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다고 달라지진 않는다
– 자기관리는 통제가 아니라, 나와의 협력입니다
“오늘은 진짜 참아야지.”
오전 회의에서 마음이 무너졌고,
오후엔 억지웃음을 견디며 하루를 버텼다.
출근길엔 숨 막히는 대중교통 속에,
퇴근길엔 멍하니 창밖을 보며 무력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하루가 끝났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모든 일을 다 해낸 사람처럼
심신이 탈탈 털려 있었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다.
“편의점 신상 아이스크림이 나왔다던데…”
“어제 유튜브에서 본 야식 먹방, 진짜 맛있어 보였는데…”
“그 맥주 광고, 왜 그렇게 시원해 보였던 거야…”
이건 회피다
무너진 감정의 균형을
잠깐이라도 회복하고 싶은
정신적 탈출구.
하지만 우리는 그걸
‘욕망’, ‘게으름’, ‘자제력 부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나는 왜 또 이걸 못 참지?”
“왜 이렇게 약할까…”
그 자책은 너무도 익숙해서
우리는 더욱더 단단한 계획을 세운다.
간헐적 단식.
절주 챌린지.
디지털 디톡스.
하루 만 보 걷기.
‘관리하는 나’에게 자부심도 생긴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피로가 쌓인다.
의욕은 사라지고
단 한 번의 일탈이 모든 걸 무너뜨린다.
“어차피 망했어.”
“이럴 바엔 그냥 먹자.”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지 뭐…”
왜냐하면 그것은
‘나를 이겨야만 유지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온은 다르게 본다.
그는 말한다.
“통제에는 한계가 있지만,
자율은 가능성을 엽니다.”
절제는
욕망을 억누르는 방식이다.
먹고 싶은 걸 미루고,
쉬고 싶은 마음을 다그치며
스스로를 조여낸다.
하지만 자율은 다르다.
자율은
욕구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 욕구가 왜 지금, 왜 그렇게 강하게 왔는지
그 배경을 바라보는 태도다.
가온은 묻는다.
“왜 지금, 하필 이 메뉴가 떠올랐을까?”
“왜 이토록 강하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을까?”
“지금 진짜 필요한 건 음식일까, 아니면 위로일까?”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내가 정말 먹고 싶었던 건
단맛이나 짠맛이 아니라,
하루를 버텨낸 나를
조용히 인정해주는 누군가의 말.
외로움을 채워줄 따뜻한 연결감.
‘그래도 괜찮아’라는 숨 같은 위로.
“지금 이걸 먹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몰라.”
“아니야, 오늘만큼은 그냥 나를 위해 먹을 거야.”
어느 쪽이든 괜찮다.
중요한 건 그 결정이
**의무도, 처벌도 아닌
‘나와의 대화 끝에 내린 선택’**이라는 사실.
가온은 말한다.
“자기관리는 ‘이겨내는 힘’이 아니라
‘나와 협력하는 기술’입니다.”
자율은 단번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 1분,
잠시 멈춰서
내 마음에 물어보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달라진다.
“지금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지금 내가 필요한 건, 정말 음식일까?”
그 질문이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충동을 억누르지 않아도
그 충동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하지 말라는 금지 리스트를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게 아니다.
나와 대화하며,
선택의 주도권을 다시 내 손에 되찾는 과정이다.
자율이란
내 마음과 손잡고,
내 욕망과 타협하며,
나와 함께 걸어가는 연습이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참으려 했나요?
그 참음은 진짜 당신이 원하는 방향이었나요?
이제는
‘참는 법’보다,
‘묻는 법’을 배울 시간입니다.