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직원이 사라진 휑해진 자리를 바라본다. 나는 최선을 다해줬는데 어찌 이리 매정히 돌아섰을까? 우리는 함께 먹고사는 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일 뿐이었던가? 매출이 잘 나오던 시절에는 계속 월급 인상을 해줬다. 그러다 24년도에는 좀 어려워졌다.(그럼에도 월급 인상은 해줬다) 사무실에 나오던 수고를 덜어주려고 재택근무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급여를 내리는 것도 함께 이야기를 했다. 내가 더 노력해서 매출을 끌어올리면 그때 다시 사무실에 출근하고 함께 하자고- 차갑다, 아무래도 직원과 사장의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나 보다. 큰 착각을 했고, 크게 깨졌다.
괜한 넋두리를 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본다. 이런 텅 빈 고민 따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 그럼 난 이제 뭘 어떻게 하면 될까? 무조건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일단은 직원이 해줬던, 사람으로 돌리던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정리해야 했다. 우리는 편집 디자인업체였고, 고객들의 요청 내용을 전달받아서 그대로 인쇄물 디자인을 하고 인쇄해 발송까지 하는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직원은 디자인과 시안 수정의 과정을 맡았다. 이게 참 힘이 들었다고 했다. 사람에 질린다는 표현도 쓰면서 내게 정신적 고충을 살짝 내비치기도 했다.
그건 우리의 일이니 없앨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니 건강한 스트레스로 여기고 마음을 잘 다잡고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보라고 조언해 줬었다. 직원은 극 I의 성향(MBTI의 내향형)을 가졌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3년을 있는 동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자신을 감췄다. 자신을 드러내고 그것이 이야기되고 하는 것에 굉장한 부담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디자인 과정에서 고객에게 나오는 다소 거친 피드백을 견뎌내는 일은 마치 감정의 찌꺼기가 차곡차곡 쌓이다 터져버린 쓰레기봉투가 된 모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객들의 거친 피드백은 실로 놀라웠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정말 예의 바르게 모든 과정을 거쳐가시는 분들도 물론 있지만 간혹 가다가 만나는 급하고, 탓을 하며, 때론 디자인 감각에 대한 노골적인 비아냥까지 하는 분들을 만나면 그동안 잘 다독여온 멘탈이 다 무너진다. "저기요. 디자인 되게 못하시네요. 제가 발로 해도 이거보단 낫겠네요."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직원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내가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환불을 해주며 일단락시켰다.
일단은 감정적인 노동과 마진이 없는 상품에 고관여 되는 업무를 줄여야 했다. 그래서 쇼핑몰 시스템을 사서 세팅에 들어갔다. 쇼핑몰의 카테고리도 차근차근 정리했다.
나는 하는 업무가 많았기 때문에 앉아서 상담을 하며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객단가를 기준으로 상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보통 명함의 경우 가격대가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명함 디자인을 하는데 1시간 이상이 들어가면 사업을 이어갈 수가 없을 정도의 치명적인 단가가 돼 버린다. 하지만 고객들이 OK 할 때까지 디자인을 잡아야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고객맞춤디자인은 더 이상 할 수가 없다. 템플릿 디자인으로 바꾼다. 선택한 디자인 안에서 내용만 입히는 방식이라면 시간이 절약되므로 운영을 이어갈 수가 있다.
또 상담 과정을 AI로 전향해서 자주 묻는 질문은 자동으로 안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부터 상담을 처음부터 진행하면 불필요한 티키타카가 정말 많다. 안 물어도 될 말까지 나오는 시간 낭비. 이런 부분도 정비해야 한다. 그렇게 진짜 고객의 세부적인 문의만 깔때기처럼 거쳐서 상담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정도만 세팅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쯤 되니 이런 자동화 부분을 수동으로 사람에게 맡겼던 날들이 참 비효율적이었구나 하는 객관적인 시선도 생겨났다.
아직 세팅 작업은 한참 멀었다. 실무를 해가면서 쇼핑몰을 만지고 있기 때문에 몇 개월은 걸릴 것 같다. 더 정성 들여 준비해 편집 디자인일은 완전 자동화로 만들어야 한다. 고객과 만나는 지점은 노동 시간에 대한 보상이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돌아올 경우에만 열어두기로 했다. 그래야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