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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Sep 12. 2024

4. 리버사이드 10시

윤영은 홧김에 간 클럽에서 매혹적인 젊은 남자와 키스를 하는데...

지난 이야기

3. 평범하게 나쁜 부모

수시접수를 끝내고 배달알바를 하던 지수는 은호의 연락을 받고 나간다. 은호의 얘기를 듣고, 이제까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부모는 그저 평범하게 나쁜 부모였던가 하고 웃음이 난다.

https://brunch.co.kr/@highnoon2022/297


윤영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아침이었다. 집안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온몸이 욱신거렸고, 유리 조각이 박힌 발바닥에 피딱지가 들러붙어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옆구리가 결려 몸을 필 수가 없었다. 윤영은 바닥에 웅크리고 누웠다. 울음을 참으려 해도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꺼억 꺼억하는 울음소리가 윤영의 몸 밖으로 삐져나왔다. 목 안이 마른 가지처럼 쩍 갈라지는 것 같았다.      


한참을 울고 난 윤영은 화장대 서랍에 숨겨둔 전자담배를 꺼냈다. 몇 번을 끊으려 했지만, 담배만큼은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윤영은 도저히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핸드폰에는 이미 여러 번 자신이 일하는 헤어샵에서 부재중 통화가 와 있었다. 윤영은 최근 통화목록을 눌러 전화했다. 카운터에서 일하는 젊은 여직원의 상냥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몸이 너무 안 좋아 며칠 출근할 수 없음을 알리고 전화를 끊었다. 윤영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윤영은 안방으로 가 서랍장 안의 하얀 구급 통을 꺼내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새끼발톱만 한 작은 유리 조각이 윤영의 발에 박혀 있었다. 윤영은 손톱으로 유리 조각을 뽑아냈다. 피딱지가 갈라지며 붉은 피가 뚝뚝 흘렀다. 휴지로 찧어진 발을 꾹 눌러 지압하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윤영이 일하는 헤어샵 원장이었다. 윤영보다 몇 살 위의 원장은 윤영과 사사건건 부딪쳤었다. 하지만, 샵의 위치나 일하는 조건이 나쁘지 않아 참고 다녔다. 윤영도 작년까지는 자신의 미용실을 운영했었다. 벌이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은호가 중학교에 가면서 아들을 더 신경 써야 한다는 부담에 자신의 미용실을 넘기고 집 근처 미용실에 취직했다. 주 5일에 야간 근무를 하지 않아 은호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김 선생! 이렇게 갑자기 빵꾸를 내면 어떻게? 어제까지 멀쩡했잖아. 진짜 아픈 거 맞아?      


휴지로 눌러놓은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마른침을 삼키려 하자 기침이 나왔다. 가슴이 벌어지자 갈비뼈와 옆구리 통증에 신음이 삐져나왔다.      


- 아이씨. 그럼 뭐 거짓말이란 거예요?

- 김 선생 지금 뭐라 그랬어?

- 됐어. 관두면 그만이지.       


윤영은 속이 후련했다. 이렇게 홀연히 일을 그만둔 적은 처음이었다. 윤영은 은호를 책임져야 했다. 윤영은 은호가 태어나고 1년간 미혼모의 집에 있으면서 미용 일을 배웠다. 퇴소 날짜가 되었을 때, 어린 아들을 시설에 보내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낮에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며 쪽잠을 잤다. 윤영은 손끝이 야물고 센스가 있었다. 은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겨우 자리를 잡고 아이를 데려올 수 있었다. 윤영은 손에 독한 미용 약품 독이 올라도 병원 한번 가지 않고 일을 했었다. 그녀의 손은 습진으로 껍질이 벗겨져 난 상처가 아물고 덧나기를 반복하며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굳은살로 단단해져 있었다.      


