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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가 그러던데… 진짜야?”

억울함 전문가의 졸업 선언

by 송이

“OO가 그러던데, 너 정말 그랬어?”

“얼마 전 갔던 모임에서 니 얘기가 나왔는데..”
“아까 누구랑 있는데, 너 얘기하는 걸 들었어.”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무너졌다.


솔직히 말해, 내 삶을 가장 크게 흔들어온 건 소문이었다. 근거 없는 말, 뜬구름 같은 추측, 앞뒤 잘린 이야기들. 그 앞에서 나는 언제부턴가 ‘억울함 전문가’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진실보다 이야기에 더 빨리 반응한다. 문제는 그 이야기가 꼭 사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치 내 지난날을 누군가 대신 설명해주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을 지배해온 가장 큰 감정은 불안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늘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한 건, 다름 아닌 억울함이었다.


억울함을 풀어보겠다고 관계에 매달려본 적도 많았다. 하지만 돌아온 건 이해가 아니라, 또 다른 억울함뿐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내 입에서 직접 나온 말보다 누군가의 입을 거쳐온 말에 더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아니라고, 나한테 물어봤으면 다 말해줬을 텐데…' 속으로 백 번은 중얼거렸지만, 인연은 내 대답을 끝내 기다려주지 않았다.


인간의 뇌는 공백을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정보가 비어 있으면 추측으로 채워 넣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내게 직접 묻지 않고도 사람들은 빈칸을 자기들 상상으로 메워 넣었다.


그래서 나는 쿨한 척도 해봤다. “개네들한테는 내가 연예인인가 보지. 뭐 그렇게 관심들이 많대?”
겉으론 웃어넘겼지만, 돌아서면 속은 늘 부글부글 끓었다. 그럼에도 나는 매번 억울함을 증명하려 애썼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애써 해명했을 때 그 사람들이 나를 진심으로 다시 믿어준 적이 있었던가?
아니었다.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건 얼마 전 가까운 친구에게서 받은 실망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실망 덕분에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억울함을 풀려고 애쓰는 순간, 정작 내가 더 묶이고 있었다는 걸 비로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 속에 섞여 웃고 떠드는 걸 좋아했다. 모임에서 어울리고, 시끌벅적한 한가운데 있는 게 내겐 익숙했다. 하지만 6년 전, 영화팀에서 소문 하나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누군가가 전했고, 그 말은 순식간에 사실처럼 굳어졌다. 결국 내 이름은 크레딧에서 지워졌다. 내가 직접 기획하고 지분까지 가진 영화였는데도 말이다. 모두가 '그 이야기'를 내가 직접 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한 명 한명 붙들고 이야기 해도, 그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없는 사람'이 되었다. 충격은 너무 컸고, 결국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로 이어졌다.


그 후로도 비슷한 상처는 반복됐다. 소문은 늘 나를 따라다녔고, 상처의 핵심은 같았다. 내가 좋아하고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는 사실. 돌아보니, 지나친 기대가 나를 더 크게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더 많은 기대와 더 많은 상처, 그리고 수없이 쌓인 서운함이 필요했다.


그 상처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결국 하나의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기대했던 만큼, 사람들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이 처음엔 참 아팠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많은 상처 끝에, 결국 나는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과한 기대를 내려놓으니, 소문에도 예전만큼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내 곁에 남아주는 손에 꼽는 사람들, 그 몇 명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짜 회복탄력성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에서 온다. 이제 나는 남의 인정보다, 나 자신을 믿는 힘을 더 크게 붙잡고 있다.


예쁘게 쌓아둔 나만의 도미노가 소문 한 줄기 바람에 무너졌을 때, 나는 세상 억울한 피해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너지고 보니 설계도가 보였다. 앞으로 어떻게 쌓아야 할지, 방향이 잡혔다.


그래서 이제는 괜찮다. 흔들리는 건 늘 바람이었고, 남아 있는 건 결국 나를 붙드는 믿음이었다. 그 믿음이 다시 나를 일으킨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 여러분에겐 무엇이었나요.
저는 ‘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흔드는 그 모든 것을 저는 ‘바람’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바람에 쓰러지던 풀잎도 결국 다시 일어나 뿌리를 깊게내리듯, 우리도 그 흔들림 속에서 더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상처는 아픔만 남기는 게 아니라, 지독하게도, 나를 아끼고 지키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 같아요.


결국 ‘그것’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더 단단한 뿌리가 되어갈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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