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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만드는 '약속'

by 송이

“그때도 제가 이 일을 하고 있을까요?”

“2025년 8월 15일, 여기서 만나요.”


2015년 KBS 다큐 3일 ‘안동역 편’에서 나온 장면이다. 두 여대생과 카메라 감독이 남긴 짧은 대화는 10년을 건너, 결국 현실이 되었다. 그 순간은 단순한 재회가 아니라, 약속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10년 만에 다시 편성된 방송은, 그 시절과 지금을 나란히 비췄다. 안동역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꾸밈도, 포장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세월’이 화면을 채웠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내 20대를 떠올렸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보다 당장의 하루가 더 절실했던 때. 사랑에 흔들리고, 이별에 무너지고, 창밖 풍경에 기대어 스스로를 위로하던 청춘. 눈물로 젖은 얼굴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았던 낭만의 시대.

그래서였을까. 낯선 사람들인데도 왠지 반가웠다. 같은 시간을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사실만으로, 내 마음이 그들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을 담은 많은 장면들 중,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건 여대생과 감독이 나눈 약속이었다. 10년 뒤, 그 약속은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10년 뒤에도 이어진 약속. ‘서로 안부를 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속이 무거워졌다’는 고백이 자막에 스칠 때,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울고 있었다.


서로를 잊지 않고 지켜낸 약속, 그 단단함이 몹시도 부러웠다.

약속이라는 매개체로 같은 과거를 공유하고, 또다시 함께할 미래를 위해 서로를 잊지 않았던 그들의 보이지 않는 10년이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킨다는 건 단순히 시간을 맞추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나와 당신을 기억하는 일, 수많은 사정을 안고도 다시 그 자리에 서는 일, 그리고 끝내 당신의 존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얼마나 약속을 지켜왔는가. 그리고 내게 한 약속을 끝까지 지켜준 사람은 누구였는가. 곧바로 떠오른 건 실망뿐이었다. 추측으로 상처받았고, 내어준 시간과 마음이 되돌아오지 않아 아팠던 순간들뿐이었다.


그러나 곱씹어 보니, 나 역시 떳떳하지 않았다. 나는 때로 핑계를 댔고, 약속을 가볍게 만들었으며, 결국 누군가의 신뢰를 저버린 사람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약속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받은 실망만이 아니라, 내가 남긴 실망 또한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약속의 세 가지 의미를 정리했다. 누군가를 오래 기억하고, 그 기억 속에서 약속을 끝까지 지켜내고자 하는 다짐과 함께.

첫째, 약속은 함께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둘째, 약속은 당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표식이다.

셋째, 약속은 관계를 단단히 이어주는 다리다. .


기억, 존재, 연결.

약속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나를 잊지 말아줘.‘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와의 약속은 결국 스스로와의 약속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무너짐 속에서도 당신을 기억하고, 연결을 지켜내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당신은 오늘, 어떤 약속을 품으며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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