윤영은 마루에 널브러져 있는 은호의 물건들을 그대로 아들의 방으로 밀어 넣었다. 티셔츠 하나 깨진 유리 조각 하나까지 끌어모아 아들의 방으로 구겨 넣고 문을 닫았다. 아들의 방은 짐으로 꽉 찬 여행 트렁크처럼 입구가 터질 것 같았다. 윤영은 문을 살짝 열고 손만 빠끔히 넣고 잠금 버튼을 누르고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리곤 현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바꿨다. 원래 번호 0829는 자신이 태어난 날과 아들이 태어난 날의 조합이었다. 윤영의 머릿속으로 아들의 생년월일, 전화번호, 반 번호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윤영은 머리를 흔들어 털었다.      

     

0920. 윤영은 벽에 걸린 달력에서 오늘 날짜를 보고 눌렀다. 윤영은 화장실에 숨겨놨던 담배와 라이터를 거실로 가지고 왔다.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한 손으로 휴대폰 연락처를 눌러 스캔해 보았다. 핸드폰 연락처는 그룹별로 잘 정돈돼 있었다. ‘가족, 은호 학교, 은호 친구들, 친구, 미용실, 기타.’ 윤영은 ‘기타’를 누르고는 천천히 이름을 살폈다. 마지막쯤 ‘혜림’이란 이름을 눌렀다. 혜림은 윤영이 일하던 미용실의 인턴이었다. 원장의 등쌀에 하루가 멀다고 그만두려는 혜림을 반년 이상 붙잡았던 것은 윤영이었다. 혜림을 만났을 때 그녀는 고등학교도 그만둔 흔히 말하는 ‘노는 애’였다. 윤영은 혜림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혜림도 자신을 챙겨주는 윤영을 언니처럼 따랐다. 하지만 윤영의 노력에도 혜림은 원장과 싸우고 결국 나갔다. 혜림이 그만두고 얼마 뒤, 미용실 포스기에서 현금과 동전까지 싹 다 털린 사건이 있었다. 원장이 경찰에 신고하고 CCTV를 돌려봤을 때, 모자를 푹 눌러쓴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찍혀있었다. 윤영은 그 남자가 혜림이 만나던 남자애라는 감이 왔지만, 굳이 나서지 않았다. 그 뒤로 혜림과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를 묶어놓았던 잠금 하나가 해제되어 버린 것 같았다.      


- 누구?

- 나야 헤어블랙에서 같이 일했던 윤영쌤.

- 어 누구라고요?

- 헤어블랙 김윤영.

- 오! 윤영쌤! 웬일이에요?

- 오늘 뭐 해? 너 노는 애들 있지? 괜찮은 애들로 다 불러. 내가 살게.

- 헐! 웬일?     


혜림에게 구구절절이 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누구라도 만나서 지금 이 시궁창을 잊고 싶었다.      


- 오늘 안 그래도 아는 오빠들이랑 클럽에서 놀 거야. 그 오빠들 개부자야 그러니까 돈 신경 쓰지 말고 와! 완전 섹시하게 입고. 알았지! 리버사이드 10시!       


혜림이 어느새 반말하고 있었지만, 윤영은 개의하지 않았다. ‘섹시’ 윤영은 혜림의 말을 되뇌었다. 윤영은 옷장의 옷들을 둘러보았지만 입을 만한 옷이 없었다. 그녀는 집에서 입던 헐렁한 수면 바지와 면티, 속옷을 벗고 알몸으로 스탠딩 거울 앞에 섰다. 허리를 세우려니 옆구리와 등이 결렸다. 옆구리와 등 쪽으로 멍이 들어있었다. 언제 차였는지 허벅지에도 붉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윤영의 부드럽고 하얀 피부와 굴곡 있는 몸매는 자신이 혐오하던 엄마를 똑 닮아있었다. 어릴 적 윤영의 엄마는 딸이 옷을 갈아입을 때면, 남자 열은 후릴 거라며 비아냥거리곤 했다. 윤영은 한 손 가득 들어오는 자신의 가슴을 꽉 감싸 쥐었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의 엄마가 아닌, 32살 여자의 몸이 거울에 들어왔다.

