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끝나도 끝난 게 아닌

연작소설 <웰니스족>

by 힐링가객

연재소설 완결편입니다. 전편의 스토리는 여기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healingsiinger/65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 어쩌지? 아무래도 계획을 변경해야겠어.”


위층 언니의 메시지였다. BB크림을 바르던 손을 멈추고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쌍둥이의 어린이집 입원기념으로 콧바람 쐬러가자고 약속한 날이었다. 장소가 하늘카페로 정해져 열심히 후기를 찾아보며 계획을 세웠는데, 아침부터 하늘이 무겁더니 기어코 비가 내렸다. 봄비 치곤 빗줄기가 굵었다. 휴대폰의 스피커 기능을 켜서 옆에 내려놓고 화장지로 BB크림이 묻은 눈썹과 입술을 닦아냈다. 휴대폰을 들고 있었던 듯 곧바로 언니 목소리가 들렸다.


"금방 내려갈건데 왜?"

“비와도 실내는 괜찮지 않을까요?”

“에이 그건 아니지. 하늘카페는 하늘 보러가는 건데, 오늘은 잿빛이잖아. 울고 싶으면 말리지 않겠지만.”

“흐악, 오늘은 울고 싶지 않아요. 어떡하지, 다음에 갈까요?”

잔뜩 실망해서 목소리가 늘어졌다.

“아니, 그래. 하늘카페는 다음에 가고, 오늘은 다른 곳 가자. 장소는 내가 일방적으로 정할게. 가보면 좋아할 거야.”

언니가 달래듯 대안을 내밀었다. 구겨지던 마음이 펴졌다.

“어디든 좋죠, 난 오늘 언니 껌딱지 할거니까. 뭐 따로 준비할 거 없어요?

“비맞이 갈 거니까 그냥 나오면 돼.

그 말에 놀랐다. 아니 어이가 없었다.

“농담이죠? 비맞이를 어른도 가요?”

“그럼, 줌마 감성으로 가면 되지, 나이 제한이 어딨어.”

“혹시 물웅덩이에 빠뜨리는 건가요?”

“이런 쫄보, 걱정마 안 빠뜨릴게.”

“크흐흐, 제가 무거워서 못할걸요. 나도 언니 봐줄게요. 어쨌든 젖긴 하겠죠?”

“당연히 젖지. 내가 다이소 우비 준비했으니까 버려도 좋을 신발이나 신고 나와.”

“준비는 다했어요. 5분 후에 내려갈게요.”


눈 밑쪽 광대에 자리잡은 기미를 내추럴 쿠션으로 두드리고 틴트를 입술에 살짝 문질렀다. 잘못 바르면 피 묻은 것 같아서 진하게 묻은 곳을 면봉으로 닦아냈다. 모아놓았던 샘플 화장품을 썼더니 번들거리는 느낌이 거슬렸다. 어쩔 수 없었다. 고어텍스 바람막이를 걸치고 버려도 아깝지 않을 운동화를 신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위층 언니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언니의 에코백이 불룩했다. 우리는 못난이 인형처럼 웃었다.


주차장에서 승주엄마를 만났다. 지난 가을부터 언니와 함께 부업을 해서 가끔 마주쳤는데, 알고 보니 규원이와 같은 어린이집 자모였다. 언니가 말했다.

“이렇게 우리들끼리 외출하면서 아이 이름으로 부르는 건 이상하지 않아?”

“맞아요. 그래서 전 이름 불러주는 게 제일 좋아요.”

승주 엄마가 맞장구쳤다. 언니네 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었다.

“민아씨처럼 우리도 이름으로 부르자. 여긴 삼둥이 엄마라 더욱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줘야 할 은주, 그리고 나는 성희.”

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나도 얼른 맞장구쳤다.

“저도 이름으로 불러 주는 게 좋아요. 민아씨랑 성희 언니, 잘 부탁드려요.”

“저도 잘 부탁합니다. 은주 언니, 성희 언니.”

“흐흐 좋네, 서로 이름 불러주니.”


