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일하면서 업무 외의 것들은 되도록 신경 쓰고 싶지가 않아요. 피할 수 없는 회계 관련한 업무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생산성과 관련된 일에선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그러니 이젠 집중해서 생산성을 올려야 하는데 사람의 감정까지도 챙겨야 하는 피곤함은 무조건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T에요. 친구나 가족이 고민을 말하면, "그래서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결론을 얘기해 봐."라고 다그치듯 시간을 아끼려는 모습을 보여요. 그래서 왜 그렇게 말을 자르느냐, 매정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그런 제가 직원에게만큼은 신경을 많이 써줬어요. 혹여나 서운하진 않을지, 불편하진 않을지, 상처받진 않을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나 때문일까, 업무 때문일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이런 고민이 일의 생산성을 떨어뜨렸던 것도 사실이었죠.
사람의 감정은 이해하기 어려워서 나는 기분이 나쁜 줄 알고 며칠 내내 끙끙대다 겨우 이야기를 꺼냈더니 상대는 기억도 못하고 있는 상황도 만나고요. 참, 허무하기 그지없죠. 그렇게 나는 잘해줬다고 생각했어도 서운하고 부족해서 말도 없이 퇴사를 결정해 버린 것을 봐도 그랬어요. 내가 모르는 어떤 부분이 직원의 마음을 떠나게 했단 생각에 미안했지만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해결점을 찾을 수가 없는 정말 풀기 어려운 것이었어요.
이럴 바엔 더 이상 식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와 함께 회사를 운영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직원이 처음 관둔 일주일은 정말 지옥 같았죠. 그가 밀려둔 업무를 처리하면서 제 일까지 해야 했으니까요. 하루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어요. 하지만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또 적응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불필요한 업무를 종료하고 많은 고객들을 떠나보내면서 오히려 홀가분해진 건 제 사업에 어떤 의미로 해석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어요.
어쨌든, 지금은 아주 마음이 편안해요. 곧 명절이 되는데 다른 회사 못지않게 챙겨줘야 한다는 심적 부담도 있고, 1월부터 3월까지 비수기인 제 업종의 특성이 있어서 인건비가 좀 버겁게 다가오던 것도 있었죠. 늘 연말 연초의 고민이었죠.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이리 마음이 편하다는 게 딴 세상 같아요. 진작 썩은 부분은 도려내고 알차게 사업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간의 맘고생이 안쓰럽기까지 하네요.
제가 정리한 사업분야 쪽에선 아직도 고객의 수요가 있었어요. 하루에 돌려보내는 고객의 문의가 두, 세 건이 됐고요. 그럴 때마다 빈 직원의 자리가 아쉽기도 했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꿔서 직원이 아닌 협업을 해야겠단 생각에 다다랐어요. 내게는 클라이언트가 있는데 일을 처리할 수는 없고, 누군가는 이 일이 필요할 텐데 내가 일을 전해주면 좋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프리랜서 사이트에서 단건의 일을 처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했어요.
집에서 육아를 하시는 디자이너이신데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일을 하시는데 판로가 늘 걱정이셨죠. 저는 그 디자이너분에게 일이 들어오는 건건마다 전달드리고 약간의 소개비를 받고 진행하기로 했어요. 그분은 정말 좋아하시며 정성껏 작업에 임해주셨고 실력이 훌륭하셔서 고객님도 결과물에 만족하셨어요. 이젠 일을 전달하는 제가 직원이 바빠서 짜증을 내는 것은 아닐까 눈치를 보며 주는 게 아니라 서로가 기쁜 마음으로 일감을 전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어요.
진작에 이렇게 할 것을 왜 이렇게 빙빙 돌아왔을까 싶더라고요. 일은 간절하고 기쁜 마음으로 받는 사람에게 가는 게 맞습니다. 그 보수로 수익을 가져가는 거고요. 앞으로도 저는 이런 식으로 프리랜서분들과 협업하는 형태로 사업을 운영해 가기로 했어요. 디자인 사업을 진행하면서 요즘처럼 마음이 편하게 일했던 적은 없었어요. 이게 다 협업하는 감사한 관계와 기쁜 마음에서 나온 변화예요. 저는 앞으로도 스트레스 없이 지속 가능한 사업을 이어갈 거예요. 수직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