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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Sep 17. 2024

7. 너만 보이고 너만 들려

지수의 사막같은 마음에 오아시스 같은 사랑이  피어난다. 

지난 이야기

6. 원하는 대로 갈수록 미로 

신중하게 정하고 힘들게 오른 목적지도 항상 옳지 만은 않았다. 현재의 욕구에 충실하기로 한 윤영은 뒤돌아 가는 지수를 다시 차에 태우고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갈수록 인생은 꼬이는 것만 같다.  


다시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도 흥분은 빨리 사그러들지 않았다. 차안은 둘의 열기로 후끈했다. 물방울이 차 유리 안팍으로 맺혀 흘렀다. 윤영이 옷과 머리카락을 가다듬었다. 브라우스의 앞 단추가 떨어져 어떻게 해도 속옷이 드러났다. 윤영은 핸드폰으로 다시 공원으로 돌아가는 길을 검색하고 시동을 걸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앞 좌석의 창문을 열어 물기와 성애를 걷어내고 히터를 세게 틀었다. 앞유리의 시야가 점점 선명해지고 완벽히 밀폐 된 것 같던 외부와의 벽이 사라졌다. 그들은 다시 모두의 시선 아래 고스란히 노출됐다. 하지만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거리는 적막했다. 까만 밤에 별빛처럼 신호등 만 반짝였다.   


지수를 처음 태웠던 공원 앞에 정차하고 윤영이 입을 열었다.      


- 이제 됐지? 가. 다신 연락하지 마.  

- 뭐가 돼요. 이제 시작이지. 제가 누군지도 모르잖아요. 

- 알아야 해? 

- 알아야죠. 이제 사귈 건데. 

- 미쳤구나. 지난번에도 궁금했는데 너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 기억 안 나요? 클럽에서 알려줬잖아요.     


지수는 클럽에서 술에 취해 쓰러진 윤영의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웃었다.       


- 가서 네 나이에 맞는 애들이나 꼬셔. 

- 클럽 잘 안 가는데. 사람들이랑 몸 닿는 거 싫어서. 

- 아, 그러세요. 

- 남친 있어요? 있어도 상관 없어요. 

- 청소년은 이제 집에 가세요. 

- 원래 그래요?     


윤영은 가방을 뒤적여 담배를 찾았다. 미치도록 갈증이 났다. 지수의 말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 맘대로 생각해. 어린 넌 세상이 다 궁금하겠지만, 난 아냐. 

- 근데 멍은 뭐예요? 

- 넌 진짜 궁금한 게 많구나. 내려. 나 진짜 가야 해.

- 누가 그랬어요? 

- 내려.      


이제까지와는 다른 가시가 예리하게 날을 세우는 것이 느껴졌다. 지수는 그녀의 단호함에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문을 닫지 않은 채 윤영에게 말했다. 설령 그 가시가 자신을 찌른다해도 피하지 않을 기세였다.       


- 누구든 당신 괴롭히면 죽여 버릴 거예요. 저는 지수예요. 민지수! 


지수가 차에서 내렸다. 차는 잠시 그곳에 있더니 이내 도로로 사라졌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이 할퀴고 간 그녀의 상처가 신경쓰였다. 이대로 윤영이 안전한 것인지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더 물을 수도 찾아가 보호해 줄 수도 없었다. 윤영이 혜림과 함께 일했었다는것 이외에 아는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애가 타는 마음과 달리 그녀의 체온과 살갗의 감촉이 여전히 지수의 몸에 기분좋게 남아있었다. 첫 섹스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밤새도록 그녀를 안고 싶었다. 꿈만 같았다. 여자와 몸이 닿는 것만으로 괴로웠던 자신의 과거가 다 거짓 같았다. 윤영의 입술과 혀끝, 손가락, 손바닥, 배와 옴폭 들어간 배꼽, 허리, 옆구리, 등, 가슴, 어깨, 목, 귓불까지 다 좋았다. 그녀의 엉덩이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라가 있으면 흥분돼 미칠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의 몸이 닿고 부딪치고 어루만지는 것이 이렇게 신나는 일이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지수는 처음 신체접촉을 시작한 아이처럼 그녀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만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머릿속이 온통 그녀의 몸으로 가득 찼다. 다시 바지 속이 불끈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또 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처음이란 걸 그녀가 알고 있을까 봐 창피했다. 분명히 알 것 같았다. 그녀의 몸의 반응은 자연스럽고 능숙했다. 그녀의 손길 하나하나에 지수는 흥분했다. 완벽한 그녀의 리드였다. 그런 윤영이 대단해 보였고 그녀가 만나고 함께 몸을 섞었을 남자들에게 질투심도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윤영이 자신을 애송이로 볼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키스할 때도 자신은 무턱대고 달려들었지만, 그녀의 입술과 혀는 자신의 입안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지수는 애무도 섹스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전혀 몰랐다. 이렇게 실생활에 필요한 중요한 기술은 왜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지 안타까웠다. 호기심에 야한 동영상을 본 적은 있지만, 현실은 영상과 달라도 너무너무 달랐다. 어둡고 좁은 차 안에서는 내 몸 하나 움직이는 것도 블라우스의 작은 단추를 끄르는 것조차 어려웠다. 자신이 좋았던 것만큼 그녀는 좋지 않았을까 봐 불안했다.      