민아씨가 자가용의 시동을 걸었다. 민아씨 남편이 출퇴근을 대중교통으로 하고 있어서 차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오늘은 초단위로 시간을 사용하는 언니와 민아씨가 나를 위해 의기투합해서 시간을 내 준 것이다. 성격이 좋은 민아씨는 좀 성숙한 느낌인데, 나이는 나보다 세 살이나 어렸다.


언니가 안내한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민아씨가 차를 몰고 갔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돌봄의 책임 같은 걸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는 드라이브라니! 오랜만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창문에 빗금을 그으며 떨어지는 빗방울과 그 너머 비에 젖은 창밖의 풍경을 말없이 감상했다. 쌍둥이를 품에서 내려놓고 외출하는 건 처음이었다. 3월 첫 주에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주일 동안은 1시간 만에 아이들을 데려왔다. 시원이는 울었고, 지원이는 첫날 외에는 울지 않았다. 두 번째 주에는 2시간 반 만에 데려왔다. 시원이는 잘 놀다가 나를 만나면 안겨서 울었다. 데려다 줄 때도 몇 번 울었다.


규원이가 7세 반에서 아이들을 확인하러 와서 동생들 노는 모습을 한 번씩 보고 간다고 원장님이 전해주었다. 몇 달씩 우는 아이도 있는데, 지원이는 물론이고 시원이도 그만하면 야무지게 잘 적응하고 있다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아이들 담임은 동그란 얼굴에 앳된 웃음을 가진 선생님이었다. 기가 세고 노련한 원장님과 대조적이었다. 보조 선생님은 오똑한 콧날 때문에 미인상인데 상큼한 웃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했다. 갓 사춘기를 벗어난 것처럼 어렸고 목소리도 아이 같았다. 시원이는 담임에게, 지원이는 보조 선생님에게 안기길 좋아한다.


이번 주부터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이 4시간으로 늘었다. 놀이하고 점심 먹고 낮잠까지 자고 오는 것이다. 월, 화, 수 3일 동안 연락 오면 바로 뛰어가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규원이가 있어선지, 쌍둥이가 한 곳에서 의지하고 있어선지 아직 호출이 온 적은 없었다. 오늘은 목요일, 역시나 마음은 대기하고 있다. 언니도 민아씨도 약속해 주었다. 연락이 오면 바로 원으로 돌아가기로. 참 고마운 이웃들이다.


아이들이 처음 어린이집에 가면 수두나 감기를 앓는다고 해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 하루하루 경계하면서 적응기를 보내는 중이다. 3주차가 되자 조금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그래선지 아이들을 원에 보내놓고 돌아서면 감회가 새롭다. 이런 날이 오도록 위기를 넘기고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마워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이다.


도착해서 보니 공원 주차장이다. 경안습지생태공원이라고 적혀있다. 언니가 나눠준 우비를 입고 습지로 들어갔다. 아직 새 순이 돋지 않은 호수에는 겨우내 묵은 연잎의 줄기가 비죽비죽 솟아 있다. 꺾인 줄기도 있고, 씨앗이 든 채 무겁게 매달린 연밥도 보였다.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연속적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퍼져가는 물살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원들끼리 부딪쳐 물살에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수면으로 꽂히는 물방울의 리듬도 경쾌하고, 끊임없이 퍼지면서 합쳐지고 새로운 물살을 만나는 수면의 일렁임도 즐거웠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생각났다. 비 오는 날의 풍경을 피아노 음률로 재현한 천재 음악가의 예술적 감성을 흠모했다. 다른 건 모르지만 쇼팽을 좋아해서 웅크린 채 쇼팽만 듣던 시절이 있었다. 쇼팽의 피아노연주곡을 듣고 있으면 슬픔을 견딜 힘이 생겼다. 그 시간들이 지나 나는 지금 이곳에서 강약으로 흐르는 빗방울전주곡을 심상으로 재생하며 빗물이 방울방울 뛰어드는 호수를 보고 있는 것이다.

