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루브르, 오르세, 노트르담,
생샤펠성당, 오페라갸르니에, 몽마르트...
사람들이 간단히 떠올릴 법한 파리의 장소들이다.
박물관, 미술관과의 경계가 흐릿하니, 그곳의 도서관은 우리네 것과 차별화된다. 개방감을 주는 탁 트인 공간이며 화려한 실내 건축은 마치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 어딘가에 날 세워둔다.
올 겨울, 나의 여행지는 도서관으로 정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곳에 닿았다. 심장 좀..
리슐리외 도서관
지어진 지 600년이 훌쩍 넘어 세계 도서관들 중 단연 최고 연장자인 프랑스 국립도서관. 이곳의 분관인 리슐리외 도서관은 음악컬렉션, 골동품, 인쇄매체 할 것 없이 다양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12년간의 대대적인 보수를 마친 터라 나의 첫 파리에서도, 남편과 아이의 두 번째 방문에서도 경험해 본 바 없다. 그저 올 날이 있겠지 희망했을 뿐이다. 월요일을 제외하곤 다른 관광지들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소지품 검사만 거치면 어둑해질 때까지 무료로 얼마든지 머물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다. 박물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됐고. 타원형의 방(La Salle Ovale)이라 불리는 둥근 천장 아래에 가만 머물러도 더 바랄 게 없었다고.
대개 그러리라 확신한다. 강추위에 강추.
생트 주느비에브 공립도서관
영국의 BBC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힌 곳이다. 철골을 이용해 지은 열람실이 인상적이며 프랑스 유명 소르본 대학가에 자리 잡고 있는 매력적인 장소다. 다만 학생들의 연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니 만큼 사전 예약을 통하는 편이 낫고, 일반 관람객의 경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16-17시 사이 입장만 허용된다.
여행 중 아이들과 남편의 선택도 존중하느라 예약은 고사하고 일반인 허용시간을 맞춰 방문하기란 영~ 어려웠다. 대신 여름에 있을 올림픽 경기장이 될 그랑팔레, 쁘띠팔레와 이례 없던 풍경이 될.. 거리 공원을 활용한 양궁 경기장을 미리보기 하고 왔다.
아무튼, 다시 도서관.
우선순위 1위긴 하나,
혼자 떠나온 여행이 아닌 데다가 런던과 달리
둘둘 팀을 나눠 움직이는 것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건 남편뿐이다. 갖다 붙이기는 밥풀과 같아 본인 흑역사를 이럴 때 꼭 떠올릴 필요가..
아무래도 책이라면 캐리어 없이도 이고 지고 갈 첫째 아이 성격상, 아빠와 동생이 동행하지 않는 도서관을 오히려 반길 게 분명했다. 원 없이 읽으려면 그래야 할 거다. 제발 팀 좀 나눠 움직입시다 ㅠ
누가 노력파 아니랄까 봐?
겉으로 티는 못 내지만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동생을 설득해 본다. 개선문의 200개도 훌쩍 넘는 계단을 아빠가 분명 3년 전 언니에게 그랬듯, 힘들면 너를 번쩍 안아 올리는 사랑을 베풀며 포기하지 않고 기필코 오를 것이며.
사람들이 안 올라봤음 말을 말라지.
거기서 보는 전경이 에펠탑의 그것보다 나으면 나았지 덜 하진 않다며, 선배모드. 한결 다정한 음성으로 동생을 잔잔히 내치고 나면.
결과는?
도서관 나들이가 한결 수월할 테고, 동생의 재촉에 서둘러 자리를 뜨지 않아도 좋을 거란 칼 같은 예상에 나도 힘을 보태어 보자.
역시나.
청개구리 심보는 그때그때 눈치도 참 크래커 마냥 빠삭해.. 분위기가 영~글렀구나. 결국 같은 택시에 몸을 싣는다.
쭈욱쭉 빠진 기운은 보안 검색대(어김없는 코스)를 통과해 출입문을 열자마자 급속충전 됐나 보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 눈에서 기관총 못지않은 하트가 발사되니.. 붙이는 핫팩을 애미만 혼자 4개나 붙이고 나선 차디찬 겨울날씨가 민망하다. 파리의 계절은 거꾸로 거스르기도 하는 건지.
돌연 과실 가득 죄다 수확하는 기분, 나만 가을을 맞이했다. 풍. 요. 롭. 구. 료.
도서관'만' 가도 좋다는 내 말에 굳이
도서관'엘' 가야겠냐 되 묻던 남 편도
이때만큼은 내 편인가.
이미 동공에선 눈과 손을 구분 못 하고 엄지 척 발사된다. 너 딱 들켰어! 좋지? 좋지?
기우였구나 싶게 독서거부권 행사가 잦던 이 집
둘째, 잰걸음으로 누구보다 흡족한 동선을 그린다.
"엄마 이거 동백문고에서 본 거, 그 거.
어니스트의 하루? 코끼리 나오는 거요"
"유치원에서 이거 연극했잖아요.
존버닝햄 아저씨"
"책을 뚫어서 만들었네. 오~~ 파리 좋네~~!"
"윌리다. 꿈꾸는 윌리 쓴 사람~
엄마도 알지 알지?"
하나하나 듣기 좋은 말에 급.. 마음이 풍족해진다.
딱 하나 빼고.
"엄마, 이거 읽어주세요"
흠칫. 영어책도 많은데 하필 세 권 모두 프랑스어다.
"입구, 출구, 고마워요, 안녕하세요.. 엄마 사실 딱 이거 네 개 아는데...?"라고 말하려다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읽는다. 애미가 가오가 있지!
여섯 살 아이 기억 속에는
울 엄마는 우리말 책도 잘 읽어주고, 영어책도 잘 읽는데, 심지어 프랑스어도 잘하는 그런 엄마 일거라며 간만에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꾼이 되어본다. (그림보고 냅다 꾸며대 보자. 뭐 별 거 있어? 이 나라 얘기, 저 나라 얘기, 다 거기서 거기지 머ㅋㅋ)
어쩌면
이 아이.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림만 보느라
엄마의 뛰어난 역량 따윈 안중에 없을지도. 메르시.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에게도 내게도
여느 미술관이나 박물관보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기억이었다. 파리하면 미술관? 아니, 도서관이다.
혈연단신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식솔들이 많다면 여유롭기란 어려울 시간이란 걸 안다. 그럼에도 장면 장면, 또 다음을 살아갈 힘이 되리란 것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감히 추천해 본다. 파리에 가면 오페라갸르니에(올림픽 준비 공사 중)는 안 가도 근처 리슐리외 도서관은 꼭 한 번쯤 들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