오토바이가 있는 주차장 근처 벤치에 앉아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열었다. 검색창에 ‘섹스 잘 하는 법’을 입력했다. 원하는 답은 안 나오고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검색 결과를 제외하였습니다. 연령 확인 후 전체결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떴다. 이제 몇 개월이면 성인이 되는데 그 몇 개월 때문에 애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불쾌했다. 청소년이 봐도 되는 정보에는 지수의 궁금증을 단박에 풀어주는 정답이 없었다. 답답했다. 이번에는 유튜브를 열었다. 온갖 쇼츠와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손가락을 갖다 대자 갑자기 민망한 사운드가 정적을 깼다. 지수는 놀라서 어플을 닫았다. 숙소로 가서 조용히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디모토로 갔을 때 사장인 대니 형이 아직 있었다. 매장과 정비소의 불을 환하게 켜놓고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대니 형에 대해서는 소문이 분분했는데, 재벌 집 숨겨둔 자식이라고도 했고 지방 대지주의 아들이라는 말도 있었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형은 나이에 비해 넉넉했고 바이크와 라이딩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이름은 대니 라고 불렸지만, 영어를 못했고 여자를 보면 유독 수줍어했다. 지수가 말없이 그의 옆에 앉았다.     


- 형.

      

지수는 대니를 부르고는 한참 뜸을 들였다.      


- 뭐?     


대니가 왜 그러냐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축구에 고정되어 있었다.      


- 형. 여자들은 뭘 좋아해요?

- 내가 알면 이 시간에 여기 이러고 있겠냐? 너 뭐냐. 요새 나사 풀린 놈처럼 실실거린 게 여자 때문이었어? 뭐야 연애 중이야? 어떤 여잔데? 형한테 다 말해봐.      


대니의 시선이 순식간에 지수에게 박혔다. 대니는 지식과 경험은 부족했지만, 눈치는 기막히게 빨랐다.     


- 형, 저기 골 먹혀요.      


지수가 자신에게 쏠린 그의 관심을 다시 축구에 옮겨놓았다. 대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쉬운 탄식을 뱉어내며 축구에 몰두했다. 지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씻으러갔다. 그런 그의 뒤통수에 대고 대니가 소리쳤다.

      

- 뭐 연애 상담 필요하면 언제든지 형한테 얘기하고. 여자 만난다고 일 빼먹고 그러면? 세 번은 용서해줄게!     


도움은 안 됐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기분이 내내 좋았다는 것을 대니형도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실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났다. 경찰서를 나서는 순간부터 계속 그랬다. 눈을 감으면 그녀가 보였고, 핸드폰을 켜면 그녀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며칠이 몇천 년 같았고, 그녀를 기다리는 2시간이 2년 같이 길었다. 하지만 윤영과 함께 있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그 시간의 깊이는 자신의 전 생애보다 밀도 있게 느껴졌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속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혼란 없이 명확했다. ‘너만 보이고 너만 들린다.’라는 게 이런 것인가 싶었다.      


스트리밍 어플에서 사랑 노래를 찾아 재생시켰다. 생전 듣지 않던 솜사탕 같은 노래가 샤워실에 퍼졌다. 말할 수 없이 지독한 피로가 밀려왔지만, 그 어느때 보다 행복했다.



다음 이야기 

8. 낯선 번호 아는 목소리

상담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윤영은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은호와의 갈등은 나아지지 않는다. 은호의 전화에서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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