희부연 하늘이 거울 역할을 해서 호수 가득 흩어져 있는 연잎 줄기들이 수면에 선명하고 날카로운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기하학 무늬로 가득한 어마어마하게 넓은 추상화 캔버스는 우주의 가슴에 박힌 무수한 상처를 목도한 것처럼 기이한 느낌이었다.

우산과 우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생태공원 산책로를 느리게 걸었다. 우리 셋 다 아무 말이 없었다. 말을 잃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쓸쓸한 풍경이 있었다니.


아이들을 데리고 아르코뮤지엄에 갔던 기억이 겹쳤다. 비디오 아트의 변화무쌍한 배경 안에서 아이들이 신비로움을 체험하면서 발짝을 찍고 뛰어다니다 밀려드는 파도에 옷이 젖을까 움츠렸다. 실제 자연과는 다른 체험이었다. 자연을 먼저 체험했더라면 감흥이 또 달랐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이들의 시선이 좀 더 멀리까지 현상을 관찰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자라야 할까. 이런 풍경을 보여주면 시원이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시원이에겐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서둘러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다음에 비가 오는 주말을 만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호수나 연못에 가야겠다.


굵어진 빗소리에 몸이 떨려왔다. 3월 중순의 비는 남쪽 지방의 꽃소식에 쫓기듯 봄을 재촉하고는 있지만 아직 선득하다. 발은 젖지 않았으나 따스한 곳이 간절히 그리웠다. 우리는 팔당댐 가는 길에 있는 유명한 도토리 음식점으로 갔다. 이른 점심을 먹고 바로 출발하기 위해서. 11시 전이었는데 벌써 대기번호가 13번이었다. 강변까지 내리막길로 조성된 정원은 아직 푸른 잎 하나 없었다. 사철나무들만 푸르죽죽한 침엽수로 겨울을 버텨내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서 도토리 전에 도토리들깨칼국수와 묵사발을 시켰다. 따끈한 들깨 국물이 제일 인기가 좋았다. 따스한 국물로 위를 달래자 금방 온기가 돌아왔다. 맛집으로 유명한 도토리 요리는 맛이 훌륭했다. 성희 언니가 전과 묵사발을 먹으며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조만간 판을 벌여보자고 입을 모았다. 셋이 되니 좋은 점이 많았다. 이미 몇 차례 언니네 집에서 만둣국이며 김치전을 만들어 먹었기에 의기투합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음식점 이용객에게 셀프 커피숍 이용권을 주는 곳이라 우리는 옆 건물로 옮겨가서 따스한 난방기 옆에 자리를 잡았다. 민아씨가 커피 브루잉을 배웠다고 하면서 커피를 내려왔다.

“바리스타가 내려다줘서 그런가, 커피 맛이 근사하네!”

언니가 민아씨를 칭찬했다. 내가 민아씨에게 물었다. 핸드드립과 브루잉이 뭐가 다른지.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다만 커피를 필터로 추출한다는 면에선 같은 의미일 텐데, 브루잉은 영어식 명칭이고 핸드 드립은 일본식 명칭인거 같아요. 하지만 뭐 기계커피는 누가 내려도 똑같은 거니까, 맛이 좋은 건 좋은 원두를 쓴다는 말이겠지요?”

민아씨 말을 언니가 받았다.

“맞아. 요즘은 편의점 커피도 휼륭하더라. 난 캡슐커피에 맛을 들인 후부터 거기에 푹 빠져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랑 아버지 요양원 갔다가 편의점 커피를 사먹었는데, 의외로 괜찮아서 그 후론 병원 갈 때마다 엄마랑 편의점 커피를 사먹고 온다니까.”

성희 언니가 말했다. 나는 그저 커피를 마실 수만 있으면 감지덕지라 기회 있을 때마다 가리지 않고 마셨는데, 언니가 내려주는 캡슐커피에 매료되었다. 지금은 언니가 티타임 선언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그 때마다 나는 견과든 과일이든 티푸드를 챙겨들고 올라가서 얻어먹는다. 잘 둔 이웃 하나가 멀리 있는 가족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이제 오전에 잠시라도 틈이 있으니 언니와 아이들을 위해 간식다운 간식 좀 만들어 밀린 빚을 좀 갚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자 벌써 흐믓하다.


