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맞고 상담실을 찾은 날, 윤영을 비웃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시죠?
- 아들과 저뿐이에요.
- 이혼하신 건지 아님?
- 싱글맘이에요. 미혼모고요.
- 아들은 몇 살이죠?
- 중학교 2학년이요.
윤영이 태연한 척 상담사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아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 자체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18살의 윤영이 임신을 했을 때부터, 아들의 존재를 얘기할 때는 각별한 각오가 필요했다. 15년간 있어 온 일임에도, 여전히 심판대에 선 기분이었다. 윤영은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후회로 가득했다. 상담 예약을 두 번이나 미루고 마침내 오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제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오긴 했지만, 처음부터 자신을 다 까발리는 일이 곤혹스러웠다. 자신이 왜 이렇게 빨리 엄마가 됐는지, 이제는 잊고 지내는 자신의 친모는 어떤 사람인지 시시콜콜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 폭력의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신 적 있나요?
- 네?
- 누구에게나 여쭤보는 거예요.
- 아뇨. 뭐.. 네..
윤영은 말문이 막혔다.
- 상담받아야겠다고 결심하신 이유가 있나요?
- 잠이 안 와요. 기분도 우울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아요.
- 언제부터죠?
- 1년 좀 더 된 것 같아요.
- 그런데 왜 지금이죠?
- 네?
- 1년이나 비슷한 상태였다면 왜 지금 상담을 받겠다고 마음먹었나요?
- 더는 참을 수가 없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 무엇을 말씀이시죠?
- 모든 것들이요.
- 모든 것들이라…. 참을 수 없는 모든 것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볼 수 있을까요?
상담실 안은 조용했다. 하얗게 페인트가 칠해진 작은 방에 손바닥만 한 액자 세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테이블 위에 각티슈가 ‘넌 울어도 돼’라고 속삭이기라도 하는 것 같아 윤영은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윤영의 침묵과 함께,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무음에도 마치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창문이 벽의 위쪽이 아닌 밑쪽에 나 있었다. 가로 1m 남짓에 세로가 20㎝가 채 안 되어 보이는 좁고 긴 창이었다.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윤영도 윤영의 말도 새어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윤영은 그날의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덮어두고 싶던 기억이 원치 않았지만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누구에게든 얘기하고 싶었다. 윤영이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낀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중2병이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심했다. 툭하면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교복 주머니에서 담뱃갑이 나오기도 하고 아침까지 술 냄새를 풍기는 일도 있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에는 반에서 상위권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시험 기간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까지 윤영이 시키는 일이라면 한 번의 거역도 없던 아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윤영은 더욱 그의 변화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윤영은 아들의 얼굴을 온전히 바라봤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주치면 싸웠고, 그곳에는 소리를 지르는 자신과 등을 돌린 아들이 있었다. 도무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윤영이 은호를 가진 건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윤영의 친모가 재혼하면서 홀로 반지하 월세방에 남겨졌다. 윤영의 엄마는 끊임없이 남자를 만났지만, 실제 결혼을 해서 나가기는 처음이었다. 엄마는 윤영이 어릴 적부터 ‘자식 다 필요 없어, 이년아.’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가끔은 그 말이 윤영을 향한 것인지, 엄마 자신을 향한 말인지 헛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엄마를 애써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엄마를 경멸하는 것이 어쩌면 엄마 스스로 원하는 일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엄마가 떠나고, 윤영은 엄마의 새로운 남자친구를 더는 만나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지만 혼자 남겨지는 일이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만난 남자였다. 윤영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패스트푸드점으로 매일같이 찾아오던 남자와 일이 끝나면 자연스레 함께 윤영의 집으로 갔다. 볕도 잘 들지 않는 월세방 침대로 밤이고 낮이고 스며들던 남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뜸하게 그녀를 찾았다. 윤영은 5개월이 되어서야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고민하던 사이 배는 점점 불러왔다. 학교에도 갈 수도 없었다. 윤영은 미혼모 센터를 찾아가 홀로 아이를 낳았다. 은호라는 이름도 스스로 지었다. 윤영은 결코 자신의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의 저주 같은 말이 평생 자신의 뒤에 따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자식 다 필요 없어, 이년아!’