      

윤영은 그대로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홈쇼핑에서 산 속옷 세트에 같이 있던, 망사로 된 와인색 T팬티와 브래지어를 꺼냈다. 팬티는 상표도 떼지 않은 채였다. 새 속옷의 쫀쫀함이 피부에 전해졌다. 화장대 앞에 앉아 천천히 메이크업을 하고 드라이를 했다. 혜림을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아직 두어 시간이 남아있었다.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밥 먹을 생각이 들진 않았다. 마땅한 옷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뒤적여 이십 대에 입던 짧고 타이트한 원피스를 꺼냈다. 오래전 옷이지만 사놓고 거의 입지 않아 새것 같았다. 다행히 아직 몸에 맞았다. 미용 일을 시작하고 10년째가 되던 해,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큰맘 먹고 장만한 명품 하이힐을 꺼냈다. 윤영은 생일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크리스마스의 산타는 한 번도 그녀의 집을 들르지 않았다.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챙겨주지 않을 선물을 살면서 한 번은 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까워서 한 번도 신지 않았던 하이힐을 꺼냈다. 윤영은 유리 조각에 찧긴 발을 빳빳한 새 하이힐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통증이 전해졌지만, 생생히 살아있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9월 20일 리버사이드 10시  

    

윤영은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혜림이 말한 장소에 도착했다. 밖은 어두웠고  클럽 안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춤을 추는 무대에는 조명과 사람이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쪼개졌다 다시 붙었다. 모두가 취해있는 것 같았고 모두가 미쳐있는 것 같았다. 무대 앞 양옆으로 턴테이블과 장비가 놓인 DJ 박스가 있었고, 힙합 스타일에 팔에 문신을 한 DJ가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디제잉을 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 선택된 EDM이 윤영의 심장을 쿵쿵 내리쳤다. 한쪽 벽면에 스탠딩 테이블과 술과 음료를 파는 바가 있었다. 천장에 달린 미러볼에서 형형색색의 불빛이 번쩍였다. 윤영은 바에서 맥주 한 병을 사서 바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혜림에게 다시 연락했다. 쿵쿵 쿵쿵 달음박질치는 전자음이 망치가 되어 온몸을 부수는 것 같았다.      


맥주 한 병을 다 마실 무렵이 되어서야 홀이 아닌 복도 끝에서  혜림이 나타났다. 혜림의 하얗고 너풀거리는 루즈핏의 셔츠에 미러볼의 조명이 비춰 형광빛이 반사됐다. 혜림의 풍만한 가슴이 푹 파인 셔츠 너머로 보일 것만 같았다. 오랜만이었지만 혜림의 얼굴을 알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혜림을 발견한 윤영이 먼저 그녀에게 손짓했다. 혜림이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웃는 얼굴로 윤영에게 다가왔다. 혜림의 핑크빛 입술이 윤영의 볼에 닿을 것만 같았다.       


- 쌤! 오~ 이리로 와.      


혜림이 윤영을 한 번 쓱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윤영은 혜림을 따라 테이블 너머의 복도로 걸어갔다. 작은 LED 전구가 바닥에 징검다리처럼 총총히 박혀 있었다. 혜림이 클럽 안쪽의 룸으로 들어갔다. 룸의 문이 닫히자 음악 소리가 순간 멀어지는 것 같았다. 룸으로 들어가자 음악 소리가 순간 멀어지고 혜림과 같이 온 남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혜림이 테이블의 가장 안쪽에 앉은 남자의 귀에 대로 속삭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윤영을 위아래로 한 번 위아래로 보고는 이내 혜림의 옆구리에 팔을 휘감고 다시 술을 마셨다. 테이블 주변으로 윤영 또래의 남자들과 언뜻 보기에도 십 대 여자애들이 남자들 사이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중에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윤영 쪽으로 걸어 나왔다.       


-언니! 갠 지수!      


혜림은 자신의 자리에서 소리쳐 이름만 알려주고 다시 그녀의 파트너에게 고개를 돌렸다. 윤영과 지수의 눈이 마주쳤다.       


-민지숩니다.      