창밖으로 팔당호수가 보였다. 비는 더 이상 맞고 싶지 않았지만 비 오는 강변의 풍경은 정말 운치 있고 아름다웠다. 강을 보면 왜 마음이 편안하고 유해지는 걸까, 궁금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물줄기의 흐름 때문인 걸까? 아니면 야생의 세계를 길러내는 원초적인 생명의 젖줄이어서일까! 나에게 강의 역할을 하는 건 뭘까?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건 남편과 언니와 친구 진희다. 그리고 희로애락을 총체적으로 안겨주는 아이들, 내 아이들이 있다. 나는 마음에도 강이 필요하고, 나는 지금 그 강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또 혼자 웃는다. 나와서도 아이들 생각을 하고 있다. 시계를 보면서 이제 슬슬 일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즈음, 민아씨가 입을 열었다.


“성희언니한테 층간소음으로 고발당했다는 말은 들었어요. 은주언니네 아래층, 송이 엄마라는 그 여자요, 약간 이상하죠? 그 후로 다른 일은 없었어요?”

“우리 아이들 원에 못 보내게 하려고 용쓰고 다닌 것도 알고 있어요?”

“그것도 들었어요. 성희 언니 말대로 되었잖아요. 그 원장님이 규원이를 1년 동안 지켜봤는데, 다른 사람 말을 듣겠냐고, 그리고 어린이집도 운영을 해야 굴러가는 건데 삼둥이를 선택하지 송이를 선택하겠냐고, 시비 거는 자체가 바보짓이라고 했었거든요. 당연한 결과인데, 억지가 통하지 않아서 제 딴에는 억울했을 거 같아요.”

“그렇겠죠? 남우세스럽게 우리 집 위생 상태를 떠벌이고, 내가 우리 아이들을 방치해서 애들 성격이 이상하다고 했나 봐요. 원장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규원이도 보내고, 쌍둥이도 차 운행 할 때마다 얼굴 익히면서 인사 나눠서 다 아는 처지인데,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우리 아이들 받으면 자기 아이 못 보낸다고 했으니, 원장님도 기가 막혔겠지요. 걱정 마시고 꼭 보내달라고 되레 부탁을 하던데요.”

“그러니까요. 잘 난체 해봐야 결국은 뭐냐고요.”

“뒤에서 또 뭔 일을 꾸미는지 모르겠지만, 신경 안 쓰려고요. 그 여자 일로는 이제 그만 피곤하고 싶어요.”


내 말에 성희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그렇게 하라는 단호한 표정으로. 민아씨도 웃었다. 가만히 있으면 진중해 보이는데 웃는 모습은 천진해서 어린 티가 났다. 민아씨가 먼 강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실은 송이 엄마, 그 여자랑 예전에 알고 지냈어요. 이름이 소미, 소미씨에요. 제 이종 사촌, 그러니까 이모 아들이 저랑 동갑인데, 첼로 연주자거든요. 예전에 소미씨가 그 애랑 사귄 적이 있었어요. 꽤 오래 만났고, 사촌이 결혼할 거라고 해서 우리도 다 알고 지냈거든요. 클래식 애호가라면 알만한 첼리스트인데, 가끔 공중파 방송도 타고 해서, 연주자치곤 많이 알려진 친구에요. 이모가 그 애한테 악기며 레슨비에 고급투자를 했거든요. 어릴 땐 이모네랑 같은 교회에 다녀서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는데, 이모 쓰러지고 나선 뜸해졌죠. 이모 입원해있던 병원에서도 마주친 적 있었어요. 소미씨랑. 그런데 얼마 후 헤어졌더라고요. 그 때 놀랐어요. 그렇게 끝날 거라곤 생각지 않았거든요. 연락을 다 끊어서 그 뒤론 아무도 소식을 알지 못했어요.”

