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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미 Dec 15. 2024

보험사의 “힘내세요!” 라는 말

기분: 구름(cloudy)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2008년에 가입한 K보험약관을 꺼내 보았다. 처음으로 정독했고 하얀 종이색이 누렇게 바랜 게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약관 속 용어는 어려운데 반해 설명이 간단하였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싶었다.

      

  오전 9시 5분, K보험 가입 후 16년만에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급한 일도 아닌데 9시 정각에 업무 전화를 받는 게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체득한 후 부터 나는 5분 뒤에 수화기를 들어 상대를 위해 배려하는 습관이 생겼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상담사가 전화를 받았고 나는 당황해서 횡설수설 할까봐 미리 노트에 적어 둔 멘트를 담담한 어조로 읽어 내려갔다.     


  “제가 유방암 진단을 받아서 보험비를 청구하려고 하는데 어떤 서류가 필요한가요?”     


  상담사는 필요서류를 말해주었고 마지막에는 “지금 말씀드린 건 문자로 한 번 더 보내드릴게요. 힘내세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감사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보험사 콜센터 상담사와 오늘 처음 통화한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위로를 받았으니 마음이 동하여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유방암이라고 진단을 받았지만 나의 가슴은 전혀 아프지 않고 어제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동네병원이 오진한 거 일수도 있잖아,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 하면 유방암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어.” 라고 희망회로를 돌리며 냉장고에 있는 캔맥주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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