10시에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왔을 때도 아들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도 먹지 않고 12시까지 기다렸지만, 아들에게는 연락도 되지 않았다. 안 그러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학원을 무단으로 빠지고, 늦게 오고, 술 냄새를 풍기는 일이 잦아졌다. 최근 한 달은 유난했다. 간신히 학교만 겨우겨우 갔을 뿐, 학원도 거의 가지 않고 무슨 일인지 핸드폰만 붙들고 있다가 나가면 연락이 끊어지기 일쑤였다. 야간 타임 일을 하다가도 은호가 학원에 오지 않았다는 문자를 받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든 얘기를 해보려고 하면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더 다가가려 하면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고 덤벼들어 당황스러웠다. 점점 더 감당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으레 중학생이 되면 다 그런다고, 중2병은 불치병이라고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도 했지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니 윤영도 지쳤다. 어떨 때는 자신에게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 은호가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이제까지 순하고 착했던 아들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윤영이 전화를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응답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늦게까지 집에 오지 않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윤영은 아들이 답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걱정되고 화나는 마음에 수십 통의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카톡을 보냈다.
ᶪ 어디야?
ᶪ 언제 와?
ᶪ 왜 안 와?
ᶪ 언제 와?
윤영은 자신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주먹으로 명치를 세게 쳐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윤영은 아들의 방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졌다. 책이 날아가고, 아들의 어릴 적 사진이 꽂혀있던 액자가 날아가 깨졌다. 옷장에 있던 옷들도 닥치는 대로 뽑아 마루에 던졌다. 마루 가득 아들의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마음 같아서는 창문 밖으로 모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곳까지 손이 미치진 못했다. 피곤함이 갑자기 밀려들었다. 윤영은 아들의 부서진 잔해로 쌓인 벙커를 넘어 안방으로 기다시피 갔다. 마지막까지 핸드폰으로 아들의 답장을 확인했지만, 답은 없었다. 윤영은 침대 이불속으로 몸을 동글게 말았다. 피곤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윤영은 뒤척이며 침대 옆 협탁 서랍 안에 넣어둔 수면보조제를 꺼내어 마른 목에 밀어 넣었다. 만성이 되었는지 지금 먹는 수면제만으로는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띠리리리릭
도어락이 자동으로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얕은 잠에 취해있던 윤영의 의식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조금 넘었다. 머릿속이 몽롱했지만, 몸은 벌써 이불을 밀치고 있었다. 은호는 발길에 걸리는 자신의 물건들을 본척만척했다. 현관문 앞에 설치된 자동 센서 불빛이 꺼지고 집안에 어둠이 깔렸다. 마루로 나온 윤영과 마루에 서 있는 은호가 어둠 속에서 마주했다. 잠깐의 어둠과 침묵을 깬 건 윤영이었다. 윤영은 마루의 형광등 스위치를 누르고 아들을 노려봤다. 마른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 야 너 지금 몇 시야? 전화는 왜 안 받아!
- 졸려. 잘 거야.
- 뭐야! 이 새끼가 진짜!
- 아이씨.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이 지랄인데.
은호가 눈을 부라리며 윤영을 향해 소리쳤다.
- 뭐라고. 그래서 뭔데! 넌 왜 매일 이 난리인데.
- 아. 씨발. 진짜. 다 나한테 왜 이 지랄인데!
- 뭐! 씨발? 너 다시 말해봐. 너 나한테 뭐라고 했어! 야 이 새끼! 너 이 개새끼 내 집에서 나가. 다 필요 없어. 나가! 나가라고!
윤영은 방으로 들어가려는 은호의 목덜미를 잡아 문 쪽으로 끌었다. 윤영의 맨발에 유리 조각이 박혔다. 깨진 액자 속 사진에 있던 밝게 웃는 어린 은호의 구겨진 얼굴에 윤영의 피가 묻어났다. 은호는 끌려오는 듯했지만 이내 윤영의 손을 뿌리쳤다. 은호의 입에서 술 냄새가 물씬 났다. 이미 이성을 잃은 윤영이 은호의 교복 셔츠 앞 옷깃을 잡아끌었다. 윤영의 거친 손아귀에 셔츠의 단추들이 우두둑 떨어졌다. 은호가 다시 잠시 끌려오는가 싶더니 이내 윤영의 팔목을 잡고 윤영을 밀어냈다. 윤영은 피 묻은 발로 은호를 찼다. 윤영은 은호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은호가 윤영의 손을 잡고 비틀어 던졌다. 윤영이 난잡하게 널브러진 아들의 물건들 위에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바로 은호의 발길질이 시작됐다. 윤영의 배로 등으로 옆구리로 은호의 성난 발이 날아왔다. 윤영은 억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윤영은 필사적으로 은호의 발을 잡아끌어 안았다.
- 아 씨발. 개 같은! 아 좆까! 씨발!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는 은호의 눈은 의외로 두려움이 가득했다. 은호는 다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윤영은 정신을 잃었다.
다음이야기
2. 나도 미치겠다고!
윤영을 미치게 만든 중 2아들, 은호의 속사정이 밝혀진다! 14년 만에 나타난 친아빠의 속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