민아씨가 내 얼굴 한 번, 언니 얼굴 한 번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언니와 나의 의아한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민아씨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지금 그 이야기를 왜 하는지 민아씨의 의중을 알 수 없지만 송이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모 돌아가신 뒤에 사촌은 피아니스트하고 결혼했어요. 지금 연주여행도 같이 다니고 각자 활동이 많아서 바쁘게 지내는 것 같아요. 아직 둘 사이에 애는 없고요. 그 후론 정말 까맣게 잊고 살다가 우연히 이 아파트에서 소미씨를 만났는데, 전 한 눈에 알아보겠더라고요. 신기하게도 소미씨는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 있죠. 그러다 어느 날 송이 얼굴을 보게 된 거에요. 근데 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송이가 제 사촌과 너무 닮아서요. 어느 정도냐면, 잠깐 숨이 멎을 지경이었거든요. 그래서 송이 오는 시간에 일부러 슈퍼에 나와 있다가 몇 번 다시 봤어요. 보면 볼수록 닮았는데, 이거야말로 심증일 뿐이라. 그 다음부터는 송이 아빠를 한 번 보고 싶더라고요. 어떻게 생긴 분인지.”


언니도 나도 솔깃해서 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남 이야기에 함부로 참견하기도 뭣한 방향이었다. 어쩌면 송이 엄마에게 뭔가 비밀이 있을지도 몰랐다. 송이에게 말 못할 출생의 비밀 같은 거.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송이 아빠도 딸 바보라던 남편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바보들끼리 하이 파이브를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작 나는 송이 아빠를 만나지 못해서 송이가 아빠를 닮았는지 알 수 없었다.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민아씨는 실망하는 것 같았다. 우리 둘 다 송이 아빠를 본 적이 없어서. 목적은 다르지만 송이 아빠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에 멤버가 하나 추가된 셈이었다. 본인은 짐작도 못하겠지만.





새해를 맞이하면서 줄곧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자리 정보를 찾아보고 있다. 아이들 교육비가 목을 졸라오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잠이 오지 않았다. 경력 단절이야 돌이킬 수 없지만, 일을 한다고 해도 온전히 근무시간을 지킬 수도 없으니, 구직 조건은 극상으로 까다로웠다. 그래도 나에게 맞는 근무조건을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눈에 불을 켰다. 이것저것 알아본 후에 언니의 판단이 얼마나 현명한 거였는지 인정했다. 2월의 어느 주말에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냐고 묻는 남편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뭔가 할 만한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그러자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예기치 못한 반응이었다.


“애들이나 똑바로 잘 봐아! 그게 버는 거여, 벌써 뭘 헌다고 쓸데없이 그려!”


나도 알고 있다. 남편의 마음 이상으로 나도 온전하게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 하지만 그만큼 경제적 부담도 나눠지고 싶었다. 남편의 표현이 서운하면서도 이해가 되어 싸움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남편의 반대와 나의 욕구와 현실의 필요 사이에서 나는 찾아내야만 했다. 먼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적응해야 가능한 일이기는 했지만.


작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언니의 부업 일에 합류한 민아씨도 이해가 되었다. 벌이는 많지 않아도 시간을 헛되게 사용하지 않으려면 부업이 가장 무해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맞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반대하는 남편의 눈앞에서 부업거리를 벌려놓고 아이들을 방치할 수도 없고, 언니한테 민폐를 끼치면서 언니네 집을 작업공간으로 쓸 수도 없었다.


