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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 있는 아줌마 Nov 23. 2022

나는 왜 유독 첫째아이의 행동이  거슬릴까?

내 첫째 땡땡이는 여자아이다.

아이들이 투닥거리는 상황에서 잘잘못을 떠나 첫째 땡땡이의 날카로운 소리가 제일 먼저 귀에 꽂히고,

짜증내는 소리, 우는 소리 , 야~~하며 앙칼지게 말하는 소리들이 거치적거린다.

땡땡이들이 똑같이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했을 때도 유독 첫째 땡땡이는 요구가 많은 것 같이 

느껴져서 받아들이기 짜증스럽다.


내가 본 첫째 땡땡이는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리더십이 있고, 야무지고, 학습적인 면에서도 뒤처지지 않고,

친구들도 잘 사귀고, 학교생활도 모범적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엄마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아이이다.

이런 똑순이가 내 딸이어서 정말 정말 벅차고, 자랑스러운데 왜 나는 유독 이 아이가 신경에 거슬릴까.

태어나서부터 나와 꼭 붙어 지금까지 함께 자고 있고, 생애 최초 2년은 내가 일도 쉬고 아이와 24시간

함께했으며 다른 땡땡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나는 늘 첫째 땡땡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히려 다른 땡땡이는 태어나서부터 할머니가 키워주셨고, 나는 이 아이에게는 서브엄마였다.

그런데도 나는 다른 땡땡이를 대할 때는 마음이 편한데 첫째 땡땡이를 대할 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

갑갑하고 불편한 쪽보다는 편치 않은 쪽이 말하기 수월하다.


왜그럴까?

성별이 같은 여자여서 그럴까.

물론 그런 이유도 없지 않아 있다.

내가 첫째 아이를 다그칠 때는 같은 여자아이끼리 다투는 느낌이 나기도 한다.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지는 적이 없고, 옳은 소리를 잘 하기에 감정적으로 화살이 왔다갔다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다른 땡땡이는 내가 혼을 냈을 때 혹은 자기 혼자 막 성질에 못 이겨 포효하고는 꼭 나에게 안기며

"엄마 미안해."라고 하는데, 첫째 땡땡이는 나에게 애교 있게, 혹은 자존심을 굽히며 사과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에서도 좀 킹받기는 했다.

그러나 이건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땡땡이들을 크게 혼내고 내가 타임아웃을 외치며 따로 떨어지려는데 첫째 땡땡이가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나를 못가게 잡았는데 나는 매섭게 손을 뗐다.

고백하건데, 나는  첫째 땡땡이에게 더 과격하게 행동하며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엄마로서는 부적절한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첫째 아이에게 이상하게 못된 행동을 더 하게 되고 이에 상처를 많이 준 것 같은 죄책감을 늘 안고 있기에

 혹시나 '나 때문에 이 아이가 상처입은 어린아이로 자라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도 갖고 있다.

그 죄책감으로 아이에게 더 잘하면 되는데, 그 죄책감을 나에게 안겨주는 원흉이 첫째 땡땡이 인것 같아서

미웠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드는거야?라는 원망이 든다.

또한, 똑같이 혼내도 다른 땡땡이한테는 미안하거나 죄의식이 크게 들지 않고, 들더라도 빠른시간 내에

사라져서 티끌없이 아이를 다시 마주할 수 있는 회복성이 생기는데,

유독 첫째 땡땡이에게는 미안하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한데 괘씸한 생각도 들고, 이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내가 아닌데 억울하기도 하고, 별 모순적인 감정들로 뒤섞이며 이 기분이 꽤 오래간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있어 나의 최대 난제이다.

이렇게까지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지만 다른 땡땡이 얼굴을 보면 더 웃음이 나온다.

다른 땡땡이를 대할 때는 편하다보니 자연스럽고, 첫째 땡땡이를 대할 때는 잘하고자 혹은

내 모습을 절제하며 상처를 안주기 위해 노력을 하다보니 피곤스럽다.

아득하고 해결되지 않는 나의 마음을 안고 그렇게 첫째 아이와 잘 지낸날은 뿌듯했고,

괜히 화낸 것 같으면 미안함이 커서 자존감까지 바닥을 치며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이 마음은 도대체 무얼까.

나의 감정이 너무너무 궁금해서 나와 아이의 기질검사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린 서로

판이한 성향이란 것만 확인했지 나의 이런 마음과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찰나, 금쪽이를 시청하다가 어렴풋이 알게되었다.

지난 에피소드로  '오남매 독박육아에 말라가는 엄마'였는데, 첫째 여자아이는 9살로 꽤 큰편이고

그 정도면 엄마의 힘든 육아도 도울 수 있고, 엄마와 심적으로 의지가 되는 사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엄마는 다른 자녀들보다 유독 그 아이를 더 다그쳤다.

반면에 본인이 육체적으로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이 큰딸에게는 고된 집안일과 육아를 시키지 않았다.

오은영박사님의 질문에 자신도 맏이여서 어렸을 때 어린 동생들을 본인이 다 거둬 키워서 그 고단함을 

잘 알기에 첫째에게 집안일과 동생들 돌보는 일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어서 오은영박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첫째를 보면 나는 그래도 어렸을 때 안그랬는데..라는 생각도 들죠?"

엄마는 첫째 아이에게 큰딸의 설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동시에 자신은 어릴 적에 동생들을 

잘 챙겼는데 그러지 않은 아이가 못마땅한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번뜩였다.

아, 나도 첫째 아이에 대한 마음이 이렇구나............!

나는 어린시절에 부모와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아직까지 그 아픔을 가지고 있다보니 이런 상처를 

대물림하기 싫어 육아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첫째 아이의 위풍당당하고 기세 있는 모습이 좋다가도 그런 마음 뒷편에 '나는 그래도 

어렸을 때 엄마를 잘 돕고 짜증도 많이 안냈는데,,'라는 앞뒷면이 상반된 동전같은 마음을 가졌기에 

괴로운 마음이 들었구나.....


내 아이는 나와 다른 모습으로 키우고 싶은 반면에 나는 그렇게 안 컸는데... 라는 모순적인 마음.

양가 감정.

오히려 한쪽 마음인 것이 홀가분하다.

양가 감정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혼란스럽고 여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들로 사람을 더

휘청거리게 만든다.

깨달았다고 해서  이 양가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뻔뻔하게 내 발목을 잡고 있다.

조심조심하다 또 첫째아이 마음에 스크래치를 낸 것 같아 자책감이 들면 알면서 난 또 아둔하게

왜 이런 짓을 반복하는 걸까........하고 맥주와 함께 더 심해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제도 그랬다.

그래도 조금 달라진 점은 나를 너무 해하지는 않기로 했기에, 너무 그 감정에 빠지지 않기로 했기에,

지난간 것 말고 앞날을 보기로 했기에, 그 밤 스맨파를 시청하는 데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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