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li Whale Sep 10. 2024

2. 나도 미치겠다고!

자신을 버린 친아빠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혼란에 빠진 은호  

지난 이야기 

미혼모로 홀로 키운 아들 은호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미루고 미루던 상담실을 찾아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윤영. 그녀를 버리고 간 엄마의 비웃음 섞인 조롱이 들린다. '자식 다 필요 없어 이 년아!' 

01화 1. 자식 다 필요 없어 이년아! (brunch.co.kr)    


은호는 영철과 연락이 되면서부터 되는 일이 없었다. 어쩌면 그런 개새끼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머릿속 나사가 죄다 풀려 생각이 갈가리 흩어지는 것 같았다. 친생부를 만났고, 엄마를 때렸고, 집을 나왔다. 은호는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아빠에게 처음 연락이 온 건 한 달 전이었다. 정확히 처음은 아빠가 아닌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검정 외제차를 타고 학교 앞에 왔다. 누가 봐도 값비싸 보이는 보석을 목과 귀, 손가락에 걸치고,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은호를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은호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 네가 은호니?

- 네?

- 우리 어디 가서 잠깐 얘기할까?

- 누구신데요?

- 잠깐 차에 탈래?     


은호가 당황해 머뭇거리는 사이 할머니가 말했다.  

   

- 나는 네 할머니야. 네 아빠가 박영철이고. 엄마한테 들은 적 없니?     


황당했다. 은호도 친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주 어릴 적엔 자신에게는 왜 아빠가 없는지 아빠가 누군지 엄마에게 묻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빠’란 단어는 금기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아빠가 없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친구 중 누구도 아빠와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없었고 잔소리하는 어른은 하나로도 충분했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은호는 아빠에 대한 상상을 접었다. 그래도 자신을 버린 친부를 만난다면 기필코 그 뻔뻔한 낯짝에 주먹을 갈기리라 다짐했었다.      


은호는 생각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이대로 집으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은호가 우물쭈물하자 할머니가 재촉했다.      


- 잠깐 차에 탈까? 밖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아서 그래.     


은호는 떠밀리듯 차에 탔다. 푹신한 시트인데도 편치 않았다.       


- 잠깐 어디로 갈까?

- 아니요. 그냥 여기서 얘기하세요. 학원 가야 해요.     


지금 당장 가야 할 시간이 아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손에서 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신의 심장 소리가 바로 옆의 할머니에게까지 들릴까 봐 신경이 쓰였다. 이러다가 학교에서처럼 갑작스러운 공황증상이 올까 봐 불안했다. 엄마에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이번 학기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씩 숨이 막히고 심장이 두근거려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될 때가 있었다. 정말 미칠 것 같았을 때는 보건실에 갔지만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아 화장실에 가서 잠시 혼자 있으면 진정됐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연예인들이 많이 걸린다는 공황장애의 증상 같았다. 이러다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도 있고, 엄마에게 갑자기 속 얘기를 한다는 것도 불편했다. 


할머니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숨이 차오르다 헐떡이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이 꽉 막혀오는 증상이 점진적으로 온다는 것을 알기에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잘 안 됐다. 할머니는 은호에 대해 몇 가지를 묻고는 다짜고짜 은호 친아빠에 대해 얘기했다. 자세하게 듣진 못했지만, 아빠의 딸이 아프다고 했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등장도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동생도 그런데도 나타나지 않은 아빠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엄마도, 무엇보다 자신이 왜 여기에 이렇게 곤란하게 있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땀이 이마에서 얼굴로 목으로 줄줄 흘렀다. 등에도 한여름처럼 땀이 났다. 곧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하는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은호는 자동차 문을 열고 그대로 뛰어나갔다.      


할머니는 그 뒤로 한 번 더 은호를 찾아왔다. ‘은호의 동생’은 7살이고 여자아이고 지금은 미국에 사는데 많이 아프다고 했다. ‘동생’이 ‘오빠’를 꼭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데 평생 모르고 산 배다른 오빠가 왜 보고 싶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가 미국에 사는데, 곧 한국으로 올 거라고 했다. 아빠가 미국에서 영원히 오지 않아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가도 그 뻔뻔한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는 은호에게 최신형 핸드폰을 주고 전화하면 꼭 받으라고도 얘기했다. 엄마가 사주지 않았던 비싼 핸드폰이었다. 쿨하게 돌려주고 나오고 싶었지만, 은호의 손이 나도 모르게 이미 핸드폰을 집어 버렸다.     