고민 끝에 한 가지 시도해보기로 했다.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를 수집 가공하여 클라우드에 소싱하는 업체에서 일을 주는 데이터 라벨링 업무였다. 일단 시도해보고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만둘 생각이었다. 고용노동부에서 정식 허가를 받아서 국민내일배움카드로 무료 교육을 해주는 업체들을 찾아서 비교하는 중이었다. 이번 주까지 아이들이 적응을 잘 하면 다음 주엔 그 중 한 업체에 무료교육을 신청해볼 생각이었다. 또 그동안 깜깜했던 금융투자 공부도 시작했다. 출구관리만 잘해도 안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거였다. 아이들이 자라간다고 생각하면 순간순간 마음이 조급해졌다. 시원이의 치료를 위한 검사비용도 부담이 커서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식영과 졸업 후 취업해서 만난 동료들은 회식이나 팀원모임이 있을 때마다 소금을 쓰는 직업은 월급이 짜다고 하면서 식영과 나온 걸 셀프디스 했었다. 나도 한동안은 조리학과를 공부했으면 실생활에 도움이라도 됐을 거라며 후회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교육학과를 나왔으면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되었을걸, 괜히 헛것을 공부했구나 싶다. 그랬다면 세 아이 육아 경험과 노하우를 직업으로 연결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공부다운 공부는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육아와 병행하여 뭔가 경제활동을 시작하려면 또 배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살아있는 한 인생은 끝나도 끝난게 안닌 거다.





생각해보면 내 의도와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인생을 돌아보며 성찰하게 된다. ‘지리멸렬행성탈출기’ 저자도 자기를 성찰함으로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스스로 성취해야할 방향성을 알고 집중하면 능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했다.


시원이의 녹내장은 자주 나를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봉인했던 기억들도 무시로 불러들였다. 그래서 과거형으로 말하고 싶은 고통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날마다 시원이의 눈이 악화되지 않고 회복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내가 지은 죄들을 모조리 떠올리며 속죄했다. 무심한 얼굴 뒤에 숨긴 엄마의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에 한 번도 위로나 화해의 손을 내밀지 못했던 것도, 죽도록 부인하고 미워했던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던 것도 나는 비로소 속죄했다. 죽은 호의 영혼에게까지 용서를 구하며 빌었다. 그리고 내 양심과 하늘을 향해 남은 인생 선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시원이는 안압을 높이는 원인인 방수 액체의 배출로를 개방하기 위해 레이저 치료를 받았다. 현재 약물치료와 함께 식이요법과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방법으로 관리하고 있다. 저녁이면 눈의 피로를 덜어주고 수면을 유도하기 위해 이른 저녁을 먹이고 6시부터 수면 등을 켜고 생활한다. 될수록 일찍 재우는 것이 이즈음의 육아 원칙이다. 11시간 이상 충분히 자고 나면 아이들의 컨디션도 좋고 무엇보다 명랑했다. 덕분에 나도 수면 시간이 늘었다. 그러자 잡히지 않던 혈압이 거의 정상수치로 돌아왔다.


수면이 아이들의 뇌 발달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시원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서발달과 지능발달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서 그것만은 꼭 지켜주기 위해 주말도 예외 없이 일찍 재운다. 녹내장은 악화되면 검사도 어렵고 검사할 항목도 많아진다. 한 번 잃은 시력은 회복되지 않는다. 평생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안압을 상승시키는 운동이나 과격한 놀이는 위험하기 때문에 그걸 통제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앞으로 계속 일깨워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습관을 들여주는 것이 목표다.




아랫집 여자는 중재 기관에 신고하면 기세등등한 결론이라도 얻을 줄 알았을 거였다. 하지만 접수된 건수가 많아서 6개월이 훨씬 지나 얼마 전에 상담사가 우리 집에 방문을 했다. 빈틈없이 깔려있는 매트와 실내화를 확인한 상담사가 피해조정계획서를 합의해서 작성하라고 했으나 아래층 여자가 거부했다. 소음측정을 신청하려면 피해세대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말에 여자가 격분했다. 그게 제 딴에는 그렇게 분하고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어린이집에까지 우리 집 위생상태가 어쩌고, 아이들을 방치한다며 헛소리를 하고 다녔으니.


