빈후드처럼 쏜다. 미친 청개구리이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면 뒤로 가고, 서라고 하면 소리 지른다. 그래서 아직도 남편이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는 "미쳤냐?"가 있다. 그는 결코 나를 다 이해할 수 없고, 그러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둔다. 그는 그가 가능하게 펼쳐준 바운더리 안에서만 내가 천방지축 날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기준에서 나는 과하지만, 내 기준에서 내가 많이 참는다는 것을 그는 이해한다기보다는 그냥 수긍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여전히 된통 당하지 못해서인지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고 종종 말한다.


- 오빠 내가 오빠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면 오빠는 얼마나 더 행복할 것 같아?

- 그럼...... 12?

- 어휴 12! 사람이 꼭 그렇게 까지 신날 필요는 없지?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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