차라리 엄마에게 터놓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아직은 은호 자신도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리되지 않았다. 막상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엄마에게 얘기도 하지 않고 친할머니를 만났다는 것이 엄마에 대한 배신같이 느껴져 더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주고 간 최신형 핸드폰의 벨이 울렸다.     


그 벨을 처음 울린 것은 아빠, 영철이었다.        


영철은 전화로 금요일 방과 후 학교 근처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은호를 기다릴 거라고 통보해 왔다. 자기 마음대로 와서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는 것이 그 엄마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철을 만난 건 ‘그날’이었다. 은호는 '친아빠를 만나지 않았다면, 할머니가 찾아왔다고 엄마한테 미리 얘기했다면, ‘그날’ 엄마를 때리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엄마에게도, 이 모든 혼란을 가져온 아빠에게도 원망과 분노가 치솟았다. 

    

은호는 학교가 끝나고 최근 잘 가지 않던 학원으로 갔다. 그날따라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학교에서 급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해서인지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진동했다. ‘배고파서 가는 거야. 가서 스테이크만 잔뜩 먹고 오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 들자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다.

          

은호는 초등학교 때까지 엄마 말이라면 뭐든 들었다.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 다시 시설로 들어가는 악몽을 일주일에 몇 번씩 꾸었다. 엄마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일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행동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습관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어 손톱깎이를 쓸 일이 없었다. 그것만큼은 엄마가 아무리 말려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은호가 위탁시설에서 엄마의 집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가 7살 무렵이었다. 시설에 있을 때도 한 달에 한 번은 엄마가 찾아와 곧 같이 살자며 약속하고 떠나곤 했다. 하지만 엄마의 약속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엄마와 함께 살 수 있었다. 너무 기다리던 순간이었지만, 갑자기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이 한동안 굉장히 힘들었다. 그때부터 긴장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눈을 찡긋거리는 틱 증상이 생겼다. 아주 심하지는 않았고, 은호네 집에는 틱이 아니어도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그게 틱이라는 것을 알았다. 은호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들, 예의 바른 아이, 배려심 많은 친구가 되었다. 은호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진심을 숨겼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은호의 불안은 조금씩 분노로 바뀌었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의 모습을 지키려 했지만,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친하던 친구들과 멀어졌고 만만한 친구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집에서는 엄마의 흔한 잔소리에도 욱하고 화를 냈다. 생각하는 머리가 마비라도 된 것처럼 은호는 자주 폭발했다. 이유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기준치 이상으로 화를 냈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라고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과는 다른 행동을 했다.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엄마가 바라는 모습,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모습이 되려 하는 자신이 싫었다. 혼란스럽고 불안했고 작은 일에도 짜증을 냈다. 한 번 화가 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 가끔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자신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달리 분노를 잠재울 방법이 없었다. 벽을 치기도 하고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두려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마음이 흔들릴수록 더 화를 냈다.     


은호는 밥 먹으러 가는 거라고 가볍게 생각하려 했지만, 학원을 나와 아빠에게 가는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아빠를 만나러 가도 되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이대로 그냥 집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빠는 정말 어떤 사람일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부담스럽게 가지고 있던 핸드폰도 돌려줘야 했다.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레스토랑 문 앞에 도달했다. 저녁 시간이 이미 꽤 지나서 가게 안은 한산했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상냥하고 고양된 목소리로 일행이 있는지 물어왔다. 은호는 누구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가 쪽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핸드폰에서 최신전화목록의 유일한 번호를 눌렀다. 예상했던 그 남자가 전화를 들었다. 은호는 전화를 끊고 그 자리로 걸어갔다. 은호가 다가가자 그가 일어났다.     

- 네가 은호니?  

   

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 여기 중학교 다닌다고 들었는데.

- 네.

- 앉아. 밥은 먹었니?

- …….

- 뭐 시킬까?     


먹고 싶은 음식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 꼬르륵거릴 정도로 배가 고팠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배가 살살 아팠다. 은호가 대답하지 않자 남자는 알아서 음식을 이것저것 주문했다.     