여자가 뭘 한다해도 이제 궁금하지도 않다. 그렇게 일방적 심증으로 문제가 성립되는 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솔직히 집이라는 게 완벽하게 가꿔놓고 전시장처럼 떠받치고 살아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에게 집은 그저 아이들과 마음 놓고 살아가는 공간일 뿐이다. 순식간에 어질러지고 치우면 다시 어질러지는 곳, 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들지만 치우는 것 하나는 회오리바람이 쓸어가듯 해치우는 성격이다. 그런 청소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솔직히 아이들이 크는 동안은 각 잡아서 인테리어 해놓은 집은 생각만 해도 불편하다.


우리 집에는 낡은 이불이 뒹굴고 아이들이 사용하는 거즈와 장난감과 책들이 손닿는 곳에 펼쳐져 있다. 소파도 젖는 즉시 벗겨서 빨아 쓸 수 있는 임팔라 패브릭 소재다. 고를 때부터 틀이 돌출되지 않은 낮고 둥근 것으로 기준을 삼았다. 아이들이 개기고 뛰어놀아도 무해한 것으로. 가구란 전시품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쓰다가 용도를 다하면 버리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집도 마찬가지로 파자마 바람으로 속옷 바람으로 매일 씻고 쉬고 먹고 자는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원목 바닥재가 한 뼘도 보이지 않게 매트를 깔고도 모자라 나는 지금 체중의 충격을 흡수하는 생고무로 만든 실내화를 주문해서 신고 있다. 고무슬리퍼이긴 하지만 글로벌 메이커라 결코 싼 값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들 것까지 온 식구 실내화를 구입했다. 규원이는 잘 신는데 문제는 쌍둥이였다. 특히 시원이가 매트와 슬리퍼의 마찰 때문에 자주 넘어졌다. 위험해서 쌍둥이 실내화는 일단 치워놓았다. 위층 호호에게도 슬리퍼를 선물했다. 아이들이 우리 집에 모이는 시간이면 텐트 위에 올라가서 놀기 때문에 많이 시끄럽지 않다.


텐트는 지난 가을에 몇 번 야외에 나갈 때도 들고 나가서 잘 썼다. 강이 보이는 곳에 나가서 펼쳐주었더니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너무 비싸다고 놀랐을 때 남편이 세컨드 하우스를 지으려면 국유지 공터에 컨테이너만 하나 들여도 열배는 들 거라며 나를 설득했다. 아이들 키우면서 캠핑 다니려면 어차피 텐트는 필요하니까 하나 마련하자는 캠핑족의 주장을 말릴 수가 없었는데, 결과적으론 잘 한 거였다. 이제 좋은 계절이 오고 있으니 값을 뽑을 만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른 봄에 돌아온다고 했던 송이 아빠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남편이 그 남자를 만났을 때 석 달쯤 후라고 했으니, 2월 말이나 3월인데, 이미 3월 세 번째 주가 되었다. 회사 사정으로 해외근무가 연장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남자가 돌아와서 남편과 다시 만나게 될까? 모르겠다. 캠핑 일정을 잡으면 사뭇 다른 상황이 전개될 거라고 장담했던 남편의 기대에 나 또한 일말의 기대를 걸쳐놓고 있기는 하다.

어쨌거나 나는 1층으로 이사하려고 계속 알아보고 있다. 아이들이 지상에 발 딛고 사는 것이 내 꿈이다. 캠핑에 열심인 이유도 아이들과 함께 땅내를 맡고 하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과 숲의 푸름으로 안구를 정화 하는 데 맛이 들렸다. 뛰어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에겐 보약이다. 아무리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지리멸렬 행성이라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므로 이제 괜찮다. 나는 대한민국 아줌마니까.










그동안 <웰니스아파트 804호>편을 읽어주신 작가님과 구독자님들께 감사드려요.

연작소설 <웰니스족>3권은 준비되는 대로 가지고 오겠습니다. 웰니스아파트 거주자들의 전혀다른 욕구와 갈등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준비하는 동안 간혹 가벼운 연재소설 혹은 에세이로 찾아뵙겠습니다. 저의 매거진 <소설가의 다실> 티 에세이도 구독 부탁드립니다. 모두 멋지고 행복한 가을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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