지수는 윤영에게 악수라도 하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큰 키를 구부정하게 구부려 손을 내미는 지수의 모습이 상냥했지만 수줍었다. 낮고 맑은 저음의 성숙한 목소리가 윤영을 반가워한다고 느껴졌다. 윤영은 지수의 손을 잡는 대신 똑바로 보고 살짝 웃었다. 지수의 쌍꺼풀 없는 눈이 매서워 보이면서도 선했다. 다시 고개를 숙인 지수가 쭈뼛쭈뼛 윤영 옆에 앉았다. 혜림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가 익숙하게 글라스를 늘어놓더니 양주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만들었다. 술잔이 몇 차례 모두에게 돌아갔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윤영의 몸이 술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금세 자신이 얼마나 마시고 있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혜림의 다른 친구들과 어린 여자애들 몇몇이 룸과 홀을 왔다 갔다 했다. 어느 순간부터 윤영이 보는 방안의 풍경은 아날로그 사진기로 찍어놓은 사진처럼 토막토막 저장됐다.     


혜림의 남자친구가 혜림의 목에 애무하는 모습. 남자의 침으로 번들거리는 혜림의 목. 혜림이 입은 짧은 미니스커트 속을 헤집는 남자의 손. 별일 아니라는 듯 술과 과일을 먹는 혜림의 립스틱이 번진 입술. 그리고 윤영을 바라보는 지수의 눈빛. 부드럽고 까만 남자의 머리를 빗어 넘기는 윤영의 손. 클로즈업된 지수의 입술.     


룸의 문이 잠깐 열리면서 밖에서 터져 나오는 쿵쿵거리는 전자음이 윤영의 마른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윤영은 지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혀끝으로 남자의 입을 고 부드럽고 미끈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윤영의 몸이 뜨거워졌다. 키스하던 윤영이 지수의 바지 앞쪽으로 손을 넣었다. 지수가 순간 놀라 윤영의 입술을 깨물었다. 윤영의 입안으로 피비린내가 났다. 윤영은 멈추지않고 지수의 허벅지 위로 올라앉았다. 어린 남자의 손이 조심스럽게 윤영의 다리를 타고 들어와 가슴에 닿았다. 윤영의 살갗에 단단해진 남자의 성기가 느껴졌다. 생각은 모두 없어지고 몸의 감각만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멀어지면서 윤영의 기억은 어느 순간 페이드아웃 되듯 사라져 버렸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 꿈결처럼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윤영이 의식을 차렸을 때는 유치장 안이었다. 맨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혜림은 그녀 옆에서 아직도 의식불명이었다. 윤영은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위장 안에 가득 찬 알코올이 목으로 밀려 나올 것 같았다. 다행히 윤영의 핸드백이 자물쇠라도 채운 듯 팔에 걸려 있었다.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알림을 확인했다. ‘오후 10:53분 9월 20일’ 핸드폰 화면의 부재중 전화 표시와 카톡 아이콘에 몇십으로 적힌 빨간 숫자가 보였다. 은호였다. 문득 자신이 어제 현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바꿨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차, 싶었지만 다 귀찮았다. 은호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바뀐 현관 비밀번호만 적어 보냈다. 윤영의 원피스에 음식물이 묻어 더러워져 있었다. 상처 난 발을 옥죄고 있던 하이힐 한쪽은 어디로 갔는지 이미 없었다. 윤영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어차피 시궁창 같은 인생에 어울리지도 않는 명품이었다.      


철장 밖으로는 혜림과 같이 있던 클럽 친구들이 경찰관 앞에 앉아있었고 모르는 아이들 네댓 명이 대기 의자에 촘촘히 앉아 있었다. 아이들의 어울리지 않는 진한 화장은 형광등 아래에서 그들을 더욱 어려 보이게 했다. 혜림의 목을 핥던 남자는 미성년자 성매매냐 아니냐를 두고 경찰과 큰 목소리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증언해 줄 혜림은 술에 취해 윤영 옆에서 잠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지수가 있었다.      


- 나이?

- 18살이요.

- 고3? 고3이 공부는 안하고 거긴 왜 있어? 너희 부모님은 아시냐!     