음식이 다 나오도록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먹고 얘기할까? 뭐 좋아할지 몰라서.     


은호는 한 손으로 음식을 깨작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뜯을까 봐 한 손에는 핸드폰을 한 손에는 포크를 놓지 않았다. 이 남자 앞에서 처음부터 지질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 갑자기 찾아와서 많이 당황했지?      


처음 할머니를 만났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속으로는 이제까지 결혼해서 잘 살다가 나타난 더러운 저의를 묻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애먼 포크와 핸드폰만 부서질 듯이 잡았다.     


- 오늘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맙다. 먼저 먹어.     


뜨거운 돌판에 기름이 좔좔 흐르는 스테이크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서빙되었다. 은호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고 포크로 고기를 집어 칼로 썰었다. 귀퉁이를 썰었을 뿐인데도 핏물이 배어 나왔다. 입맛이 싹 사라졌다. 칼과 포크를 내려놓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 입맛에 안 맞니? 다른 거 시켜줘?     


은호는 바로 나가고 싶었다. 영철이 그런 은호를 잡듯이 말했다.      


- 사실 시간이 별로 없어. 할머니에게 얘기는 대충 들었다고 들었어. 네 동생이 아주 아파. 이름은 크리스야. 정말 착한 아이야. 천사 같은 아이지. 급성백혈병이라고 들어봤니? 크리스가 그 병에 걸렸어. 그 애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너뿐이야.

- 헐. 개새끼.

- 뭐라고?     


은호의 입에서 한숨처럼 작게 욕이 새 나왔다.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가 주고 간 핸드폰을 꺼내 식탁에 여러 번 내리꽂았다. 핸드폰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핸드폰이 식탁에 낙하하는 충격에 굉음과 함께 큰 접시 하나가 진동에 밀려 챙 하는 소리를 내며 깨졌다. 주변의 시선이 은호네 테이블에 집중되었다. 상냥하던 직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 이거 주러 온 거거든요. 다신 연락하지 마요.     


은호가 영철을 노려보며 말했다. 안 그러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너무 긴장돼서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은호는 부서진 핸드폰을 식탁 위에 내동댕이치고 아빠라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나왔다. 심장이 둥둥둥둥 북 치듯 울렸다. 돌아서고 나니 눈물이 삐죽삐죽 흘렀다. 들키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대로 들어가서 엄마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기분으로 라면 어떻게 얘기할지 전혀 정리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은호는 무작정 버스를 탔다. 핸드폰을 부수며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파편이 박혀 피가 나고 있었다. 교복에 쓱 닦았지만 계속 피가 흘렀다. 쓰라리고 따가웠다. 버스는 한참을 달려 한강 쪽으로 갔다. 이미 해는 졌고, 퇴근 시간도 한참 지났다. 버스에서 내린 은호는 한강공원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편의점에 들러 소주라도 사서 마시고 싶었다.      


노는 형들과 어울리면서 처음 술을 마셨다. 마시면 마실수록 생각이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하얘져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딱 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교복을 입고 술을 살 수는 없었다. 너무 갈증이 났다. 이제 와서 배도 너무 고팠다. 은호는 사이다 한 캔과 사발면을 사서 야외 테이블 앞에 앉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어른들이 치킨에 맥주와 소주를 먹고 있었다. 라면이 익는 동안 핸드폰을 꺼내 보니 엄마에게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시간은 이미 12시가 넘어 있었다. 라면을 먹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태어나서 처음 아빠라는 사람을 만나고 돌아서서 혼자 라면을 먹는 자신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라면을 다 먹고 있는 사이 옆에서 시끄럽던 사람들도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먹다 남긴 소주가 테이블에 그대로 있었다. 은호는 소주를 집어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들이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뿌예졌다. 은호는 핸드폰 지도를 켜고 집으로 가는 방향을 찾아 걸어갔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지독하게 외로웠다. 핸드폰 주소록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수백 개의 연락처가 있었지만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때 한 명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망설였지만 메시지를 보냈다.      


“형 어디세요?”



다음 이야기 

3. 평범하게 나쁜부모 

은호가 기다리는 형, 지수. 곧 태풍을 몰고 올 지수의 정체는? 

이전 01화 1. 자식 다 필요 없어 이년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