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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 있는 아줌마 Nov 23. 2022

나는 왜 자꾸 생색을 내는가.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 내 기준이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등교준비에 먹을 것 간단히 준비하기, 머리 매만져주기, 

옷입는 거 도와주기. 나도 후레하게 일하러 갈 수 없으니 촵촵촵 화장을 하고 

머리가 들러붙으면 고급미가 떨어지니 뽕도 좀 띄워본다.

정말 정신없이 움직이다가 아이들이 짜증이라도 내면 마음이 더 급해진다.

정해진 시간 안에 나가야하는데, 조금이라도 시간이 늦을 것 같으면 숨이 잘 안쉬어진다.

그러면 좀 더 일찍 일어나면 되는데, 딱 정해진 그 시간에 일어나는 오기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내가 아침에 이 정도면 빡세게 하고 나갈 수 있겠다'라고  타이트하게 계산한 그 시간에 일어나

그렇게 아등바등 호들갑을 떨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일을 하고 돌아와서 아이들을 바로 맞는다.

집에 와서는 혼자 못 씻는 아이는 씻기고, 저녁 준비를 하고 숙제를 봐주고 체육인인 아이들이 

밖에 나가고 싶다하면 나가서 다양한 체육활동도 틈틈이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평일에 아이들을 혼자 돌보고, 주말에 하루도 함께 한다.

심지어 아직 잠자리 독립을 시키지 못해 양쪽에서 니킥 및 알지도 못하는 여러 킥을 당하며 잠을 잔다.

수면의 질이 좋지 않다. 중간에 아이들이 화장실이라도 가서 깨면 함께 깨기 때문에 다시 잠들기 어렵다.


쓰다보니 또 생색내는 것  같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집에 오자마자 놀이터로 직행했다.

그때 동네 아주머니들을 만나면 그 아줌마들이 말했다. "땡땡이 엄마 너무 피곤해 보인다."

나는 그말이 왠지 모르게 "땡땡이 엄마 정말 고생이 많다."라고 들려서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 같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피곤해 보인다."를   "고생이 많네."로 듣고 내가 바쁘게 사는 것에 대해 인정 받았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에도 종종 그렇게 피곤하지 않아도 좀 더  피곤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나의 장점이 아이들하고 몸으로 잘 놀아준다. 그렇게 또 놀이터에서 아이들하고 씽씽 체육활동을 함께하면 

다른 아줌마가 "땡땡이 엄마, 좀 쉬지."라고  한다.

나는 또 그말이 내가 아이들하고 열심히 놀아준 것을 알아봐준 것 같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찡찡이 아줌마가 되었다. 

여기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면 타지에 와서 아이들을 키우고 일을 하다보니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없었다.

뭐 이래저래한 성격이나 환경 탓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러다보니 놀이터에서 보는 동네아줌마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나를 생각해 주는 말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았다.

외로움에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나를 신경써주는 말을 해주니 착각의 늪에 빠진 것이다. 


어느 날 뒷통수를 크게 맞은 적이 있다. 동네아줌마들 중에 그나마 가깝다고 느낀 아줌마가 나에게 말했다.

"땡땡이 엄마, 그렇게 힘들면 좀 쉬어.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 표면적인 말은 나를 위해주는 듯 했지만

그 아줌마의 표정과 어투는  자만심으로 가득차있었고 나의 인생을 멋대로 평가하여 후드려 깠다.

나는 그것을 캐치할 센스는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줌마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말이다. 


나는 나의 힘듦을 누군가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를 칭찬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에게 잘 살고 있다고 따뜻하게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가 열심히 살고있는 것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가 어떠한 일로 힘들어할 때 그건 별일아니라고 다독여줬으면 좋겠다.

이러한 마음때문에 힘든표정과 말로 생색을 냈던 것이다. 

이러한 마음때문에 아줌마들이 조금이라도 나에게 해주는 말을  따뜻한 말로 성급하게 받아들여 

체한 것이다.


각자는 다양한 가치관으로 본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 아줌마는 일도 안하고 아이도 한명만 키우면서 나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여 섣불리 이야기 하는거지. 

그 태도에 너무 화가 났지만 덕분에 깨달은 바가 컸다.

내가 열심히 산다는 것을 주변인들에게 생색내기 위해서 했던 표정과 행동, 말들이 그들에게는 진심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인정을 해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나는 그들에게 관심도 없는 타인일 수도 있다. 

그냥 저 아줌마는 왜이렇게 표정이 찡찡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나와의 사회적 거리에 따라 혹은 친한친구와는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다 각자의 삶에서 마음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과 상황이 달라서 나를 온전히 인정해주고, 감싸주고 용기를 

주는 일은 어렵다.

중요한 것은 나, 본인이다.


내가 스스로 인정을 하면 되는데 왜 나를 믿지 못하고 타인에게 인정을 갈구하는가?

주변 아줌마들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친구들 중에 결혼안한 친구는 결혼과 육아의 삶을 잘 모르는데,,, 

나는 육아가 버거운데 결혼과 출산을 한 친구는 아이들이 그렇게 예쁘게 보인다고 하는데.... 

내가 굳이. 인정받기 위해서 나의 힘듦을 떠들어대야하겠는가?

쓸떼없는 일이다. 

그것을 깨닫고 타인 대신에 아이들에게 생색을 내기 시작했다....... 이 또한 많이 잘못된 방향인것 같다.

 쩜쩜쩜.


엄마 역할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좀 더 유연해져야 할 것 같다. 

하루 하루를 보낼 때 다 내가 해야하는 일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때문에 조급해지는 것이니 나를 좀 더 다독여야겠다.

 빨리 빨리 미션을 클리어하려고 하지 말고, 그때 그때 너와 나, 아이들이 함께 있는 순간을 느껴봐야겠다.

어려운 일이다. 몸이 피곤하니 빨리 내 할일하고 쉬고 싶다.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노력해야겠다.

고쳐먹어도 시간 강박이 있는 나는 자꾸 까먹을테지만  개미똥꾸멍만큼 변해도 변한거니까.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 오글거리지만 잠깐 거울보며 씨익 웃어봤다. 머쓱하지만 꽤 기분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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