 

지수가 형사를 응시했다.     

 

- 뭘 꼬나봐! 이 새끼가.

- 제가 뭘 잘못했죠?

- 미성년자가 술집에서 술 처마시다 걸려놓고 잘못한 게 없어?

- 저 술 안 마셨어요. 음주 측정해 보시면 알잖아요.

- 너 돈 받고 갔어?

- 무슨 말이에요?

- 성매매 신고 들어왔다고. 왜 알면서 시치미야!  

   

형사가 유치장의 윤영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 그런 거 아니거든요.

- 그럼 뭔데?

- 썸 탄 거예요.

- 썸? 지랄한다.

- 미성년자는 썸 타면 안 돼요?!

- 고등학생이 지랄하고 자빠졌네. 야, 너 집에 가고 싶으면 엄마 아빠한테 전화나 해.

    

들리는 소리로 윤영의 옆에 앉아 그녀와 키스를 나눈 남자는 겨우 고등학생이었다. 자신도 혜림의 남자친구처럼 미성년자 성매매의 혐의를 항변하게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윤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윤영은 차라리 이대로 구급차에라도 실려 가고 싶었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지수와 키스를  장면이 떠올랐다. 성매매는 아니어도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잡혀가는 것인가 싶어 눈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지수의 ''이라는 합의에 대한 증언으로 윤영은 치욕적인 심문 과정을 피할  있었다. 윤영은 간단히 조서를 작성하고 도망치듯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클럽으로 경찰이  무렵, 이미 정신을 잃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새벽 동이 트기  밖은, 어둡고 싸늘했고 청명했다. 윤영은 남은  짝의 하이힐을 벗어던졌다. 하루의 일탈치고 너무 값비쌌지만,  짝만 가지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 발바닥부터 다리 허벅지 옆구리 , 머리까지 온몸 구석구석이 아팠다. 윤영은 문득 32살의 나이가  하찮게 느껴졌다.           


과거의 얘기를 털어놓고 나니 윤영은 왠지 속이 시원했다. 자신의 폭탄 같은 얘기에도 상담사의 표정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척하는 것인지 상담실에서는 이 정도의 일은 흔한 일이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애를 낳을 수도 있다고, 아들에게 맞을 수도 있고 술집에 갔다 철창에 갇힐 수도 있는 일이라고 비난이나 동정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람 앞에 있다는 것이 편안했다. 그런데도 윤영은 차마 클럽에서 만난 남자가 고등학생이었다는 얘기는 하지 못했다.     


-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요. 아들에게 폭력을 당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클럽에 갔다 유치장 신세까지 지게 되었네요. 단단하게 버티려 했지만, 아들의 주먹 앞에서만큼은 모든 것이 무너졌나 봐요.

- 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도 아들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그냥 서로 좀 조심하는 것 같아요. 전 여전히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종종 우울하고, 가끔 숨이 막히도록 답답해요. 요새도 간혹 생각이 들어요. 아니 혼자 방에 있으면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아요. ‘자식 다 필요 없어 이년아.’ 근데 놀라운 건 그게 엄마 목소리가 아니라 제 목소리 같다는 거예요.

- 자식 다 필요 없다고 생각되나 봐요?

- 나쁘죠?

- 아니요. 그럴 수 있죠.


윤영이 웃었다.  

    

- 그 밖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요?

- 글쎄요. 아들이 오든 안 오든 그냥 일찍 수면제를 먹고 자요. 수면제를 다시 처방받았거든요. 어떤 날은 너무 늦게 일어나서 아들이 학교에 가는 것도 못 볼 때가 있어요.

- 네. 다음 주에 뵈면, 윤영 씨가 정말 바라는 변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다음 이야기

5. 첫 만남, 첫 키스

리버사이드 10시. 과거 트라우마로 여자와의 신체접촉에 통증을 느끼는 지수. 혜림의 연락을 받고 간 곳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닿아도 아프지 않은 여자를 다시 만났다.   


*이 글은 픽션으로 실제 인명, 지명, 장소 등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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